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 조회 수 6226
- 댓글 수 6
- 추천 수 0
구름이 무겁게 드리운 어느 쓸쓸한 가을날 황혼 무렵, 주인공인 ‘나’는 황량한 시골의 어셔가(家)를 찾아간다. 늪에 비친 집의 모습은, 눈처럼 뻥 뚫린 창문과 황폐한 담, 잿빛 잡초와 죽은 나무들, 그리고 독기를 품은 대기와 불가사의한 수증기 등이 어우러져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것은 마치 아편 중독자가 몽환에서 깨어나 쓰라린 현실 속으로 무섭게 추락하는 느낌이다.
‘나’는 친구인 로더릭 어셔의 긴급한 편지로 그 집에 초대된 것이다. 죽마고우인 어셔는 말이 별로 없는 조용한 아이였다. 오랜만에 만난 어셔는 몰라볼 만큼 무섭게 변해있었는데, 시체처럼 보이는 창백한 피부와 늘어진 머리는 그가 극심한 신경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에게는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 또한 비슷한 중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과 일체감을 느끼는 죽음을 견딜 수 없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셔는 누이동생이 죽었다며 당분간 그녀를 지하실에 가매장 하려고 한다고 한다. ‘나’와 어셔는 함께 마델린의 시신을 지하실에 매장한다. 마치 <검은 고양이>에서 부인을 지하실에 생매장하고, <아몬틸라도의 술통>에서 복수의 시체를 지하에 묻어버린 것과 같이. 그들에게 어떠한 죄책감은 없다. 단지, 그들은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인 냥, 덤덤하게 시체를 묻는다.
그녀가 죽은 후 일주일 정도 지난날 밤, 어셔는 알지 못할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폭풍우를 벗어나고자 책을 읽는 동안, 갑자기 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와 천둥 치는 소리가 혼란스럽게 들린다.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매장했던 쌍둥이 여동생. 피투성이 된 그녀가 갑자기 나타나 오빠 앞에 쓰러진다. 그 순간, 공포에 사로잡힌 어셔 남매는 그 자리에서 함께 숨진다. 이 무서운 사건을 목격한 나는 겁에 질려 밖으로 달아나온다. 폭풍우가 치고 기괴한 빛이 그 사이를 스쳐지나간다. 핏빛처럼 물든 빛을 상대로 뒤돌아보니 어셔가의 저택은 두 동강이 나며 속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그 빛은 막 넘어가고 있는 핏빛처럼 붉은 보름달의 빛이었다. 그 빛은 저택 지붕에서부터 주춧돌까지 겨우 눈이 띄는 정도의 틈 사이로 선명히 비치고 있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 그 틈은 순식간에 넓어졌으며 날카로운 회오리바람이 지나가자 그 둥근 달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셔가의 몰락>, 홍성영 역)
르네 마그리트 <연인들 The lovers (1928)>
엉뚱하게도, 방안에서 침대보 같은 흰 천을 뒤집어 쓴 두 남녀가 입을 맞추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들>은, <어셔가의 몰락>을 생각나게 했다. 열렬히 사랑을 나누고자 하지만, 서로를 볼 수가 없는 연인. 부드럽게 물결치는 천을 통해 그들이 서로의 얼굴에 대해 짐작 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실루엣뿐 이다. 아마도 이 그림이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났던 것은, 이들이 쌍둥이인 로드릭 어셔와 마들린 어셔 남매일지도 모른다는 괴기스런 상상 때문이었다. 그들은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할 수 없고, 같은 몸이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다. 그들은 하나의 존재이면서도, 각자 다른 존재이다. 그들은 얼굴을 뒤덮은 천 때문에 숨이 막히겠지만 그들이 굳이 억지로 그 천을 벗겨내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고, 소리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 실제 주인공인 로도릭 어셔를 우리는 포우의 자화상으로 볼 수 있을까? 자신의 힘으로 통제 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살고 있고,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인 로드릭을, 포우는 자기의 또 다른 모습으로 그려내려 한 것일까. 매들린과 로더릭이 쌍둥이로 묘사되고 같이 죽는 장면 역시, 완벽한 친구이자 반려자로서의 여인인 아내 버지니아를 잃은 심정을 잘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셔가를 덮고 있는 곰팡이와 기체의 분출은 괴기스럽고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공이 어셔에게 책을 읽어줄 때마다 멀리서 책 내용과 같은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살아있는 시체가 등장하는 과정은 히치콕의 영화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앤드류 와이어스 <크리스티나의 세계 Christina's World (1948)>
이제, 나는 또 다른 상상을 한다. 미국 메인주 광활한 풀밭에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가녀린 여인이 손을 땅에 짚은 채로 널브러지듯 앉아 있는 이 그림을 보며, 나는 <어셔가의 몰락>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했다.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제목의 이 작품 속 크리스티나는 세계를 응시한다. 그녀 앞 지평선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오직 그녀만이 알고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 세계와 교류하는 여자의 주위에 고요한 바람이 분다. 검은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 바람에 여자의 앞머리가 흩날린다. 앞으로 뻗어 짚은 외손과 애써 뒤를 지탱하는 오른팔에서 세상에 대한 갈구와 갈망의 떨림이 느껴진다. 여인은 멀리보이는 집으로 가고 싶은 것일까. 바닥에 털썩 놓인 그녀의 두 다리는 그곳으로 이끌고 가주기에는 무기력해 보인다. 아마도, 이것은 <어셔가의 몰락>에서 그려진 신비스럽고 사악한 어떤 힘에 의해 짓눌려진 인간의 무력함을 공통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악으로 대별되는 괴기스러운 고딕풍의 궁궐과 햇볕이 들지 않는 어셔가과 무기력하게 펼쳐져 있는 크리스티나의 세계. 원초적인 힘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묵인하는 쌍둥이 남매와 크리스티나는 각자 자기의 세계에 살고 있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포우를 그리워하는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