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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4일 05시 54분 등록



6_ 신현림 <엄마는 너를 기다리며 시를 읽는다> 허은경<그림 읽어주는 엄마의 감성 태교미술관>

 

 


태교의 시작과 끝은 엄마의 행복



 

명절의 마무리는 역시 부부싸움이다. 어른이 다른 데 가서 며칠 묵어 오신다며 떠나자 요 때다 냉큼 접전 시작한다. 언제나 더 감정적이고 격발온도 낮은 내가 국경분쟁 도발한다. 냉냉하게 굴다가 발화점 되면 떠벌떠벌. 그는 일단 물러서서 안전거리 확보한 뒤 좀 겁먹은 자세로 듣기만 한다. 이때 알콜이 겸비되면 그의 단어 수를 늘이는 긍정효과와 바로 화를  내는 부작용 동시유발. 한참 투닥거리는데 옆 건물에서도 부부 싸움으로 추정되는 소리가 들린다. 역시나 여자의 고성만 들리네. 저 집도 아내가 떠들고 남편이 속으로 부글거리며 듣고 있는 중인듯. "저 집도 싸우나본데요", "이 눔의 명절, 답답하다, 답답해.", "우리집에선 덜 답답한 사람은 계속 자고, 더 답답한 사람이 남산에 걸으러 가는 게 룰인데요."  하다가 풉 옷었다. 그는 나의 짜증을 임신 초기 호르몬 탓, 예민함 때문으로 본다. 이 여자가 불안하니까 신경 예민해져서 자신을 족친다고 생각한다. "나도 힘들어요말하면서 그가 울려고 해서 놀랬다. 왜 안그러겠는가. 어머니는 아프시고 아내는 극도로 예민한 상태다. 중간에서 죽을 지경이겠지. 남편과 둘이만 보내는 시간이 나에게 견딜 힘을 주었다. 다음날, 그의 기타선생님의 2집 음감회에 같이 갔다. 홍대앞 근처 어쿠스틱 카페였다. 소금구이 목살을 둘이서 먹었다.

 

내가 신경이 곤두선 이유는 6주 초음파를 보러 병원에 가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무서운 얘길 들을까봐 긴장한다. 그 혹시라도가 사람 잡는다. 남편더러 오전 반차를 내고,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이 진료실에 같이 들어갔다. 질초음파. "아기집 커졌구요. 미약하게 심장이 뛰고 있어요. 숨 참아 보실래요?" 난황만 보면 된다고 갔는데, 뜨문뜨문 놓인 징검다리같은 심장 그래프를 보았으니 한 단계 관문 초과 통과한 셈이다. 담주에는 이게 쿠왕쿠왕 뛰고 그래프가 휘달려야 하는 거구나

주사실에서 크녹산 한 대 맞고 6개 탔다. 이 주사는 아프다. 멍으로 배가 푸릇푸릇 얼룩졌다. "아야" 하니까 "죄송해요" 하던 이가 "잘 유지하세요" 인사하셔서 뭉클해졌다. 혈소판이 변화 있나 혈액검사  해보자고 하시니 맘이 더 놓인다. 나중에 전화로 받았다. 혈소판 157,000, 백혈구 3900, 적혈구 11. 수치들이 모두 세계신기록 갱신. 감사했다. 이 아이는 난임휴직 1년반 공을 들여 내 몸과 마음이 최상의 상태일 때 찾아왔구나.

