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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2일 19시 24분 등록

지방 출장과 아버지 제사 관계로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도착을 하였다.

늦은밤 피곤한 몸이지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이 집이라는데에 한없는 편안함과 감사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를 언제나 반겨주는 마눌님이 있고.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오늘이 부부의 날이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부부의 날. 꽃이라도 살까.

그런데 희안하게도 꼭 이런날은 꽃집이 문이 닫혀있다.

언제였던가. 그날은 결혼기념일이었다.

마침 본부 회식이 있는 날이어서 술이 만취가 되어 전철역에 내리는 순간, 보통 날이 아니라는 생각이듬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꽃집을 찾았다. 하지만 오늘처럼 모든 꽃집은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꽃집 앞에 꽃봉오리가 탐스럽게 열려져있는 화분의 나무의 가지를 어쩔수없이(?) 꺽을수 밖에 없었다.

그날처럼 해볼까라는 유혹이 있었지만 마흔이 넘은 나이에 그럴수도 없고.

어떤 이벤트를 할까?

마눌님과 함께 한밤의 데이트를 하기로 하였다.

집앞에 예전 한번 들린적이 있었던 골벵이집으로 향했다.

이집 주인은 미술을 전공한 이다. 그래서인지 점포에 들어서면 액자에 걸린 여러 작품들이 손님을 반긴다. 메뉴판도 전공을 살려 여러 미술작품 사진이 삽입이 되어있다.

미술관과 동물원이라는 영화도 있었는데 이참에 상호명 변경을 얘기해 볼까?

미술관과 골벵이? 조금 어색한가?

 

마눌님과 대화의 주제는 한주간의 업무에 대해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힘들게 외부 감사를 마쳤던 이야기와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다녀온 이야기 등..

그런 와중에 지난주 내가 올렸던 칼럼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 나왔다.

“승호씨, 칼럼을 읽어 보았는데 내용의 핵심이 무어야?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원하는지?”

나는 갑자기 성질이 치밀어 올랐다.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자아도취인가. 나는 나름 잘썼다고 생각했었는데, 핵심이 없다는 말이 나의 신경을 자극하였다.

“왜? 내글이 어때서?”

부부는 그런 것 같다. 어찌보면 부모 이상으로 가까운 관계이기에 한없이 정답고 사랑스럽다가도 말한마디 행동 하나로 인해 언쟁이 벌어질수 있으니.

이같은 요인에는 부부라는 밑바탕에는 나의 행위에 대한 나의 말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요구하는 마음이 항상 있어서이지 않나싶다.

그래서인지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에 대한 혹평을 할시에는 더욱 민감해지나보다.

결국은 부부의 날에 나름 이벤트를 마련한 의미는 퇴색이 되어지고 고요한 적막이 우리 둘사이를 가로막는다. 어색한 분위기.

 

다음날 아침 마눌님 왈.

“승호씨 우리 삼청동 갈래.”

삼청동이라? 귀가 솔깃해졌다. 한번은 가고싶었던 곳이었는에 거기다 어제 일도 있고해서 선뜻 응하였다.

전철을 타고 안국역에서 하자하여 먼저 가까운 인사동으로 향했다. 연휴의 시작날 이어서인지 이곳은 말그대로 인산인해.

서울이 아닌 지방이 고향인 까닭에 개인적으로 이곳에 오면 묘한 향수들이 떠오른다.

달고나, 솜사탕, 로버트 태권V, 참잘했어요 고무도장, 추억의 포스터 등 옛날 물건들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런 매개체를 통해 우린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는 여행을 한다.

자꼬 반 도흐마엘 감독의 토토의 천국(Toto The Hero, 1991)이란 영화에서 주인공 토토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회상하듯.

코흘리개 시절. 누구나 그러했듯 나도 훈장과 딱지와 구슬치기 등의 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무어가 그리 재미 있었던지 추운 겨울에도 나는 장갑도 없이 얼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친구들과 시간가는줄 몰랐다. 그러다가 멀리 밥때가 되면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신다.

“승호씨 뭐해?”

아련한 추억과의 여행의 조우에 빠져있을 때 멀리서 부르는 마눌님의 한마디에 나는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풍문여고 쪽의 길로 접어들었다.

