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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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11 - 스승을 기리며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어릴 때 외우던 시조입니다. 그때는 그때에 맞는 질문을 했었지요.
“아니. 아버지가 날 낳으셨다니요? ”
한동안 정신없던 일들을 조금 정리하고 나니까 몸이 좀 아픈듯 해서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의외로 병원이 조용했습니다. 오월에는 연이은 축제로 사람들이 가계지출도 많아지고 남는 시간도 없어서 병원을 잘 오지 않는답니다. 덕분에 나는 약침과 쑥뜸까지 혜택을 받고 잘 쉬었습니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날입니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동네 처녀 총각으로 만나 결혼하고 6남매를 낳아 기르시고 일곱해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년 연상이셔서 모든 걸 아버지께 양보하셨습니다. 생일축하도 이틀 뒤인 아버지 생일에 맞춰 함께 받으셨고 몸이 약한 아버지를 위해 예방을 지극히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언제나 약탕관이 있었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진취적이고 열정이 넘쳐서 온갖 새로운 일에 어머니를 끌어들이고 일을 잔뜩 벌려 놓으셨습니다. 어머니는 큰 불평없이 묵묵히 그 일들을 다 맡아 정리를 하시더군요. 나는 그런 부모님을 보며 자랐습니다.
형제들 속에서 아버지과로 분류되는 나는 늘 새롭게 나아가고 발이 빠릅니다. 호기심이 많아 현장에 가보기를 원하는 성격이지요, 그리고 다양한 취미로 다양한 사물들을 수집하고 모두 모아 놓았었지요. 아버지는 우리 집에 놀러오시면 무척 재미있어 하시면서 격려하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 하셨어요. 어머니는 고요히 내가 어질러놓은 살림을 정리해 주십니다. 아버지와 내가 의기투합하여 놀러 나가면 어머니가 창고를 정리하고 삼베이불을 풀을 먹여 빳빳하게 다려놓으십니다. 말보다는 언제나 솔선수범하며 앞서서 걸어 가십니다.
그러니 한평생 나는 어머니께 빚을 많이졌지요. 어릴 때에는 어머니의 칭찬 한마디가 그렇게 아쉬웠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마음에 들어서 칭찬을 하셨지만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지요. 구체적인 도움은 언제나 어머니께로부터 왔습니다. 아마 젊은 날 나의 완벽주의는 따라가는 못하는 이상에 대한 나의 예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더 잘할 수 있는 많은 것을 잃었다는 생각을 요즈음 하고 있습니다. 늘 피어나기 전에 움츠려 들어서 떨어지고 말았던 꽃 몽우리 같다고 스스로 생각해봅니다. 왜냐하면 행복하지 않았으니까요.
완벽주의는 일의 시작을 늦추고 일의 결과를 회의하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성에 차지않고 그래서 내가 해보면 더 마음에 들지않아서 성과물을 내놓지 못합니다. 강제력이 동원되면 마지못해 내놓지요. 그러나 곧 후회와 불만족으로 가슴을 칩니다. 그러니 남에게 눈을 돌릴 여유는 생각조차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혹시 이런 탄식들이 잘난척하는 오만함으로 비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 병든 자존심은 외벽을 두껍게 쌓아가기 때문에 바닥을 칠 때까지는 깨뜨리기도 힘이 듭니다. 정체성을 배울 때 하나씩 둘씩 껍질을 벗겨내며 분석을 했던 결과입니다. 피해가고 싶은 자기분석이지요.
어쨌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는 차분하지 못하고 손매 또한 곱지 못한 첫째 딸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런 딸을 위해 한평생 기도를 많이 하셨을 겁니다. 때로는 부모님의 눈물어린 하소연을 하느님이 들어주셔서 이만큼이라도 세상에 책임을 지며 살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내가 나의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어미가 되고나니 겨우 내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일 년에 한번 오월에 이런 회상을 하지요.
부모님께서는 걸으실 수 있을 때까지 매일미사를 하시고 성지순례를 다 다녀오시고 팔순을 지나면서 병원을 자주 다니게 되셨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신장투석을 하시며 2년여를 누워계셨고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지요. 이제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보셨습니다. 아버지마저 아프시더니 두 분이 나란히 병원에 누워 계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아버지를 앞세우시고 그 모든 상장례 의식을 병석에서 지켜보시더군요. 그러다가 꼭 100일이 되는 날, 정말 동화처럼 마지막 숨을 내쉬며 천수를 마치셨습니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혀가 말려드시는 것 같다는 올케언니의 전갈을 받고 어머니 곁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잠깐 바닷가로 산책을 간 동안 급히 핸드폰이 울리며 빨리 돌아오라고 해서 뛰어가서 임종을 지켰습니다. 그날이 바로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지요.
그래서 스승의 날에는 가장 먼저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평생을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려했으나 언제나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나를 스승인 어머니는 끝까지 기다려주셨습니다. 한 해 한 해 삶의 경륜이 쌓여가면서 어머니의 가르침이 나의 지혜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젠 나도 참고 기다리는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날, 갚을 길 없는 은혜를 헤아려 보며 마음속에 꿈 하나를 고이 간직합니다. 스승을 빛내는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스승의 날, 우리는 스승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당대에는 스승이 있을 수 없고 오직 지나간 역사 속에 스승이 살아있을 뿐이고, 그 스승은 지나간 세월 속에서 걸어 나와 오늘의 우리에게 길을 가리킨다고 .....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리고, "스승은 찾아가는 길의 끝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찾아가는 고통의 과정이 곧 스승입니다. 그 고통의 과정 속에서 자기 변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스승을 만난 것입니다." 라는 말씀도 건네주셨습니다.
"길"을 가리키는 사람, 그 "길"을 우리와 함께 걷는 사람, 나의 선생님... 어머니를 빛내드리고 싶습니다.
무쟈게.. 방가~방가~에여.. ^^
근데여.. 언제 오셨어여..
여행댕겨 오신다고.. 5월말까지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여.. 궁금?공금?
혹시.. 제가.. 글을 좀.. 띄엄띄엄 읽었나여..???
그래두.. 봐주세여.. 이젠 아시잖아여.. ㅎ
제 전공이.. 마이 들어내구.. 좀 띄엄띄엄 읽구.. 헤헤^^
그건 그러쿠.. 글이.. 넘 감동이에여.. ^^
들어내는 거이는 말할 것두 읍구여.. 한자도 띄엄띄엄 읽어내리는 거이가 읍씀을..
그거이들이.. 글에.. 자연스럽게.. 스며듬을.. 좌샘의 글에서.. 매번 느끼고 있어여..^^
깊이.. 반성해여.. ㅎ
연두빛 봄바람?에.. 어데어데.. 다녀 오셨어여.. 운동화는.. 노란 거이 맞져.. ^^
? 때.. 마이.. 들려주세여.. ^^

우리 불확이가 드디어 선상님처럼 말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네.
형상화했네...
근데 그 들어내 "구" 가 뭐 어케하는 거이야? 그것도 마이 들어내 "구".......
딴얘기
오랫만에 제 2의 독자 만나 간송미술관 , 길상사 돌"구" 하단에서 만두국 먹"구"
오는데 비가 오는거이야, "구"래도 우산을 안샀지....집에 넘쳐흐르는 우산이길래...
건널목에 비 맞"구" 서 있는데
초록버스가 물을 트왕창창 뿌리고 지나가는 거이야... 에잇,
우산 5000원 아끼다가 세탁비 더 들게 생겼"구"만....
? 때...노란신발 신고갈께...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