 

분비물이 많아지면 또 놀래서 바로 화장실 달려갔다. 혹시 피일까봐서. 끈적하고 우유색의 것이다. 아침 먹고 들어가 자라 해서 2시간 오전 낮잠을 잤다. 밤새 잘 자고도 잠이 잘 오니 신기하네. 손발 끝이 차가워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다. 오한이 들어 한겨울에 덮던 이불을 꺼냈다. 신물이 올라오고 소화가 잘 안된다. 식사 후 30분 있다가 들어가 자서 체기가 있는 걸까? 이게 입덧일까? 처음이라 뭐든 잘 모르겠다

병원에서 임신확인서를 주겠다고 한다. 국민행복카드를 발급받고 보건소의 혜택을 쓰기 위해서란다. 다음에 받겠다고 사양했다. 복직이 달려 있어 신중하다. 질병휴직 사유가 소멸하면 1달 이내에 복직 처리해야한다. 그러나 40대 중반은 염색체 이상이 없는 난자 배출 확률 5~10%, 유산이 거의 50%에 달한다는 나이. 살얼음판 걷기가 이런 것일까. 아직 우리는 미리 지어놓은 태명을 부르지 않는다. 확실해졌을 때 쓰자고 남편이 말한다. 둘이서 개업 화분 즐비한 샤브샤브 집에서 밥 먹었다. 무한 리필 맥주를 두 잔 마시더니, 그가 말한다. “불안한 건 이해하지만 이번 주처럼 힘들게 보내면 될 일도 안되겠어요. 편히 지내요.”

 

이번 주 나는  힘들었다. 아이를 잃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공포에 질렸다. 귀신의 집 가거나 호러 영화 볼 필요가 없다. 나중에는 견디지 못해 남편을 들볶았다. 희안한 꿈들도 넘쳤다. 가방 속의 지갑, 핸드폰, 원고가 든 노트북을 몽땅 도난당한데다, 통장에서 거액이 인출된 꿈이었다. 꿈자아는 검정옷을 입었고 노숙자 냄새가 나서 목욕을 하는데 생리중이었다. 자다가 심란해하는 나의 배에 그가 잠결에 손을 얹어 토닥거렸다.


2차 항암주사를 맞고 어머님이 오셨다. 남편 앞에서는 있는대로 보이지만, 암환자 앞에서 티를 내지는 않으려 했다. 머리를 밀어버리고 모자를 쓰니 비구니스님처럼 두상이 이쁘다. 한 평생 성실히 거짓없이 살아오신 게 얼굴에 드러난다. 지인이 맛난거 사먹으라고 준 봉투로 남대문시장에서 26만원에 가발도 구입해오셨다. 가발은 별로고 서연언니가 손으로 짜준 모자가 맘에 든다신다. 우연히도 색깔이 딱 어머님이 좋아하는 보라와 자주색이다. 아무도 아파서 모자 썼다고 못알아본다며 좋아하신다. 모자 쓴 게 어색하지 않은 날씨라 다행.

 

담주 윌~금 맞을 백혈구 제제는 냉장실에 넣었다. 오늘부터 3일간 정도 울렁증이 심해질 때 드실 약을 챙겨넣고 "보름간 형수 수고하세요." 당부하며 시동생이 돌아간다. 혈소판 29, 백혈구 8. 건강한 분들은 항암주사를 맞고서도 수치가 저 정도신가. "너 무리하지 마라. 나는 아는 병이고 견디면 낫는 병이다. 네가 중하다. 절대 무리 마라. 니가 너를 챙겨야한다. 한 끼에 반찬 한 가지씩만 해라." 하신다. 날이 추워져 전기장판과 도톰한 이불 갖고 오라 했더니 잘 싸왔더라. 몸살의 이유는 괜찮은 줄 알고 가발 쓰고 일을 하루 하신 모양. 바로 몸살이 나서 다행이다. 머리 싹 밀어버린 후에 머리 뿌리 아프던게 없어졌단다. 까만점 같은 머리뿌리도 모조리 빠질거란다. 항암주사가 독하긴 독하구나.

