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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연구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07.12 ~
1862.05.06) 미국 매사추세츠, 콩코드 출생. 미국의
사상가이자 문학가. 올 한해 읽은 책의 저자 중에 누구 하나 평범한 사람이 있었을까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그 중에서도 갑(甲)이라고 할 정도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요즘 유행하는 자연인의
삶을 몸소 실천했다. 아무리 200년 전이라 해도, 그 시절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지성인이 어느 정도 보장된 앞날을 팽개치고,
산속에 들어가 이런 삶을 살기 쉽지 않았을텐데… 뭐가 그를 이런 삶으로 이끌었는지 궁금했다.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남쪽으로 1마일 반 정도 떨어진 곳에 월든(Walden)이라는 작은 호수가 있다. 물이
들어온 내력과 나가는 길을 파악하기 힘든 신비한 호수이다. 1845년
3월 말, 27세의 젊은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호숫가 숲속에서 도끼질을 하기 시작했다. 호수 북쪽 비탈진 언덕에 자신이 기거할 오두막을 짓기 위해서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에 저 서툰 손놀림으로는 도대체 개집 하나 만들어낼 성싶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로의
손놀림은 부드러워지고 신속해졌다. 5월 초순이 되자 소로는 친지들과 함께 상량(上樑)을 했다. 벽을 붙이고 지붕 올리는 일이
완료되자 소로는 마침내 새로운 집에 입주했다.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다. 19세기의 진정한 자유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2년 2개월 2일
동안의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으며, 그곳에서의 삶은 그의 작은 오두막을 어떤 거대한 건축물보다 위대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 모험은 집을 지을 때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소로는 자신의 힘으로, 그리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집을 짓고자 했다. 집이라곤 한번도 지어본 경험이 없는 이가 땅을 파고 돌을 나르고 도끼질하고
톱질하는 것 모두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지출한 건축비는 28달러가
조금 넘은 금액이었다. 당시 하버드대학 기숙사의 1년 방세가 30달러였다니, 1년 방세도안되는 돈으로 평생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지은 것이다. 당시 1달러가 현재의 1달러보다 약 30배의 가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때, 오늘날의 돈으로 1천 달러가 되지 않은 돈으로 집을 지은 셈이다.
소로는 왜 이런 모험을 감행했을까? 그가 보기에 사람들은 집의 노예였고 재산의 노예였고 일의 노예였다. 그는
월든 호숫가에 작은 집을 짓고 농사지어 자급자족하면서 여유있게 살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노예로서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하기 위해 그는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그리고 최대한 여가를 즐길 생각이었다. 그것이 바로 소로가 생각하는
자유인의 길이었다. 그는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의 삶을 낱낱이 기록했다. 그 기록이 바로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비견되는 명작 <월든>이다. 물론 소로의 상황은 자발적 고립이라는 점에서 외딴섬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의 상황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두 작품이 모두 원시적인 상황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을 비교해볼 수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소로는 <월든>에서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라고 말했다. 잠시라도 한눈 팔게 되면 뒤처지는 현대인에게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월든>이 소로가 살았던 때보다 물질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20세기
후반, 특히 21세기에 더욱 각광받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837년 랠프 왈도 에머슨과의
만남은 소로에게 일생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들이 만나게 되는 과정은 상당히 재미있다. 소로의 여동생 소피아가 에머슨의 처형 루시 브라운과 함께 에머슨의 강연을 들었는데, 강연 내용이 오빠가 쓴 글과 같았던 것이다. 이에 소피아가 브라운
부인에게 그 글을 보여주었고, 그 글이 에머슨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4월 9일 집으로 찾아온 소로를 보는 순간 에머슨은 소로가 예사로운 젊은이가 아님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소로는 본래 매사에 냉담한 듯한 태도를 보였으나, 이
뛰어난 지성인 앞에서는 특별히 생기발랄해졌다. 에머슨은 소로의 입에서 사회와 종교에 대한 탁월한 견해,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쏟아져나올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두 사람의 우정은 시작되었고, 약간의 굴곡이 있긴 했지만 소로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소로는
생계를 위해 교사 생활을 하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콩코드의 마을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체벌해야만
하는 현실을 견딜 수 없어 2주 만에 그만두었다. 형과 함께
사설 학교를 몇 년 운영하지만 형이 몸이 아프게 되자 그것마저 벗어던지고 만다. 소로는 이제 시인이자
박물학자로서 식물표본상자와 쌍안경을 들고 새로운 길을 걷기로 했다. 이 무렵 소로는 에머슨이 주도하고
있는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 운동에 매료되었다. 소로는 1837년부터 3년간 에머슨의 집에서 기거하는 동안 콩코드의 초월주의 그룹이 만드는 잡지
<다이얼>에 시와 산문을 실으면서 문필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소로는 대중보다는 개인을, 이성보다는 감성을, 인간보다는 자연을 중시했는데, 이러한 사상적 성격은 초월주의와 일치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면모는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소로의 기질이기도 했다. 소로는 원래가 모험가적
성향이 강했다. 형 존과 함께 카누를 타고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을 탐험한 것도 이러한 성격에 기인한
것이었다. 안정된 교사의 길을 접고 시인의 길을 택한 것도 일종의 모험이었다.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생활한 것은 모험의 정점이었다.
