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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8일 05시 01분 등록
저자에 대해서

인디언 관심에 대한 시작

일생동안 계속된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캠벨의 관심은 여섯 살 때 부친에게 이끌려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버팔로 빌의 와이드 웨스트 쇼를 보았을때부터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버팔로 빌이 분장한 위풍당당한 연방기병대장을 동경했지만,캠벨은 오히려 토벌되는 인디언에 대해서 강한 흥미를 품었다. 그때부터 그는 뉴욕자연사 박물관을 통해서 인디언 문화나 제의를 공부하고 인디언에 대한 책을 방대하게 읽었다.

캠벨의 걸어 온 길

캠벨은 1921년에 명문 다트리머 칼리지에 진학하여 생물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는 메디치가에 관한 책을 읽고 인문학에 흥미를 품게 되어,1922년에 콜롬비아 대학으로 편입했다.그는 그곳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배우는 한편,육상선수로서 활약했다.특히 0.5마일 레이스에서는 콜롬비아 대학뿐만아니라 뉴욕시의 기록을 깼는데 그것은 당시의 세계기록에 불과0.5초 뒤진것이였다.또 재즈 밴드에도 들어가서 색스폰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후 대학원에 진학한 캠벨은 아서 왕 전설을 연구하여 문학석사학위를 받았다.그는 학위논문으로 특별 장학금을 받아 1927년부터 파리대학9소르본대학)에 2년간 유학하는 기회를 얻었다.파리 대학에서는 아서왕 전설의 권위자 밑에서 로망스어,중세프랑스어,프로방스어,라틴어 등을 전공하는 한편,제임스 조이스의 <유리시스(Ulysses)>와 같은 새로운 문학이나 피카소,브라크등의 그림에도 깊은 흥미를 품게되었다.그러나 파리에서의 유학은 1년으로끝내고,1928년에는 뮌헨 대학으로가서,산스크리스트와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들을 공부하고 그곳에서 괴테와 토마스만의 문학과 프로이트와 융의 사상을 섭취했다

켐벨은 뮌헨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작정이었지만, 경제 사정 때문에 1년 뒤에 귀국했다.미국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덨던 것은 주가의 대폭락과 뒤이은 대공황이었다. 캠벨은 이력서를 수십 통이나 썼지만, 그를 불러주는 직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자 그는 은자와 같은 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고 조각가 지망생인 누이 앨리스와 우드스톡의 숲속에 있는 값싼 작은 집을 빌려 극빈 속에서 독서에 몰두했다.

캠벨의 독서량

조셉 캠벨의 독서량은 가히 전설적이다. 그는 월스트리트 주가폭락 사태가 일어나기 바로 몇 주 전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왔으며, 5년간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그렇지만 조셉캠벨에게는 그때가 가장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한 번도 가난하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그저 돈이 없었을 뿐이죠.” 그가 누린 천복은 공짜나 다름없는 하숙집에 들어앉아 날마다 하루종일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과의 인연

그는 1924년에 처음으로 유럽을 여행하게 되엇는데,선상에서 인도의 저명한 종교지도자 지두 크리스나무르티를 만나 힌두교와 불교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우드스톡에서 살기 전에는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때 존 스타인벡 부부를 알게 되었는데 스타인벡 부인에게 "순수하게 플라토닉한" 애정을 품기도 했다.

캠벨은 1940년 콜롬비아 대학의 인도 연구 교수였던 하인리히 침머와 알게 되어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1942년에 침머의 소개로 융 학파가 주관하는 종교, 신화, 정신분석학 논문집인 [불링겐 시리즈]의 편집자가 되기도 했다.

캠벨의 종교

그의 가족은 아일랜드계 카톨릭 신자였다. 캠벨이 열다섯 살에 입학해서 3년 뒤에 우등으로 졸업한 코네티컷 주의 캔터베리 프레프 스쿨도 로마 카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였다.

