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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만둘지는 모르겠지만 1억 매출의 단초(端初)를 제공했던 그순간을 다시금 재현하고 싶어요.”
비가 무척이나 내리던 여름 어느날 인천의 00거래처에 방문교육 지원을 나갔다. 방문판매 사업은 흔히들 교육사업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판매를 목적으로 발로 뛰는 영업사원들을 운영하는 조직이니만큼, 그들에 대한 정신무장 및 상품지식에 대한 중요성이 무척 강조되는 까닭이다. 그래서인지 거래처 사업자들은 온라인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한 학습과 집체교육 등의 형식이 있음에도, 본인의 사업장에 교육 담당직원들이 내방을 하여 교육을 해주기를 원한다. 그럴 때 직원들이 주로하는 교육 테마는 제품, 영업 정신교육, 증원, 이벤트 등이다.
00거래처는 잊을만하면 가끔 들리게 되는 곳으로 오늘도 오랜만에 방문을 하였다. 최근에 새롭게 이전을 하였기에 사뭇 달라진 모습이 기대되는 점포이다. 2층에 자리잡은 매장은 신건물은 아니지만 내부 교육장 분위기는 예전보다 훨씬 안정되어 보였다.
“사무실은 어떻게 구하게 되셨어요.”
“아유, 말도마세요. 원래는 이곳이 원하던 곳이 아니라 다른 지역 사무실을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그게 최종 계약까지 갔다가 어떤 사람이 딴죽을 거는 덕분에 무산이 되었지 뭐예요.”
“속상하고 난처하셨겠네요.”
“네. 예전의 사무실을 옮겨야할 날짜는 다가오고 부랴부랴 알아보던중 우연찮게 이쪽 지역 사무실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계약을 체결했지 뭐예요. 계약을 하고보니 원래 마음먹었던 곳보다 건물주도 좋은분이고, 또 이곳이 전번 사무실 지역과는 달리 사람이 몰리는 곳이예요.”
“잘되셨네요. 오히려 애초에 원하던 사무실 계약이 무산된게 다행인 결과로 나왔네요.”
“맞아요. 그런걸보면 일이라는 것이 적절한 시기와 타이밍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제까지 사업을 운영할 때도 그러하였고.”
내가 영업 매니저를 하던시절 예비 사업자 및 오픈을 앞둔 분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일순위로 묻던 질문중에 하나가 점포의 입지성 이었다. 어떤 지역이 사람의 유동성이 많고 눈에 잘띌수 있는지가 그들의 주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방문판매 사업은 일반 소매점포와는 달리 찾아오는 고객을 상대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영업 조직원을 운영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고객을 방문 및 상담하여 판매케하는 시스템의 형태를 취한다. 그러므로 엄밀히 따지자면 점포의 입지적 조건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 사업은 아니나 그래도 사람 심리가 어디 그런가. 그래서 그런 분들을 위해서는 가급적 보험회사 매장이 있는 지역을 위치선정의 예로 조언해 준다. 보험회사들은 자체적인 마케팅과 리서치를 통해 사람이 몰리는 지역들을 사전 선정해 입주를 하므로, 아무래도 이들이 원하는 장소와 어느정도 부합이 되기 때문이다. 00거래처가 새롭게 옮겨간 곳은 식당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었다. 식당이 밀집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무실 및 수요 인구가 많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녀가 타켓 시장으로 삼는 홍보 대상자층과 상관관계가 있으므로 지난번보다 낫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녀가 시기와 타이밍을 이야기했듯 방문판매 사업은 농부가 농사를 짓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교육을 할시에는 사계절과 농사를 매칭을 시켜 내용을 전개시켜 나가기도 한다.
봄은 꽃이 피어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이다. 그렇듯 겨울내 조금은 움추려있던 방문판매 영업도 이제 더욱 기지개를 켠다. 아이들 방학관계로 활동을 하지못하던 주부사원들도 개학이 되자 출근을 서두르며 활동을 개시하고 판매력이 상승이 된다.
여름. 뜨거운 태양빛이 내려쬔다. 고객도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시기이기에 무거운 제품을 들고 배달이나 상담활동을 나가는 사원들은 더욱 힘들어진다. 거기다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가 되면 활동력은 평소보다 떨어진다. 여기에 휴가기간까지 끼면 설상가상이다. 하지만 마냥 손을 놓을순 없다.
가을. 수확의 계절이다. 바람도 선선하고 날씨도 맑아 활동하기가 더없이 좋은 시기이다. 여름에 사전 확보 고객 명단과 밑밥(?) 작업의 준비를 해놓았던 것을 바탕으로, 전면적인 고객과의 홍보 및 상담에 나서며 땀흘린만큼 소득을 올린다.
