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香山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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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우연히 텔레비전을 켜니 때마침 유명한 오락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최근 들어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돈, 경제, 재테크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들을 마구 찍어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프로그램 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지만 시청자의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시청률을 높여야 하는 것이 방송이고 보면 이런 추세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런 재테크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보다 그 내용의 가벼움과 무책임함에 있다.
어제 방송된 프로그램의 주제는 '공매'였다. 법원 경매와 더불어 많이 보편화되었지만 그럼에도 '공매'는 여전히 낯선 개념이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를 하자면 '공매'는 법원 경매와는 달리 민사집행법이 적용되지 않아서 해당 부동산을 낙찰 받은 후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별도의 소송을 통해서 세입자를 내보내고 온전한 소유권을 취득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위험하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에서 그런 경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청약 가점도 낮고, 목돈은 없고. 하지만, □□(으)로 잘만 고르면 금싸라기 집을 시세보다 싸게 심지어 할부로도 살 수 있다.'
이것이 방송에서 '공매'를 소개하기 위해 사용한 문구다. 각종 부동산 제재로 인해 민감해진 시청자의 마음을 적절히 자극하고 그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기에 이 자극적인 문구는 더할 나위 없어 훌륭하다. 가격이 싸고 거기에 할부까지 되는 부동산이라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엔 앞서 언급한 위험성 외에 두 번째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정말 싸게 구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큰 수익은 독점과 관련이 있다. 독점이 가능한 시장에서는 큰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바꾸어 말하자면 경쟁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수익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동일한 규모의 시장을 여럿이 나누어 가지게 되면 각자의 몫은 줄어들고 여기에 경쟁이 가미되면 수익률도 악화되기에 이른다. 이런 과다 경쟁에 의한 수익률 악화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 집 건너 하나 꼴로 자리잡은 미용실이 그렇고, 동네마다 가득 들어찬 치킨집이 또 그렇다. 2007년의 경공매 시장 역시 이런 수익률 악화의 전형적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불과 몇 년 전, 그러니까 IMF가 한반도를 강타했던 그 시절에 경매와 공매는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의 낚시터였다. 그 당시엔 사려는 사람은 없고 좋은 물건은 넘쳐났다. 덕분에 독점은 아니더라도 낮은 경쟁률 속에 게임에 참여한 대부분의 참가자가 높은 수익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판이 달라졌다. 전문가 뺨치는 법률 지식으로 단단히 무장한 재테크의 귀신들이 물밀듯이 경공매판으로 몰려들었다. 인터넷의 재테크 사이트는 물론이고 텔레비전의 각종 프로그램에서도 경매와 공매에 대한 홍보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쯤 되고 보면 경쟁률은 적정선을 넘어섰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낙찰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감정가보다도 높게 낙찰되는 경공매판의 부동산들은 초보자가 섣불리 게임판에 끼어드는 것을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럼 경매와 공매는 이제 매력적인 투자수단으로의 가치를 상실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한(?) 예를 하나 살펴보는 것으로 대신할까 한다. 전문가(감정평가사)가 1억 정도의 가치는 있다고 평가한 아파트가 있다고 치자. 부동산에 알아보니 요즘은 거래가 줄어서 대략 9500만원 정도에 거래가 가능하다고 한다. 경매의 경우 한번 유찰되면 20%씩 입찰가가 저감되는데(공매는 10%), 만약 85%에 낙찰을 받았다면 어떻게 될까? 8500만원에 낙찰 받았으니 싸게 받은 것도 같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조금 다르다. 낙찰가 8500만원에 취등록세와 법무사비용 등을 부담하고 보면 비용은 거의 9000만원에 육박한다. 거기에 세입자의 명도비용이 추가되면 구입비용은 훌쩍 거래가에 근접한다. 거기에 요즘 한창 강력한 부동산 규제책으로 작용하고 있는 양도소득세까지 고려하면 경매로 8500만원에 낙찰받아 9500만원에 팔아도 손에 남는 돈은 거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기에 더해 경공매 물건은 불길하다는 사람들의 편견과 9500만원 이하로 간간히 등장하는 급매물을 고려한다면 8500만원에 낙찰받은 물건으로 수익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사실 요즘 1억짜리 아파트를 8500만원 이하로 낙찰받는 것부터가 하늘의 별따기다.
그럼 경공매로 수익을 내는 사람들은 정말 없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명히 그런 사람들은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슨 수로 하늘의 별을 따서 수익을 내고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투자를 이해하고 멀리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낙찰받은 집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뜯어 고치고 팔기에 가장 좋은 상태로 바꿔놓는다. 그들은 500만원의 투자가 1000만원의 수익으로 이어질 거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낙찰 받아 들어가 멀쩡한 집을 확인하고 거기에 추가로 돈을 쏟아 부어 몽땅 뜯어 고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500만원의 투자가 1000만원의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8500만원에 낙찰받은 집에 500만원을 투자하고 1억 1천만원에 집을 파는 사람들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 보일러를 틀어 온기를 채우고, 집을 보러 오는 매수자를 위해 꽃병에 꽃을 꽂아두는 사람들이다. 현관에 예쁜 실내화를 나란히 줄 세워 놓는 사람들이다. 이렇듯 9500만원의 벽을 넘어 더 멀리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수익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뛰어드는 초보자의 패배는 너무도 자명한 것이다.