소로는 원래가 모험가적 성향이 강했다. 형 존과 함께 카누를 타고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을 탐험한 것도 이러한 성격에 기인한 것이었다. 안정된 교사의 길을 접고 시인의 길을 택한 것도 일종의 모험이었다.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생활한 것은 모험의 정점이었다. 그의 위대한 모험이 그에게 안락한 생활을 제공해주지는 못했다. 뉴욕에서의 작가생활 시도도 실패했고,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의 카누
여행 경험을 담은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의 일주일>은
형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듬뿍 담아 집필했건만 거의 팔리지 않았다. 다만 소로에게 안락한 생활이란
일반적인 것과는 판이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가 불행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모험을 통해 인생을
충분히 즐긴 사람이었다. 소로는 잘못된 것을 그냥 두지 못했다. 젊은 시절 에머슨과 함께 길을 걷다가 길 옆에 울타리가 쳐진 것을 보고 소로는 분개했다. 그는 하느님의 땅은 만인의 소유이므로 울타리 바깥의 쪼가리 땅만을 밟을 수는 없다며 울타리를 넘어가려 했다. 에머슨은 이를 만류하며 사유재산제가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성격이 어떻게 다른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소로는 월든
숲에서 살던 1846년 7월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절한 죄로 투옥당한 적이 있으며, 1859년에는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 존 브라운을 위해 탄원서를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로의 근본적인 저항은 <월든>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소로의 저항이 잘못된
제도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든 인간의 그릇된 사고방식과의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소로의 삶은 결코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에머슨의
조사가 말해주듯, 그의 시세계는 널리 인정받지 못했고, 심지어
가장 평판이 좋았던 <월든>마저도 각광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시민의 불복종>도 19세기 말에야 널리 읽혔고 간디 같은 위대한 인물의 정신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소로가 그만큼 뼛속까지 혁명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혁명적인 정신은
이해받기가 쉽지 않다. 엄밀히 말해 오늘날에도 제대로 이해받았다고 볼 수 없다. 박홍규 교수(영남대, 법학)가 지적하듯이 소로는 여전히 자연예찬론자이자 환경운동가의 선구자쯤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은 인생을 단지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사람일 뿐이었다. 자유롭게
사는 것이 그의 소중한 가치였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는 때로 고립을 자초했고 사회와 싸웠고 글을
썼다. 필자는 소로를 앞에서 말했던 대로 ‘문학적인 혁명가’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혁명가나 종교적 혁명가가 주로 한 방향으로의 전환을 꿈꾼다면, 문학적(예술적) 혁명가는 (맹목적으로)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혹은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한다.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1. 숲속 생활의 경제학 16 옷이 작다고 억지로 품을
잡아 늘리는 짓은 아무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도 치수가 맞는 사람에겐 꽤 쓸모가 있을 테니까.
17 나는 농장이나 가옥, 헛간, 가축, 농기구
등을 부모로부터 상속받았기 때문에 도리어 불행해진 이 마을의 젊은이들을 알고 있다. 이러한 물건들은
상속받기는 쉽지만 버리기는 어렵다. 차라리 그들이 넓은 목초지에서 태어나 늑대의 손에서 자라났다면, 자신이 땀 흘려 경작해야 할 밭이 어떤 곳인지 뿌옇게 서리 끼지 않은 눈으로 꿰뚫어볼 수 있으리라.
