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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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21년 2월 7일 22시 50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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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젊은 시절 나의 인생 페이지는 어느 곳을 펼쳐 보아도 행복, 풍족함 이런 단어는 찾아 보기 힘들다. 불행, 좌절, 빈곤이란 놈들이 거의 모든 페이지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는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발악으로 로또를 사대던 때가 있었다. 월요일에 구매한 로또 한 장은 가난과 스트레스로 뒤덮인 일주일을 버티게 해 준 고마운 마약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결과는 늘 꽝이었다. 전직 대통령 얼굴이나 똥 꿈을 꾸고 산 로또마저도 나를 배신했다. 이런 제길. 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가난했었고 운도 지지리 없었다. 그런데 넘어지고 깨지고 배신 당해도 죽지 않고 버텼더니, 이런 거지같던 내 인생에도 반전이 일어났다. 아내라는 로또에 당첨이 된 것이다.


아내를 처음 만난 장소는 특별했다. 소개팅이나 맞선 등에 주로 애용되는 장소인 커피숍이나 레스토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8년 어느 봄날, 나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의 저자이며 변화경영 전문가인 구본형 선생님이 주관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신청했었고, 2 3일의 일정으로 양평의 한 팬션에서 다른 참가자 9명과 만날 예정이었다.


팬션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띄는 여성 한 명이 닫힌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진한 풀색의 가죽 재킷을 걸치고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쓴 채 회사 서류처럼 보이는 종이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햇살은 따스했고 그녀의 머리 위 선글라스는 유독 반짝거렸다. 보통은 여성의 외모가 눈부시다고 표현하지만 그녀는 선글라스가 더 눈에 부셨다.


첫인상은 오토바이족 같은 분위기였다. 가죽 재킷이 한몫 거들긴 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청순가련형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지금은 절대 그렇지 않은데 그때 첫 인상이 그랬단 뜻이니 오해는 없길. , 벌써 오해를 해버린 것 같군.


이곳에 온 참가자들 모두 삶의 애환이 한두 가지는 있기 때문에 먼 곳까지 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를 제외한 다른 참가자들의 얼굴은 그래서 애써 서먹하게 웃긴 했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워져 있었다. 반면에 유독 그녀만 해야 할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이곳에 온 커리어 우먼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사무적인 느낌이었고 그로 인해 나이도 있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말 붙였다가는 따귀 한대 맞기 딱 좋은 포스가 느껴졌다. 슬금슬금 그녀를 가급적 피해 멀찌감치 떨어져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통과의례로 하게 되는 자기소개 시간이 찾아왔다. 난 낯선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 낯선 업무, 낯선 음식, 낯선 장소 등 낯선 것들은 나의 맥박을 늘 빨라지게 만든다. 특히 낯선 사람들 앞에서 내세울 것 없는 내 인생사를 그것도 10분 동안 떠들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거부감과 동시에 살 떨리는 도전이었다. 초반 몇 마디부터 내 입안의 침은 바짝바짝 말라갔고 모세가 바닷물을 가르는 것처럼 내 목소리도 갈라지려는 위기를 몇 번이고 가까스로 모면했다.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그녀도 자기소개를 했다. 첫인상으로 오토바이족 포스를 느낀 터라 난 애써 그녀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양쪽 귀만 그녀의 목소리가 궁금한지 들키지 않을 만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외모와는 달리 애교 섞인 코맹맹이 소리가 들렸다. 내 귀는 어느새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고 난 딴 곳을 보는 척하며 그녀 얼굴을 살짝 보았다. 연애 사냥꾼처럼 내 행동은 자연스럽고 프로다운 행동이었다. 놀랍게도 그녀의 쏙 들어간 보조개는 눈웃음치는 그녀의 눈꼬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가 참가한 여성 중 유일하게 미혼임을 알게 되었고 나보다 무려 한살이나 어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아픈 과거와 현재 직장에 대한 불만을 듣고 있자니 난 벌써 그녀의 남자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같이 흥분하고 분노해 하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우리는 벌써 2 3일의 마지막 날을 맞이해야 했다. 첫날 느꼈던 어색함은 이미 사라졌고 우리 10명은 피를 나눈 형제자매처럼 가까워졌다.


마지막 과제는 10대 풍광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10년 동안 내가 이루고자 하는 장면을 이미 일어난 것처럼 써서 발표했다. 그녀의 차례가 왔고 난 입이 찢어질 만큼 큰 소리를 내며 그녀의 등장을 환호해 주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같은 크기의 소리로 환호해 주었기 때문에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는 구분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10대 풍광 중 한 장면은 결혼 후 꿈꾸는 행복한 일상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어젯밤에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 두 명과 함께 침대 위에서 일요일을 맞이하고 있었으며 창문 틈으로 들어온 산들바람은 하얀 커튼을 춤추게 하는 전형적인 연애소설 속 한 장면이었다. 불현듯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 자리는 꼭 나의 차지가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 자리가 무척이나 탐났다.


2008년 어느 따사로운 봄날. 그녀를 처음 만났던 모임 이후 난 다시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입사한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최근 6개월 동안 가장 오래 다닌 회사였다. 퇴사 이유는 아니꼬움이었다. 같은 부서 선임에게 업무적으로 물어볼 일이 있어 그의 책상으로 갔다. 고객에게 오늘 중으로 제품 견적을 제출해야 하는데 나의 계산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을 부탁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내가 평상시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버릇이 없다며 예의범절을 꼬집으며 트집을 잡았다. 그의 옆자리에서 듣고 있던 그의 꼬붕도 한마디 거들며 그런 식으로 직장 생활하면 안 된다고 거든다. 순간 당황하여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체면을 중시하는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미안함을 표현했고 그것도 모자라 그런 실수는 다시 하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까지 한 뒤 자리로 돌아왔다. 혹 떼러 갔다 혹을 하나 더 붙이고 온 기분이었다. 내 자리에 앉았지만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마음에 쏙 든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잡고 회사를 다니려 했지만 그의 어처구니없는 텃새에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 둘 수 있게 되었다



[100% 환급] 인생역전, 작은 습관 100일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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