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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5일 11시 32분 등록


D- day,  


D-2 저녁에 펜싱을 가르치러 갔다. 백일을 채우려는 생각에 돌아와서 따로 특별히 연락하지 않았다. 스승님께만 문자로 인사를 드렸다.  회사에 인사차 들렀다. 모두들 반겨주었다.  벌써 기억이 아득하다. 섭해하는 경영자의 얼굴과 직원들의 표정을 뒤로 두고 떠나왔다.
세상이란 그렇게 얻고 잃음이 분명한 것이다. 자유를 얻은 만큼 책임도 인내심도 커져야 한다.  아끼는 점장에게 그렇게 말한다.  손 안의 있는 떡을 잘 관리할 수 있을 때, 그 손을 열어 새 떡과 마실만한 것들에 손을 내밀 수 있다.

저녁에 펜싱을 하러갔다. 내일이 동호인들의 시합이기 때문에 얼굴들을 보기도 하고 시합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격려할 필요도 있었다.  일반인들이 더 이기고 싶어한다. 노력의 양이나 질에 관계 없이 사람들은 이기고 싶어한다.  처음엔 의아해 했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름대로 자존심과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특별한 운동인 펜싱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은 특히 그런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있어서 나름의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펜싱의 승부에 관한 그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나름대로 자기 삶에 질서와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른 일과 관계에서도 같은 정도의 태도와 행동을 가지고 대하는 것 같다.

펜싱팀 아남클럽과 부활팀은 연대 체육관에서 연습을 한다. 월 수 금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다.  오후 나절부터 오른 쪽 배가 좀 아팠다. 약간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운동을 안 하면 잘 먹지 않으므로 그러려니 했었다.  어 그런데 체육관에 도착을 해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옷을 갈아 입으려고 하는데, 심하게 아프다.
아이구...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는 기억이 있었다. “아... 돌...” 1989년에 미국 덴버에서 세계선수권이 열렸을 때, 기압이 낮은 고지라 선수들은 힘겨워 했었다. 남자에뻬 종목의 시합이 끝났을 때, 많이 지쳤었다.  날씨는 무덥고 기운도 많이 없었다.  돌아와 호텔에 들어서는 데 죽을 것만 같았다. 손가락이 부러지고, 옆구리에 칼이 박히고, 눈알을 긁혀도 견딜만하다. 그런데 이건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아...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실려가 어찌 어찌 해서 요로결석이라는 것을 알고 몰핀을 세대를 맞고도 아퍼서 몸부림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돌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감쪽같이 통증이 사라졌다. .. 내 참... 그렇게 다음 날 귀국을 했었다.

순간적으로 그 기억이 떠 올랐다. 아... 돌...  OB팀 회장님을 붙들고 구원을 요청했다. 정신이 노랗다. 어떻게 실려서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갔다. 저녁 7시 반은 넘었을 것이다. 7시부터 운동을 시작하는데 체육관에 들어가던 시간이 5분 전이었으니까... 
아프다. 병원 정말 오기 싫은 곳인데,,,  정말,,, 자꾸 욕이 나온다. 갑자기 내가 붕괴되는 기분이다. 또 얼마나 더 인내하고 노력해야하는가... 하는 순간에 정신이 아뜩해진다... 그러자 맥이 플렸다. 옆구리는 더 심하게 아프고 가슴이 울렁이고 토하고 싶었다. 가볍게 먹은 저녁이 모두 토해졌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냥 멍해졌다.
그저 옆구리를 지르는 그 고통... 그러나 내 심정은 그 고통보다도 더하다.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 벌이진 일,,,  재수 더럽게 없어도  자신을 스스로 망가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 그래 견디어 모든 것은 그저 아스라한 기억이 될 뿐이다. 사진을 찍고 진통제가 주어졌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아프다.  결석이라는게 그렇지... 한 번 더 투여해주겠다고 한다.... 그냥 견딜만 하니 버틸랍니다.  
소변이 나와야 약을 처방할 수 있다는 데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 비닐 플라스크를 들고 아무리 용을 써도  힘도 잘 쓸 수 없는데다,  아무런 기별이 없다. 니기미... 오줌 누는게 이렇게 절박하다니... 