17 누가 그들을 토지의 노예로
만든 것인가? ~ 이 땅에 태어나자마자 무덤을 파기 시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런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로 그들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평생 악착같이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불멸의 영혼을 지닌 많은 인간들이 길이 75피트, 폭 40피트의 헛간과 아무리 쓸어도 결코 깨끗해지지 않는 아우게이아스의
마구간, 경작지, 목초지,
풀밭, 삼림으로 이루어진 100에이커의 토지를
질질 끌면서 그 산더미 같은 무게에 뼈가 으스러질 듯한 상태에서 숨을 헐떡이며 인생의 길을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 모습을 나는 수없이 많이 보았다. 이러한 쓸데없는 재산에 얽매이지 않은 알몸뚱이의 인간도 자신의 몸 하나를 경작하려면 등골이 빠지는 것이다.
19 실제로 항상 일만 하는
인간에게는 하루하루를 진정 성실하게 살아갈 여유가 없으며, 사람답게 타인과 교제할 시간도 없다. 이래서 노동의 시장가치는 떨어지고, 인간은 결국 기계로 전락하고
만다. 자기가 알고 있은는 바를 늘 과시해야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무지를 기억할 수 있겠는가?
20 하지만 무엇보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모습은 자기 자신을 노예로 만드는 노예 감독이 있다는 것이다. ~ 신성하고 영원하기는커녕 자신에 대한 평가, 즉 자신의 행위가 획득한 평판의 노예가
되고 죄인이 되어 사는 셈이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 따위는 우리가 남 몰래 품는 자기에 대한 평가에
비하면 소심한 폭군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은 스스로 자신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느냐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고
시사하는 것이다.
22 편견을 버리기에 너무
늦은 경우란 없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 해도 증거 없이 믿어서는 안
된다. 오늘 한결같이 입을 모아 옳다고 인정하던 사실이, 내일이면
잘못된 것으로 판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7 적당한 잠자리와 의복만
있어도 인간이 체온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연료를 과도하게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말해 체온보다 실내 온도가 높아졌을 때부터 인간은 거꾸로 불 위에서 조리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28 리비히는 인간의 몸은
난로이고, 음식은 폐의 내부 연소를 유지하기 위한 연료라고 얘기했다.
우리는 추울 때는 좀 많이 먹고, 더울 때는 적게 먹는다.
동물의 체온은 완만한 연소의 결과로 유지되는데, 병에 걸리거나 죽는 것은 이 연소가 너무나도
급격하게 일어나는 경우 또는 연료 부족이나 통풍이 좋지 않아 불이 꺼지는 경우에 일어난다. 그래서 내가 요즘 그렇게 많이 먹고 있었구나.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적게 먹고, 운동을 시작하게 될 테니까, 자연의
법칙을 아주 자연스럽게 따르고 있는 중이니까, 살이 좀 찌더라도 너무 불쾌하게 여기지 말고 기다리자.
29 생활의 노리개, 또는 사치품이라고 부르는 물건은 대부분 필요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인류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할 수 있다. 옛날부터 최고의 현인들은 가난뱅이 이상으로 검소하고 청렴한 삶을
살았다. 중국, 인도, 페르시아, 그리스 등의 고대 철학자들은 겉보기에는 몹시 가난했지만, 내면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계급에 속했다. ~ 그들과 동족이라 할 수 있는 근대의 개혁자나 은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보통 자발적
빈곤이라고도 하는 밑바탕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인간의 생활을 공평하고 현명한 눈으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업이든 상업이든, 문학이든 예술이든 사치한 생활에서는
사치라는 열매밖에 열리지 않는다.