 

식전에 드시는 울렁증 약 3일치 먹는 동안 밤새 이불이 젖을 만큼 식은땀을 흘리며 주무셨다. 새벽부터 일을 하던 분이라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으신다. 아침에 씽크대를 닦고 숟가락과 가위를 다 삶으셨다. 스댕은 퐁퐁 한 방울 넣어 삶으면 반짝거린단다. 빨래도 옥상에 널고, 죽은 나무를 싹 쳐냈다. 살림 많이 사신다. 아들은 "어머니 컨디션 좋으니, 할 만하니 하신다, 괜찮아, 내버려둬요."한다. 아침에 컨디션이 좋고 저녁에 깔아진다며 앞으로 저녁은 죽이나 누룽갱이로 가볍게 먹자 한다. 호박전 새로 부치고 밀가루가 남아 미나리전 손바닥만하게 부쳤는데 딱 미나리전만 드셨다. 매끼 새로 만든 것만 손이 가고 싫은 건 억지로 삼키면 탈이 난다며, 식성이 수시로 변한다, 애 설 때처럼 요상하다, 간사하다 하신다.

 

어머님한테서 찬 밥으로 누룽갱이 만드는 법 배웠다. 밥이 덩어리져 있으니 물을 자작보다 작게, 쌀알들 묻히게 부어 부르르 끓인다. 불을 줄여 긴 시간 눌린다. 누룽지 눌려지면 원하는 만큼 물을 다시 붓고 나무주걱으로 긁어 끓이면 완성. 구수하다. 어머님은 딴 반찬없이 고추장 찍어 먹으니 속이 편하다 한다. 찬밥 냉동해 뒀다 이리 먹는단다. 아플 때, 입맛 없을 때 평생을 쓸 수 있는 생존전략 1개 전수받았다.

 

같이 안 살다가 한시적 합가를 하고 있으니 시어머니의 입맛을 처음으로 알게된다. 청국장찌개에 나물비빔밥을 먹을 때, 참기름없이 고추장만 넣어 빨갛게 비비는 걸 보고 취향을 처음 알았다. 속에서 열이 나는지 소면을 물김치에 말아 달라고 해서 그리했는데도 잘 안들어 가는지 식사시간이 길다. 부으셨다. 평소에는 마음껏 먹어보지 못한 과일을 암에 걸리고,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죄책감없이 최상품으로 3상자째 상자떼기로 주문해서 후식으로 먹고 있다. 남편은 거의 매일, 마트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음식 심부름을 한다. 어머니를 위해서는 해물탕꺼리, 아내를 위해서는 떡볶이와 순대를 사왔다. 그는 "우리집에는 암환자와 임산부가 있고, 두 사람의 입맛이 다르다. 둘 다 내가 먹는다는 맘으로 사온다했다.

 

친정 엄마의 택배보급 상자가 도착했다. 추석때 집집이 싸보낸 품목이리라. 햇고구마는 봄에 어린 조카들과 같이 순을 찔러 넣었던 걸 캔거다. 생협 황잣은 큰올케가 아이 기다리는 나를 위해 갖고온 추석선물. 고맙다. 올케한테는 아직 말 안했다. 장독대에서 퍼담은 엄마된장 한 항아리, 참기름 한 병, 들기름 한 병, 볶은 참깨 한 주머니를 넣으셨다. "아무 걱정 마라. 너는 니 몸 걱정이나 해라." 엄마가 얘기하셨다. 시어머님이 머리카락이 하도 많이 빠져서 밀어버렸다니까 "딱하지" 하신다. 나는 살짝 질투 한다. 적어도 내 엄마의 첫째 연민 대상은 내가 되고 싶은 맘. 어떤 경우라도 변함없이 우리 엄마는 내 편에서 나를 먼저 보호하고 걱정하고 살펴주길 바라는 맘. 어린아이의 맘. 지금 내가 누구한테 기대겠나, 남편 아니면 엄마, 기도를 들으시는 님들이신데. 희안하게 친정엄마의 지분과 힘이 커지는 느낌.

