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뽕공주
- 조회 수 3229
- 댓글 수 2
- 추천 수 0
잠자리들아, 아침이야. 보라구, 해가 중천이야. 여기 있는 너희들은 잠꾸러기지? 건너편의 잠자리들은 벌써 다 일어나서 놀러 갔어. 빨리 일어나.
집 앞 논두렁을 지나 대추나무 많은 양지 바른 밭을 지나면 음지가 시작 된다. 매일 아무도 다니지 않을 길을 동생과 내가 맨 처음 다녔다. 해가 들지 않은 곳에는 잠자리와 곤충들이 나뭇잎에 앉은 채로 자고 있다. 인기척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가가서 잡아도 그대로 가만히 있다. 밤새 내린 이슬에 날개가 무거워 날지 못하나 보다. 거봐. 내가 어제 올라가면서 까불지 말랬지. 이렇게 잡힐 거면서. 애써 쫓아다니지 않아도 쉽게 잠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비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나비들은 앉으면 날개를 접는 데다가 풀잎 뒤에 숨기 때문이다.
빨간 고추잠자리를 잡으면 더욱 기분이 좋다. 이 잠자리가 잘 날 것 같다.
“내가 좋은 데로 시집 보내줄게.” 잠자리를 잡아 꽁지 떼고 풀잎 꽃아 날려보낼 준비를 한다. 가능한 풀의 물기를 빼야 한다. 동생과 나는 누구 잠자리가 멀리 날아가는지 내기를 하곤 했다. 멀리 날아가는 잠자리가 시집을 잘 가는 것이다. 잠자리는 최선을 다해 날아간다. 길 오른쪽에 낮게 펼쳐진 논으로 떨어지듯 날아가면 우린 박수를 쳤다. 시집 잘 가. 그리고 잘 살아. 우린 학교에 간다.
아랫마을까지 가는 길은 오솔길이다. 엄밀히 말하면 밭두렁길이다. 여름이면 풀들이 자라 길을 덮어버린다. 발목을 감싸는 수풀을 걷어 차며 다녀야 했다. 여름의 이슬은 비가 온 것처럼 풀잎마다 물방울이 많이 고여 있다. 아랫마을까지 가면 신발이랑 바지 가랑이가 다 젖어 정말 속상하고 창피했다. 아버지는 풀을 한 번 베줘야 하는데 걱정만 하고 좀 체 시간을 내지 못하셨다. 우리는 더 성가시게 조르고 싶었지만 바쁜 아버지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해 냈다. 운동화와 양말, 수건을 봉지에 담아 들고 집에서 신는 고무슬리퍼를 신고 나섰다. 아랫마을 바로 전 작은 도랑에서 발을 헹구고 양말을 신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누군가가 밭에 가는 길에 볼까 봐 신속하게 움직였다. 여기에 둘까? 아무도 모르겠지? 신고 온 고무슬리퍼는 수건과 함께 수풀 속에 숨겨두었다. 수풀을 일부러 헤집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우리들만의 비밀장소에. 집에 올라갈 때 잊지 않고 꺼냈다. 친구들은 깔끔하게 갈아 신고 마을에 내려가면 아무도 몰랐다.
비가 오거나 이슬 많은 아침이면 벌레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지렁이와 달팽이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어떨 땐 앞에 가는 동생의 걷어 올린 종아리에 노랗고 긴 거머리가 붙어 있는 때는 둘 다 비상이 되었다. 동생은 붙은 거머리에 놀라고 나는 그것을 떼야 하기에 재빨리 나뭇가지를 꺾어 멀리 날려 버려야 했다. 내 다리에도 붙었을 때는 그때는 정말 온 몸이 마비 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길가의 풀을 말끔히 베어 놓았다. 날아갈 것 같았다. 반나절을 꼬박 들여도 부족했을 텐데 힘드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다. 이제는 번거롭게 신발을 들고 갈 필요도 없고 누가 볼까 얼른 신발을 갈아 신지 않아도 된다. 길을 걸을 때마다 아버지의 고마움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