38 우리는 옷을 구입할 때
진정한 의미의 실용성보다는 최신 유행이랄까, 뭐 그런 외관상의 체면에 좌우되는 일이 많다.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의복의 목적은 우선 생명의 열을 유지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오늘날의 사회 규범에 따라 알몸을 감싸는 점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옷장 안에 있은는 짐을 늘리지 않아도 필요한, 또는 중요한 일을 척척 해치울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용 재단사가 만든 의상이라도 그것을 단 한 번밖에 입지 않는 왕이나 여왕은 몸에 곡 맞는 의상의
편안함을 맛볼 수 없다. 그들은 새 옷을 걸어두는 옷걸이와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다. 잘 맞는 옷은 입는 사람의 성격이 각인되고 날마다 육체에 동화되어 결국에는 신체의 일부처럼 수술이나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지 않으면 함부로 버릴 수 없게 된다. 이번에 이사가기 전에 옷장 속에 가득한 안 입는 옷들을 꼭 정리하고 버리고 가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38 사람들은 대부분 깨끗한
양심을 갖기보다 유행을 좇는 데 열중하고, 새로 맞춘 옷을 입고 싶어 안달이다. 하지만 제대로 깁지도 않아 여기저기 해진 옷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옷차림으로 파헤칠 수 있는 최악의 악덕이란 기껏해야 부주의 정도가 아니겠는가. 가끔 이런 식으로 주위
사람을 시험해본다. 바지 무르팍에 천을 하나 덧대거나 꿰맨 자국을 여분으로 달고도 태연한 자는 과연
누구일까? 모두들 그런 바지는 입으면 그 자리에서 즉시 앞날의 희망이 사라진다고 믿는 것 같다. ~ 신사의 다리에 사고가 생긴 경우는 대체로 수리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그의 바지에 생긴 사고에는 손을 쓸 방도가 없으니 어찌된 연유인가? 그자는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것보다, 세상에서 존경받고 있는 것을 더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40 이 민주적인 뉴잉글랜드의
마을에서조차 부를 소유하고 그것을 의상이나 소지품으로 과시하면, 그것만으로도 거의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다. 이래서 잘 차려입은 사기꾼에게 속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거겠지.
알면서도 참 어렵다.
44 새로운 무늬에 정신 팔린
유치하고 야만스런 취미의 남녀가 열심히 만화경을 흔들며 한 눈을 질끈 감고 현 세대가 찾는 독자적인 무늬를 그 속에서 발견하려 한다. 섬유업자들은 이러한 취향이 일시적인 변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다. 유행에 따라 독특한 빛깔의 실이 두세 줄 많거나 적을 뿐인 두 종류의 무늬 주에서 한쪽은 날개 돋친 듯이 팔리지만, 다른 한쪽은 창고 안에 쌓여 있게 된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자 이번에는
팔리지 않던 쪽이 유행의 파도를 타기도 한다.
44 결국 인간은 겨냥한 목표물밖에
쏘아 맞힐 수 없다. 그러니 당장은 실패한다 해도 더 높은 곳에 목표를 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48 미개사회에서는 누구나
고급이라 할 수 있는 집을 지니고, 이러한 집에서 그들의 원시적이고 단순한 욕망을 충분히 채우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새는 둥지가 있고 여우에겐 굴이 있고 미개인에겐 위그웜이 있는데,
현대의 문명사회에서는 전 인구의 절반이 집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9 문명이 인간의 생존 상태를
본격적으로 개선했다고 단언하려면 값을 올리지 않고도 더 좋은 주택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사물의 가격은 그 자리에서, 또는 장래에 그것과 교환해야 할
생활의 양을 말한다. 이 부근의 집값은 보통 800달러 정도
하는데 이만한 금액을 모으려면 한 사람의 임금을 하루 평균 1달러로 산정했을 경우 가족을 부양하지 않는
노동자라고 10년 내지 15년을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젊은 날의 반 이상을 보시해야 일반 사람들이 자신의 위그웜을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주택 마련을 포기하고 집세를 지불하며 산다고 해도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없다. 만약 미개인이 이런 조건으로 그의 위그웜을 궁전과 맞바꾼다면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53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가
집을 짓자, 불평의 신 모모스가 “뭐야, 이동식으로 되어 있질 않잖아. 이 모양이니 보기 싫은 이웃한테서
어떻게 도망칠 수가 있나”라며 억지를 부렸다는 게 수긍이 간다. 이러한
억지는 계속 부렸으면 한다. 우리의 집은 상당히 취급하기 힘든 재산이고, 인간은 그 속에서 살고 있다기보다 유폐되어 있다고 하는 편이 나은 상황이다.
