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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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 편지에서 욕망과 권태 사이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죠.
만족과 불만족의 상태가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진정으로 만족하며 살아갈수록 진짜 행복은 점점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행복을 단순한 자기만족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 있는 이 자리 바로 이 순간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에도 행복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지만, 삶에는 하기 싫은 것들을 인내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목표를 성취해야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는 건데, 그 열매가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거죠.
둘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상황판단이 필요할 뿐이고요. 중용과 균형을 가져야겠죠. 치우침, 과도함은 경계해야 하고요.
행복이라는 것이 억지로 찾아지는 것이 아니지만, 미래의 고통을 피하는 노력이 미래의 행복도를 높여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이것이 쇼펜하우어의 소극적 행복론의 핵심입니다. 즉, 어느 정도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투자를 해야 하고, 또 어느 정도는 지금 이 자리에서의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를 겁니다. 그 기준선을 끊임없이 맞추는 것이 삶의 질을 만들어냅니다.
전쟁터에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맑은 공기를 음미하며 그 자리에 서있을것이 아니라 조만간 쏟아질 포격을 피해 잽싸게 달려야죠.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죽지 않는 것이 지금 이 순간 잠시 편하다가 죽는 것보다는 행복의 총합이 분명히 클겁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것 또한 순간의 쾌락, 적당한 타협, 나태, 게으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와 노력을 소진하고 나서 충전을 위한 휴식과 게으름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혹자는 노력의 성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지만, 게으름의 성과는 바로 주어진다고 하지만, 게으름이라는 것은 노력과 인내가 선행되어야 더 값진 보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과가 나오지 않는 한 주니어 팀원과 개인적인 면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일이지만 서로간의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에, 방법론적인 것들을 포함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꽤 길게 했습니다. 그 주니어는 자신의 성과가 크게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과정과 결과 모두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좀 더 분발해줄 것을 요구했는데,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더 이상은 쉽지 않겠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 친구에게는 정시퇴근은 마치 신념처럼 보였습니다. 오늘까지 하기로 정해진 일을 끝내지 못했거나 긴급으로 대응해줘야 할 이슈가 있어도 어쩔 수 없다는 거죠. 신념과 삶의 방향이 확고해 보이는 직원들을 적지 않게 겪어 보았습니다. 확고한 자기 철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로 그런건지 자기 합리화를 위한 갑옷을 입고 있는지 의아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소확행을 강조하지만, 로또는 항상 삽니다. 딱 받는 월급만큼 일하는 거고 미련도 욕심이 없다 말하지만, 승진이 누락되거나 남들보다 인센티브를 덜 받으면 누구보다 분통을 터뜨립니다.
지금 달려야 할지, 아니면 편안히 드러누워서 쉬어야 할지 판단이 필요합니다. 일하든지 놀든지 그게 진정으로 원하고 필요한 일인지 자문해봐야 합니다.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내게 아닌 남들이나 주변환경으로부터 비롯된 것일수도 있습니다. 김연수 작가는 이렇게 남들 때문에 달리는 것을 '달리기'가 아니라 '후달리기'라고 표현합니다. 노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건지, 게으름과 맹목적 관성으로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더 좋은 직장이나 근무조건을 가질 수 있으면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의 악조건에 억지로 거짓만족을 추구하거나 어쩔 수 없이 후달리기보다는 주체적인 선택과 그에 따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행복의 최종 조건이 될리는 만무합니다. 수많은 조건과 선택들중의 하나일뿐입니다. 더 행복해질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려는 하나의 선택일 뿐이죠. 그리고 그 결과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본인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가 아닌 선택의 기준을 말입니다. 또한 그것이 진정한 선택이 아니라면, 지금의 행복의 가치들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오늘은 일해야 하나, 놀아야 하나 어쩌면 지극히 단순한 고민에 대해 좀 주절거려 보았습니다. 그럼 남은 한주도 일하던지, 놀던지, 달리든지, 걷든지, 쉬든지 뭘 하시던지간에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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