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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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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5일 22시 48분 등록

코로나로 어려움은 있지만 요즘같이 맑은 하늘과 멀리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은 날이 없었다. 멀리 산이 또렷하게 보이고 세상에 모든 것이 자신의 거기 있음을 명확히 알리려는 듯 모습과 그 색을 드러내느라 여념이 없다. 어릴 적 한 여름 소나기가 지나가고 해가 나면 촉촉하면서도 덥지 않고 하늘이 쨍쨍한 날씨가 난 너무 좋았다. 왜 그런지 모든 걸 씻어주고 가릴 것 없이 다 볼 수 있던 그 날씨가 나에게는 날씨에 관한 큰 추억이다. 그 때는 원주에서 살던 시절이었다.

 

코로나가 아직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더운 날씨와 맑은 날씨를 즐기기 위해 해가 저물 때쯤이면 집 앞 천변 산책로에 나온다. 가족끼리 나오는 사람들은 걸으며 이야기에 한창이고 자전거를 타고 오거나 킥보드도 타고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 산책을 즐기기도 한다. 사람은 집에만 살 수 없나 보다. 세상에 나가야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리고 자연을 느껴야만 안정감을 그리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한 달 넘게 하루 10Km 이상 산책을 즐겼다. 7월부터 모든 일정을 바꾸느라 두 시간여가 걸리는 산책은 못하게 되었다. 운동 삼아 걷던 길이었고 생각을 비우는 시간이었다. 음악을 듣기도 하고 때론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듣다가 걷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것도 매일 걷는 것이 중요했다. 살다 보면 힘이 빠지기도 하고 뭔가 복잡하기는 한데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모를 때가 가끔 다가온다. 한가지 일이 푹 파묻혀 다른 것을 돌아보지 못할 때도 그렇지만 모든 것이 잘 맞아 돌아가지 않을 때는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지기 쉽고 무기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걷기는 이런 시간에 매우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 걸으며 호흡하며 걷다 보면 많은 문제들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걸을 때 딛고 있는 땅을 느끼며 주위에 누가 봐주지 않아도 자라고 있는 많은 생명체들에 마음을 뺏기게 된다. 이내 힘들던 문제들도 그냥 어떤 지나간 일처럼 느껴져 한결 숨쉬기 편해지고 마음도 누그러진다. 그냥 걷지 뭐!

 

그냥 걷는 것은 그 자체로서 많은 것을 해준다. 혈액 순환을 도와서 몸은 가볍게 해주고 소화도 잘 시켜주고 다리 힘도 늘려줘서 기력을 회복하는데도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 시작에 대한 두려움과 지속하는데 따른 어려움이 적어 시간만 잘 할애한다면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걸음을 걷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고 본의 아니게 살펴보게 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자세로 걷고 어떤 속도로 발을 내디디며 혼자인지 다른 사람과 같이 걷는지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 어떤 신발을 신는지 때론 같이 나온 강아지까지 하나하나 들여다 보게 된다. 다들 이렇게 혹은 저렇게 산책을 하는구나 하고는 그날 날씨와 사람들 표정까지 같이 보게 된다. 오늘은 정말 맑은 날이라 사람들도 참 맑았다.

 

걸을 때 앞으로 쭉 길을 따라 걷는데 똑바로 걷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보게 된다. 똑바로 걷는다고 생각하면 왠지 군인들 행군처럼 앞으로 발과 몸이 하나가 되어 흐트러짐 없이 걷는 것이 떠오르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발 동작이 일관되게 걷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고는 나의 걸음을 그냥 느껴보면 나 역시 똑바로 걷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데 이 한걸음도 똑바로 걸을 수 없는 게 사람이다. 조금 더 치우쳐서 걷는 사람도 있고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걷는 사람도 있고 잘 가다가 옆으로 휘청거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집을 못 찾아 가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으니 목적지까지는 잘 가는 것 같다. 걸으며 발을 보면 앞과 멀리가 보이지 않고 멀리 보기만 하면 산책 나온 강아지가 싸놓은 개똥을 밟을 수도 있다. 한번씩 번갈아 가며 멀리도 봤다가 코앞도 봤다가 하며 걷는 것이 결국 불완전한 우리의 첫걸음에 이어 다음 걸음을 걷게 해주는 작은 기술인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인 지금도 세상은 많은 변화를 이루어 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어떤 긴 시간이 필요한 사회적 혹은 개인적 변화를 단번에 이루어 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때론 들고 어쩔 줄 몰랐던 지난 일들과 문제점들을 한번에 털어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이런 극적인 시간을 다시 맞이하고 싶지 않지만 눈앞에 와있으니 잘 살펴 나와 주위의 건강을 챙기되 멀리 보고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 지 조용히 조만해 보는 것도 좋을 시간이다. 통신이라 기술에 기반한 쇼셜 미디어가 조사에 의하면 사람간의 친밀감을 높인다는 근거가 없다고 한다. 화상 전화는 서로 안 쓰던 버릇이 있어서 선뜻 사용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안부를 묻기 위해 사정을 살피기 위해 가족간에 많이 사용하게 되어 간다. 직장에 모여 일하던 버릇도 이제는 떨어져서 얼마다 더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준비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기술과 시스템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하였고 발전하였다. 이 것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전 인류적인 시스템적 움직임의 결과라 받아들이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니 지금 걸음도 한번 들여다 보고 멀리도 한번 조망해보면서 가끔 좌로 때로는 우로 치우치더라도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신발 신고 나가보자 한 걸음을 디디면 다음 걸음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산책하기 좋은 저녁이 많은 요즘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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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6 15:55:28 *.247.149.239

오... 제가 리뷰할 책 중에 걷기 예찬도 있는데, 매우 공감가는 글이네요. 걷기에 대한 책이 나와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여러 사람에게서 비슷한 효과를 느끼게 해주는 객관성을 가진 활동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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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8 07:20:23 *.70.220.99

걸으면 치유되고, 걸으면 생각이 정리되고, 걸으면 새로운 생각이 샘솟는것 같습니다. 제 방 화이트 보드에 제가 써놓은게 눈에 띄네요. "화가 나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화가 안 풀리면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한다. 그래도 화가 나면 다시 산책을 한다. 계속 걷는다." 

부부싸움 하고 써놓은 걸로 기억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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