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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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10 - 축제
축제라는 말이 며칠째 입에 맴돈다. 오월에는 여기 저기 축제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영상연구원에 가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를 골라 보았다. 작가 이청준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작가와 감독은 이미 서편제를 통해 호흡을 잘 맞춰둔 것 같았다. 청년시절, 청년 이청준이 쓰는 글을 즐겨 읽었던 나는 어느 때부턴가 소설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다. 어쩐지 소설을 읽을 여유가 생기지 않았고 또 조금은 “헛배 부른듯”한 느낌이 독후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해인가 천관산의 억새를 미친듯이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운을 떼는 바람에 미친듯이 시간을 휘몰아 장흥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 5시에 만나서 떠나기로 약속했지만 일정이 자꾸만 늦춰져서 저녁 6시 반에 출발을 하게되었다. 게다가 중간에 합류하겠다는 사람을 데리고 하염없이 내려가다 보니 자정을 넘겼고 예약을 해둔 휴양림에는 마감시간을 훨씬 넘겨 새벽 2시에 도착했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속에 우비를 챙겨입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늦가을 억새가 죽도록 보고 싶었던 사람 넷만 남고 다 되돌아 갔다.
비바람 몰아치는 천관산 억새는 그 자체로 이미 영화속 풍광이었지만 비에 젖은 억새밭을 거슬러 나오는 일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질척 질척, 어그적 어그적 사방을 헤매다녔다. 바람은 우리를 바다로 떼매고 갈 것 처럼 사나웠으나 우리는 무사히 살아서 내려왔고 다시 모두 모여 작가 이청준의 고향으로 갔다. 우리나라의 정남진이라는 장흥, 이렇게 저렇게 인연이 닿아서 장흥사람 셋이 학고재에서 고향을 글과 그림과 시로 전하는 작품전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여행을 준비하며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써놓은 이청준의 <눈길>을 찾아 읽었다. 감정의 근원에 깊이 닿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의 고향 땅을 지나며 글로 만난 그의 어머니 얘기를 해줄 수 있었다.
<눈길>은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이다, 형님의 노름빚이 쌓여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가버린 고향집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던 날의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도시로 나가 공부하고 있는 아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새주인에게 사정을 하여 전과 다름없이 옷궤짝 하나를 옮기지 않고 놓아 두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더운 밥을 해먹이고 모자는 마지막 밤을 보낸다. 어머니는 신새벽에 아들과 길을 나서서 눈길에 엎어지고 미끄러지며 눈발을 헤치고 한참을 걷는다.
사람의 흔적없는 눈길을 그렇게 걸어 차부까지 아들을 배웅한다. 급히 떠나는 첫 차를 불러 세워 아들을 태웠기에 미처 눈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떠나 버리는 버스가 원망스럽다. 손사래치며 황망히 보내놓고 찬바람에 함께 걸어온 길을 혼자서 되돌아서려니.... 거기다 아직도 날은 어둡제...차부를 다시 찾아들어가 한 식경이나 차부 안 나무걸상에 웅크리고 앉았다가 동녘하늘이 밝은 후에야 혼자 이제 서둘 것도 없는 길을 서둘러 나선 어머니.
“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저 아그의 말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싶었제. 나는 굽이굽이 외진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 에미 혼자서 너를 보내고 이리 돌아가고 있구나. ”
-- 어머니 그때 많이 우셨겠어요?
“ 울다 뿐이겄냐. 오목오목 디뎌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이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너라도 좋은 운을 타서 복있게 잘 살거라. 눈 앞이 시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만 빌고 왔제........"
그날 그렇게 눈물을 흩뿌리고 걸어간 눈길에 담긴 어머니의 통한을 아들은 한참 후에야 아내에게서 듣게된다.
그 글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지붕을 다시 엮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아들은 돈걱정에 역정을 내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아내하고 얘기하다가 어머니의 속마음을 알게된다. 그러다가 어느날, 당신이 돌아가시면 이 좁은 집에 사람들이 모여올텐데...집이 너무 초라해서 혹시 아들에게 누가 될까봐 지붕을 다시 엮어놓고 싶은 것이었다. 그 끝에 어머니가 아내에게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를 아들은 잠결에 드문드문 들어 넘겼다. 무심한 아들은 어머니의 속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다. 그렇게 남다른 글쟁이의 감각으로도 말이다. 책에는 그렇게 써 있다. 그러니 이청준의 책<축제>는 그 다음에 치매를 앓다가 두 번 세 번 위기를 넘기고 87세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상장례를 치러드리는 이야기이다.
영화 <축제>에서 어머니는 꽃가마를 타고 떠나간다.
“이팔 청춘 소년들아
백발보고 웃덜마라
부귀영화 일장춘몽
흐른 물에 부평초라
바람되고 그름되고
눈비되어 나는 간다.
어이 가리 넘차~ 너화너
일락 서산 해는 지고
월출 동녘 달 오르니
팔십 평생 꽃 세월이
바람같이 흘러간다.
달이 되고 별이 되고
해가 되고 꽃이 되소
어허이 어이~
어이 가리 넘차~ 너화너
어머니를 위한 한바탕 굿 마당은 아버지를 일찍 여윈 아들의 두분 부모님을 향한 효심이었을 것이다. 노인을 씻겨드리는 굿판을 그는 그가 평생해 온 글로써 풀어냈다. 그는 책<축제>의 머릿말에 “기왕에 한바탕 굿판을 치렀을 바에야 돌아가신 노인을 위한 뜻깊은 굿이 되어 드렸으면 좋겠다. 당신을 편히 씻겨 보내 드릴 수만 있었다면.....” 영화쪽 일에나 큰 음덕을 빌고 싶다.
영화 <축제>는 성공했다. 그도 영화 속에 한 장면 찍혔다. 서울에서 문상오신 귀한 손님으로서 백발을 성성히 날리는 어른으로서 술을 한잔 받는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인 안성기는 천연덕스럽게 이청준을 연기했다. 남도의 가락에 맞춰, 그리고 고향의 오랜 풍속을 따라 어머니의 상을 치르는 전 과정을 딸 은지에게 설명해주듯 풀어 나간다. 영화 속에서 서둘러 밤을 새며 찍어낸 그의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라는 책을 어머니의 영전에 올려드린다.
-----할머니께서 은지에게 나이를 다 나눠 주시고, 더 나눠 주실 나이나 지혜가 떨어지고 나면 할머니는 갓난쟁이처럼 몸집이 조그맣게 되셔서 이 세상에서 모습을 거두어 우리 곁을 떠나가게 되신단다.----
그가 노인을 보내드리고 싶은 모습이자 깊은 소망이었다.
어머니를 뒷동산에 묻고 돌아와 집 마당에서 가족 모두 기념 촬영을 한다.
모두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데 사진사가 한마디 한다.
“얼굴 좀 펴고 웃어 보세요, 웃어요. 어디 초상 났습니까?”
사람들이" 하하하" , 활짝 웃는 모습이 영화의 끝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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