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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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도 할 말이 있어요.
나는 푸들이다. 내 이름은 ‘방울이’, 별명은 ‘광년’이다. 우리 엄마와 오빠개 ‘오리오’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엄마가 책상에만 매달려 놀아 주질 않는다. 뭐 물론 애절하게 부탁을 해서 연구원 생활을 하라고 허락을 했지만, 이정도 일줄 몰랐다. 그래도 난 천복을 쫓아 잘 살고 있다. 엄마가 읽는 어깨 너머로 천복에 대해 알고 나니 그게 나이지 싶어 불만도 없지 않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잘 참아내고 있다.
사실 나도 괜찮은 부모 밑에서 순산으로 잘 태어나 별 탈 없이 살겠다 싶었다. 그러나 나의 활달한 성격이 문제가 될 줄 몰랐다. 내가 까불고, 대소변을 가리기도 전에 아무데다 싼다는 이유로 나를 사람들은 다른 집으로 주어 버렸다. 사실 부모와 떨어져 새 주인에게 비위 맞추며 적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슬픈지 이야기 하면 삼일 저녁도 모자란다. 이집으로 가면 신문지를 펴주고 거기다 대 소변 훈련을 시키고 저 집으로 가면 목욕탕에다 싸란다. 한 서너 집을 돌고나서 나의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늘 불안하고 매 맞는 생활이 싫어 혀를 빼물고 하루 종일 뛰어 다녔다. 그래서 붙여진 병명이 ‘중증 산만 장애’이다. 원래 우리는 생후 3개월 이후 까지 배변 훈련을 받아야 잘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자기 아기들은 1년을 넘게 기저귀와 변기를 이용해 훈련을 시키면서 우리에게는 채 훈련될 시간도 주지 않고 버려 버린다. 나는 매를 맞으면서 어디다 싸야 할지 몰라 참고 참다 이제 아무데다 싸버리는 후련함이 몸에 배어 버렸다.
내 나이 두 살 반. 내가 천복을 찾은 건 생후 3개월 어느 겨울날이었다. 네 번째 주인으로 만난 할아버지 집에서 마루에 오줌 싸고 밖으로 쫓겨나 목이 매달렸다. 그래도 난 애완견이었는데……. 들여 보내 달라 잘못했다 아무리 깽깽 빌어도 빗자루만 날아왔다. 말을 들어주기커녕 시끄럽다고 이제 길에다 풀어 버린다는 말이 들렸다. 인생 자포자기 ‘그래~ 자유롭게 살지 뭐. 캐쎄라 쎄라~~’ 하고 조용히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데리고 갔다. 나를 사람들은 광년이, 미친 흑금으로 불렀다. 방울이라는 예쁜 이름이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하얀 강아지가 나를 경계했다. 나는 심술도 나고 인생 포기한 상태여서 새집에 도착해서 발도 푹신하고 싸고 나면 흡수도 잘 되는 침대를 나의 배변판으로 정해버렸다. 그런데 엄마는 그럴 때 마다 친절히 말해주었다. “여기는 사람이 자는 곳이고 이곳에 싸면 안돼! 알았지?” 매도 없이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을 신뢰하지 않았고 믿지도 않았기에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신이 나게 온 집을 내 화장실 삼아 싸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내다 버릴 줄 알았던 엄마는 침대 매트리스를 내다 버렸다. 나는 믿기지 않는 상황에 미안한 마음과 눈물이 찔끔 났다. ‘아~~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 다음부터 엄마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어라 하얀 강아지는 수놈이라고 들었는데 베란다에 펴 놓은 사각 기저귀에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눈다. 그래서 물어 보았다. ‘오빠는 왜 거기서 쪼그리고 오줌을 싸?’ 했더니, ‘튀면 엄마 청소하기 힘들잖아’ 한다. 그래 그제야 내가 무슨 일을 하며 미친 듯 뛰어 다녔는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모르는 누군가가 와서 짖고 경계하며 뛰어 다녔다. 그 손님은 대뜸 엄마에게 “너는 하나도 아니고 둘 다 어디서 이렇게 모자란 놈들만 주어다 키우니? 개를 키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똑똑한 애들을 키우란 말이야.” 한다. 엄마가 무어라 대답할까? 귀를 종긋 세웠다. “세상에 예쁘고 똑똑한 놈들은 100만원 씩 줘도 데리고 가는 사람들은 많아. 하지만 이놈들은 누구나 데리고 가면 삼일 내에 버릴 거야.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이 세상에 잘나고 똑똑한 놈만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에게도 알려 줘야 살 맛 나지 않겠니? 조금만 기다려 주면 나의 마음을 알고 다 똑똑해 질 거야. 기다림이 그들을 새로 만들어 줄 거야.” 난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칭찬과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나는 조금씩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의 말에 더 집중하였다.
