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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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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6일 23시 15분 등록
내 흘려본 코피 중에 가장 많은 코피를 쏟았다. 고된 산행과 히말라야의 건조한 기후, 고산지대 특유의 고압으로 아무 일 없이 주르르 흐르는 코피를 많이 겪었던 터라 지혈에는 이골이 났고 웬만한 코피에 당황하지 않지만 어제 아침에 흘린 코피에 적잖이 당황했다. 라오스의 의료체계 백그라운드가 없다는 두려움이 미리 작용하여 지레 겁먹은 것도 있지만 간만에 보는 코피의 양에 기겁한 때문이기도 하겠다. 쏟아지는 코피를 속수무책으로 흐르길 내버려 두었다. 내 손등에 뚝.뚝.뚝 고속으로 떨어졌는데 당황한 중에 아, 따뜻하다 중얼거렸다. 내 피가 따뜻했다. 내 안에 흐르는 피가 밖으로 나와 떨어질 때 피는 여전히 내 안에서 흘렀던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뜻했다. 나는 따뜻했다. 돌도 아니고 바위도 아닌 인간임을 다짐 이라도 받듯 붉은 피를 마구 쏟았다.

밤 늦은 시간까지 연 사흘 야근한다. 야근은 인생을 좀먹는 일이다. 일에 대한 책임감을 떠나 상사의 평가를 전제로 한 자발적 야근의 심리를 조금 거칠게 말하면 자신감 부족, 자존감 상실, 노예근성, 자기파괴적 몰취미, 감정장애, 자기애 실종에 더한 반인간적인 처사다. 일이라는 것은 양면의 날과 같아서 자기발전의 도야가 될 수도 있지만 삶을 갉아먹는 강력한 아편과도 같기 때문에 삶의 기쁨과 사적 영역에

일이 침범할 경우 심각한 주객전도가 일어난다. 마치 일이 생을 추동하는 듯한 착각 말이다. 일에 죽고 사는 이가 나오는 건 사실 정신병의 일종을 스스로 치료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후천적 난치성 질환이다.

3일 밤을 일하고 토요일에 출근했다. 오후가 되어도 퇴근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하여 밖을 본다. 구수한 숯 냄새가 날아와 코에 닿았다. 일상의 향기다. 아낙들의 노고가 바람이 되어 향기가 된 것 같다. 향기 안에 숨은 그 고단한 삶을 가늠해 본다. 썬그라스 낀 여인이 너른 치마를 나풀거리며 걸었다. 땅에 붙는 샌들을 신었고 어울리지 않는 큰 배낭을 맸다. 그때 불현듯 알게 되었다. 다른 길을 가겠노라 나선 길에 같은 길로 들어서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밥의 덫에 걸려들었다. 먼 곳에 왔다고 다른 삶이 기다린 건 아니었다. 후퇴된 일상에 자괴감만 제대로 확인할 뿐이다. 코피 됫박을 흘리고 비로소 월급쟁이, 갈수록 제대로 자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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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8 09:20:51 *.33.16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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