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 조회 수 126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학교 가기 대소동
혹시라도 누군가 무턱대고 외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이라면, 나는 슬그머니 그 분의 소매 끝을 잡겠다. 지난 시행착오를 생각하면 처음 외국에 발 디딘 날까지, 아니다, 외국에 가겠다고 마음 먹었던 순간까지 만유인력으로 소급하며 머리를 감싼다. 이곳에선 금기어와도 같은 조건법, ‘만약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이 금기어를 내뱉게 되는 날이 올 테니 말이다. 어른들이야 진흙탕을 구르든 레드카펫을 밟고 다니든 제 앞길 제 알아서 살면 그만이지만, 아이들은 어디 그런가. 태어나 엄마 입을 보고 수백 번 반복하며 어렵사리 배운 모국어가 점점 폐기되는 전환을 겪게 되고,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유희왕 카드를 양도소득세도 없이 이전하며 주변정리를 하고 왔지만 정작 친구들은 없고 결국 혼자 밥을 먹게 되는 소외를 당한다. 말이 통하면 싸우기라도 하겠으나 이건 당최, 선생님이고 친구들이고 말조차 알아 먹을 수 없으니 매일이 난감하고 당황스럽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우는 것이다.
허무한 대소동의 결말이다. 입학하기 전날 밤, 아이들을 불러 모아 물었다. “프랑스라는 곳을 아느냐? 모른다. 프랑스학교라는 곳이 있다는데 다닐 수 있겠느냐? (노는 게 지겨웠으니) 다닐 수 있다.” 후, 깊은 한숨을 내쉬고 하늘을 봤다. 나는 더 막막해진다. 못 다니겠다 했으면 여길 떠나기라도 했을 텐데 말이다. 스스로 가겠다 하니 말릴 수도 없겠다. 어쩌겠는가, 어차피 에이비씨디도 모르고 아베쎄데도 모르니 어디서 배우든 너희에겐 매 한가지다. 훗날 알고 보니 불어 구사는 입학의 필수조건이었고 아무것도 모른 체 입학한 케이스는 전무했다. 교민사회에서도 여전히 회자되는 알 수 없는 미스터리다. 입학을 승인한 백발의 교감쌤, 도미니크는 전무한 케이스를 남기고 그 다음해 프랑스로 발령받아 떠났다.
아비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지 못했으니 공부를 강요할 순 없다. 이 세상 모든 게 공부라 말하며 긴 수염의 뒷짐진 현자처럼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을 드러내 보이는 아이를 안아주는 대신, 목소리를 높이고 야단치진 말았어야 했다. 지난 날 내 과오에 퇴계 선생이 할배 목소리를 하고 말한다. 퇴계 선생의 훈몽訓蒙 시에 이런 것이 있다.
큰 칭찬이 회초리보다 훨씬 낫다네
내 자식 어리석다 말하지 말라
좋은 낯빛 짓는 것만 같지 못하리 ('일침', 정민 지음, 재인용)
맹자가 거든다.
“어떤 이가 자기 밭에 심군 곡식의 싹이 잘 자라지 않자 싹을 강제로 뽑아 올라오게 했다. 그리고는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자랑했다. 다음 날 보니 싹은 다 말라 죽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백발의 도미니크쌤과의 일화가 하나 있다. 라오스에 1년 반을 살다 베트남 호치민으로 넘어오던 때였다. 교감선생님이 베트남으로 가기 전, 같은 반 친구들과 마지막 여행을 함께 했으면 하니 여행 비용과 그 기간의 학비를 내지 않아도 여행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해왔다. 좋은 사람들이다. 안타깝게도 비행기 일정으로 큰 아이는 반 친구들과 마지막 여행을 갈 수 없었다. 비행기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좋은 사람들의 선의와 못다한 우정과, 인연의 아쉬움을 잊지 않고 사는 수밖에. 나라가 어디든, 학교가 어디든 사람을 키워내는 건 사람이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317 | [수요편지] 그리고 비엔티안 | 장재용 | 2019.08.27 | 1191 |
3316 |
[화요편지]5주차 워크숍_ 내 생의 마지막 10분 ![]() | 아난다 | 2019.08.27 | 1349 |
3315 | 신화는 처음이시죠? - 그리스 로마 신화, 한국 신화 | 제산 | 2019.08.25 | 1279 |
3314 |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곰팡이 핀 치즈, 먹어도 될까요? ![]() | 알로하 | 2019.08.25 | 16055 |
3313 | [금욜편지 102- 책쓰기준비 1- 진짜욕구] | 수희향 | 2019.08.23 | 1213 |
» | [수요편지] 학교 가기 대소동 | 장재용 | 2019.08.21 | 1267 |
3311 | [화요편지]5주차 미션보드_내 생의 마지막 날 | 아난다 | 2019.08.20 | 1225 |
3310 | 역사는 처음이시죠? - 세계사 | 제산 | 2019.08.18 | 1202 |
3309 |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한 여름에 즐기는 우리나라 와인 2 ![]() | 알로하 | 2019.08.18 | 1363 |
3308 | [금욜편지 101- 책쓰기와 글쓰기의 차이점] | 수희향 | 2019.08.16 | 1223 |
3307 | [수요편지] 에어컨이 없어야 장사가 잘 된다 | 장재용 | 2019.08.14 | 1331 |
3306 |
[화요편지]4주차 워크숍_사랑하는 나에게 ![]() | 아난다 | 2019.08.13 | 1325 |
3305 |
역사는 처음이시죠? - 한국사 ![]() | 제산 | 2019.08.12 | 1353 |
3304 |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한 여름에 즐기는 '우리나라' 와인 ![]() | 알로하 | 2019.08.11 | 1493 |
3303 | [금욜편지 100- 백번째 편지와 첫 만남] | 수희향 | 2019.08.09 | 1173 |
3302 | [수요편지] 잘 사는 나라 | 장재용 | 2019.08.07 | 1177 |
3301 | [화요편지]4주차 미션보드_가지 않은 길을 걸어보다 | 아난다 | 2019.08.06 | 1187 |
3300 | 여름 방학 - 교실 이데아 | 제산 | 2019.08.05 | 1143 |
3299 |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한 여름에 즐기는 와인 ![]() | 알로하 | 2019.08.04 | 1176 |
3298 | [금욜편지 99- 10년의 책읽기를 마치며] | 수희향 | 2019.08.02 | 11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