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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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하고 소박하게 욕심 없이 살아가는 것이 많은 선비들의 바람이었다. 이처럼 의식주를 최대한 절제하고자 했던 선비들이지만 선비의 사랑에 놓인 물건들에 만큼은 약간의 절제된 사치를 추구하고는 했다. 선비들은 문방사우를 특히 아껴 활용했다. 문방사우는 종이[紙]·붓[筆]·먹[墨]·벼루[硯] 등 옛날 서방이나 서재에 없어서는 안 되는 4가지 기구를 의인화해 쓴 말이다. 문방사우 중에서 선비들이 특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종이와 벼루였다.
종이 중에 시전지라는 것이 있다. 시전지詩箋紙는 글자 그대로 시를 쓰기 위한 작은 종이인데(전箋은 폭이 좁은 종이를 의미한다), 꽃무늬를 많이 사용했기에 화전, 금전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시전지는 단지 시를 쓰기 위한 원고지에 그치지 않고 편지를 주고받을 때도 많이 사용되었다. 고아하고 운치있는 내용을 담아 보내기 위해 시전지는 꽃에서 채취한 천연염료를 사용하여 다양한 색깔로 갖가지 문양이나 글귀를 새겼다. 문양으로는 매화가 가장 애호되었고, 국화나 대나무, 난초, 연꽃 등의 화훼와 새와 짐승 또는 잠언이나 시구 등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대나무와 학을 양각한 멋진 배경이 깔려 있는 수려한 시전지 위에 멋드러진 초서로 정성껏 써내려간 말들은 분명 받는 사람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을 터이다.
벼루는 문인들에게 깊은 애정의 대상이었다. 아름다운 벼루를 갖고 이것에 먹을 갈아 글을 쓰는 것은 선비들의 커다란 열망이었다. 실제로 남아 있는 조선시대 벼루를 보면 조각 수준이 놀라운 것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또한 문인들은 벼루를 얻고서는 그에 대해 품는 애정을 명銘이란 문체의 글로 표현하기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를 연명硯銘이라고 한다.
선비들은 문방사우를 이용하여 글을 써 이를 문집으로 묶거나 혹은 서로 소통하기 위한 편지를 작성하는데 활용했다. 시를 쓰고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은 옛 선비들의 일상 생활에서 매우 중요했다. 요새는 주로 이메일을 이용해서 정보와 소식을 교환하지만 옛날에는 편지를 부치기 위해 인편이 이용되었다. 오로지 편지를 전하기 위해 사람을 멀리 보내거나, 또는 다른 일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편지를 전달했다.
간찰簡札이라는 것이 있다. 전통시대의 편지로서 원래의 형태와 필적을 그대로 남기고 있는 것을 특별히 간찰이라고 부른다. 간찰은 본래 죽간과 목찰에 작성한 글이라는 뜻인데, 종이에 적거나 비단에 적은 편지를 모두 가리킨다.
또한 편지 중에 ‘척독’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불과 수십 개의 단어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말한다. 이 척독에는 재치 있는 비약과 압축이 주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고 한다. 보통 편지를 말하는 서간은 사실을 상세히 알리거나 상대를 설득할 목적으로 장황하게 쓴 반면, 척독은 보낸 이의 심경과 감정의 토로를 전달했다고 한다. 짧은 글이라고 하는 형식 상의 이유 때문에 높은 예술성과 품격을 지녀 긴 여운을 느끼게 하는 척독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IT는 현대판 문방사우다. 우리는 글을 쓸 때 노트북을 켠 뒤 워드 프로그램을 띄워 글을 작성한다. 그 다음 메일 시스템에 접속해서 파일을 첨부해서 메일을 보내면서 소통한다. 굳이 예전과 현대를 비교한다면 벼루가 노트북이나 아이폰이요, 메일 시스템이 종이이고, 트위터는 척독이고, 인터넷이 인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과 비교해서 사람 사이에 소통하는 방법이 크게 바뀐 것은 없다. 다만 도구와 그 특성이 바뀌었을 뿐이다. 현대의 IT는 빠른 속도와 넓은 공간을 제공한다. 옛날이라면 감히 꿈도 못 꾸었을 엄청난 공간(지구상 어디라도)에 인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주 빠른 빛의 속도로 글을 전달할 수 있다. 그 편리함과 효용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정성’과 ‘가치’이다.
전통 시대의 편지에는 교제의 미학이 있다. 한 영혼이 다른 영혼과 관계를 맺기 위해 상호하게 모색하는 긴장이 있으면서 동시에 한 글 한 글 써내려간 글씨 속에 작성자의 표정과 태도가 생동감있게 드러난다. 이러한 편지를 받는 일은 바로 감동이었을 것이다. 요즈음의 이메일이라고 해서 감동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손으로 적은 편지에 비해서는 그다지 감흥이 일지 않는다. 이메일 역시 감정과 상념을 솔직하게 전하겠지만 다만 글을 가다듬어 손으로 직접 적을 때의 긴장이 없기 때문에 읽는 사람으로서의 감동이 덜하기 마련일 것이다. 그리고 필적이 주는 톡특한 품격은 느낄 수 조차 없다.
우리는 서로간의 소통을 위해 IT 활용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메일을 쓰기도 하고, SMS를 보내기도 하고, 다양한 소셜 네트워킹을 위해 트위터, 페이스북, 싸이월드, 블로그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여기에 ‘효율성’의 가치는 있지만 ‘정성’이라고 하는 가치는 조금 떨어져 보인다. 특정 사람을 생각하면서 시간을 내어 정성껏 어렵게 작성하는 전통적인 소통 방법도 현대의 시대에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 현대적인 IT 도구와 전통적인 수제의 소통 방법을 적절히 섞어 쓰는 것이 정말로 소통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다른 사람과의 ‘빠르고 넓은’ 소통을 위해 IT를 좋은 현대적인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느리지만 정성이 배인 속 깊은’ 전통적인 도구를 첨가하여 따뜻하게 활용할 수 있기를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