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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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 놓았다. 담당하고 있는 제품의 시장점유율을 높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영업 이사의 반응이 열렬하지 않아 실망했다거나 회사에 올인하느니 자기 계발에 시간을 들이는 것이 남는 장사일 것 같은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그녀의 수많은 욕망과 체념, 그리고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길을 잃은 듯 보였다. 부지런히 앞으로 발을 내딛고 있지만 그녀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방향보다는 속도에 몰입된 그녀의 삶은 다이어트용 닭 가슴살처럼 퍽퍽하기만 하다.
그녀의 모습에서 내가 보인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앞서가려면 쉬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첫 직장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남만큼 해서는 남보다 잘 할 수 없다’ 그 말이 구토가 나오도록 싫었는데 내 유전자 어딘가에는 각인되어 있었나 보다. 살면서 나는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해야 할 일은 항상 노트 한 페이지를 빽빽이 채우고도 남았다. 나는 성장하고 발전하지 않으면 삶의 의미가 없다는 강박이 있었다. 주둥이가 좁은 자루에 손을 넣어 바나나를 잔뜩 움켜지고 손이 빠지지 않는다 불평하는 원숭이 한 마리, 그게 꼭 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사냥꾼에게 잡히기 전에 손에 있는 것을 놓아버릴 줄 알았다.
전환관리 전문가 윌리엄 브리지스는 그의 책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에서 ‘놓아버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변화와 전환을 구분한다. 변화는 상황이 바뀌는 것이고 전환은 그 바뀜을 받아들여 발전적인 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전환은 종결, 중간지대, 새로운 변화라는 단계를 거친다. 종결의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오래된 견해, 진실, 태도와 가치, 자아상 등을 잃거나 놓아버리게 된다. 중간 지대는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사이에 존재하는데 우리의 삶이 산산조각이 나거나 가망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마지막인 새로운 변화 단계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견해와 현실을 파악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전환의 과정에서 놓아 버릴 것이 무엇이며 언제가 그때인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은 그가 말하는 전환과 내가 겪은 전환에 대해서 연결해 생각해보았다.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오래된 일상에서 만족을
얻거나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게 된다. 이런 깨달음으로 인해 오래된 삶과의 감정적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첫 번째 전환을 통과 중이다. 전환의 시기, 오랫동안 내가 신봉했던 의미와 가치들이 무너져 내렸고 나는 새로운 삶을 찾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꼈다.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성공은 내 인생 전반기에는 나의 신앙이었다. 그러나 전환기의 나는 더 이상 금전이나 지위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예전의 종교에 의지에 얼마간 버텨보긴 했지만 익숙한 삶과의 결별이 필요한 시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변화는 그만의 이유로 일어난다. 하지만 변화로 인해 중대한 전환이 일어나는 것은 새로운 방향 제시나 개발 때문이다.
새로운 방향이 필요했다. 어느 순간 나는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 와 있었다. 나는 이미 안전한 곳에서 배고프지 않게 살고 있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존중 받고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이젠 나를 위해 살고 싶었다. 내가 행복한 삶을 일구고 싶었다. 우선은 쉼이 절실했다. 모든 걸 내려 놓고 주변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방향을 다시 가늠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모든 걸 바쳐 충성했던 직장이란 놈을 놓아버렸다.
어떤 이들은 놓아버리는 것이 결코 패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한다. 사실 그것은 전체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며 그들의 삶을 보상받는 일이 될 것이다.
직장을 그만둘 때 사람들이 나에게 말했다. “그 동안 이루어 놓은 것들이 아깝지 않아? 조금 더 버텨보지 그래. 다시 그만한 직장 잡을 수 있겠어?” 그들은 멈춤이 퇴보라고 생각했다. 하긴 모든 사람이 전진하고 있을 때 멈추어 있는 사람은 뒤쳐질 수 밖에 없으니까. 한 번 멈추면 다시 달리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 사람들은 숨이 턱까지 차도 멈추지 않았다. 오랫동안 힘들게 뛰고 있는 것을 저마다 자랑스러워했다. 나 또한 14년 동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아 기르며 한 번도 쉬지 않은 내 자신에 대해서 대견해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멈추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은 퇴보가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진이라는 것을.
전환은 항상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가진 만큼 놓아버리게
한다.
가진 만큼만 놓아 버릴 수 있다. 직장을 나오자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졌다. 경제력을 상실하자 가정 내 파워 게이지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사회적 지위도 사라졌다. 자랑스럽게 칸을 채웠던 직장명과 직위란에 이제는 전업주부라고 써야 했다. 회사에서 제공하던 각종 복지 및 편의제도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었다. 명절에 선물 하나 오지 않았고 직원가로 저렴하게 이용하던 호텔 팩키지도 주판알을 굴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가진 만큼 놓아버리고 나니 그 빈자리에 다른 것을 채울 수 있었다.
전환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인생에서 놓아버려야 할 시기가 언제인가?’하는 의문을 갖는 것이다.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후배들이 종종 상담전화를 해온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데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들이 아깝고 다시 이런 직장을 잡을 수 있을까 불안하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놓아버리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문은 어디서든 열린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 또한 의미
있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에서 놓아버려야 할 시기는 언제인가? 근래
들어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은가? 오랫동안 신봉했던 가치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사나 싶은가? 문득문득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가? 앞의 질문들에 ‘그렇다’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전환의 시기에 와 있다. 그리고 가진 것들을
놓아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 들여야 할 시기다. 바로 지금이 놓아버림의 미학을 고민해 볼 때다.

변했다고 생각했지, 새로운 환경에 처해 있었느니까.
헌데 자꾸 뭔가 구리는 것이 느껴져.
나는 정말로 놓았는가? 나를 지배했던 무엇인가를 진짜로 버렸는가?
나는 정말로 변했는가? 몸만 다른데 와있지.. 생각과 마음은 아직도 예전에 그곳에 있는가?
지속가능한 자유를 꿈꾸면서도
나는 아직도 <직장인>이라는 카드를 마음 속 한켠에 금박지로 똘똘싸서 두고 있다.
아차하면 펼칠 수 있는 무엇인것처럼
그러니 마지막도 어설프고, 시작도 어정쩡하지...
엉거주춤....어디 화장지 없어??? 하는 그런 자세!!
확!!!!!!!!!! 그냥 옷 입어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