지두 크리스나무르티를 만나 힌두교와 불교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뮌헨 시절에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영향으로 불교에 대한 관심이한층더 깊어졌다. 그 무렵부터 캠벨은 카톨릭 교회로부터 완전히 멀어졌으며 귀국 후에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공언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미국 사회이지만, 아일랜드계 카톨릭 신자가 "나는 이미 기독교도가 아니다"라고 성직자에게 고해하는 것은 배교로 간주되었고 친척이나 사회에 대한 오만불손한 도전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컸다. 따라서 그의 행동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캠벨은 기독교가 설교하는 자연정복 사상과 배타성(선민사상이나 교파간의 교의 대립 등) 그리고 어쩌면 그 이상으로 신화적인 상징을 사실처럼 다루는 것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품었고, 그것에 대신되어야 할 것을 인디언 신화나 불교 사상에서 발견했다. 그는 "토마 복음서"에 큰 공감을 느껴 단테 등 많은 마음의 여행자를 찬양하고 일부 카톨릭 수도사들의 생활방식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년에 이르러서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불교에서 그의 이상에 가장 가까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만년에는 자택 서재에 달마대사 초상을 걸어두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불교신자가 되었던 것은 아니며 일상생활에서 명상을 통하여 내면을 향한 끝없는 여행을 계속했다. 그는 설사 자신의 신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신은 나의 신이 아니다. 따라서 내게 그것을 강요하지 말라."

영웅과 리더

영웅의 여정이 현대의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또는 빌 모이어스가 조셉캠벨에서 물었듯이 영웅이 리더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조셉 캠벨은 ‘리더’란 되거나 얻을 수 있는 것을 알아내며 회사나 국가를 능숙하게 조직하는 반면, ‘영웅’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따라서 개혁에 초점을 맞추는 오늘날의 비즈니스 사회에서 개인의 영웅적 여정은 확실이 중요하다.

다른 신화학자들과의 차이점

그의 순수한 학문적 성과의 이면에서 인류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현재와 미래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 자신과 함께 성장해온 신화의 상상력과 초월적 힘을 잃은 비문화적 인류 문명에 대한 경고이다. 또한 좁게는 자기 민족의 신화체계와 자기 문명권의 종교만을 주장함으로써 다른 민족과 문명권의 그것들을 파괴하고 배척하는 비도덕적 인류 역사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비판은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향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경고는 그의 엄격하고 철저한 연구 성과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이성적, 과학적 언어로써 반과학적인 종교적 교의를 거부하고 신화를 객관적인 사실과 혼동하는 것을 거부한다. 신화는 인류의 삶의 뿌리이며, 그 뿌리에서 자란 것이 인류의 역사이기 때문에 신화와 그 체계를 정당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언어가 철저하게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고 역사적 상상력을 넘어서는 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언어는 과학의 언어일뿐만 아니라 영혼의 언어이기도 하다.

알렉산더 엘리옷이 쓴 <Universal Myths>라는 책에 실린 조셉 캠벨의 서문.

세계의 신화(Myths from West to East)

죠셉 캠벨(Joseph Campbell)

번역: 최은석(mythos)

순전히 "옛날옛날에"를 즐기기 위해서 오래된 이야기들을 거듭 말한다는 것은 적어도 현대 서구에서만큼은 잘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눈 앞에 있는 이 모음집처럼 그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다채다양한 표본으로 제시될 때, 그때 우리는 다시금 매혹되어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간 사정이 어쨌든간에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저 네버네버랜드(Never-Never-Land)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독서란 이스탄불이나 옛 델리의 장터를 찾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저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나중에야 숱한 가게들 중 한 군데에 발을 들여놓고는 예전에는 몰랐던 상감(象嵌)무늬에 박힌 보석, 듣도보도 못한 신들의 희한한 모습들, 입을 딱 벌리게 하는 황금 비단 뭉치들이 향냄새 속에 잠겨 있음에 매료될 것이다. 가게 주인은 우리에게 그 상품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말하기 시작할 터이고, 그러면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방식 중 어떤 것들이 보석 무늬나 황금 비단 속 형상들, 그리고 신들의 자세를 통해 전해져 올 것이다.

