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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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언니(외이모할머니)가 '황해도 만신'이다. 무당이라는 말이다. 물론 그분은 무당이기 이전에 품넓은 할머니시다. 보문동 작은 한옥집에 사시면서 언제나 가족들을 보듬어 주신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으면 모두들 찾아뵙고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나눈다. 일흔이 넘으신 고령에도 아직까지 크게 김장을 담가 나누어 주시기도 한다. 자세히는 말씀을 안하시지만 젊은 시절 피하려고 해도 몸이 아파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으셨다한다. 나에게는 그분과 관련한 강렬한 체험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때였다.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49제를 집에서 치르는데, 이모할머니가 굿판을 벌리셨다. 단독주택이었는데, 좁은 마루에 박수무당과 이모할머니가 몇 시간을 징을 치며 의식(?)을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사람들이 그 파장에 깊이 빠져들게 될 즈음, 이모할머니는 무명천을 몸으로 찢으시더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셨다.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영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말투와 몸짓이 변하면서 그동안 서운하셨던 것들,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것들을 풀어놓으신다. 깜짝놀랐다. 친할머니와 가장 맺힌게 많은 사람들은 바로 며느리들이었으리라. 며느리들은 돌아오신 시어머니 앞에서 맺힌 한을 풀고, 용서를 구하고, 부디 좋은데로 가시라고 기원을 한다. 다른 친척들도 한 마디씩 하고, 아들들도 맺힌 마음을 한마디 말로 툭 던졌 놓는다. "어르신, 용서하시고, 부디 좋은데로 가세요.", "동상, 미안하오", "얼마나 힘드셨소, 이제 다 내려놓고 가소." 내가 보기에 그 순간은 기적의 시간이었다. 죽은자와 산자 사이에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고, 남은 자들이 삶의 짐을 가볍게 하고, 다시 살 수 있는 힘을 주는 의식이었다. 친할머니의 영이 진짜 돌아오셨든 '거짓 쇼'든 중요치 않았다. 모두가 사실로 믿고 맺힌 마음을 풀었던 것이다. 친할머니는 모든 것을 풀고 가벼운 영혼이 되어 다시 돌아가셨다. 생각해보면 무당은 요즘으로치면 '심리치료사','정신과 의사'의 역할을 했던것 같다.
그런 무당들이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미신타파'라는 명목하에 없어져야할 구습으로 취급 받았다. 급속히 세속화 된 사회분위기가 그 배경이었고, 근대화와 함께 성장한 기독교도 큰 역할을 했다. 고등(?)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제사, 무당, 샤먼'은 저급한 우상숭배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겐 '우상타파'가 우리네 삶의 기반마저 무너뜨린 것 같이 느껴진다. 이제 굿과 샤먼의 정신은 전통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일부러 지켜야 할 것이 되었다. 결국 우린 몇 천년을 함께해 온 무당들의 '용서와 화해의 몸짓'을 잃어버리고 그 역할을 위해 또 다른 전문가들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히도 사라져가는 우리 땅 무당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긴 사람이 있다. 故 사진가 김수남(1949~2006)이다. 그는 "우리 것을 지키자는 반항심 비슷한 것에다가, 언젠가는 굿이 다 없어질 것 같으니 내가 다 기록으로 남기자는 욕심으로 카메라를 들고 전국의 굿판을 찾아 다녔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한국의 굿>(열화당, 1983~1993)이란 스무권의 책으로 남겨졌다. 그의 책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100권의 저서'에 선정되었다. 사라지는 우리의 문화가 사진으로나마 원형이 보존되어 남았다는 안도감이 든다. 다 사진가 김수남 덕분이리라. 그는 사진의 가장 큰 강점을 '기록성'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사진은 그것을 '찍은 사진가보다는 보여지는 대상에 주목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사진기를 붙잡고 있었다. 2006년 태국의 라수족의 신년맞이 축제를 찍다가 뇌출혈로 돌아가신 것이다.
이제 이런 문화를 사라지게 한 원인 중 하나는 '종교적 배타성' 이다. <신>의 저자 김용규는 기독교의 배타성에 대해 '잘못된 해석에 의한 오해'라고 말한다. 기독교의 '신은 유일하다'는 것이 포괄성을 의미하지 배타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더 나아가 "신의 유일성을 왜곡해서 해석하고 그것을 빌미로 이교도들에 대한 배척과 분쟁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은 사실상 그들이 믿는 경전을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이데올로기의 추종자일 뿐"(798쪽)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에서 고백되는 신이 기독교만의 신으로 남는다면, 그 신은 유일하지 않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신이라면 기독교 안에만 있을리 없다. 따라서 '유일한 신'은 모든 것을 포괄한다. '유일한 신'은 무당, 샤먼, 굿 등 그 모든 것을 배척하지 않는다.
우린 큰 이야기를 주장하면서 작은 이야기들을 없애 버렸다. 그러다 아예 큰 이야기조차 잃어 버렸다. 이제 다시 사람들은 작은 이야기들을 한다. '일상, 개인, 세속적인 것, 상대적인 것, 다양한 것들의 가치'를 말한다. 하지만 이미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 사진가 김수남처럼 그것을 소중하게 여겨 남긴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린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김용규 선생님이 제안하시듯이) 잃어버린 것들을 포함해 작은 이야기들을 포괄하는 큰 이야기를 다시 찾을 것이다. 그때에는 예전처럼 큰 것에 가려 작은 것들을 없애 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일한 신'이 배타적이지 않고 모든 것을 포괄하듯이 말이다. 나또한 일상의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진으로 남기되, 보편적인 가치를 사유함으로써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작가가 될 것을 다짐한다.
