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산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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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도라도
개구장애
혼자선 길의 주윌 봤어 황량한 사막 같은 여길
종일 걷다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지쳐 잠이 들곤하지
아무런 표정 없는 이들 말없이 나를 스쳐가고
남겨진 난 모래 속에 바다를 꿈꾸기도 해
수많은 언덕 사이에 갈 곳을 잃어버린 모습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 외로운 삶처럼 살아온 것 같아
가끔 내가 포기한 것들에 어설픈 잠을 뒤척이지
내가 떠나온 그 푸른 바다가 가장 빛나는 곳은 아닐까
모두가 내게 같은 말들 뒤돌아 보지 말고 가라
언덕너머 저편에는 빛나는 것이 있다고
수많은 언덕 사이에 갈 곳을 잃어버린 모습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 외로운 삶처럼 살아온 것 같아
가끔 내가 포기한 것들에 어설픈 잠을 뒤척이지
내가 떠나온 그 푸른 바다가 가장 빛나는 곳은 아닐까
내가 떠나온 그 푸른 바다가 가장 빛나는 곳은 아닐까
[노래 듣기]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sElvtXAdfXo
무작정 춘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던 낭만의 시절은 작별을 고했다. IMF 광풍이 가슴을 후비던 그 겨울에, 다시 기차를 타고 도착한 춘천은 더 이상 호반의 도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흡사 황량한 사막과 같았다. 낯섦과 막막함이 막 교차하던 순간 나는 마중을 나온 이와 간단히 악수를 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6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기억에도 흐릿한 지난 한 달처럼 힘겨웠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적막이 휘감았다. 눈 앞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과도 같은 사람들과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조우했다. 돌이켜보면 그 처음이 그나마 좋은 시절이었다. 그들은 지방 호족의 귄위로 나를 대했다. 나는 그렇게 덩그러니 내던져진 여분의 존재였다.
외지에서의 생활은 처음에는 여행 온 것처럼 설레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겨 점심시간에는 맛집을 찾아 다니고도 하고 나름 개척의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자 지겨움과 공허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유일한 낙은 퇴근 후에 비디오 테이프 몇 개를 빌리고 맥주 서너 캔을 사서 숙소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달래며 홀로 지쳐 잠이 드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 비좁은 모텔에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답답함이 목구멍에 깔딱깔딱 차오르고 현기증이 심해져 구토가 나오려고 했다. 나는 무작정 뛰쳐나갔다. 한참을 달리다 잠시 멈췄다. 눈 앞에 안개가 자욱한 호수가 보였다. 공지천이었다. 우두커니 서서 내려놓지 못하는 슬픔을 싱그러운 바람으로 조금 달랬다. 호수 주변에는 포장마차가 즐비했다. 나는 무심코 코 앞에 있는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의외로 포장마차 안은 아늑했다.
“어서옵쇼~”
반갑게 맞이한 주인은 노란 고무줄로 꽁지 머리를 묶은 40대 중, 후반의 아저씨였다. 소설가 이외수의 분신 같았다. 나는 소주 한 병과 닭발, 그리고 만 원짜리 산오징어 데침를 시켰다. 주인은 삼센치로 두툼하게 썬 생오이를 서비스로 함께 내왔다.
“아이구, 오늘은 희한하게 손님이 한 마리도 안 오네여.”
“……사장님, 저는 손님 아닌가요?”
“손님은 한 분이고, 한 마리는 아직 안 왔다는 말입니다. 요즘 저희 포장마차에 진상들이 하루에 꼭 한 마리씩은 옵니다. 아이구, 힘들어서 이제 더 이상 못해먹겠어요.”
“서취 어 필링스 커밍 오버 미…………아임 온 더 탑 오브 더월드…….”
마침 구닥다리 오디오에서 카펜터스의 ‘탑 오브 더 월드’가 흘러 나왔다. 나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술 한잔을 들이키며 무심하게 냅킨에 뜻 모를 글을 반사적으로 적었다.
“오늘따라 손님도 없는 데 제가 한잔 사겠습니다.”
주인은 의외로 넉살이 좋았다. 덥석 합석을 하더니 마치 십년지기 친구처럼 나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기가 전직 공무원이었는데 어찌어찌 하다가 잘렸는데 얼마 못 가 마누라한테도 잘렸단다. 절망하고 방황하다 이 곳까지 흘러왔는데, 공지천에 와서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단다. ‘그래, 내가 저 포장마차 한 번하고 죽어보자.’
주인의 음식 솜씨는 정말(?) 좋았다. 초저녁에 안주 하나 내오면 새벽까지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손이 얼씬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진짜 주인의 솜씨는 구수한 진국 같은 말빨과 아이 같은 맑은 눈,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타 연주였다. 그는 ‘엘도라도’라는 노래를 불렀다.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 외로운 삶처럼 살아온 것 같아…….
내가 떠나온 그 푸른 바다가 가장 빛나는 곳은 아닐까 “
나는 이내 주인장에게 반해 버렸다. 이때부터 나의 주무대는 그 곳이었다. 엘도라도(El dorado)는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변에 있다는 상상의 황금도시인데 그 때 그 포장마차는 나에게 엘도라도와 같은 성지였다. 춘천을 떠나기 전날 밤, 주인은 나에게 다시 엘도라도를 불러주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그 밤에 눈이 펑펑 내렸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그날 밤
담배 한 개비를 물다가 문득
외진 포장마차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택시를 타고 가서는
불 꺼진 공지천 저잣거리를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살다 보면 막막한 사막에서 헤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시지프스처럼 쓸모 없고 헛된 일을 반복하며 ‘하늘 없는 공간, 깊이 없는 시간’과 싸우고 있다. 과연 사막에서 버티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까? 사막을 건너는 방법은 없을까? 사막 너머 저편에는 빛나는 것이 있을까? 신기루를 좇는 건 아닐까? 그래, 어쩌면 내가 떠나온 그 푸른 바다가 빛나는 곳일 지 몰라.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되돌아보면 저마다 빛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곳에 있으면 힘이 솟는 성소 같은 공간도 있을 것이다. 희미한 기억을 꺼내 재생해보자. 혹은 미래에 이루고 싶은 멋진 장면을 지금 이룬 것처럼 살아보자. Magic if의 힘을 믿어보자. 그리하여 지루한 현실에 균열을 내자.
* 노래를 부른 가수는 서울대 치대 노래패 출신들이 만든 그룹인데 유의할 점은 개구장이가 아니라 입벌림 장애를 뜻하는 개구장애라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