좋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서울에 이런 호젓한 곳이 있었구나. 말로만 듣던 이곳이 도교(道敎)의 태청(太淸)·상청(上淸)·옥청(玉淸) 3위(位)를 모신 삼청전(三淸殿)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삼청동(三淸洞).

고졸한 맛의 담벼락의 길을 사이에 두고 현실과 과거가 오버랩된다.

난 개인적으로 골목길을 좋아한다. 지방에 있을때에도 넓은 대로보다는 좁은 길을 애써 찾아다녔고, 덕분에 마눌님과 나와의 역사도 골목길에서 시작이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경숙이와의 어리숙한 짝사랑 이후로 제대로된 사랑을 못해보다가, 20대 중반이 훌쩍 넘어서야 사랑의 열병에 빠졌다.

어느날 저녘 현재의 마눌님을 자취방으로 바래다 주는 길에 예정된 나의 각본대로 음침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나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타이밍이 중요하였다. 어슴프레한 가로등 밑에서 이윽고 그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첫키스를 하였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밀치는 바람에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내동댕이쳐진 나의 모습. 에구에구~

어쨌든 그렇게 우리의 역사는 골목에서 이루어졌다.

 

지방과 달리 서울에서는 골목이라는 곳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오늘 삼청동에서 제대로된 골목길을 만나자 아련한 향취가 묻어나온다. 거기에다 젊은이들의 인파속에 발걸음을 옮기는 곳곳에는 동화속 그림같은 카페들이 우리를 반긴다. 좋구나. 정말 좋구나.

작년 연구원 수업의 일환으로 동유럽의 크로아티아 나라를 방문했을 때 무엇보다 내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그곳의 카페문화였다. 쏟아지는 태양과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늘어서있던 거리의 자그마한 카페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그곳을 점령한 많은 사람들.

프랑스어(語)로 커피(coffee)를 카페라 하는데 이곳은 통상적으로 가벼운 식사나 차를 마실 수 있는 식당을 일컫는 공간을 말한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한가로이 차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자, 빡빡한 우리나라의 현실과 대비해 참으로 할 일이 없는 이들이 많구나 라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어딜가도 이런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자 아마도 이것이 유럽의 황금문화를 이끌었던 정신적인 자양분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문득 그들의 문화가 부러워졌다. 현실을 벗어남이 아닌 그 현실 가운데에서 여유와 한가로움을 가질 수 있는 그 여백의 미가.

세익스피어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었지.

“카페에는 창조적인 에너지가 넘쳐난다.”라고

그렇다.

카페에 가면 나와 너를 이어주는 가교의 사람들이 있다.

카페에 가면 그들과의 만남의 조우가 있다.

카페에 가면 커피향과 아우른 시간의 정지됨이 있다.

카페에 가면 休를 통한 재충전의 에너지가 숨겨져있다.

그리고 카페에 가면 또다른 세상을 향한 손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유럽처럼 이런 카페문화를 느낄수 있는 곳이 있구나 라는 생각애 이곳저곳을 촌놈처럼 둘러보다가 북카페라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내서재’란 상호명의 카페에서는 먼저 나무로 짜맞춘 투박한 책장에 가득차있는 서적들이 손님을 반긴다.

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구입할시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 보다는, 직접 서점에 가서 여러 책들을 구경하면서 마음에 드는 책을 책장을 넘겨가며 보는 맛에 훨씬 마음이 이끌린다.

전자책이 등장하는 웹2.0시대에 조금은 뒤처지는 감이 없진않으나 그래도 나의 정서에는 아날로그식이 더와닿는다.

서점에 가면 가득 들어찬 잭장과 책들 그리고 책갈피마다에서 풍겨나오는 고유의 향기가 한없이 나의 마음을 풍족하게 한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장이 손때를 묻혀가며 읽고 꽃아 놓은 책들로 인해 나자신 사랑방 손님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라떼 한잔을 시키고 서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인문, 철학, 경영, 역사, 처세, 시, 서스펜스 등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지런히 꽃혀있는 중에 낯익은 책이 나의 마음을 괜히 설레게 한다.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

자연스럽게 주인장에게 말을 건넸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으시네요.”