<한국의 굿, 사진/김수남>

"세상의 모든 굿"을 그를 위해 여러날동안 베풀었어요. 그때 그자리에 함께 있었거든요.
김샘의 혼이 대학 동창이었던 아내에게
"여보 미안해, 평생 당신에게 집안일 다 맡기고 내가 하고싶은 일만 하고 다녀서....."
그의 아내는 그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했던 분이더군요.
"괜찮아요, 다 이해해요...먼저가서 편히 쉬고 있어요..."
난 김수남 선생의 "변하지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는 책을 사랑해요.
모든 변화속에 변화하지 않는 본질에 대한 직관이 따라주어야 할터인데...
그 사람은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침에 꽂히는 글을 읽고나니...오늘하루는 내게도 좋은 날이 될 것 같군요.
감사해요....
그런데 칼럼 제목을 다르게 한번 생각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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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신은 유일하다'는 것이 포괄성을 의미하지 배타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더 나아가 "신의 유일성을 왜곡해서 해석하고 그것을 빌미로 이교도들에 대한 배척과 분쟁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은 사실상 그들이 믿는 경전을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이데올로기의 추종자일 뿐"(798쪽)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에서 고백되는 신이 기독교만의 신으로 남는다면, 그 신은 유일하지 않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신이라면 기독교 안에만 있을리 없다. 따라서 '유일한 신'은 모든 것을 포괄한다. '유일한 신'은 무당, 샤먼, 굿 등 그 모든 것을 배척하지 않는다.
위의 말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제가 알고있는 이야기 하나 할까합니다.
천주교가 먼저 이나라에 들어올때였다고합니다.
서양신부님 목사님께서 이땅에 들어오셔서 마을에 전도를 하러 다니는 중에 무당의영향력에 놀라서 저 무당을 굴복시키지않으면 안되겠다싶어서 무당에게 가서 자신이 믿는 신이 얼마나 좋은신인가를 손짖발짖을 다해서 예수님을 설명하고 기독교를 설명을했답니다. 그때 그 용한 무당이 뭐라했냐면....
"그래요 그 훌륭한 분이라면 당장모셔야지 내 사당에 제가 모셔야지요?" 우리의 신앙은 이정도의 포용력을 가지고있었지만 지그들은 그 큰 신앙을 터부시하고 미신시해서 정복해버렸지요? 우리는 우리 의 혼을 팔아서 개독교가 되었구요?
신은 하나입니다. 그신은 사람이 서로돕고 사랑하며 살라고했지 지그들의 고집을 위해 정당성을 위해 싸우고 다투라고하지않았거늘 이들 서양것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신도 팔고 정의도 바꾸는 못난이들이지요?
먹티먹이고 날아가는 외국계자본력의 변명을 봐요? 뒷거래하는 무기 거래... 지그들은 핵무기가 정당하고 남들은 아니된다고하며 때리고 부수고 경제적봉쇄를 해서 북한인민들이 굶어죽고 힘들게하지요? 그래도 서양의 탈을 써고있는 관료들과 그것에 눈먼 정신나간 못난이들 소수권력자들 그편을 들지요? fta는 옳치요? 서양의 사고로 본다면... 그래요 그들의 철학 종교 정의가 옳다면 그들이 다녀간곳에는 왜 쓰래기같은 악취만 남을까요? 진장 아프리카를 봐요? 기독교 서양의 우월한 가치관을 가진 분들이 지나가고나서 뭐가 남았나요?
남미는 어떤가요? 캐돌릭이 가서 한 문화적우월주의를 가지고 뭐 소수 몇명이서 수십만명과 싸운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전쟁사에 올려놓아요? 어린이 그것도 눈먼 어린이와 레슬링선수가 일본도들고 전쟁했다고하는 것이 그들의 정의인가요? 문화적 우월주의가 낳고간 남미는 발전했나요?
중미는 더심한 짖을 했지요? 인디언의 우수한 문명의 자리에 그대들이 미합중국을 세우고 위대한 제국을 만들고 세계졍의를 내세우고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 정의가 미제국주의의의 이익에만 부합하고 인디언에게 부합했나요? 보호구역에 가두고 먹을것을 주는 동물원을 만들지않았나요?
그 좋은 정의와 철학을 가지고 일본을 대한미국을 북한을 어찌했나요?
정의는 누구나 함께 이익을 골고루 나누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의는 강자는 이익을 조금가지고 약자는 많은이익을 가져가는 것이 정의입니다.
평등도 같아요? 평등하건것은 조건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인권이있는 것이 아니라 약하고 소외된자들이 많은 권리를 가져가는 것이 평등입니다. 기사도.... 사무라이정신.... 필요할때만 발동하는 그런 못난 정신이아니라 양심에거리낌없는 하늘과 땅이 봐도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그런 것이 정의고 평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