또 도망치고 싶은 보기 싫은 이웃이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비천한 자아이다. 변두리에
있는 자신의 집을 팔아 마을 안으로 이사 가기를 30년 전부터 고대해왔으면서도, 아직까지 소원을 이루지 못한 가족들이 있다. 그들은 죽지 않는 한
결코 자유의 몸이 될 수 없다. 내가 집을 사고 싶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동성”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 없어서이지만….. 왠지 집을 사게 되는 순간 그 곳에 메여 살게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든다. 그래서 처음에 전세 계약을 할 때는 1년씩 하기도 했었다. 막상 살다보니 1년은 커녕 2년도
너무 빨리 오고 이사 가는게 귀찮아 진다. 이사 비용도 그렇지만 짐이 많아져서 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자주 이사하는게 짐을 늘리지 않는 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
53 한편 다른 가난한 이들은
어떤 식으로 살아갈까? 아마 일부의 외면적인 생활환경이 미개인들보다 좋아짐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생활환경은 미개인들보다 나빠지게 된다. 한 계층의 사치는 다른 한 계층의 빈곤에 의해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한편에 궁전이 있으면 다른 한편에는 구빈원과 힘 없는 빈민들이 있다. 역대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구축한 무수한 인부들은 마늘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아마 그들은 숨을 거둘 때
제대로 매장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54 대개의 사람들은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자신도 이웃과 엇비슷한 집을 가져야 한다는 굳은 믿음 때문에
평행 사서 고생을 한다. ~ 종려 나뭇잎이나 마모트 가죽의 테두리 없는 모자를 멀리하면서 왕관을 살
여유가 없다며 세상살이의 괴로움을 한탄해야 하는가? ~ 우리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손에 넣으려고 애쓰지만, 때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적은 것에 만족하도록 애를 써보면 어떨까>
66 인간이 자기 손으로 직접
집을 짓고 단순하고 정직한 노동으로 자신과 가족을 부양한다면, 생활 속에서 항상 지저귀는 새처럼 모든
사람들의 집에도 시적인 재능이 싹트지 않을까?
73 예를 들어 한 소년에게
일반적인 교양을 쌓게 하고 싶으면, 나는 흔히들 하는 대로 그를 어느 교수 밑에 보내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연습시키지만 살아가는 기술만큼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는 것은 배울지 모르지만 육안으로 보는 법은 결코 배울 수
없다. ~ 해황성이라는 새로운 별을 발견할 수는 있어도 눈 속의 티끌은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어떤 방랑자의 위성이 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한
방울의 식초 속에 있는 괴물을 쭉 관찰하는 동안 주위에 몰려드는 괴물들에게 본인이 잡아먹히고 만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다.
76 이렇게 공동 자본과 삽을
이용한 노동을 오래 계속하다보면 이윽고 세상 사람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공짜로 어디든 갈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인파가 몰려드는 역에서 차장이 “여러분, 어서 타세요!”라고 외쳐도 연기가 사라지고 증기가 응축된 후에 보면
타고 있는 사람은 정작 얼마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열차에 치여 있는 걸 알 수 있을 rt이다. 이것은 ‘비극적인 사고’로
불릴 테고, 사실 바로 그대로인 것이다. 승차비를 번 사람, 즉 그만큼 오래 산 자가 결국 승차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아마 승차비를 벌 때에는 여행을 할 만한 기운도 의욕도 완전히 잃고 말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생의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진 노년기에 흐리터분한 자유를 즐기려고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를
돈 버는 데 허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선 일도로 나가 한 밑천 벌로 다음에 영국으로 돌아와 시인의
삶을 보내려 했던 한 영국인이 떠오른다.
78 사람이 검소한 생활을
하며 자신이 키운 작물만을 먹고, 먹는 것 이상은 재배하지 않으며, 그것을
얼마 안 되는 고가의 사치스런 물품과 맞바꾸지 않는다면 겨우 몇 로드의 땅을 경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말을 부려서 경작하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움직이고, 오래된 밭에 비료를 주기보다 때때로
새로운 장소를 고르는 편이 싸게 먹힌다는 것, 필요한 작업은 모두 여름 안에 틈틈이 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하면 요즘 흔히 보듯이 인간이 황소나 말, 돼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 등이다.
