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書元 이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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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검도 훈련 시간. 추운 겨울날에도 속옷 하나 입지않고 검은 도복을 걸치며 죽도를 들고 나선다. 원체 힘든 운동이기에 조금만 훈련을 하고나면 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것은 기본이고 입에서는 금새 단내가 난다. 급수를 올라가기 위한 첫관문으로써 3,000번의 뛰면서 머리치기 도전에 나선다. 절도있는 스텝과 우렁찬 기합소리로 시작되지만, 천단위가 넘어가면 앞이 가물가물 거리고 다리는 내다리가 아닌것 같고 기합소리는 나오질 않는다. 말그대로 비몽사몽간에 악이다 깡이다 외치며 죽도를 내려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짓을 왜하는지. 그리고 맨날 왜 죽도만 죽어라고 휘두르고 대련은 시켜주질 않는지?’
3. 대학교 상담 실습 시간. 오늘은 공감에 관한 내용 Role Play 시간이다. 한사람이 사례를 얘기하면 다른 한사람은 그 사례에 대한 적절하고 충분한 공감을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말만큼 쉽지를 않다. 공감척도 1~5까지 점수를 매겨 높은 점수가 나와야 하는데 계속 퇴짜만 맞으니. 거기다가 이 훈련을 계속 하고나면 평상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때도 ‘그렇구나. 그렇지.’등의 의식적인 멘트가 나온다. 그러면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든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면되지. 꼭 이렇게 의식적인 연습을 해야하나?’
노벨상 수상자 라이너스 폴링은 무의식을 훈련 시켜라는 용어를 사용 하였다. 즉, 육감 또는 영감은 어떤 문제에 대해 몇 년 동안 생각하다가 갑자기 답이 떠오르는 식으로 찾아온다. 이것은 나의 무의식적 마음을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하도록 훈련시키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해석을 내린다. 마찬가지 용어로 ‘훈련된 무의식’이라는 것이 있다. 대학교 집단상담 시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용어중의 하나였는데, 말그대로 의식적인 반복훈련을 지속적으로 할시 무의식중에 바라는 결과의 행동이 표출된다는 것이다. 위의 경우를 예로들어 설명해 보자.
첫째, 제식훈련. 월남 맹호부대 출신이신 장인어른께 어느날 이런 질문을 여쭤본 적이 있었다.
나 : ‘장인어른. 월남에서 전쟁시 베트콩을 만나면 어떻게 총을 쏘셨어요?
장인어른 : ‘어떻게 쏘긴? 안죽을려고 마구잡이로 쏘았지.’
나 : ‘......’
이어지는 부연설명은 이러하였다. 어찌보면 군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훈련 받은 것은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평상시 열심히 훈련했던 마인드와 자세가 아무렇게나 총을 쏘는 가운데에서도 묻어 나온다고.
둘째, 검도 훈련 시간. 3,000번의 뛰면서 머리치기 테스트가 끝나고 나면 팔과 다리는 내의식과는 상관없이 저절로 돌아 다닌다. 이어지는 일흔살 넘으신 검도 9단의 할아버지 사범님 말씀왈, ‘오늘처럼 10,000번 정도 같은 동작의 연습을 계속 하면 어떤 적을 만나도 능히 벨수 있다.’ 10,000번이라? 에구에구~
셋째, 대학교 상담 실습 시간. 의식적인 연습을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위해 담당 선생님을 찾아 뵈었다.
나 : ‘의식적으로 공감 연습을 자꾸하다 보니 남들도 이상하다 그러고 언제까지 이런 것을 계속 해야할지요?’
담당 선생님 : (웃으면서) ‘아직 멀었어요. 의식적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어지도록 그 단계를 거쳐야 적어도 자연스런 공감의 멘트가 나오니까요.’
나 : ‘......’
‘오쇼 라즈니쉬 자서전’을 읽다보면 이런 장절이 나온다.
‘수많은 생을 거치며 나는 노력해왔다. 나 자신을 시험하고 몸부림치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지 이해한다. 바로 그 노력이 가로막고 있었다. 바로 그 얻으려는 노력이 장애물이었다. 구하지 않고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구함은 필요하다. 그라나 구함을 놓아 버려야하는 때가 온다. 강을 건너기 위해 배가 필요하다. 그러나 배에서 나와 배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배를 남겨두고 떠나야하는 순간이 온다. 노력은 필요하다.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노력만 가지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노력 자체 즉, 훈련을 버려야할 시점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는 것인지. 연구원 과제의 생활도 이와 마찬가지 이리라. 인내와 노력, 끈기, 시간과의 전투가 매주간 이어진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이 들지만 막상 본인의 글을 보면 아쉽다는 생각이 매번 든다. 라즈니쉬의 얘기대로 궁극적으로는 어느 경지에 이르면 자연히 노력이라는 의식적인 마인드를 버려야 되겠지. 임제선사의 얘기대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되겠지. 오늘도 나는 그같은 ‘훈련된 무의식’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새벽밤을 새운다.
‘책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책은 이해하려고 열망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나중에는 책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책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책은 그대가 초월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 오쇼 라즈니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