엄마는 비오는 날이나 엄마가 무지하게 바쁜 날 이외에는 산책을 꼭 시켜준다. 우울증 걸린다며 광합성을 해야 동물이나 화초나 건강하다면서 말이다. 그날도 혀를 빼물고 미친 듯이 달렸다. 난 하루에 한 번 이렇게 달리지 않으면 가슴에서 불이 난다. 따뜻한 봄날 꽃 냄새를 맡으며 달리다 쉬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이를 알고 “그건 새 소리야. 너희는 멍멍 그러고 재들은 짹짹 거리는 거야. 소리가 참 예쁘지?”하며 가르쳐 주었다. 예쁜 소리 듣기 좋았다. 나도 그날부터 짖는 소리를 예쁘게 내서 엄마에게 사랑 받으려 노력했다. 그날도 기분 좋게 산책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어떤 아줌마가 엄마에게 나를 데리고 다녀 자기가 데리고 나온 애가 놀랐다며 엄마에게 막 화를 내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확 물고 싶었다. 가만히 있는 우리가 뭔 죄가 있기에 사사건건 시비다. 그런데 나는 놀라버렸다. 그 얌전한 엄마가 어금니를 물더니 광견병 걸린 개가 거품을 물고 대드는 개처럼 “난 우리 개 묶었거든요? 그렇게 걱정 되면 당신이 아이를 묶던가! 우리 개들은 당신 애가 물까봐 걱정이라네요.” 하며 당당히 걸어갔다. 오, 마이갓 ! 우리 엄마 만세. 난 그때부터 엄마의 충견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날로 증상이 좋아졌다. 엄마가 공부할 때는 얌전히 자고 있다. 간혹 병 후유증으로 엄마가 아침에 나갔다 저녁 늦게 들어오면 심술이 나서 방에 큰 것을 봐 놓는다. 하지만 그것도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사람들의 성격이 제 각각이고 살면서 얻는 병을 고치며 살아간다. 이처럼 우리도 병을 고치고 치유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에게 상처입고도 오늘을 살아 갈 수 있는 힘은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우리가 손이 없기 때문에 배가 고파도 스스로 냉장고를 열어 혼자서 밥을 차려 먹을 수 없음을, 그로 인한 우리의 배고픔을 잘 알고 있다. 엄마는 또 길거리에 버려진 동물들이 분리수거로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배 곯는 것을 알고 헤매는 그들을 위해 일부러 먹을 것을 흘려 놓는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애교를 부리며 밥을 얻어먹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하루를 같이 서로 이해하며 살아가는 반려동물임을 알아주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은 이해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제야 하고 싶은 말을 하고나니 속이 좀 후련하다. 나는 미칠 광 ‘광년이’ 가 아니라 기름이 잘잘 흐르는 검은 털을 가지고 있는 롱다리에 몸매 미끄덩한 푸들 방을이다. 오늘도 엄마가 읽는 책을 어깨너머로 훔쳐보고 있다. 날씨가 오랜만에 따스하고 좋으니 눈이 슬슬 감긴다. 행복한 하루이다.
-이 방울 씀-
자는 모습도 쎅시한 울 방울양. 중요 부위를 가려야했는데 방법을 몰라서.....부끄럽겠다. 쏘리 ^^
우리 방울이 옆이나 입에는 늘 냄새나는 양말 한짝이 있다. 양말은 그의 친구이자
마음을 안정 시켜주는 역활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