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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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20 - 희랍인에게 이 말을
그리이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957년 10월 26일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망했습니다. 74세 였습니다. 그리고 11월 5일 그의 고향 크레타로 유해가 옮겨져 그곳에 묻혔습니다. 죽어서야 돌아갈 수 있었던 고향이었습니다. 그리이스를 방문하는 수많은 여행객들은 크레타를 찾아 그의 묘소를 둘러봅니다. 나무 십자가와 묘비명은 우리도 책상 앞에 앉아서 생생하게 동영상으로 다 볼 수 있을 만큼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그는 1956년 가을에 영혼의 자서전이라고도 불리우는 “희랍인에게 이 말을” 이라는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의 영혼의 자서전을 때맞춰 끝내지 못했습니다. 아니 다른 때처럼 원고를 다시 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읽어봐, 레노츠카 , 내가 들을 수 있게 읽어 봐!”
보이는 것, 냄새, 감촉, 맛, 듣는 것, 지성 -- 나는 내 연장들을 거둔다. 밤이 되었고 하루의 일은 끝났다. 나는 두더지처럼 내 집으로, 땅으로 돌아간다. 지쳤거나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날이 저물었다........
레노츠카는 목이 메어 더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니코스가 죽음에 대해 애기를 하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답니다.
“당신은 왜 당장 죽을 사람처럼 글을 쓰나요?”
“내 행동으로 나를 판단하지 말고, 인간의 관점에서 나를 판단하지 말아요.”
투쟁자인 그가 언젠가 레노츠카에게 요구했습니다. “신의 관점에서-- 나의 행동의 뒤에 숨은 목적에 의해서 나를 판단해”
우리는 카잔차키스를 그렇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가 무엇을 했느냐, 또는 그가 한 행동이 가장 숭고한 가치를 지녔느냐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하기를 원했느냐, 또는 그가 원하던 행동이 그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들을 위해서 숭고한 가치를 지녔느냐를 판단해야 합니다.
적어도 레노츠카는 그 가치가 존재했다고 믿는답니다. 그의 곁에서 살아온 33년 동안에 그녀는 그가 저지른 나쁜 행동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순간이 단 한번도 없었다 합니다. 그는 정직했고, 꾸밈이 없었고, 결백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한없이 다정했고, 자기 자신에게만 가혹했습니다. 그가 고독에 빠져들었다고해도, 그것은 다만 그가 해야 할 일이 막중했고, 죽음이 가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컴컴한 곳에서 새까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는 가끔 레노츠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베르그송의 말대로 하고 싶어... 길 모퉁이에 나가 서서 손을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 거야. <적선하시오, 형제들이여! 한 사람이 나에게 15분씩만 나눠 주시오.> 아, 약간의 시간만, 내가 일을 마치기에 충분한 약간의 시간만을. 그런 다음에는 죽음의 신이 찾아와도 좋아.”
카잔차키스보다 20년 어렸던 그의 두 번째 아내는 엘레니( 카잔차키스는 그녀를 레노츠카라고 불렀습니다)는 평생 그의 영혼과 깊이 공감을 하던 동반자였습니다. 이 마지막 작품을 카잔차키스는 피로 쓴 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기억하려고 그의 기억력을 더듬었고, 허공에 그의 삶을 엮었으며 장군 앞의 병사와 같은 자세로 희랍인에게 이 말을 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희랍인들은 그와 같은 흙으로 빚어졌고, 과거나 현재의 어떤 투쟁자보다도 그를 잘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었답니다.
내가 20대였던 어느 날 내 친구가 <희랍인에게 이 말을>이라는 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면서...나는 그때 처음으로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동안 너무나 놀라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사람이 내 나이가 될때까지 배우고 익힌 것과 그의 경험세계가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책을 번역한 안정효는 이미 대학 2학년때 영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답니다. 그 후로도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과 <희랍인 조르바>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교훈이 너무 커서 나는 그만 이 책을 가져다준 친구를 스승처럼 모시고 지금까지도 책에 관한 것은 이 친구에게 물어보며 살고 있습니다. 스승같은 친구입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는 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영혼의 자서전"이라는 이름으로 고려원에서 다시 나왔고 책도 많이 두꺼워 졌지요. 그들이 얼마나 이 책과 친해졌는지는 잘 모릅니다. 아마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두꺼운 부피때문에 선뜻 읽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가 그의 고향땅의 사람들에게 죽음을 앞두고 피로 써내려간 글은 정말 신의 관점에서 보지 않더라도 이미 숭고한 마음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이번 여름에는 그의 전집을 쌓아놓고 희랍인의 영혼을 찾아 들어가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