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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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이 지났다. 모든 잠들었던 생물들은 깨어난다. 낙엽 속 새싹처럼 새 학기의 학교도 분주하다. 몇 차례 아이의 알림장과 안내문을 통해 공개수업 후 학부모 총회가 열림을 알리고 참여 여부를 물었다. 그러던 그날이 지난주 수요일이었다.
학교로 향하는 마음이 호기심 반, 부담 반. 공개수업 때 엄마가 왔다고 좋아할 아이를 생각하니 기쁘고, 한 학기 동안 우리 아이를 가르쳐주실 선생님을 뵐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학교활동을 종용하는 분위기가 부담스러워 발길이 무거웠다.
나는 불량 엄마다. 아이는 막 키운다. 학교는 학생이 다니는 곳이고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말로 이때까지 공식적인 학교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나를 위로했었다.
한 반 학생수 25명. 공개수업. 수학과목이다. 아이들은 적극적이었고 그 속의 우리 아이도도 4학년답게 많이 의젓해 보였다. 아이는 엄마가 학교에 왔다는 자체만으로 좋아서 싱글벙글 이다. 일을 한다는 핑계로 공개수업 조차 참석하지 못했던 저학년 때가 다시 미안한 마음으로 올라왔다.
선생님은 젊었고 단아했으며 교육에 대한 철학이 반듯한 분이셨다. 다행이다. 선생님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한다는 것이 죄송한 일이지만 매스컴을 통해 부적합한 선생님의 소식을 종종 접하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인듯하다. 이상한 부모도 많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럴지라도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하면 안 된다. 그것이 칭찬일지라도 존경심 갖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선생님을 보는 기준은 간단하다. ‘차별하지 않는 선생님’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집안 환경과 부모의 극성으로 차별하지 않고 아이들의 특성을 인정하고 기질에 맞게 끌어가는 선생님이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예민해서 작은 차별, 눈빛의 이야기도 잘 느끼기에 말로 하지 않는 차별에도 상처를 받기 쉽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선생님이라면 이러한 평가는 거뜬히 통과할 것이다.
사실은 급훈을 읽고서 선생님이 훌륭한 분임을 알아챘다. 예전의 간단한 문장이 아니라 아주 길게 쓰여져 있었다.
<급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어린이
차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요.
내 할 일은 다하고 남을 도와줘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을 계획해요.
지구를 아끼는 넓은 시야를 가져요.
선생님의 교육철학이 담겨 있고 아이들도 구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보였다.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급훈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보다 얼마나 구체적인가. 아이가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의젓하게 학교 생활하는 아이도 보고 좋은 담임 선생님도 만났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무거웠다. 학교에서 하는 프로젝트들이 정신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학교는 사교육 없는 학교 시범 학교이다. 작년부터 시행되었는데 이 프로젝트에 대해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목표가 얼마나 거창한지 잘 모르며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학부모로써 운영이나 취지가 이해되지 않을 뿐이다. 학보모의 마음에서 느낀 것을 적어 본다.
학교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서 ‘사교육 없는 학교 방과후 교실에 대해 부모 설명회를 가졌다. 교실도 많이 짓고 있고 얼마나 야심 차게 추진 중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교육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하는 형태이다. 바둑, 창작 미술, 로봇교실 이런 순수 방과후 교실은 이제 옛말이다. 얼마 전부터는 수학, 국어, 과학 등 교과목 수업도 하고 있다. 영어는 말할 것도 없다. 수업료도 일반 학원보다 싸다 뿐이지 다 지불한다.
정규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사교육비 실태 조사를 위해 설문지를 보내온 적이 있다. 그 항목에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예체능(피아노, 수영, 미술, 태권도 등) 학원을 다니는 것은 사교육비 항목에서 제외시킨 것이었다. 사실 초등학교에서는 예체능 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더 많다. 가정 지출에서는 이 부분도 사교육비로 포함시킨다. 교실을 더 지어 아이들에게 지식을 더 주려 하기 보다 오히려 수영장을 짓고 실내체육관을 근사하게 지어 수영도 가르쳐주고 태권도도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그런 시설은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한다면 서로 좋을 듯하다. 주민들 이용 시에는 일정한 이용료를 받는 다면 운영의 문제도 해결될 듯한데 말이다.
안타깝다. 아이를 학교에 오래 잡아 두는 현실이.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사교육에 보내지 말고 안전하고 넓은 학교에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라고,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건 어른들의 생각일 뿐이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어렸을 때 학교 수업 마치면 얼마나 좋았던가.
이것뿐만이 아니다. 교원 평가제가 도입되었기 때문인지 학교가 특색 교육과 시범학교 인증을 위해 분주하다. 학교가 성과를 내기 위한 기업 같다. 예전의 학교와는 딴판이다. 인성을 위해 사랑 나눔의 날을 운영하고 토론 논술 엘리트반, 줄넘기 인증제로 특화교육을 실시한다. 국제 안전학교 시범학교로 인증 받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겠지만 그렇다기보다 학교의 성과를 위해 실시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기 보다 우리학교의 성과로 알리기에 급했다.
학교에 가서 놀란 것은 선생님들의 표정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무표정하고 어둡다. 잡무가 많아서 그렇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학교 교육을 단순화 시켜서 정규수업에 더 충실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을 수 있도록 한다면 아이들에게 학부모에게 한번 더 미소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곁가지의 특색 교육이 많으면 오히려 정규수업을 방해한다. 선생님들의 잡무가 늘어나기 때문이며 아이들이 그러한 활동에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학부모도 분주해 진다. 학교에서 하라는 것도 많다. 한 아이의 교육에 있어 부모와 학교가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지만 아이가 아닌 학교를 위한 부모의 참여는 불필요하다.
아이의 학교에서는 모든 학부모가 참여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신설 학부모 단체를 13가지를 만들어 참여하기를 권했다. 마지못해 책사랑회에 신청했다. 내가 실망한 것은 이 모임이름뿐이었다는 것이다. 담당 선생님도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모인 학부모가 의논해서 기획하고 활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가 막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든 우리나라에선 이런 현실을 벗어날 순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아이를 놀리고 싶은 사람이다. 아이들은 꼭 지식으로 배우지 않아도 놀면서 관계도 배우고 판단력도 생기고 창의력도 생긴다. 아이들은 맘껏 놀아야 공부도 집중할 수 있다. 물론 어떻게 하느냐는 선택사항이니 내 아이는 놀리면 된다. 아이들이 경험보다 너무 일찍 아는 게 많아지고 경쟁에 내몰리는 것이 진심으로 안타깝다. 혼자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들이 많아야 내 아이도 건강하게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학교가 스스로 행복한 학교라고 말하기 이전에 그 속에 있는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아우성치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학교도 교사나 학생이나 학부모를 기업에서 말하는 고객으로 바라보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설문하고, 부모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선생님으로서 불편한 점을 수렴하고 반영하여 시행하는 것이다. 이 모두를 만족시킨다면 학부모와 학교가 한마음으로 하는 교육, 진정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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