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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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는 안전이 수직 방향으로 인식되었다. 사람들은 영구한 구원을 얻기 위해 하늘을 쳐다보았고, 전통과 공동체 관계 속에서 안전을 찾기 위해 자신들 아래 있는 조상 전래의 땅을 내려다 보았다.
(제러미 리프킨 ‘유러피언 드림’ 중에서)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 메테오라를 방문하여 예배당에 들어섰을 때 처음 한 일은?
대부분 천장을 바라봤을 것이다. 거기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정교회의 예배당 뿐만 아니라 중세에 지어진 성당들은 한결같이 방문객의 시선을 올려다보도록 유도한다. 메테오라 수도원 예배당에는 돔 형식의 천장 한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위치하고 그 아래에는 네 천사, 그 다음에는 열두 제자가 배치되어 있다. 하늘을 상징하는 돔은 신과 인간의 위계를 나타내기에 좋은 건축양식이다.
신과 인간의 위계 관계는 아폴로 신의 신탁지였던 델피의 고대 유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전은 산 입구 쪽에 위치하고 공연장과 경기장을 산 중턱에 건설해 놓았다. 인간의 동선보다는 신의 시선을 고려한 설계이다. 인간의 배려 덕분에 신은 하늘에서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향한 인간의 찬양을 좀더 편안히 즐겼을 것이다. 메테오라에서 아테네로 복귀하는 버스 안에서 몇 시간을 달려도 끝나지 않는 테살로니아 평원을 보았다. 거기에서는 신화에서처럼 신과 인간이 쫓고 쫓기는 그림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모험에서 살아 돌아온 연인이 산 넘고 바다를 건너 나에게 달려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한번쯤 원근법에 대한 욕망이 일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보이는 것과 보여야 할 것은 달라야 했나 보다.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자 원근법이 비로소 그림에 적용되었다. 원근법은 물리적 거리를 나타내는 표현방식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응시하는 시선을 신에게서 인간 자신에게로 전환한다는 암묵적 선언이었다. 세계의 주체로 나선 인간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신에서 자원으로 극적으로 변환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에 이어 데카르트와 뉴턴에 이르면서 인간은 자연을 혼란스럽고 임의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존재에서 질서 정연하고 계량이 가능한 수의 조합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자연에 대한 경외의 시선을 거두자 인간은 자연을 활용하여 수 만 년이 걸린 생활의 발전단계를 불과 수 백 년 만에 추월했다. 신과 인간의 축으로 구성된 수직의 세계는 인간을 앞서는 가치는 없으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수평의 세계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신이 축출된 자리는 메워지지 않고 물질이 자리를 틀었다. 메테오라의 수도원에서는 들릴듯 말듯한 종소리로 식사시간을 알려 스치는 상념이라도 유혹의 불구덩이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지만, 새로운 왕은 비교의 덫으로 이내 권좌를 쟁취했다. 그는 욕망의 그릇으로 가치를 저울질하며 자신을 닮은 복제품들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그가 패를 돌리는 한 인간도, 자연도 승자가 독식하는 winner-takes-all의 소모전을 피할 수 없다. 수직과 수평의 조화를 꿈꿔야 할 시점인 이유이다.
‘내 것’은 인간의 영역이다. ‘우리 것’은 신의 영역이다. 풍요를 진하게 맛 본 인간이 자신의 영역을 초월하여 내 것을 우리 것으로 나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희망은 밝지 않다. 정치학자 브라이언 터너는 ‘인간의 연약함과 취약성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연민이 인류를 단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보편적 감정’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까지는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히브리서의 저자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령의 땅 아크로폴리스(언덕 위의 도시)에 신전을 짓고 이상의 실현을 기도했다.
수평에 수직을 세울 때 먼저 해야 할 일은 일단 멍석을 까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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