<중략>

그런 매력은 우리의 생활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아마도 우리가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우리 속의 어떤 부분에 호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어떤 부분이란 곧 환상과 꿈으로, 이는 우리를 이상(異像:vision)으로, 다시 이상(異像)에서 계시로 이끈다. 이 계시는 우주에 대한 것까지는 못 될 수 있지만, 적어도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일 수는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그리고 지구의 구석진 데에서까지도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현대 원시사회 도처에서 사람들은 부처나 모세, 조로아스터, 예수, 모하메드 같은 위대한 교사들의 이상(異像) 속에서, 혹은 덜 발달된 지역같으면 그들 마을의 예견자나 샤만의 이상(異像) 속에서 살아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만든 직물이나 예술품은 다름아닌 그들의 삶을 형태지웠던 이상(異像)에 의해 규정된 것이었으며 이는 잠재의식 면에서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삶의 질 혹은 앞으로 깨우치게 될 삶의 질에 관한 이상(異像)을 볼 가능성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하물며 장터의 매혹이 이런 것이라면 신화 더 정확히 말해서 이 모음집에 나온 것 같은 여러 신화의 단편들이 주는 매력은 더 말 할 것이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이제 더 이상은 위대한 문명에 대해 알려주고 그 문명을 지탱해 주지 않는 신화의 마지막 퇴적층 한 가운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찬란하고 사랑스러우며 때로는 그저 기괴하기만한 그 신화들의 단편은 도처에 널려 있다. 예컨대 거리로부터 나와 대성당이나 사원 혹은 성소로 들어가 보자. 이들은 전혀 다른 구조물을 지닌 도시 속에서 옛 시절의 흔적처럼 서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저 스쳐가는 여행객이 아니라면 우리 자신의 삶을 평가하고 지침을 찾기 위해 너무나도 진지하게 찾아헤메는 무엇인가가 거기 있을 것이다.

(중략)

하지만 이 광대한 영역 어디에서도 수십만년에 걸친 시간을 통해서도 종교적 의식(儀式)이나 신화적 사유의 징후같은 것을 찾아낼 수는 없으며, 빙하기 막바지 즉 기원전 15만년에 이르러서 네안데르탈인(Homo sapiens neanderthalensis)이 진화하여 유럽과 서남아시아에 나타났을 때에서야 비로소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매장지를 찾아내기 시작했으며, 북부 이란의 샤니다르(Shanidar)에 있는 중요한 한 유적지에서는 최근에 몇몇 매장물이 있는 동굴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하나에서는 시신이 상록수 가지로 만든 관대 위에 놓여 있고 꽃으로 치장되었으며 꽃가루 조사 결과 그 꽃들은 환각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여기서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한 모중의 믿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데, 이 믿음은 아마도 이상(異像)에 의해 고무되었을 것이다.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ㆍ아이는 알아듣지 못한다. 아이는 우리가 말하는 내용 중 변형된 부분만을 알아듣고는 속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른에 대한 아이들의 불신과 면역성이 종종 이러한 부정적 인상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 진리의 상징적 분식을 피하고 앙들의 지적 수준에 맞추어 사건의 진상을 알게 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5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아이들은 언어의 숨겨진 뜻을 파악하는 것이 아직 미숙하다. 하지만 능숙한 나는 다른 예를 들어 말하는데 아이들은 사전적인 의미로 파악한다. 돌려서 말하면 동그랗게 눈을 뜨고는 “아닌데요.”라고 말을 한다. 어른들에게 말하는 것은 어쩌면 쉽다. 받아들이던 그렇지 않던 어른들은 대략의 내용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의 언어로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을 써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ㆍ종교와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밝히되, 비근한 실례를 잇대어 비교함으로써 옛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 -6

책의 목적. 옛 뜻을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ㆍ진리는 하나되, 현자는 여러 이름으로 이를 드러낸다. -7

많은 책에서 한 가지의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경험을 하였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데미안>에서 <연금술사>에서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에서.

프롤로그 원질신화

1. 신화와 꿈

ㆍ변화 무쌍한 듯 하지만 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이야기의 일정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도전적이리만치 끈질긴 암시를 던진다. 말하자면, 아무리 읽고 들어도 이런 이야기는 결코 끝나는 법이 없다는 암시다. -13

그 끈질긴 암시를 받고도 아직도 헤매고 있는 나는 뭐야. 신화는 읽기에는 재미있지만 그다지 흥미를 끌만하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아마 나도 어렸을 적에는 신화가 들려주는 사전적인 뜻을 따라갔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ㆍ심원한 창조적 중심을 촉발하고 고무하는 특징적인 효과가 아이들 놀이방에서 굴러다니는 하찮은 동화책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14

알아 볼 수만 있다면. 많은 동화책들이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며, 많은 인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을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인데. 이것은 어른들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우리 역시 그것들을 알아봐주지 못하고 하나의 동화책이라고만 생각했을 수 있다.

