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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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또한 누군가에게 많이 던진 말이기도 하다.
언제 이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까?
우선 가장 많이 쓰게 되는 곳은 회사가 아닐까. 회사의 납득할 수 없는 처사를 접했을 때, 상사의 어이없는 명령을 받았을 때, 매일 격무와 야근에 시달릴 때, 인격적으로 상처를 받았을 때, 열심히 일했지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승진에서 밀렸을 때, 팀원들과 갈등할 때...
셀 수 없이 많은 경우에 우리의 마음속에서, 때로는 입 밖으로 불쑥 튀어오는 말이다.
영화<하녀>에서 윤여정이 수시로 내뱉는 말 ‘아더매치’의 상황을 접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바꾸기엔 나의 힘이 미약하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자조섞인 어조로, 때로는 달관한 어조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한 마디 내뱉고 상황을 종료한다.
이 짧은 말 안에 어떤 뜻이 들어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짧은 말 속에 은근히 함축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우선 첫 번째로 이 말 속에는 떠날 곳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곳이 싫어서 떠나더라도,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있다는 최소한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떠날 수 있는 의지의 전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이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말 안에는 내가 떠남으로서 나와 이곳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 있다는 홀가분한 끝남의 의미, 이곳을 떠나고 새로운 곳에서 더 나은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무리 학교가 싫고 선생님이 싫고 답답한 공부가 싫었어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빨리 그 시기가 지나가길 바라긴 했어도 학교를 떠날 것을 꿈꾸지 않았다. 아무리 싫고 힘들어도 견뎌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학교생활이 끝이 있는 과정인데 비해서 가족은 떠날 수도, 끝도 없는 관계이다. 혈연이란 질긴 밧줄로 묶여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을지라도, 결혼으로 새로운 가정을 꾸미고 분가를 할지라도 가족은 우리 마음속에서 결코 완전히 떠날 수 없는 그 무언가이다.
학창시절과 가족에 대한 이런 인식과 달리 우리 마음속에서 회사는 늘 떠날 수 있는 곳, 때로는 떠나야 할 곳이다. 가끔은 떠나는 상상만이 꽉 막힌 숨통을 틔워주는 힘든 곳이기도 하다. 쉽진 않지만 우리가 떠남을 선택할 수 있는 곳인 동시에 냉정하게 우리를 떠밀어 내보낼 수 있는 곳이다. 즉 헤어짐과 만남이 가능한 곳이다.
그럼 일은 어떤가. 공간과 조직과 관계의 의미가 일을 압도하는 회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인데 반해, 일은 어떨까.
회사와 일은 같은 것이 아니다. 지금의 회사와 일을 떠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도, 회사와의 관계는 끊어질지라도 일은 또다시 우리를 따라온다. 기존의 회사와 일에 만족스럽지 못했던 관계를 전부 無로 돌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는 없다. 최소한 일의 내용이 달라지더라도 일을 대했던 나의 자세와 맘과 경험과 지혜, 즉 과거는 그대로 남는다.
물론 일을 하지 않고 평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일을 그만두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없다. 또한 어떤 의미의 일이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자 나의 믿음이다.
결국 우리는 일을 떠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을 떠나는 것을 쉽게 꿈꾸진 않는가.
일이 힘들고 지겹고 싫다고 훌쩍 떠나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떠날 것이 아니라, 바꾸어야 한다. 일을 바꾸던, 일을 대하는 나 자신을 바꾸던 선택을 해야만 한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조차 나의 선택이며, 그 결과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동일한 상황에 자신을 방치하는 것이다. 늘 같은 자리에서 불만을 던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바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을 바꾸던, 일을 대하는 나 자신을 바꾸던, 떠나지 말고 바꾸자.
매일매일 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느껴질 때, 그래서 그 무게에 치여 숨이 막힐 때, 떠날 것을 꿈꾸지 말고 바꿀 것을 꿈꾸자. 그리고 그 꿈을 실천하자. 그 첫 걸음은 내가 있는 바로 이곳이다.

그래서 '회사'란 곳이 좌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떠나면 그뿐 인곳에 난 왜 이렇게 매여있나?
그러다 다른 곳이라고 별 다를 것인가? 동서고금을 둘러봐도 이리 비슷하니
죽고 난 다음이라면 모를까 살아서는 다 마찬가지 아닐까?
아니..슬쩍 엿본 신들의 세계도 다를 것 없어보이니 이를 우짠단 말인가?
그래서 그렇게들 열반을 하려고 애쓰는 모양입니다.
얼른 이 영혼의 사명을 마치고 쉬고 싶어서..
그래도 안심인 것은..
적어도 우리의 영웅, 순신님께서는 본의 아니게 다시 환생하여 이 生의 굴레를 다시 쓰는 죄가를 치르시진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완전 연소하셨으니까요.
이번 책을 읽으며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 생의 목적은 '꿈꾸는 세상을 이루기 위한 완전 연소'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