 

남편이 어머님을 모시고 메밀꽃 축제에 가서 냉묵사발, 메밀전병, 오징어순대를 사왔다. 난 같이 안가고 집에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님의 임신 에피소드(큰 아들 낳던 날, 둘째 설 때, 8개월 때 계단에서 구를 때)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나의 임신이 잘 진행되된다면 담주에도 지금처럼 불편해하지 않으며 그녀의 임신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미리 생각하지 않으련다.

 

마음이 많이 부대꼈던 이번 주에는 두꺼운 책은 멀미가 났고, 마냥 태평스러운 일반 태교책도 읽기가 싫다. 6주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난임을 겪었고 노산인 나만의 것인가? 이런 나의 두려움과 불안을 다루지 못한 채, 아이를 위해서만 좋은 마음을 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는 걸 읽고 싶었고, 좀 쉬고 싶었다.

 

얇은 시집과 그림책을 읽었다. 신현림 시인의 <엄마는 너를 기다리며 시를 읽는다>와 허은경 <그림 읽어주는 엄마의 태교미술관>이다.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읽지 않고, 펼쳐지는 대로 보았다. 시인은 늦은 나이에 임신을 했다. 그런데 그녀는 혼자였다. 불안이 몰려올 때 시를 읽었다. 그러면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이 날아가고, 아가를 만나는 기쁨, 설렘으로 가득차게 되었단다. 혼자서 임신기간을 보내야 했고, 출산 이후를 책임져야했고, 내내 일을 해야 했던 그녀에게 뱃속 아이와 함께 읽는 시는 힘이었다. 그녀의 방식 또한 멋지고 적절하다! 그녀가 임산부 시절 읽었던 시 중에서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온 시가 있다.

 

 

맨 처음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저는 어디에서 왔어요? 저를 어디에서 주웠어요?” 하고 아기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눈물과 웃음으로 아기를 가슴에 꼭 껴안고 대답했습니다.

아가야, 너는 내 가슴 속에 소망처럼 숨어 있었단다.

너는 내 어린 시절 소꿉장난 인형 속에 있었어.

아침마다 진흙으로 신을 만들며 너를 만들었다 부수었다 했단다.

너는 우리 집안 수호신과 함께 사당에 모셔졌고,

신에게 예를 올릴 때마다 나는 너에게도 예를 올렸지.

내 모든 희망과 사랑 속에, 내 삶 속에, 내 어머니의 삶 속에 너는 살아 있었단다.

너는 우리 집안을 다스리는 성령의 무릎에서 오랜 세월 동안 길러졌어.

소녀 시절 내 가슴이 꽃잎을 열 때, 너는 내 주위를 꽃향기처럼 맴돌았지.

네 여린 보드라움은 새벽하늘에 어리는 노을처럼 내 젊은 육체 속에서 꽃을 피웠지.

하늘의 첫 아기, 아침 햇살의 쌍둥이로 태어난 너는

생명의 긴 줄기를 따라 흐르다가 마침내 내 가슴에 닿았단다.

네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신비로움에 숨이 멎을 것 같구나.

만물에 속하는 네가 나의 것이 되었다니.

너를 잃을까 두려워 나는 너를 가슴에 꼭 껴안는다.

도대체 어떤 마술이 세상의 보물을 내 가냘픈 두 팔에 안겨주었을까?

 

태교미술관을 쓰기 전 저자는 이미 2권의 책을 냈다. 가슴의 북소리를 찾아 떠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국문과를 전공했는데 대학원은 미술 쪽으로 갔고, 큐레이터로 미술관에서 근무했고, 신혼여행 삼아 유럽미술관 순례를 했다. 유럽 미술관 순례가 첫 번째 책의 내용이다. 그 사이에 그녀는 10주에 첫아이를 유산하는 아픔을 겪었다. 두 번째 찾아온 아이를 품고 있던 40주에 40개의 그림을 읽었다. 임산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통해서 엄마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함으로써 태교를 하고 있구나.

