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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6일 02시 40분 등록

1

“옳은 수단(방편)이라 할지라도 바르지 못한 사람이 쓰면 그 수단은 옳지 못한 데로 쓰여진다.”                                                                                        '태을금화종지' 제2부 서양인을 위한 칼 융의 심리학적 해설 중에서 

(= 서양사람들은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기부금 자체가 옳은 것이 아니라 기부금을 내는 사람의 의도와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것은 더러운 돈이 되기도 하고 은혜로운 돈이 될 수도 있다. 루스벨트는 대공황에 대한 부자들의(가진 자) 책임을 묻고 그들의 과도한 축척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면서 기부금 제도를 만들어서 명분과 가치를 높여주었다. )

2

인간의 의식적인 사고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인간의식의 고향(무의식)에 접근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사고(생각)가 의식을 대표하는 수단이듯이 직관이라는 수단에 의해서 본질을 느낀다.  그래서 이 본질적인 수단 혹은 반응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3

결혼한 자는 배우자 이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결혼한 사람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의무나 책임이기 때문에 하는 아니다. 그리고 자연의 본성도 아니다. 다만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지키려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질서 혹은 사회가 만든 질서를 존중하고 유지하려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결혼은 약속이고 약속은 합의한 것이며 쌍방 간에 다 같이 지켜져야 한다.  나는 본능에 충실하는 것이나 아니면 의무나 책임 때문에 지키려는 것에도 동의한다 곧 두 생각 다 존중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옳은가가 아니라 그런 일이 생기는 불행이 닥치지 않게 자신의 약속과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 문제로 나는 여러 번 질문을 받고 시험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내가 만들어낸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고부간의 갈등이 있다.  아들은 힘들다. 어느 날 세 사람이 동행하다 어머니와 아내가 급류에 휘말려 죽게 된 상황이 되었다. 이 때 한 사람은 구할 여유가 있다. 누구를 구해야 하는가?

이것은 사랑과 윤리에 관한 문제다.

“어머니를 구합니다.”
상당히 많은 한국의 남자들이 대답한다. 여자들도 상당수가 동의한다.  
 그들은 대답한다. 어머니는 한 분 뿐이고 아내는 죽어도  다시 얻을 수 있으니까...
자신을 있게 한 부모에 대한 도리다. 라고...
그러면 다시 묻는다. 그럴 여자라면 왜 결혼했습니까?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군요?
그것이 윤리적인가요? 라고 묻는다. 대답이 궁색하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요즈음에는 잘 모르겠지다.   
내가 상담하던 그 당시에는 한국 사회에서는 좀 드물기는 하지만 아내를 구하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럼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버리고 아내를 구했다는 비난은 어떻게 하실거요 라고 물으면  ‘어머니는 살만큼 살았고  또 자식이 잘 살아야 어머니가 행복한 것이 아니냐?’라고 답변하였다.

내가 그들에게 제시하면서 생각이나 태도를 조정하기를 권했는데 그 것은 그렇다.
인문학적인 해답은
‘ 먼저 어머니를 구하고 나서 아내를 따라 빠져 죽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행동과학적인 해답은
‘ 그 상황에서 먼저 손에 닿는 사람을 구한다. 윤리나 사랑이란 것은 그 상황에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무의식속에 내재된 선택과 집중이 진행된다. ’
그리고 내가 내리고 있는 정답은
‘모른다. 그 때 가봐야 안다.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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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융의 책을 보셨으니까 융의 정신개념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의 생각도 지성은 정신이 아니며 곧 지성이 정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성은 일정집단의 규범과 가치를 대표하는 하나의 윤리체계이며 패러다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곧 옳은 것이 아니라 옳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반대편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이 차이를 수긍하지 않는다면 그 지성은 오만과 편견 그리고 맹목에 빠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동양적인 모든 가르침은 중용을 지향하고 치우침을 경고한다.
나는 ‘적절함’ 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 대처에 있어서의 통찰은 늘 임의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내리고 있는 결론은?
사랑은 변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든지, 덜 사랑하는 쪽으로 ...
그리고 그걸 알아야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그 사실하나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지만 ‘사랑’이라는 것 자체를 본적은 없다. 나는...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존중이고 보호이며 책임인 동시에 지식과 같다. 그것은
노력하여 배우는 기술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존중이 곧 사랑은 아니며 보호가 곧 사랑은 아니다, 책임과 지식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통합되어 하나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느낀다.
'아, 저사람이 저 사람을 사랑하는 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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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지인가 아니면 겉저리인가? 에 대한 답변이랄까...
최근 사람들이 융에 대해서 열심이니까...  그가 동양의 비교의 경전 '태을금화종지'를 해석하면서 쓴 글의 서론 중의 일부를 옮김니다.


