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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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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3일 18시 59분 등록


"삶은 고통의 바다다." 일상에 찌들거나, 삶이 지칠 때 주로 떠올리는 말이다. 이와 더불어 "큰 벽이 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것 같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다." "내 어깨 위에 온 세상의 짐을 다 얹어 놓은 것만 같다." "사람은 원래 누구나 다 혼자다." 등등 온갖 어둡고 무거운 말들이 줄지어 떠오른다. 부정적 감정이 이런 말들을 이끈 것인지, 아니면 이런 말들이 부정적 감정을 이끈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러한 삶에 대한 부정적 은유가 부정적 감정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연결'은  비범함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견딤의 순간이나, 위기의 순간, 일시적 하강국면에 불쑥 나타나 삶을 어둡고 침울하게 만들어 놓고는 무책임하게 도망쳐 버리곤 한다. 부정적 감정은 그 출몰이 정해져 있지 않아 다루기 힘들지만, 부정적 은유의 경우 즐겨 찾는 습관적 언어의 영역에 속해있으므로 다루기가 한결 수월하다.

 

은유란 무엇일까? 은유는 개념을 설명하거나 전달하려 할 때 무언가 다른 것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 융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의식적인 마음과 무의식적인 마음 모두와 동시에 대화를 하기 위한 도구로서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시키는 상징을 이야기 하는 것이 바로 은유다. 여기서 상징은 정신에너지, 즉 무의식의 내용을 본래의 대상이 아니라 다른 대상으로 흐르게 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은유의 이러한 간접성은 만약 직접 다룬다면 강한 반발과 저항에 부딪힐 수 있는 부정적 감정과 양가감정 혹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은유는 변화를 원하는 마음의 부분과 변화를 원치 않는 또 다른 부분 사이의 안전한 다리 역할을 한다. 은유의 이런 특성은 아직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으로 하여금 변화의 욕구를 가진 무의식의 영역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예수, 부처, 공자 등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그들이 깨달은 심오한 지혜를 은유를 통해 쉽게 풀어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그들을 감화시켰다. 일례로 예수는 어부들에게 '사랑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가 이런 은유를 사용한 순간 어부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예수의 은유를 통해 어부들은 다른 사람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일 또한 고기를 잡는 일과 마찬가지로 차근차근 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는 설교를 할 때 누구든지 가슴속 깊이 새겨들을 수 있도록 간단한 이미지로 풀어 설명했다. 사실 예수는 위대한 이야기꾼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이 지닌 사랑의 힘과 구원이 약속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은유적으로 사용했다.

 

이처럼 은유는 기존의 틀을 깨고 다른 틀을 찾아내는 기능을 한다. 은유의 힘은 새롭게 정립된 틀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데에 있다. 은유는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 의미의 쇄신을 통해 세상을 다시 그려내고, 실재에 대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해 주는 이른바 '새로운 판을 짜게 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은유는 또한 감정의 영역과 이성의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 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일단 자신에게 적합한 은유가 제공되기만 하면, 우리의 내면세계는 모든 내적 자원을 동원하여 은유를 자신의 문제와 연결시키느라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 동원되는 내적 자원은 문제해결의 원동력이 된다.

 

이렇듯 은유를 통해 제공되는 내면의 에너지는 우리는 삶의 경험을 넓히고 풍성하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정적 은유로 인해 우리 삶은 긍정적 은유가 주는 딱 그 만큼의 강력한 위력을 반대로 체험한다. 이는 주로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기 전인 어린 시절에 부모를 비롯한 의미 있는 대상들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흘러 들어와 고착화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은유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새롭고 참신한 은유를 창출하여 삶에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습관처럼 베어있어 자각하지 못하는 부정적 은유를 찾아내어 새로운 은유로 대체하는 의식적인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의 경우 내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보편적인 은유를 '삶은 고통의 바다다.' 라고 나도 모르게 늘 되뇌고 있었다. 정말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을까? 삶에는 고통과 슬픔도 있지만,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할 때도 있다. 그러나 삶을 고통으로 가득 찬 바다로 표현하자마자 나의 내면은 그러한 은유에 걸 맞는 근거들을 자석처럼 끌어들여 온통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회사에서의 사람들과의 갈등 상황을 마치 '인생의 씻을 수 없는 영원한 실패'로 간주하고, 스스로를 '고립된 섬'으로 여겼다. 이로 인해 생긴 피해의식은 주변 동료들을 '어리석은 헤게모니 추종자'로 전락시켰으며, 결국 '사람은 누구나 다 혼자다'라는 외롭고 쓸쓸한 결론에 이르게 했다. 이런 은유들은 계속해서 가지를 뻗어나가 스스로를 '벼랑 끝에 선' 일촉즉발의 순간으로 내몰기도 했다. 또한 어려운 집안 형편과 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에 사로잡힐 때마다 '내 어깨 위에 온 세상의 짐을 다 얹어 놓은 것 같은' 중압감과 내 앞에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큰 벽'이 가로 막고 있는 것 같은 무기력함 속에 나를 가두어 두기도 했다. 이런 은유들은 에너지 블랙홀과 같아서 스스로를 엄청난 피로감에 시달리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부정적 은유들은 나도 모르게 찾아오며, 당연히 맞는 것으로 여겨져 나에게 작용한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 어떤 의식적 판단을 내리지도 못한 체 부정적 은유에 갇혀, 상황에 함몰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새로운 은유를 대체하기 전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부정적 은유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예컨대 '나에게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자유롭게 적어봄으로써 나도 모르게 은연중에 바라보는 삶에 대한 은유를 찾아볼 수 있고, 또한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히는 순간 잠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빠져 나와 '어깨 위에 가득 올려진 짐'과 '나를 가로막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의 정체를 확인해 볼 필요도 있다.