 

이 책은 서문과 맺음말 사이에 40개의 꼭지글이 있다. 모두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태다. 아이를 확인할 수 없는 1~4주에는 아이를 기다리는 과정이 짧게 나온다. 부부 사이의 인연, 살고 싶은 곳, 그림과의 인연을 맺게 된 계기, 이런 것들이다. 그녀는 보고 싶은 그림을 임의로 그때그때 선택했다. 예를 들어 뱃속 아이가 딸인 것을 알았을 때는 모네가 그린 소녀의 그림을 보고, 임신말기로 가면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때는 여행지의 그림을 선택해서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녀가 실제로 임신 한 주 한 주 보내면서 이 글을 한 꼭지씩 써나갔을까? 40개의 명화를 실제 임산부의 주관적인 경험을 가지고 끈으로 꿰고 있다. 그렇다고 내용이 모두 임신에 대한 것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한 꼭지 원고의 첫 문단과 끝문단 정도만 임신 일지이고, 나머지는 다 그림과 화가에 대한 것이다. 각 칼럼 앞에는 생몰연도를 비롯해 화가의 삶에 대한 짧지만은 않은 설명 박스가 있다. 그림이 있는 일상의 풍경 안에서 이 임산부는 지극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일주일에 한 개의 그림을 고르고, 관련 조사를 하고, 원고를 쓰고 다듬었다면 즐거움에 더해진 공부가 상당했으리라. 저자는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캠벨이 말하는 bliss, 가슴뛰는 것을 잡고서 스스로를 기쁘게 함으로써 뱃속 아이와 교감하는 이중의 혜택을 누리면서 태교의 본질을 실현하고 있구나.

 

흔히 태교는 태중에서부터 가르친다는 의미로 읽힌다. 태아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천재로 태어나는데, 잘 못 가르쳐서 평범해진다고 한다. 교육열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한국인으로 태어나, 문센부터 여러 교육기관을 다니는 아이를 배속에서부터 가르쳐 머리좋고 똑똑한 아이로 만드는 것이 태교라면 시작도 하기 전에 어휴, 싫고 부담스럽다.

 

태교 미술관딸아, 엄마는 너를 기다리며 시를 읽는다책을 읽고 저자들이 내게 던지는 질문은 단 한가지다. ”내게는 그림을 보는 게(시를 읽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었어요. 당신에게는 무엇인가요?‘ 나는 이 물음이 아이와 한 몸을 쓰는 시절을 보내는 열쇠라고 직감한다.

 

티벳에서는 태아는 엄마의 내장이라고 한다. 놀라운 비유다. 오로지 임산부의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함으로써 아이를 편안케 할 수 있을 거다. 무엇이 나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했던가 탐구할 거다. 두 사람이 한 몸을 쓰고 있는 특별한 상황 덕분에, 나를 믿고 생명을 의탁해 자라는 귀한 손님의 존재로 인해 그런 물음과 실행이 더 절실한 순간이다. 이보다 저 소중하고 절실한 것이 있을까? “나는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하지?‘ 이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같은 자기탐구의 다른 물음이다. 이해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므로 아이가 태어나면 나와는 다른 아이의 행복에 대해 들여다보고, 자라면 그 물음은 아이의 몫일 거다. 태중에 있을 때는, 임산부인 내가 언제 행복한 지를 묻고 그것을 살면 될 듯 하다.

 

