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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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여행
‘늑대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제목을 처음 들었을 당시 하얀 솜털까지 바짝 일어나도록 짜릿했었다. 작년 12월 추운 겨울이었다. 기다려왔던 그녀가 내한하여 공연하는 날이었다. 가슴이 뛰고 있어 추운 줄도 모르고 공연장으로 뛰어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녀를 ‘꼭!’ 만나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는 나의 삶의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작가, 동물 보호 운동가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그녀는 엘렌 그리모 이다. 셋 중의 어느 하나도 뒤쳐지지 않을 만큼 세 가지를 다 이룬 여성이다. 그것을 말해주듯 공연장은 만석이었다. 공연 시작 전 스크린에는 그녀가 늑대와 사랑스럽게 안고 있는 사진이 나온다. 행복해 보였다.
“ 1991년 무렵 늑대를 처음 마주쳤을 때 사랑에 빠졌어요. 내 안에 내재하고 있는 자연과의 교감을 일깨우는 듯했지요.” 그녀가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은 플로리다의 친구네 집에 갔었을 때 일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산책을 하다 길을 잃었는데 숲을 헤매다 늑대와 마주쳤다. ‘이제 죽었구나!’ 하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늑대의 눈빛을 본 순간 공격 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왔다고 그녀는 말한다. 사실 그녀는 죽은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만약 어딘가 물려 신체가 손상되었을 경우 그녀의 피아니스트의 삶은 끝난 것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믿음이 그녀를 털 끝 하나 안 다치고 살려 놓았고 이것이 그녀의 제 2의 인생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16세에 데뷔 음반을 녹음한 영재(英才)였고 19세 이후 스승을 두지 않은 음악인으로 꼽히면서 음악가들의 찬사를 듣는, 외모도 아주 아름다운 피아니스트였다. 그녀에게 바흐는 경전과도 같은 존재였다. 바흐 음악을 매일 연습하는 것이 그녀의 삶이였다. 요즘 우리들의 관심사인 ‘매일 습관’으로 성공한 사례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에게 늑대와의 만남은 ‘변화’였다. 공연과 연습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늑대와 놀고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그녀는 늑대의 눈빛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자기 인생을 다시 살게 해준 늑대를 위해 시간과 돈을 그들을 위해 나누었다. 그녀는 연주로 버는 수익의 대부분를 늑대 보호 센터 짓는 일에 투자했다. 그리고 1999년 멸종 위기에 처한 늑대를 보호하기 위해 비영리 단체인 ‘늑대 보호 센터’를 뉴욕에 설립하였다. 병들고 굶어 죽어가는 늑대들을 데려가 보호해 주고 건강해지면 돌려 보내주는 일이 그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 되었다. “늑대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순간, 내 몸의 근육 하나하나에 느껴지는 전율을 어떤 말로 묘사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을 읽을 때, 순간 나에게도 전율이 왔다. 다는 아니겠지만 그녀와 같은 공감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전율들이 그녀의 손끝으로 전달되었는지 그녀의 연주는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녀는 언제 어느 무대에 서든지 관객들과 교감할 수 있는 준비를 한다고 한다. 그녀는 동물과의 교감에서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챘고 그것은 그대로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무대는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가 되는 아주 따뜻한 공연이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흔이 넘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다. 음악에서처럼 사랑에도 침묵의 몫을 남겨 두어야한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다. 그녀는 늑대를 반려동물처럼 키우는 환경론자로서의 삶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담은 책 <야생의 변주>, <특별 수업>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피아니스트, 베스트셀러 작가, 그리고 이제 남은 삶은 그녀는 동물 환경 보호가로서 살아 갈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늑대와 음악과 글쓰기 사이의 어느 지점에 살고 있다. 그 지점에서 그녀는 가장 유능하고 행복할 수 있었다. 이는 내가 바라는 삶이었다. 내 전공분야인 요가 명상과 동물과의 교감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 그리고 나중에 불쌍한 동물들을 치료하고 살려주는 일을 하고 싶다. 그 지점에서 나는 가장 행복하고 또한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는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최고란 생각은 언제나 주관적이다. 누군가에게 최상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내 인생을 최고로 만드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음표뿐 아니라 쉼표가 있어야 음악을 완성시키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도 빈칸이 필요하다. 숨 가쁜 대도시의 삶속에서 우리는 여유와 침묵의 의미를 잊어버린다. 만약 침묵이 없다면 영감과 에너지, 존재에 대한 자각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공연이 끝나고 세 번의 앙코르 곡을 연주하고 너무도 겸손히 인사를 하러 세 번이나 더 나왔다. 한 해 90여 차례 연주회를 하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임에도 그녀의 품행과 옷차림은 너무나 소박했다. 긴 파마머리를 뒤로 묶고, 검은 바지에 검은 반팔 저지옷감의 티였다. 너무나 편한 플랫 슈즈를 신은 그녀는 치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게서는 자신감과 행복감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그녀를 보는 순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화장으로 변장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름다웠다. 그녀의 빛남이 나는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아마도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일깨워 준 늑대와의 교감에서 느끼는 행복감이었을 것이다.
엘렌 그리모의 연주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행동의 목적을 행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신이 행복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추위나 거리에 아랑 곳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보다 ‘나는 이런 것이 좋다’ 라는 자신의 취향에 눈을 뜨고 있어 자신의 행복과 연결시킨다. 이렇게 나를 찾아 떠나는 사람만이 눈부신 세상과 만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