 

그 다음 '은유'라는 변화의 연금술을 발휘한다.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삶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일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말처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기쁨' 일수도 있다. 또한 '변화 무쌍한 모험'이 될 수도 있으며, '신이 주신 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단지 생각만으로도 삶이 파란 하늘처럼 청명해짐을 느낄 수 있다. '영원한 실패자' 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는 판을 키워 인생이라는 큰 물결을 만들어 '일시적인 가벼운 실수'로 생각을 일축해 버릴 수도 있다. 또한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면, 옆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땅굴을 파서 밑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며, 드릴로 벽을 뚫고 지나갈 수도 있다. 터무니없는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생각만으로도 위축된 어깨가 이완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나는 회사에서 '영원히 꼬여버린 것 같은 위기상황'에 처해 있는데, 그런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고 있다. '삶은 계절과 같다. 지금 나는 어느 한 해의 겨울을, 다른 해 겨울보다 유독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겨울은 없다. 겨울은 곧 지나간다. 겨울이 지나가고 나면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그 아래서 푸릇푸릇한 새싹들이 움트기 시작하는 봄이 찾아올 것이다. 아름다운 꽃이 여기저기 피어날 것이며, 가지의 잎사귀들은 짙은 녹음을 드리울 것이다. 더운 여름이 찾아오고, 뜨거운 뙤약볕과 비바람이라는 시련이 다시 찾아올 것이며, 그 시련 뒤에는 가을의 달콤한 열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 인생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순환할 것이며, 그 안에서 깨우침, 견딤, 넘어섬을 거듭하고, 삶의 모순과 역설을 더 많이 끌어 안으며 나는 더욱 더 성장할 것이다.'

 

이렇듯 은유는 고착된 의식적 영역에서 유연한 무의식적 영역으로 옮겨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더 늦지 않게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스페인의 유명한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는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은유의 강력한 힘에 대해 "은유는 아마도 사람이 지닌 가장 유용한 잠재력일 것이다. 그 효험은 마술의 경지에 가깝다. 은유는 신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깜빡 잊고 거두지 않으셨던 천지창조의 도구인 것 같다." 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삶에 대한 한 가지 은유를 바꿈으로써 전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또한 은유를 통해 우리는 삶의 경험을 넓히고 풍요롭게 해서 힘을 부여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은유가 결국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이렇듯 위대한 변화의 연금술인 은유를 그대는 오늘 얼마만큼 활용하고 있는가?

 

IP *.192.5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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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3 23:45:46 *.166.205.132
사유의 힘,
생각을 바꾸는 연금술의 힘을 보는 것 같구나.
이번 글은 뭔가 좀 다르게 느껴진다.
경인이 내면에 뭔가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있나?
뭔가 터질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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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14:59:49 *.124.233.1
한 번은 꼭 써보고 싶었던 주제였어요 형
용어의 정의 수준의 글이지만
변화를 이끄는 한 축인 '언어'에 대한
한 꼭지점이 되어주지 않을까요?
고마워요 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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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05:45:42 *.160.33.89
 평지에 머물지마라.
그러나 너무 높이 오르려 하지마라
세상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
그곳에 머물러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다면
언젠가  홀로 정상에 오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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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15:06:20 *.124.233.1
세상과 저
그 사이 어디쯤엔가 있을
가장 아름다운 곳을 찾겠습니다.
뒤에 있는 문장은 가슴 속 깊이 잘 간직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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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늑대
2011.07.04 07:36:18 *.69.251.200
너는 그것을 은유라는 모티프로 풀어갔구나.
나도 그것을 생각했었는데 그것의 시작을 회의(懷疑)라고 보았다.
회의의 끝을 물고 늘어지면 나를 찾을 수 있는 뿌리가 나오리라 생각했다.

아마도 은유라는 메타포는 융의 꿈의 해석처럼
그렇게 우리의 진실된 일면을 담고 있는 것이겠지?

그대가 말한 연금술처럼 삶의 비의를 잘 풀어가는 
열쇠가 그대 손에서 자유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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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15:08:33 *.124.233.1
은유라는 열쇠를 통해 스스로 먼저 변화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기반으로
도약을 꿈꾸는 소년의 마음을 지닌 사람들을 돕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형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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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11:11:35 *.45.10.22
깊어 깊어.. 점점 깊어지네 
난 경인이와 사유하는게 비슷해서 그런가 
관념적일 수 있는 네 글이 편하다 
그냥 그 은유가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좋은 글 잘 읽었네 그랴 
힘내고~!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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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15:10:26 *.124.233.1
아마도 누나 여기 모인 우리가
책읽기, 글쓰기 라는 '언어'를 중심으로
스스로의 혁명을 도모하기 때문에
이렇듯 서로에게 공감하는 건가봐요.
고마워요 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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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07.05 14:21:31 *.142.255.23
은유를 이런식으로 풀어갈 수도 있구나.. 은유의 정의에 대해서 알수 있는 글.. 감사합니다.

ㅋ^^ 경인오라버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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