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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8일 13시 41분 등록

응애 11 -  스승을 기리며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어릴 때 외우던 시조입니다. 그때는 그때에 맞는 질문을 했었지요.
“아니. 아버지가 날 낳으셨다니요? ”

 

  한동안 정신없던 일들을 조금 정리하고 나니까 몸이 좀 아픈듯 해서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의외로 병원이 조용했습니다. 오월에는 연이은 축제로 사람들이 가계지출도 많아지고 남는 시간도 없어서 병원을 잘 오지 않는답니다. 덕분에 나는 약침과 쑥뜸까지 혜택을 받고 잘 쉬었습니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날입니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동네 처녀 총각으로 만나 결혼하고 6남매를 낳아 기르시고 일곱해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년 연상이셔서 모든 걸 아버지께 양보하셨습니다. 생일축하도 이틀 뒤인 아버지 생일에 맞춰 함께 받으셨고 몸이 약한 아버지를 위해 예방을 지극히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언제나 약탕관이 있었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진취적이고 열정이 넘쳐서 온갖 새로운 일에 어머니를 끌어들이고 일을 잔뜩 벌려 놓으셨습니다. 어머니는 큰 불평없이 묵묵히 그 일들을 다 맡아 정리를 하시더군요. 나는 그런 부모님을 보며 자랐습니다.

  형제들 속에서 아버지과로 분류되는 나는 늘 새롭게 나아가고 발이 빠릅니다. 호기심이 많아 현장에 가보기를 원하는 성격이지요, 그리고 다양한 취미로 다양한 사물들을 수집하고 모두 모아 놓았었지요. 아버지는 우리 집에 놀러오시면 무척 재미있어 하시면서 격려하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 하셨어요. 어머니는 고요히 내가 어질러놓은 살림을 정리해 주십니다. 아버지와 내가 의기투합하여 놀러 나가면 어머니가 창고를 정리하고 삼베이불을 풀을 먹여 빳빳하게 다려놓으십니다. 말보다는 언제나 솔선수범하며 앞서서 걸어 가십니다.

  그러니 한평생 나는 어머니께 빚을 많이졌지요. 어릴 때에는 어머니의 칭찬 한마디가 그렇게 아쉬웠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마음에 들어서 칭찬을 하셨지만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지요. 구체적인 도움은 언제나 어머니께로부터 왔습니다. 아마 젊은 날 나의 완벽주의는 따라가는 못하는 이상에 대한 나의 예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더 잘할 수 있는 많은 것을 잃었다는 생각을 요즈음 하고 있습니다. 늘 피어나기 전에 움츠려 들어서 떨어지고 말았던 꽃 몽우리 같다고 스스로 생각해봅니다. 왜냐하면 행복하지 않았으니까요.

  완벽주의는 일의 시작을 늦추고 일의 결과를 회의하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성에 차지않고 그래서 내가 해보면 더 마음에 들지않아서 성과물을 내놓지 못합니다. 강제력이 동원되면 마지못해 내놓지요. 그러나 곧 후회와 불만족으로 가슴을 칩니다. 그러니 남에게 눈을 돌릴 여유는 생각조차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혹시 이런 탄식들이 잘난척하는 오만함으로 비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 병든 자존심은 외벽을 두껍게 쌓아가기 때문에 바닥을 칠 때까지는 깨뜨리기도 힘이 듭니다. 정체성을 배울 때 하나씩 둘씩 껍질을 벗겨내며 분석을 했던 결과입니다. 피해가고 싶은 자기분석이지요.

 

어쨌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는 차분하지 못하고 손매 또한 곱지 못한 첫째 딸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런 딸을 위해 한평생 기도를 많이 하셨을 겁니다. 때로는 부모님의 눈물어린 하소연을 하느님이 들어주셔서 이만큼이라도 세상에 책임을 지며 살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내가 나의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어미가 되고나니 겨우 내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일 년에 한번 오월에 이런 회상을 하지요.

