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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7일 11시 02분 등록
새 해 첫날, 시댁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당신들 고단한 삶 속에서도 며느리 번거롭게 할 일 만들지 않으시려고 유난히 애쓰시는 시부모님은 제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 존재이십니다. 남편과 갈등이 생겨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 싶다가도 부모님을 떠올리며 그래도 내가 그러면 안 되지 하고 마음을 고쳐먹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싱크대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시는 어머님의 고무장갑을 기어코 빼앗아 끼고 그릇을 씻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님께서 곁에 서서 이번에 대입을 치룬 시조카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아이 엄마인 시누이가 그렇게 말을 안 듣고 학원도 안 보내고 학교 근처에 얼씬도 안하더니 결국 재수를 하게 되었다며,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애들 교육에는 돈 아끼지 말아야 애가 잘되는 법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설거지가 끝나도록 멈추지 않는 어머님의 외손녀 걱정을 듣다가 대답했습니다.

“어머님, 선경이는 똘똘하고 싹싹해서 어디서 뭘 해도 잘 할 거예요. 어떻게 애를 그보다 더 잘 키울 수가 있어요. 애들 키울수록 아가씨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던데. 그렇게 돈 들여가면서 공부시키는 강남애들도 절반 넘게 재수한다고 하더라구요. 어찌어찌 좀 더 좋은 대학 가도 뾰족한 수 없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기도 해요. 대입 수험생이 60만인데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이 45만이라니, 어느 대학을 가도 결국 대부분이 공무원 시험준비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공무원이 되는데 성공한다고 한들, 모두가 그 삶에 만족하는 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기도 하구요.” 

“그렇기는 하다마는” 

제 딴에는 어머님 마음 편하게 해드리려고 고르고 골라 드린 말씀이었는데 어머님 표정이 묘했습니다. 한참 어머님 표정을 살피다 내친 김에 오래 망설이던 한 마디를 더했습니다. 

“어머님, 저희 올해는 서울 뜰까 해요.” 
“애들 교육은 어쩌려고?” 
“서울에서 애들 교육시킨다고 애들이 다 잘 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전부터 그런 생각이 있긴 했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서울, 서울하는 걸 보면 제가 못 보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지금까지 버텼는데요. 딱히 어디로 가야할지도 대안이 없기도 했구요. 그런데 이젠 더 망설이면 안 될 것 같아요.”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자리를 옮겨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이야기는 결국 서울 근무가 불가피한 남편을 두고 아이 둘과 저, 셋만 지방으로 이사를 하겠다는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어머님께 아이들 교육 문제라고 했지만 실은 지방 이주를 결심한 데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엄마인 제 삶의 방향성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어머님께 거기까지는 말씀드리진 못했습니다. 칠순 넘도록 아들자식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오신 어머님께 며느리의 결심을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할지 막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님 마음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어머님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애비가 아직도 너를 힘들게 하는 모양이구나. 그래도 애들 봐서라도 네가 조금만 더 참으면 안 되겠냐? 남편도 없이, 이렇다 할 벌이도 없이 애들 데리고 사는 것이 만만한 것이 아닌데...” 

어머님, 아이아빠가 저를 힘들게 해서가 아니에요. 그런 줄 알았던 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지금 저희는 누구보다 서로를 위하는 좋은 친구예요. 그저 서로의 길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에요. ‘부부’라고 해도 어느 한쪽이 자신의 길을 떠나 다른 편의 길을 따라 걸을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뿐이에요.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고 머금고 있던 이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며느리 잘 못 들어와 아들 신세 망쳤다며 맘껏 원망하고 탓할 수 있게 해드리는 편이 그간 부족한 며느리에게 주신 당신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오랜 모색 끝에 찾은 제 길로 들어서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은 시부모님만이 아닐 겁니다. 모두 털끝 하나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에게 굳이 험한 길을 찾아 떠나려는 저를 어찌 설명해야할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저를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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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이 주목한 대한민국 습관멘토 이범용 작가의 『습관의 완성』 출간 소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번 좋은 습관 만들기를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의지 부족이 아닌 잘못된 습관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500명이 넘는 참여자들이 직접 체험한 습관 실천 과정과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보통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습관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니 습관을 완성하고자 하는 분들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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