12시가  지나고 1시가 되어서,,, 형이 누나와 함께 왔다. 나이 살이나 먹어가지고 너무 미안하고 챙피하다.  형은 나를 한 동안 바라보다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 표정 속에서 마음을 읽는다. “어이그, 그래, 오죽하것냐...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빨개진 눈빛을 감추려고 형이 응급실 문을 다급히 열고 나섰다. 난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대 모서리를 부여잡고,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형! 미안해...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그랬던 것 같다.  두 번의 척추 수술을 할 때도,  폐가 빵꾸나서 학교에서 쫓겨날 때도,
석사 논문쓰다가 일주일간 안자고 못먹고 일하면서 버티다가 궤양으로 배를 갈랐을 때도, 칼 끝에 눈알을 찢겨서 꿰매야 했을 때도...  

사실 나는 고통에 익숙해져서 갈수록 무감각해져가고 있지만 내 곁에 있던 형은 나보다 더 많이 아프고 힘들었던 것 같다.
그가 내게 그런다.
“너, 절대로 부모나 형제를 원망해서는 안된다. 없어서,  재능있고 실력있어도 선택받지 못하고,  몸부림을 쳐고 노력해도 기회마져 없다고 원망해서는 안된다. 절대로 안 된다.”
그는 늘 그렇게 나를 보는 자신의 안타까움 때문에 내게 다짐을 받는다. 곁에서 도와줄 수 없는 나를 바라보는 자신의 고통이 잠재되어 있다. 다짐을 내게 묻고 또 묻고 확인하며 다짐시킬 때마다 사실, 나는 아프다. 그가 아프다는 것을 상기시켜준 것이다.

“그래, 언젠가는 하나님도 알지 않겠니, 너무 바쁜신가보다,,, 지극하면 하늘도 감응한다는데... 널 크게 쓰실려나보다... “

나는 생각 밖으로 무디다, 숱한 부상,,, 그저 ‘재수가 없으려니,’ ‘에이 니기미,,,’ 하면 그뿐이다.  어쩌겠는가, 누구를 원망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주 겪다보니, 그것도 익숙해진 탓이리라... 

오늘은 유난히 형의 그런 표정이 두드러졌다. 형,,, 에이. 그냥 모른 척 하고 지나가자,
한참 있다. 형이 들어왔다. 비닐 봉지에 숨겨서 맥주를 사들고, “ 돌이 빨리 나와야 된께...” 커피 전문점 컵을 내어 맥주를 따르고 뚜껑을 덮고 빨대를 꼽아 내게 건네 주었다..
물과 쥬스를 얼마나 마셨을까,,, 거기다가 맥주를 마셨댔다. 수액봉지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마시고,,마시고... 그러다 화장실 가서....  안나와...  또 마시고...

 팬션에 내일 사람 다 찾는데,  놓고 왔단다. 가야지... 걱정마셔요,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돌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니 상관없습니다.
한 밤중에 누나는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형과 함께 교대로 운전하는게 나을 거 같아서 ...
눈이 큰,,,  목소리가 큰, 여장부같은 ... 그래서 미안한 누나,  조카 심장수술로 몇 년을 병원에서 살고, ... 스스로 일어서 서 봉사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누나...

그렇게 형과 누나를 보내고 새벽 다섯시가 넘을 무렵에서야 소변이 나왔다. 순간 까맣고 작은 돌맹이가 떨어졌다. 0.5mm 밖에 안된다는데,,  나는 이렇게 눈꼽 한 조각정도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니. 사는게 우습다. 허허... 

약봉지를 책상위에 올려 놓고 누웠다.  묘한 기분,,, 맥주 때문에,,, 물 때문에,,, 쥬스 냄새로... 알딸딸하기도고 힘이 없다. 젠장... 에이..씨 젠장... 허.. 참...  에이...쯧... 그렇게 투덜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래... 자야지... 한 시에는 나가야 하니까... 심판 보러가야하니까...”

어차피 사는 건... 그렇다. 아픈 건 아픈 거고 일은 일이다. 그 날 오후에 나는 다섯시간동안 심판을 보고,,, 체육관에서 연세 부활팀과 그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먹고 월드컵 그리스 전을 다같이 보았다.
다행이다. 이겨서... 졌으면  썽질나부렀을 것인디... 
그렇게 D-1 이 지났다.

D-day
약을 먹고 잤는데, 이 번엔 반대 쪽이 좀 수상하다.  이런 젠장.. “야, 나는 죽는 줄 알았다. 집에서 난리가 났제,,, 그래서 실려가서 겨우 빠져서 집에 왔는데 이틀 지나서 반대쪽에 생겨서... 또 실려갔시야...  결국엔 안 나와서 깼제...  ”
광주의 셋째 누나가 전화해서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허... 그냥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가끔씩 엉뚱한 생각을 한다.  살아오는 시간 중에서, 굵직한 사건이 벌어질 때, 나는 꼭 그만큼 대가를 치루었던 것 같다.  지지리도 복이 없어서 ‘재수 정말 없는 놈’ 이고 그래서 정말로 재미없는 남자’라고  핀잔 아닌 핀잔을 내게 주던 ...