  부모님께서는 걸으실 수 있을 때까지 매일미사를 하시고 성지순례를 다 다녀오시고 팔순을 지나면서 병원을 자주 다니게 되셨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신장투석을 하시며 2년여를 누워계셨고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지요. 이제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보셨습니다. 아버지마저 아프시더니 두 분이 나란히 병원에 누워 계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아버지를 앞세우시고 그 모든 상장례 의식을 병석에서 지켜보시더군요. 그러다가 꼭 100일이 되는 날, 정말 동화처럼 마지막 숨을 내쉬며 천수를 마치셨습니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혀가 말려드시는 것 같다는 올케언니의 전갈을 받고 어머니 곁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잠깐 바닷가로 산책을 간 동안 급히 핸드폰이 울리며 빨리 돌아오라고 해서 뛰어가서 임종을 지켰습니다. 그날이 바로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지요.

  그래서 스승의 날에는 가장 먼저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평생을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려했으나 언제나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나를 스승인 어머니는 끝까지 기다려주셨습니다. 한 해 한 해 삶의 경륜이 쌓여가면서 어머니의 가르침이 나의 지혜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젠 나도 참고 기다리는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날, 갚을 길 없는 은혜를 헤아려 보며 마음속에 꿈 하나를 고이 간직합니다. 스승을 빛내는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스승의 날, 우리는 스승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당대에는 스승이 있을 수 없고 오직 지나간 역사 속에 스승이 살아있을 뿐이고, 그 스승은 지나간 세월 속에서 걸어 나와 오늘의 우리에게 길을 가리킨다고 .....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리고, "스승은 찾아가는 길의 끝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찾아가는 고통의 과정이 곧 스승입니다. 그 고통의 과정 속에서 자기 변화를 이룰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스승을 만난 것입니다." 라는 말씀도 건네주셨습니다.

  "길"을 가리키는 사람, 그 "길"을 우리와 함께 걷는 사람,  나의 선생님... 어머니를 빛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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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5.18 14:39:57 *.108.83.167
스승의 날에 제 강좌 수강생에게서 문자를 받고 잠시 어리둥절했어요.
'스승'이라는 그 고색창연한 이름과 제가 매치가 안 되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스승이 길을 가리키는 사람이라면,
우선 내 아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고 싶네요.
좌샘의 어머니께서 그러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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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5.18 23:10:02 *.67.223.107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스승입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사제의 연쇄를
확인하는 것이 곧 자기의 발견입니다.
                             -  牛耳 신영복 -

그러시지요?  명석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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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5.18 17:42:46 *.51.4.114
훌륭한 코치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열광하게 하는지...
훌륭한 스승 한 분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더 나은 삶의 길을 열어주는지...
훌륭한 제자들이 본을 보여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동기를 부여하는지...

전 이곳이 좋습니다.
여긴 저의 새 삶의 시작이고 끝입니다. ^^
저는 선생님 그늘에서 좌선생님과 함께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을 늘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왕누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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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5.18 23:16:42 *.67.223.154
마에스트로 백,
그대의 글에 하나 하나 답글을 쓰지 못하지만  늘 유심히 보고 있어요.

백산 또한 아름다운 사람이니.. 항상 스승과 친구들의 자랑이지요.
얼른 돌아와서  서로 원고 바꿔보며 함께 공부합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건강하게....훌륭한 코치,  마에스트로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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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10.05.20 20:07:58 *.70.61.217
잔잔한 단상이 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좌샘의 글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오랫만에 들어와 글 하나 골라 읽은 것이 이 글입니다.
페이스를 유지하며 계속 글을 쓰고 계셨군요.
그대는 아직 멋진 청춘입니다.
좌샘,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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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5.21 00:08:20 *.67.223.154
글도 사람도
내겐 늘 사랑으로  읽히는 소은, 오랫만이예요.

난 작년 여름에 소은이 만나게해준 
트리글라브 산과  그 착한 "스탕코 "를 생각하면 , 금방이라도 스프링처럼 튀어 일어나고 싶다니까요.

