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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를 온 뚝섬 유원지역 부근. 늦은밤 퇴근길 일부러 한강쪽을 거닐며 오노라니 젊은 남녀들이 저마다 맥주캔을 거머쥐며 청춘을 만끽하고 있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를 하고파 좀더 가까이 다가가니 예전 살던곳인 분당의 탄천 공기와는 또다른 맛인 한강의 바람이 몰아든다. 강바람이 이런거구나. 밤바다를 보는것과 같은 향취에 젖어 있노라니, 인간의 역사는 사라져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묵묵히 흘러갈 강물속에 투영된 시간들이 노래를 부른다.
분위기를 더욱 몰아 다음날 휴일 저녁에는 오래 묵혀둔 자전거를 끌고 한강 둔치로 나가보았다. 쌩쌩 어깨위를 흘리는 바람의 속도를 만끽하고 있을즈음 어느 안내문이 보인다. 뚝섬 유원지의 역사가 자그마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놀이공원이 없던 시절 이곳은 서울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었다는 내용. 그리고 1989년까지 경마장이 있었다는 이곳. 그랬었구나. 나같은 촌놈은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집으로 갈채비를 하던중 멀리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낯익은 음악소리가 나의 발걸음을 붙든다. 무슨 소리일까? 귀를 기울여보니 영업 조직원들과 노래방을 갔을 때 부르곤 했던 구성진 트롯트 음악이었다. 이런 공공장소에 생뚱맞게 무슨 이런 음악이...
궁금중은 곧 풀렸다. 공터의 전방 단상 위에는 유니폼을 입은 강사가 에어로빅 지도를 하고 있었고 그밑 마당에는 놀라지 마시라. 아주리 군단을 능가하는 포스로 무장을한 족히 100여명은 되어 보이는 아줌마 군단이 색색이 유니폼을 맞추어 입고, 일사불란하게 하나둘 하나둘 구령까지 하며 열심히 춤을 따라하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한강 낙조를 앞에두고 군대 연병장도 아닌데 흥에겨워 엉덩이를 실룩실룩대며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열심히 춤동작에 취해있는 모습들을. 몇몇 젊은 연인 커플들이 지켜보고 있다가 신기한지 한 남자가 그 대열에 합류하여 동작을 따라하며 사진 포즈를 취했으나, 그것도 잠시. 아줌마 부대의 기세에 눌렸는지 금방 탈락하고 만다. 나는 그 광경을 무엇에 흘린 듯 타던 자전거를 제쳐두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줌마들의 파워는 한강 물결을 타고 굽이굽이 너머로 번져가고 있었다.
아줌마는 힘이세다. 이말은 진실이다.
경기도에서 새롭게 이곳으로 이사를 온날 모든 여자들이 그러하듯 우리 마눌님도 포장이사 직원들의 가구 배치가 맘에 안드는 듯 나에게 한소리를 한다.
‘승호씨. 냉장고좀 옮겨줘요. 위치좀 바꾸게.’
나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럼 미리 얘기를 하던가.
‘그냥 살아. 2년후에 또 이사를 갈건데.’
나의 이같은 반응이 못마땅했나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어느새 뒤바뀐 역사를 확인할수 있었다. 세상에 냉장고 위치가 바뀌어져 있던 것이다.
‘아니. 간밤에 잠도 안자고 뭐했어. 그리고 이 무거운 냉장고를 어떻게 옮겼어?’
신혼시절 전구 하나도 갈아 달라고 보채던 그 가냘펐던 마눌님이 결혼 14년이 접어드는 지금 이렇게 바뀌었다니.
아줌마는 조직적이다. 그러하기에 이 집단에 잘못 보이면 국물도 없다.
이야기 하나를 풀어놓아 보자. 종교와 사상을 떠나서 드리는 이야기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예수라는 분이 돌아가시고 3일후에 다시 부활을 한후 고민에 빠지셨다.
‘나의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세상 모든이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먼저 나타날 것인가?’
그는 결론을 내렸다. 사랑하는 12명의 남자 제자들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아낙네들 앞에 등장하기로.
그이유가 무엇일까?
질문이 너무 생뚱맞은가?
남자와는 다른 여자의 속성중에 하나는 연애의 교과서라고 할수 있는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전파력으로 나타난다.
평균적으로 남자는 하루에 1만5천 단어를 쓰는 반면 여자는 하루에 3만 단어를 사용한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그녀들은 또다른 여자들에게 즉시 그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그소식을 들은 그 여인네들은 다시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알리고 알리고...... 그래서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는 빠른 시간내에 사람들에게 전파가 될수 있었다.
웃기는 얘기인가? 그럼 과연 예수가 남자들 앞에 첫등장을 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그래도 이해하기가 힘든 분들을 위해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아파트 주변에 미장원이 새롭게 신장개업을 했다. 동네 주민들이 길가에 늘어선 이 미장원을 흘깃 거리며 쳐다보던중 휴일날 어느 부부가 함께 머리를 하러갔다. 그런데 본인들의 기대치와는 달리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여보. 어떻게 파마를 이런 식으로 할 수가 있어요. 안되겠어요. 불매운동을 벌리던지.’
이말에 남편 왈.
‘나참. 별것도 아닌걸 가지고. 그냥 안가면 되지. 불매는 무슨 불매.’
하지만 이 와이프는 혼자서 그 속내를 참을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옆집 아줌마를 찾아갔다.
‘영희 엄마. 왜 요앞에 새로생긴 미용실 있잖아요. 글쎄 내 머리를 보세요. 세상에 파마를 이런식으로 하다니.’
‘그렇네요.’
영희 엄마는 마침 계모임이 있던 당일 오후 계원들에게 이 얘기를 화두로 꺼내었다.
‘왜 301호 아줌마 있잖아요. 그 아줌마가 요앞 새롭게 오픈한 오드리될뻔 미용실에 갔는데 세상에 머리를 여하튼 희안하게 만들어 놓았지 뭐예요.’
이얘기는 일주일이 채되지않아 아파트 동을 돌고 돌았다.
그 미용실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이것이 아줌마의 힘이요 조직력이다. 20세기까지 세상을 지배하던 남성들 파워는 21세기라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면서 여성들 쪽으로 점점 위임이 되어가고 있다. 모든 상품과 마케팅, 광고, CS 등은 주부들의 눈높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평일 한가로운 오후 백화점이나 문화센터, 찻집, 찜찔방 등을 가보라. 모든 소득의 주체인 그녀들이 점령해 있다. 그녀들을 우습게 보았다간 뼈도 못추린다. 아파트 부녀회장 정도면 정기적으로 서는 5일장 상품 품목 등을 좌지우지 하기도 한다. 극단적인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잘못 보이면 위의 미용실의 사례처럼 상품 불매운동을 벌여 나가기도 한다. 얼마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촛불시위를 떠올려 보라. 그때 경찰들에게 가장 무섭게 다가왔던 단체는 유모차 부대를 앞세운 아줌마들이었다. 세상에 본인 자식을 최전방에 등장을 시켜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이가 그녀들 외에 과연 누가 있겠는가?
나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광장에 100여명의 아줌마 군단의 에어로빅을 보면서 다시금 그 존재를 확인 하였다. 그녀들의 무써움을...
그러다 얼핏 정신이 들어 시계를 보니 이크 큰일났다. 오늘 저녁 밥은 내가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몽상에 침을 흘리고 있다보니 시간 가는줄을 몰랐다.
식은땀이 흘렀다. 무써운 마눌님의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다.
오늘도 나는 깨깽 해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