매스미디어는 불나방처럼 재테크에 뛰어드는 초보자들의 실패에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인기와 시청률 이상을 바라보고 시청자의 입장을 생각하는 방송사의 신중함은 틈새를 바라보고 성공한 투자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경공매의 전쟁터에서 승리를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IP *.227.22.57
어제 방송된 프로그램의 주제는 '공매'였다. 법원 경매와 더불어 많이 보편화되었지만 그럼에도 '공매'는 여전히 낯선 개념이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를 하자면 '공매'는 법원 경매와는 달리 민사집행법이 적용되지 않아서 해당 부동산을 낙찰 받은 후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별도의 소송을 통해서 세입자를 내보내고 온전한 소유권을 취득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위험하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에서 그런 경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청약 가점도 낮고, 목돈은 없고. 하지만, □□(으)로 잘만 고르면 금싸라기 집을 시세보다 싸게 심지어 할부로도 살 수 있다.'
이것이 방송에서 '공매'를 소개하기 위해 사용한 문구다. 각종 부동산 제재로 인해 민감해진 시청자의 마음을 적절히 자극하고 그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기에 이 자극적인 문구는 더할 나위 없어 훌륭하다. 가격이 싸고 거기에 할부까지 되는 부동산이라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엔 앞서 언급한 위험성 외에 두 번째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정말 싸게 구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큰 수익은 독점과 관련이 있다. 독점이 가능한 시장에서는 큰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바꾸어 말하자면 경쟁자의 수가 많아질수록 수익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동일한 규모의 시장을 여럿이 나누어 가지게 되면 각자의 몫은 줄어들고 여기에 경쟁이 가미되면 수익률도 악화되기에 이른다. 이런 과다 경쟁에 의한 수익률 악화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 집 건너 하나 꼴로 자리잡은 미용실이 그렇고, 동네마다 가득 들어찬 치킨집이 또 그렇다. 2007년의 경공매 시장 역시 이런 수익률 악화의 전형적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불과 몇 년 전, 그러니까 IMF가 한반도를 강타했던 그 시절에 경매와 공매는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의 낚시터였다. 그 당시엔 사려는 사람은 없고 좋은 물건은 넘쳐났다. 덕분에 독점은 아니더라도 낮은 경쟁률 속에 게임에 참여한 대부분의 참가자가 높은 수익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판이 달라졌다. 전문가 뺨치는 법률 지식으로 단단히 무장한 재테크의 귀신들이 물밀듯이 경공매판으로 몰려들었다. 인터넷의 재테크 사이트는 물론이고 텔레비전의 각종 프로그램에서도 경매와 공매에 대한 홍보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쯤 되고 보면 경쟁률은 적정선을 넘어섰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낙찰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감정가보다도 높게 낙찰되는 경공매판의 부동산들은 초보자가 섣불리 게임판에 끼어드는 것을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럼 경매와 공매는 이제 매력적인 투자수단으로의 가치를 상실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한(?) 예를 하나 살펴보는 것으로 대신할까 한다. 전문가(감정평가사)가 1억 정도의 가치는 있다고 평가한 아파트가 있다고 치자. 부동산에 알아보니 요즘은 거래가 줄어서 대략 9500만원 정도에 거래가 가능하다고 한다. 경매의 경우 한번 유찰되면 20%씩 입찰가가 저감되는데(공매는 10%), 만약 85%에 낙찰을 받았다면 어떻게 될까? 8500만원에 낙찰 받았으니 싸게 받은 것도 같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조금 다르다. 낙찰가 8500만원에 취등록세와 법무사비용 등을 부담하고 보면 비용은 거의 9000만원에 육박한다. 거기에 세입자의 명도비용이 추가되면 구입비용은 훌쩍 거래가에 근접한다. 거기에 요즘 한창 강력한 부동산 규제책으로 작용하고 있는 양도소득세까지 고려하면 경매로 8500만원에 낙찰받아 9500만원에 팔아도 손에 남는 돈은 거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기에 더해 경공매 물건은 불길하다는 사람들의 편견과 9500만원 이하로 간간히 등장하는 급매물을 고려한다면 8500만원에 낙찰받은 물건으로 수익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사실 요즘 1억짜리 아파트를 8500만원 이하로 낙찰받는 것부터가 하늘의 별따기다.
그럼 경공매로 수익을 내는 사람들은 정말 없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명히 그런 사람들은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슨 수로 하늘의 별을 따서 수익을 내고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투자를 이해하고 멀리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낙찰받은 집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뜯어 고치고 팔기에 가장 좋은 상태로 바꿔놓는다. 그들은 500만원의 투자가 1000만원의 수익으로 이어질 거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낙찰 받아 들어가 멀쩡한 집을 확인하고 거기에 추가로 돈을 쏟아 부어 몽땅 뜯어 고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500만원의 투자가 1000만원의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8500만원에 낙찰받은 집에 500만원을 투자하고 1억 1천만원에 집을 파는 사람들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 보일러를 틀어 온기를 채우고, 집을 보러 오는 매수자를 위해 꽃병에 꽃을 꽂아두는 사람들이다. 현관에 예쁜 실내화를 나란히 줄 세워 놓는 사람들이다. 이렇듯 9500만원의 벽을 넘어 더 멀리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수익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뛰어드는 초보자의 패배는 너무도 자명한 것이다.
매스미디어는 불나방처럼 재테크에 뛰어드는 초보자들의 실패에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인기와 시청률 이상을 바라보고 시청자의 입장을 생각하는 방송사의 신중함은 틈새를 바라보고 성공한 투자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경공매의 전쟁터에서 승리를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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