콘디션 조절 잘해서 올해도
찬란한 에게해의 문명과  톰 크루즈와의 데이트를 모두 즐겨야 할텐데요.... 

 입술은 부르트고 머리 뚜껑엔 늘 김이나고 있어서...
"왜"해서 그런지 로댕처럼 텩을 괴고 앉아있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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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10.05.21 20:24:03 *.70.61.217
머리에 김날 때는 밖으로 뛰어야지요.
나를 부르는 풍경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야지요.

올해는 미끈하고 조각같은 그리스 총각 기사와 크루즈 승무원들 대령하고,
에게해의 눈부신 태양이랑, 가슴으로 울고 싶게 스미는 산토리니의 태양과,
그리고 기타 등등으로 그대 가슴을 벌렁거리게 준비할테니,

고민하지 말고 튑시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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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범
2010.05.21 21:32:22 *.67.223.107
그러죠뭐.
튀어봅세당.  오데로?
안소니 퀸의 품안으로....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속으로  ...     우히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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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2 07:56:34 *.40.227.17
좌샘~ ^^

무쟈게.. 방가~방가~에여.. ^^

근데여.. 언제 오셨어여..
여행댕겨 오신다고.. 5월말까지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여.. 궁금?공금?
혹시.. 제가.. 글을 좀.. 띄엄띄엄 읽었나여..???
그래두.. 봐주세여.. 이젠 아시잖아여.. ㅎ
제 전공이.. 마이 들어내구.. 좀 띄엄띄엄 읽구.. 헤헤^^

그건 그러쿠.. 글이.. 넘 감동이에여.. ^^
들어내는 거이는 말할 것두 읍구여.. 한자도 띄엄띄엄 읽어내리는 거이가 읍씀을..
그거이들이.. 글에.. 자연스럽게.. 스며듬을.. 좌샘의 글에서.. 매번 느끼고 있어여..^^
깊이.. 반성해여.. ㅎ

연두빛 봄바람?에.. 어데어데.. 다녀 오셨어여.. 운동화는.. 노란 거이 맞져.. ^^
? 때.. 마이.. 들려주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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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확
2010.05.22 20:33:10 *.67.223.107
ㅋㅋ 그 눈썹 어케 만들었어?  헤헤^^  쫌 다른거이 그려지는데...

우리 불확이가 드디어 선상님처럼 말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네.
형상화했네...
근데 그 들어내 "구" 가 뭐 어케하는 거이야?   그것도 마이 들어내 "구".......

딴얘기
오랫만에 제 2의 독자 만나 간송미술관 , 길상사 돌"구" 하단에서 만두국 먹"구"
오는데 비가 오는거이야, "구"래도 우산을 안샀지....집에 넘쳐흐르는 우산이길래...

건널목에 비 맞"구" 서 있는데
초록버스가 물을 트왕창창 뿌리고 지나가는 거이야... 에잇,
우산 5000원 아끼다가 세탁비 더 들게 생겼"구"만....
? 때...노란신발 신고갈께...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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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윰
2010.05.23 23:50:39 *.35.158.167

내가 컨트롤할수있는 완벽주의는 이롭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경우엔 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위에서 그런경우도 종종 봐왔구요.. 그런데 요즘에 저는 완벽주의가 절실히 필요할 때에요.ㅎ
글을 읽다보니 그날 한옥집에서 말씀하셨던게 새록새록 떠오르는군요. 어머니와 좌샘 그리고 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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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잘
2010.05.24 13:23:53 *.67.223.107
백곰이 드디어 요기로 놀러왔구나....

이제 나는 완벽주의...라는 내게 맞지않는 옷을 벗어버리고.....
재미있게 살아보려고   하는데...말이지 , 백곰아,

오늘 아침에 읽은 토마스 머튼의 글을 읽어줄께, 들어봐~

"부단한 자기검열은  

본능적이고 관찰되지 않아야 할 태도들에
 대해  지나친 염려를 하게 한다.

우리가 우리자신에게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의 생활은 경련을 일으켜 비틀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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