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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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나 풀들의 모양에는 어떤 규칙성이 있습니다.
어떤 풀은 잎사귀가 꼭 5개씩 붙어 있고,
어떤 것은 꽃잎이 꼭 8개,
어떤 것은 4개,
자라면서 아래쪽 모양이 위쪽에서 반복됩니다.
그렇지만 위쪽에 새로 생긴 것이 아래쪽과 똑같지는 않습니다.
그것들을 찬찬히 보다가,
같은 모양을 찾아서 자꾸 눈을 옮기다가는
왜 이렇게 같은 모양으로 자꾸 만들어 낼까, 그런데 왜 꼭 같지는 않을까,
왜 꽃 모양은 아래의 잎사귀와 다를까?
왜 꽃 색깔은 전체 잎사귀 색깔이, 초록이 아닐까, 저 초록 몸뚱이 어디에서 빨간색(흰색)을 뽑아 왔을까?
뭐 그런걸 궁금해 하며 쳐다보았던 것 같습니다.
수많은 것들이 계속 이어지는 속에서 질서라는 것과 조금씩의 변형을 보면서 ....
뭔가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혹은 조금씩 달라지는 것들 속에 뭐가 있을지를.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 중에는 같은 것을 계속 반복해 두었을 때
멋있어 보이는 게 많습니다.
아마도 저는 이런 반복되는 규칙이 있는 그렇지만 꼭 같지만은 않은 문양들에 반했었나 봅니다.
중동쪽의 사원에는 벽에 장식이 같은 무늬가 끝도없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무늬의 무한한 반복이 신의 끝없는 영원한 사랑, 은총을 상징한다고 하더군요.
하나의 개체 안에서의 반복,
그리고 어떤 한 개체가 자신과 같은 것을 다음에 반복하고 반복하여 이어나가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을 채우고 있는 생명들의 속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닮은 꼴들 안에는 신의 은총, 우주의 원리가 계속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구요.
(885*300사진과 작은사이즈 사진을 동시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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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정화야, 새 해 복 많이 짓자!
반복되는 패턴이 주는 영감을 놓치거나 눟치며 살고 있던 나를 깨우는 것은
신의 조형만이 아니었어. 그 신이 창조의 생기를 불어넣은 인간이 만드는 세계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그림을 너와 나누고 싶다.
인본주의를 지나치게 경멸하던 사람들에게 그 인간안에 신의 숨결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
그것이 내 영혼을 따뜻하게 하고 오늘 내 하루를 긍정하게 하더라.
음, 어제 시멘트 벽돌을 주제로 한 연작 그림을 보았어. 비록 인터넷상이지만.
반복되는 패턴이 만드는 안정감,
그 위로 질서를 흐트려뜨리는
그러나 무언가 식상하지 않은 재미를 주는.
그래서 또 다른 리듬과 흐름을 만들어 내는.
그 연작을 보고나서는 동네 공사장의 인부들이 아무렇게 부려놓고
간 벽돌이 감동적이더라.
또 가지런히 각을 세워 무심한 시멘트바닥 위에
내일 작업을 위해 쌓아 두고 간 벽돌들도.
그리고 니트를 곱게 그린 그림을 보았지.
박재영의 <올 그려가기> 2006 캔버스에 유채 90.5x117cm (diptych)
<하하 미술관>에서야.
미래인 김홍기 지음 2009.1.20 1쇄 발행
"스웨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신기합니다. 실의 고리를 만들고 이 고리에 실을 건 후
새 고리를 만드는 걸 계속해서 반복하지요. 14세기경 북유럽 항구 지역 여인들의 손에서 짜이기
시작한 이 니트는 원래 물고기를 잡는 어망의 형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방한용 니트 스웨터는 특히 추운 겨울의 칼바람을 막고 습한 기운에서 인체를 보호해 주는 기능을
했기에, 많은 여성들이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나 애인을 위해 부적을 그리듯 한 땀 한 땀 손으로
스웨터를 짰다고 합니다. 여인의 따스한 사랑이 담겨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스웨터를 짜기 위해
실 한 올 한 올의 고리를 서로 엮어야 하듯, 인간과 인간의 고리가 엮어져 촘촘한 관계의 망을
만드는 원리가 들어 있음을 배웁니다. 박재영의 '올 그려가기' 연작은 그런 의미에서 제게 볼 때마다 힘을 줍니다." 29쪽
반복되는 패턴이 주는 영감을 놓치거나 눟치며 살고 있던 나를 깨우는 것은
신의 조형만이 아니었어. 그 신이 창조의 생기를 불어넣은 인간이 만드는 세계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그림을 너와 나누고 싶다.
인본주의를 지나치게 경멸하던 사람들에게 그 인간안에 신의 숨결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
그것이 내 영혼을 따뜻하게 하고 오늘 내 하루를 긍정하게 하더라.
음, 어제 시멘트 벽돌을 주제로 한 연작 그림을 보았어. 비록 인터넷상이지만.
반복되는 패턴이 만드는 안정감,
그 위로 질서를 흐트려뜨리는
그러나 무언가 식상하지 않은 재미를 주는.
그래서 또 다른 리듬과 흐름을 만들어 내는.
그 연작을 보고나서는 동네 공사장의 인부들이 아무렇게 부려놓고
간 벽돌이 감동적이더라.
또 가지런히 각을 세워 무심한 시멘트바닥 위에
내일 작업을 위해 쌓아 두고 간 벽돌들도.
그리고 니트를 곱게 그린 그림을 보았지.
박재영의 <올 그려가기> 2006 캔버스에 유채 90.5x117cm (diptych)
<하하 미술관>에서야.
미래인 김홍기 지음 2009.1.20 1쇄 발행
"스웨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신기합니다. 실의 고리를 만들고 이 고리에 실을 건 후
새 고리를 만드는 걸 계속해서 반복하지요. 14세기경 북유럽 항구 지역 여인들의 손에서 짜이기
시작한 이 니트는 원래 물고기를 잡는 어망의 형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방한용 니트 스웨터는 특히 추운 겨울의 칼바람을 막고 습한 기운에서 인체를 보호해 주는 기능을
했기에, 많은 여성들이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나 애인을 위해 부적을 그리듯 한 땀 한 땀 손으로
스웨터를 짰다고 합니다. 여인의 따스한 사랑이 담겨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스웨터를 짜기 위해
실 한 올 한 올의 고리를 서로 엮어야 하듯, 인간과 인간의 고리가 엮어져 촘촘한 관계의 망을
만드는 원리가 들어 있음을 배웁니다. 박재영의 '올 그려가기' 연작은 그런 의미에서 제게 볼 때마다 힘을 줍니다."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