겨울. 포유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러 동면에 들어가듯 여름만큼 쉽지많은 않은 계절이다. 하지만 봄을 대비하며 준비작업을 해나가야 한다.
이런 구조도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코멘트로 덧붙인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는 작업 끝에 가을이면 결실의 수확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땀흘린 보람만큼 풍작을 거둘 때도 있지만, 우박과 갑작스런 태풍 등의 영향으로 뜻하지 않은 흉작의 결과를 맞이할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농부는 망연자실하고 원망의 눈길로 한숨을 내쉬며 애꿏은 하늘을 바라다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농부는 한해 농사를 실패 하였다고 해서 내년도 농사를 대비하며 다시 씨를 뿌리는 작업을 하지않을까요. 그렇진않을 겁니다. 농부는 마음을 추스리고 또다른 내일을 기대하며 희망의 작업을 다시 시작합니다. 땅은 배신을 하지않는다는 진리를 마음에 아로새기며 땀방울의 노력을 한층더 기울이는 것이죠. 방문판매 영업도 이러합니다. 농사를 짓는것과 같이 우리의 사업은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플랜에 의해 움직여지는 사업입니다.”
이처럼 방문판매 사업은 어찌보면 우리네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과도 비슷하게 여겨진다. 그녀의 사업경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예전 계몽사 영업으로부터 시작한 베테랑 세일즈맨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흔히들 어렵다고 하는 영업파트를 꼽는다면 자동차 영업, 보험 영업, 제약회사 영업을 손꼽는다. 하지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으로 대표되는 북세일즈도 그에 못지 않을만큼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인정을 받던 그녀는 우리 사업쪽으로 스카우트된후 영업소장의 직함으로 승승장구를 하다가, 자신의 독립적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싶어 새롭게 자영 사업자로 오픈을 시작한다. 하지만 쉽지많은 않았다. 독립시 자신이 오너로 모시던 사업자와의 이견사항에 의해 자신의 팀원들을 한명도 대동하지 못했던터라 혼자서 총무며, 경리역할에다 판매를 하여야 했던 것이다. 방문판매 사업은 조직사업이다. 그래서 양(量)이 질(質)에 우선한다는 우스개 이야기도 있다. 그렇기에 현장에서 나는 이런 비유로 증원의 필요성을 곧잘 강조하기도 한다.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 시절에는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만큼 일종의 정치깡패들이 득세를 하며 공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중 당시 대표적인 인물이 스라소니로 알려졌던 이성순과 김두한 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1:1 대결에서는 김두한이가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사가들은 그를 더높이 평가하고 기억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그이유는 다름아닌 양(量)에 있었습니다. 즉, 스라노니는 혼자 개인적으로 활동을 하였던 반면 김두한은 자신의 조직을 운영하여 움직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주는 교훈은 여러분들 개인이 판매하는 것 보다는 조직이 우선이 되는 관계로, 현재 우리의 주관심사인 신입 증원에 주력을 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잘나가던 그녀였지만 혼자서 일을 해나가기에는 아무래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세일즈의 밑바닥부터 경험한 그녀였기에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후, 결국은 90년도 중반에 우리 조직에서는 처음으로 1억이란 매출달성을 이룩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지금이야 타사와 마찬가지로 우리 거래처의 사업자들도 1억이란 매출을 우습게 보는 분들이 많지만, 그당시에는 너무나 대단한 계수였기에 이를 이룩한 그녀가 신화(神話)적인 존재로까지 인식이 되었었다. 그래서 지방 멀리에서도 버스를 대절해 그녀의 매장을 견학을 오기도 하였다. 도대체 1억이란 꿈의 목표를 어떻게 달성을 하였는지 비결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얼마후부터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세무조사 등의 내외적 악재도 밀어닥쳤다. 세무 공무원들은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까지 사무실에서 죽치고 앉아 장부 등의 대차대조 등의 감사를 하였다. 자연히 사무실 운영이 제대로 되질 않았다. 흥을 돋우고 나가야할 조회 시간에 공무원들이 감시의 눈초리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영업환경에도 악영향이 미쳐졌다. 그러자 출근하던 사원들이 하나둘 빠지는등 조직원 이탈이 시작되었다. 주부사원들은 어찌보면 모래알과 같은 것. 동지와 같은 존재이기에 한번 분위기를 일으키는 과정은 어렵지만, 모래성이 허물어지듯이 분산이 되어지는 조짐이 보이면 그들은 삽시간에 이탈이 된다.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태풍이 불어 모든 농작물이 황폐화된 논밭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이 이와같았을 것이다.
정상의 자리에 섰던 그녀는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런 시기에 타사업자분들의 시기심도 발동이 되었다.