서양인이 갖는 동양이해의 어려움

현실적으로 인간사의 모든 것은 그 사람 나름에 달려 있는 것이지 방법이 어떠한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 방법이란 다만 사람이 선택하는 길이며 방향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그 방식이야말로 그의 본질을 바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 경우에는 방법이란 단지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그럴듯하게 갖다붙인 뿌리도 없고 물끼도 없는 것이 돼 버리고, 자기 스스로를 감추는, 정당하지 아니한 목적에만 쓰여질 뿐이다. 그러한 방법은 자기자신을 속이는 수단이며 자기존재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냉혹한 법칙으로부터 도피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태도는 중국적인 사고의 대지에 뿌리내린 품성이나 성실성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거꾸로 스스로의 고유한 본질을 포기하는 것이며, 알지 못하는 불순한 신들에게 스스로의 몸을 파는 자기배신이며 또한 그것은 심리적 우월성을 훔치려는 비겁한 수단인 것이다.  
이 모두가 중국적인 ‘방편’이 뜻하는 바와는 가장 깊은 데에서 상반하는 태도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중국적인 통찰력은 완벽하고도 순수하며 진실이 넘쳐 흐르는 삶의 방식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가장 깊숙한 본능적 직관에 뿌리를 두면서 한결같이 그것과 밀착하며 성장해 온 저 태고의 중국의 문화적 생명으로부터 이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 서양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중략)

솔직히 바로 말해서 우리 서양인이 이 중국의 책이 지닌 초세속적인 성격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우며, 진실로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다만 저 동양의 현자들이 그들의 본성으로부터 오는 본능적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음으로 말미암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는 것과 또한 이같은 내관(內觀)을 할 수 있는 심적 태도로 인해서 저같이 세속으로부터 초연할 수 잇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혹시 우리들을 감각적인 것에 얽매이게 하는 저 야망이나 정열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킴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직관도 가능한 것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해방은 바로 본능적인 요구의 실제적인 충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서툴고 불안스러운 본능의 억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대지의 법칙을 따를 때에 비로소 심령을 향한 우리들의 눈은 눈뜸을 얻는 것이 아닌가? 중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수천 년 동안의 모든 중국인의 사고방식을 관통하고 있는 지혜의 글월인 <<易經>>을 신중히 연구한 사람들이라면 이와 같은 물음들을 가벼이 보아 넘기지 않을 것이다. (중략)

우리 서양의 기독교적 정신문화에 있어서의 인간정신과 그 정신이 갖는 정열은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에 가장 위대한 가치로 인정되어 왔으며, 그것은 추구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다. 다만 서양의 중세의 몰락으로부터 19세기를 거쳐오는 동안에 그 정신은 점차 지성으로 변질되어 갔으며, 드디어 이즈막에 와서는 지성주의의 지배에 참을 수 없게 된 나머지에 반작용이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반발의 움직임은 처음에는 지성을 정신과 혼동하여 지성의 잘못된 점을 정신의 탓으로 비난하는 잘못을 저질렀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지성이 정신의 상속자임을 감히 자처하고 나설 때에 지성은 심령에 상처를 입히게 되고 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성이란 정신의 상속자가 될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정신이란 지성뿐만이 아니라 감정도 포함하는 것으로서 지성보다 더 높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빛나고 초인적인 높이로 향하고자 하는 생명의 방향이며 원리인 것이다.