“너 아니? 난 말이야... 운명의 신에게 도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난 내 삶을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건 말야... 신도 나를 어쩔 수는 없어... “

고통, 기쁨, 분노, 쾌락, 오늘 만나는 것이...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고 온몸과 마음을 다해 살았던 느낌만 남을 테니까...  

난 이 거대한 우주의, 이 한 많은 세상의 한 점 모래알이지만,  모래 한 알 같은 그 내 속에 온 우주를 품을 수 있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것도 꿈 꿀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삶을 사랑한다.
 
D day를  조용히 보냈다.  기념하지도 축하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불만스럽지도 않다.
그냥 여늬날이다.  그러나 하나의 작은 성취며 스스로의 대한 존중이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신과 스승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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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6.15 23:33:31 *.197.63.9
근게, 뭣이당가. 귀국 후에 아파서 죽을 번하다가 겨우 살아났다는 것이여 시방? 에그~ 진상. 오자마자 병원 신세여.

그랴, 어쩌것어. 운명 주시는 대로 받잡고 살아야제. 도리 있간디. 몸 조리나 잘 하소.
그리고 이 좀 악물지 말고 살아. 얼마나 살겠다고 그 놈의 서푼짜리도 안 되는 고집은. 덩치에도 안 어울리게 어리광은 또... 푸하하.
그랴도 붙들고 늘어지며 올리는 칼럼이란. 시금치, 우유 등은 가려가며 섭취하는 게 좋겠네. 
글고 다른 것은 다 해도 아프지는 말아야 해. 그런 건 정말 저승사자에게나 주어뻔지시길. 언능 나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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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6.17 16:41:52 *.131.127.50

 나 웃어도 아픈께...  웃기지 마라 잉....
술을 안 먹어서, 벌 받나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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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6 07:26:31 *.40.227.17
백산 오라버니~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믿고.. 
오라버니.. 참 멋진 분이세여..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바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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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6.17 16:43:08 *.131.127.50

근 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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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6.17 00:43:25 *.221.232.14
나는 아직 그를 직접 보지 못했다.
덩치가 큰 사내라고 들었다.
주먹보다는 눈길로 술주정뱅이 오줌 재리게 했다고 한다.
칼을 쓰는 사내지만, 피 냄새를 싫어하한다고 했다.
그런 사내도 아팠단다.
상대의 칼끝도 아닌, 0.5mm 돌에 막혀서 그의 길 가지도 못했단다.
칼쓰는데 선수인 그가, 가만히 꼼짝없이 누워 칼침을 받았던 모양이다.
남 오줌재리게 했던 그가, 자신의 펜을 흔들어 봐도 잉크 나오지 못했단다.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간혹 댓글을 달아 놓고 가는 그의 온기가 느껴진다.
눈물 흘리다가 삼키고 간 그의 뒷모습이 이럴 줄은 몰랐다.
도대체 어떤 사내일까. 그는,

그의 펜이 강할까, 칼이 더 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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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6.18 12:47:58 *.131.127.50
원래 좋은 펜은 흔들어서 쓰지않씁니당.
좋은 펜은 보기만 히여도  심이 난께...요^^ .

망치나 칼로도 못 부시는 걸 ...
그걸로는 살며시... 스스로 무너져 내리게 해뿐께.... ㅎㅎㅎ

펜과 칼 속에 숨겨져 있는 정신의 힘,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안 합디까...?
고통이나 외로움은 견디어 내면 
그만큼 강해지기 마련이오...

그 강함을 의로운데 써야겠죠....
변경연같이...
의로운 사람들 과 살 때, 의롭게 쓰는 법을 배우죠..
시를 쓴다거나,,, 다른 아픈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준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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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6.17 21:36:44 *.105.115.207
아~ 흔들어도 잉크나오지 않는 펜을 어디에 쓸고...
못박는 망치로도 못쓸 그 놈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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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6.17 19:09:31 *.131.127.50
나가 근께 말이요....   
 거시기에는 내가 솔찬히 쎄기는 쎄지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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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10.07.02 07:00:43 *.72.153.134
긍께 왜 아프고... 근다냐. 으이구.
백산 오라버니 밥 좀 잘 먹고 살아요.
혼자 있으면 아픈 게 제일 심난한 거죠. 저 취직했어요. 밥사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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