“아무래도 제품을 100% 소진보다는 가방 재고(물건을 팔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는 경우)로 쌓아둔 여파가 오는걸꺼야.”
그러다보니 다시 회복이 가능할까하는 우려의 시각도 있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을 바닥권의 매출에서 있어야 했다. 그러는동안 절망도 들었다. 자존심도 상했다. 잘나갈 때의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 벼랑 끝에 몰린 자신의 모습과 환경이 용납이 되질 않았다. 앞이 보이질 않았다. 그녀말대로 사업체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었다. 그럴 때 그녀를 지탱해 주었던 힘은 아무래도 자신의 프라이드, 자신의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적지않은 나이에 돈도 벌만큼 벌었기에 무엇하나 꺼릴 것 없었지만 떨어진 자존심 만큼은 회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 사무실 이전과 더불어 서서히 다시금 기지개를 펴고 있다. 식사를 하며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중 나는 이런 말을 건넸다.
“박세리 선수가 처음 LPGA에서 우승을 거두었을 당시 대한민국 모두가 난리가 났었죠. 한동안 박세리 키드라는 용어가 회자가 되었을 정도니까요. 그러다 기나긴 슬럼프가 찾아오자 사람들은 차가운 시선과 냉랭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박세리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죠. 이를 물고 오랫동안 절치부심하던 박세리 선수는 드디어 올해 다시금 1승을 거두는등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였죠. 사장님도 그러신 것 같습니다.”
나의 말을 묵묵히 듣고있던 그녀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이어갔다.
“이승호 차장님.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던 그시기 그때에 어떻게 내가 버텨 내었는지 모르겠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나의 의지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함께 동고동락 하였던 조직원들 힘이 컸었던 것 같아요.”
오늘 내가 00거래처를 방문한 목적은 교육에도 있었지만 그보다 이처럼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데에 있었다. 옛날의 영광 이후에 매출이 저조한 실적으로 떨어진 사유도 알고 싶었었고, 현재의 그녀의 처한 상황도 파악하고 싶었던 것이다. 궁금하던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사장님의 세일즈 경력에 비하면 현재의 조직원들중 기대에 못미치는 분들도 계셨을터인데 그런분들은 어떻게 관리를 해나가셨는지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었죠. 거기에다 내성격이 직설적이고 감정을 삭이지 못하는 탓에 얼마전까지 그런 사원들의 수준을 보면 용납도 되질 않았었고요. 그러던 것이 어느순간 그분들이 참 귀한 존재로 각인이 되더군요. 어찌보면 이분들로 인해 내가 돈을 벌고 있는데 잘해줘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본사에 제품 매입에 대한 입금을 못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에 카운슬러들이 작은 돈이지만 자신의 통장에서 현금을 찾아 저에게 건네주었을 때 저는 무척이나 가슴이 메였었죠. 찐한 감동을 느끼면서 이게 끈끈한 결속력이구나 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거죠.”
그다음부터 그녀는 한분 한분들이 그렇게 이쁘게 보일수가 없었단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음과 같은 뼈있는 말을 하였다.
“사람간의 관계라는 것이 모든게 상부상조 같아요. 서로 돕고 주고받는.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잖아요.”
갑자기 나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바로 엊그제 나의 자존심 관계로 사무실에서 직원과 언쟁을 벌였던 일이 있었는데 그장면이 갑자기 떠올려졌던 것이다. 상부상조라? 나는 과연 부하 직원에게 무엇을 평소에 해주었을까?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 말을 이어갔다.
“이런 직업군에 종사하다보니 모임이나 동창회에 나가면 친구들이 모두다 부러워하는걸 느껴요. 업무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나이에 나처럼 스커트에 높은 구두를 신는 이도 없지만 항상 당당해 보이고 건강해 보인다고 그래요. 실제로 오십살이 넘어가면 여자들은 하나둘 아픈 구석이 반드시 생겨나거든요. 그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그녀는 최근에 결혼을한 둘째 딸에게 자신의 사업을 권유 하였다고 한다. 남편보다 출퇴근이 자유로우며 가정생활을 병행할수 있고, 자신이 땀흘린만큼 보상을 받는 직업이라고. 아마도 그녀 자신이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이처럼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권유하였으리라.
자부심과 당당함을 다시금 회복한 그녀.
자연의 순리를 경험하며 농부의 이마에 패인 주름살처럼, 세상의 골을 거치며 한결 성숙해진 모습으로 다가온 그녀.
자신의 자존심과 옛날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금 시동을 거는 그녀.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녀 뒤로 어느새 굵은비가 그치고 맑아지기 시작하는 파란 하늘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