“네.”

“신화의 힘이 꽃혀 있는데 읽고난 느낌이 어떠셨는지요?”

“그책은 처음엔 조금 지루할 것 같았는데 예상과 달리 재미있게 읽었어요.”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가? 나자신 연구원 생활동안 2번째 도전을 해서야 겨우 이해가 되었던 내용을 재미있게 읽었다니. 주인장의 남다른 내공이 느껴졌다.

책과 함께 하는 세상. 그리고 그 책과 차를 결합해 북카페의 형식으로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누며 대화하는 세상을 꿈꾸는 주인장.

세상에의 또다른 공헌력을 보는 것 같다.

 

늦은밤길 경복궁을 통하여 세종문화회관으로까지 걸어오는 길을 마눌님과 나는 손을 꼭잡고 다녔다.

체온으로서 전해져오는 온기를 통해 그사람에게서 나는,

사랑을 느꼈다.

믿음을 느꼈다.

신뢰를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동반자로써의 책임감을 느꼈다.

 

결혼 14년차 부부의 날.

우리는 골벵이에다 맥주한잔을 했다.

언쟁이 있기도 하였다.

인사동을 거닐었다.

마음에 와닿은 길인 삼청동을 난생처럼 마음껏 돌아 다녔다.

북카페을 들러 또다른 여유를 느꼈다.

그리고 함께 걸었다.

남들처럼 비싼 선물을 선사해주지는 못하였지만 마눌님의 행복한 웃음이 나의 가슴속에 자리하였다.

부부라는 것은 함께 손을 잡는 것이다.

부부라는 것은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부부라는 것은 함께 채워주는 것이다.

부부라는 것은 오늘 마주보는 진정한 벗이다.

그래서 감사하다.

IP *.117.1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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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5.23 00:03:47 *.219.168.97
이 글의 핵심? 잘 살아가고 있다는 폼내기? ㅋㅋ 에고 부러버라. 두 사람의 데이트. 참 예쁜 사람들이야.
낮에 어딜 가려다 말고 돌연 카페로 향하였다. 창성동, 통인동, 옥인동, 효자동이 얽힌 경복궁역 근처를 산책하고 돌아왔다.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는 그 길을 걷다가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인 것을 보며, 문득 학생 때 그 곳에 살던 남친과의 기억이 떠올랐다.^^ 잘들 살아가고 계시는지?  떠오르는 기억들을 적어볼까 하다가 그대 글만 읽고 자려한다. 새벽에 일어나려면 이 시간을 넘기면 곤란해서리.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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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2010.05.24 11:20:23 *.94.245.164
비가 옵니다. 오늘은 써니 누님 어디 계시는지.
누님의 카리스마한 모습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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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5.23 06:10:34 *.75.11.246

승호야!

늘 네가 보내주던 메시지가
묘한 웃음이
그리고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위한  특유의 목소리

항상, 행복해서 좋아!
그러면서도 노력하는 사람이어서 더 좋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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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2010.05.24 11:22:48 *.94.245.164
우와 가5기의 대장군이신 백산 형님이시다.
형님! 이역만리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잘지새고 계신데 제생각인가요?)
잊지않고 답글도 주시고 꺼이꺼이~
모든분들이 보고 싶어 하십니다. 언제 오시는지.
타지에서 건강관리 잘하시고 오실때 꼭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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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10.05.23 19:24:31 *.70.61.217
골목길의 역사 ㅎㅎ ^^**
추억이 머리 속에만 남게 하지 말고, 현재형으로 살아오게 지대로 한 번 하시지~~이~~잉.
그나저나, 미현씨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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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2010.05.24 11:26:47 *.94.245.164
우와~ 연구원에 저렇게 쭉쭉빵빵한 처녀(?)분이 계셨다니.
5기 연구원으로 들어와 누님을 만나서의 첫이미지 였습니다.
항상 시원한 웃음과 내재된 에너지의 열정이 뜨거우신 누님.
앗뜨거!

이번 여행에서도 많은 수고를 하시겠네요. 제가 도울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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