태교미술관 책의 장점은 여러 나라의 다양한 태교방법과 주수별 태아발달에 대해 간략한 써머리가 중간중간 나오는 거다. 음식태교, 미술태교, 음악태교, 산책태교, 동화태교, 숲태교, 명상태교 등 다양하더라.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할까? 클래식이 어려운데 굳이 클래식을 들어야하나? 퇴근하고 힘들어 죽겠는데 태교동화책을 아이에게 읽어주어야 하나? 남편이 협조를 안한다, 태교할 시간이 없어 미안하다는 말은 이것이 과제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의미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했던가? 나는 미래의 아이들이 잉태되기 전에 편지를 쓰면서 행복했다. 읽고, 쓰고, 자연을 어슬렁거리면서 내가 많이 충전된다. 새벽푸른빛 속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 108배를 하고 명상을 할 때 행복하다. 노을이 지는 시간을 좋아하고, 이야기책 읽기를 좋아하고, 산책하면 행복하다. 어차피 암환자의 식사준비 소임이 있다. 암환자와 임산부가 먹어도 좋을 건강하고 정성 가득한 집밥을 두레반에 둘러앉아 먹어볼 것이다. 요걸 음식태교라고 치자. 명상태교도 하고 있다고 치려고 한다. 매일 아침 108배와 10분 명상을 계속 할 것이므로. 달릴 로드와 산으로 난 산책로가 있는 공원과 가까워 이 집에 산다. 종종 산책을 나가기로 한다. 오감산책태교라고 이름 지으련다. 태교가 별거냐? 엄마가 행복한 것이 시작이며 끝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 하면 되는 거구나.

 

작정하고 매일 해질 무렵 숲으로 혼자서 산책을 나갔다. 뱃속 아이와 함께 산책한다는 충만함이 특별하다. 어떤 벚나무는 노란 단풍인데 어떤 벚나무는 주황색 잎을 달고 있다. 하늘의 뭉게 구름을 올려다 본다. 사철 푸르른 소나무 잎도 아기 때는 나물처럼 보드랍고 연약하다. 그러니 내가 조그만 태아를 보호하는 건 마땅하다. 늦은 민들레를 보고 감탄한다. 나는 늦게 피는 민들레같구나. '내 꽃도 언제가 한 번 피리라' 작곡가 윤이상씨의 책에서 본 구절을 생각했다. 나에게는 언젠가가 지금이구나. 아마도 지금이 나에게는 엄마가 되는 최적의 시기일 것이다.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다. 이 생명은 이제 내 평생 가장 소중한 인연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든 잃을까 두려워하고 미래를 걱정하다 현재를, 오늘을 놓쳐버리고 싶지 않다.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 온 마음으로 함께 있자. 그저 함께 편안히 있자. 마음에는 오로지 한 개의 의자만 있다지. 내가 불안, 두려움을 선택하면 사랑이 앉을 자리가 없다지. 나는 사랑을, 그리고 현재를 선택할 거다. 찾아와주어 고맙고, 기쁜 이 마음에 머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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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4 06:05:09 *.120.24.231

8월 11일에 칼럼 올리고 거진 한 달만에 다시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학기말 업무, 장거리 출퇴근 몇 달에 체력 방전되어서 겔겔 거리다 방학 때는 쉬고 싶었습니다. 잘 쉬었구요. 


쓰는 방법이 갈피가 안 잡혀요.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연구원 시절처럼 밑줄 그은 부분 타이핑을 포함한 풀 버전 북리뷰을 해 봤어요.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그렇게 하면서 써나갈 지, 아님 어떤 것은 책을 다시 읽기만 하고, 북리뷰를 상세히 하는 걸 생략하고 가얄 지 모르겠어요. 분량의 문제도 해결이 나지 않아요. 계속 6~7페이지예요. 일단 써보는 걸로 하려고요. 써가다보면 잡히겠지 싶기도 하고요. 출간프로젝트에서 주신 조언 자주 읽어보면서 진행해가겠습니다. 


이 기간에 썼던 모닝페이지를 순서대로 다 정리를 했어요. 박스에다가요. 그 시절 기록은 외적사건과 남들에게 말해도 좋은 것은 블로그와 내적사건과 남들에게 말하기 쪽팔리는 것은 모닝페이지에 남겨져 있어요. 참조할 자료가 많긴 하지만 정신이 없고요.  


출퇴근하고, 코로나로 원격수업 이라 날마다 바뀌고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 허덕거리고, 육아하려며 하려니 시간이 적네요. 


그래도 끈이 있어 감사합니다. 놓치지만 않는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느리게 계속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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