다만 정신에는 그것에 대항하는 여성적인 것, 어두운 것, 땅에 뿌리를 둔 원리가 있어서 그것이 긴 시간의 깊음 속으로 그리고 생리적(심리학적)인 연관의 근원 속으로 깊이 내려가려는 정동(情動)과 본능을 가지고 정신과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들은 의심할 것 없이, 순수하게 본능적인 직관에 지나지 않으나 사람의 심령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결코 배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중국은 바로 이러한 개념들을 필요로 했던 것이며 그것은 중국의 철학사가 보여주듯이, 심성의 중심적인 사실로부터 멀리 떠나서 하나의 심적인 기능만을 일면적으로 과장하거나 과대평가하는 일이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생명이 있는 것에 갖추어진 역설성(逆說性)과 이원대립성(二元對立性)을 인식하는 데 있어 실패한 것이 없었다. 서로 대립하는 것은 언제나 균형을 유지해 왔으며 이것이야말로 높은 문화의 징표인 것이다.  일면성이란 비록 충격적인 힘을 제공하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은 야만성의 표시인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즈음 감정을 찬양하고 직관을 찬미하며 지성에 항거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이것은 문화적인 전진의 징표라고 생각된다. 즉 그것은 폭군과 같이 힘을 휘두르는 지성의 좁은 한계를 넘어서서 의식이 확대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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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7.06 04:08:07 *.197.63.9
emoticon    1. 제목이 상큼하여 이건 또 뭔가하고 웃으며 들어옴.
2. 읽는 동안 재미짐과 진지함에 잠이 달아남. (게임의 열기에 후꾼 달아오름)
3. 오기 때가 묻은 야릇한 내공에 갸우둥하며 확인 할 길 없이 일단 무조건적 찬사를 보냄. ㅎ~  ^-^*     emoticonemoticon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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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7.06 09:21:50 *.131.127.50

묵은지는 맛이 깊고 여운있는 은은함이 있다.
겉저리는 신선하고 상큼한 자극적이다.

'안정'과 '욕망'이다.
부처는 " 밥그릇에 닿는 것은 숟가락이지만 밥맛을 아는 것은 혀다."라고 말했다.
어느 것이든  음미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때  존재한다.
몸은 그저 맛의 차이만 기억할 뿐이다.
사랑은 맛의 차이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가치와 태도의 차이다.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을 사랑한다.
비록 헛되고 헛되어 헛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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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똥 경
2010.07.06 11:20:32 *.145.204.123
써니온니 땜에 내가 몬살어  emoticon
여기 저기 불똥 흘리고 댕기게  만드네
사부님이 직접 갈챠줬어요  
따끈한 새로운 명칭으로다가
입력했고  편지로도 오늘점심 때 부칠라구요
되면 조을텐데... 별건아니지만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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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7.06 09:33:47 *.197.63.9
나도 겁나고 지독하고 허벌나게 사랑해. 고거이 항상 내 방식인 것이 탈이징.

그나저나 국제적인 께 정식 명칭이나 갈켜줘봐용. 한숙이 전화를 안 받네.

연구원 커뮤니티의 자, 갱수기 오늘까지 알아야 된다는뎅. 일도 급하지만 성질도 불인 것 같으니 불좀 꺼줘봐, 잠시 후 나가봐야 혀유. 그럼 부탁합네당. 충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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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2010.07.07 18:48:01 *.221.232.14
잘 모르겠습니다. 점점 더.. 다만, 숨쉴 뿐입니다. 마음 다해야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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