81 피라미드 자체는 전혀
놀라운 유적이 아니다. 어떤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야심가의 무덤을 쌓아올리기 위해 그렇게 많은 인간들의
일생을 허비하게 할 정도로 타락한 사회가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다. 그런 놈들은 나일 강에
던져 넣는 것이 현명한 처사였으리라.
82 이집트의 사원이든 미합중국의
은행이든 세계 속의 모든 것이 그 밥에 그 나물이다. 막대한 배용을 들이는 데 비해 결과가 형편없는
것이다. 근본적인 동기는 허영심이고, 그러한 허영심이 마늘과
버터와 빵에 대한 애착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
88 물론 대부분의 주부들은
이스트 없이 안전하고 몸에 좋은 빵을 만들 수 없다고 열심히 설명했고, 나이 지긋한 양반들은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질 것이라 예언했지만, 나는 이스트가 필수 성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사용하지 않은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변함없이 건강하기만 하다. ~ 빵을
만들 때 이스트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더 간편하고 보기에도 좋다. 인간은 기후와 환경에 있어 어떤 동물에도 뒤지지 않는 적응력을 갖추고 있다. 내가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비슷한 것 같다. 어떤 특정 음식 –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주로 김치나 국 – 을 꼭 먹어야만 살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1주일만
안 먹으면 입맛은 변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처음 안티구아에서 살 때 밥을 안 먹으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한 달 정도 밥과 김치를 안 먹어도 잘 살았다. 그 이후로 세상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몇 년간 밥과 한국식 반찬을 먹지 않으면서도
건강에 문제 없이 잘 살았고, 한국에 살고 있는 지금도 밥과 김치는 나의 주식이 아니다.
89 대부분의 농민들은 자신이
만든 곡물을 소나 돼지에게 먹이로 주고, 그것보다 건강에 좋을 리 없는 밀가루를 더 비싼 가격에 사서
먹는다.
92 가구를 지닌다는 것은
덫이란 덫을 모조리 허리띠에 동여매는 것이다. 이 애물단지를 질질 끌고서는 이 험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 요컨대 오도 가도 못하는 인간이란 자신은 가까스로 옹이구멍 같은 문을 빠져나왔지만, 수레에
쌓아올린 짐이 문에 결려 옴짝달짝할 수 없는 인간을 말한다.
96 이렇게 해서 나는 5년 이상 두 손을 사용한 노동만으로 생활한 결과, 일년에 약 한 달
보름 정도 일하면 생활비를 전부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거의 모든 여름날과 겨울날을 온전히
자유롭게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97 허클베리를 따서 얻는
얼마 안 되는 수입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으며, 밑천도 거의 필요 없는 일이며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도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품은 것이다. 물욕이 없다는 것이 나의 최대 장점이다.
98 요컨대 우리가 간소하고
현명하게 살아갈 마음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앞가림을 한다는 것이 고통스럽기보다 기분전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확신하고 있다. 사실 오늘늘에도 간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은
인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스포츠와 같은 것이다. 나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인간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밥벌이를 할 필요가 없다.
99 세상에는 될 수 있으면
다양한 인간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각자가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발견하고, 그러한 삶을 관철했으면 한다.
집을 짓든 나무를 심든, 바다로 떠나든 젊은이는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야 한다. 단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방해하는 일만 하지 않으면 된다. 뱃사람이나
탈주한 노예가 북극성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처럼, 어떤 수학적인 점을 지향하면서 방향감각을 유지하면, 이 수학적인 점은 우리 인생에서 바른 길을 제시하는 훌륭한 나침반 노릇도 할 수 있으리라. 예정된 기간 안에 목적지에 닿지 못하더라도 올바른 항로를
따라 똑바로 나아갈 수는 있다.
100 신념이 있는
인간은 어디를 가도 같은 신념을 지닌 인간과 협력하지만, 신념이 없는 인간은 어떤 부류와 교제해도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아갈 뿐이다. 협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결국 생계를 함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00 그들은 모험
도중에 모처럼 재미있는 위기가 닥쳤을 때 결별하게 되리라. 게다가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혼자 여행을
떠나는 자는 오늘이라도 출발할 수 있지만, 누구와 함께 길을 떠나는 자는 상대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출발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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