ㆍ신화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이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그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4

ㆍ제대로 된 일반 신화학은 없어도, 사사롭고 드러내어 있는 인정받지 못한 미성숙 단계에 있다 뿐이지, 그래도 우리의 내부에는 속으로 알찬 꿈의 판테온[萬神殿]이 있다. 최신형 오이디포스의 화신, 미녀와 야수의 속편이 오늘 오후에도 뉴욕의 42번가와 50변가 모퉁이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5

ㆍ유아가 최초로 적의를 갖는 대상은 최초로 애정을 투사하는 대상과 일치하고, 유아가 최초로 갖는 이상은(이때부터 유아는 축복, 진리, 아름다움, 완전함이라는 이미지를 무의식 기저에다 간직한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Madonna and Bamnino라는 이원일체 상황이다. -17

적의란 애정이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중학교 국어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애정이 없으면 미워할 수도 없는 거라고. 그때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지 못했는데 이제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ㆍ인간이라는 왕국에서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비교적 깔끔하고 비좁은 처소의 바닥 및으로는 뜻밖에도 알라딘의 동굴이 뚫려 있다. 여기에는 보물뿐만 아니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꼬마 정령, 그리고 우리로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거나 감히 우리 일상의 삶으로 통합하지 못했던, 불편한 혹은 억압당한 심리적인 힘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감지되지 않은 채 그대로 눌러 있지만, 혹 한마디 말, 주위의 냄새, 차 한 잔의 맛, 또는 어느 사람의 시선에 촉발되면 무서운 사신(使臣)으로 우리 머릿속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19

<삼십년만의 휴식>이 생각나는 군.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도 내가 가진 어린아이를 발견했었지. 아직 자라지 못한 아이가 남아서 구석에 울고 있더군.

ㆍ자기의 발견이란, 소망스럽고도 무서운 모험의 영역을 여는 열쇠를 가져다준다는 의미에서 보면 참으로 매력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었고,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고, 우리가 내적으로 지니고 있는 세계의 파멸……

그러나 파멸이 끝난 다음에는 보다 대담하고, 깨끗하고, 보다 푸짐한 인간적인 삶으로의 눈부신 재건, 이것이 바로 우리 속에 내재하는 신화적 영역에서 오는 이 심란한 밤손님의 유혹이며, 약속이며, 공포인 것이다. -21

ㆍ제의의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의식적 삶의 패턴은 물론 무의식적 삶의 패턴까지 변화를 요구하는 변형의 문턱을 넘게 하려는 데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그런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22

결혼식이라는 퍼포먼스는 많은 지인들을 모셔다 놓고 이제 결혼을 함을 알린다. 꼭 이렇게 하지 않아도 둘은 부부로 살 수 있다. 서로를 아내와 남편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결혼식으로 인해 둘은 더 단단해지고 주변의 사람들이 둘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뀐다. 모두가 둘을 부부로 인정하고 대우한다. 새로운 삶임을 이전과는 다름을 알게 해주는 제의인 것이다.

ㆍ상당수의 제의적 시련과 이미지가, 정신 분석을 의뢰한 환자가 유아기 고착 상태를 떨치고 미래를 향해 발돋움을 하는 순간 꿈이 나타는 이미지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22

꿈은 정말 알 수 없는 세계다.

ㆍ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 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23

ㆍ우리는, 아직도 남아 있는 유아기의 이미지에 발목이 잡혀 있고, 따라서 어른으로 가는 길을 애써 좆으려 하지 않는다. -23

나는 참,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많아서였을까. 그보다도 나는 그렇게 타협을 하게 되는 것이 싫었다. 옳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가게 되는 것들이 싫었다. “그래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니지만 이게 최선이야.” 나는 이런 것들이 싫었다. 크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 크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사람을 말하는 것도 싫었다. 응당 그래야 한다는 것들이 싫었다.

ㆍ우리는 자궁이라는 이름의 무덤 tomb of the womb에서 무덤이라는 이름의 자궁 womb of the tomb 까지 완전한 순환 주기를 산다. -25

무슨말씀이신지....

ㆍ발명이란 참으로 요사한 것, 미궁을 완성한 다이달로스는 입구를 찾아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27

나 역시 내가 만들어 놓은 미궁 안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곳을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나밖에는 할 수 없는 거겠지.

ㆍ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복종인가?

이것이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것. 무엇을 극복할 것인가?

ㆍ오직 탄생(낡은 것의 새로운 태어남이 아닌, 새로운 것의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29

ㆍ이 영역이 바로 유아기의 무의식이다. 우리가 잠잘 때 들어가는 곳이 바로 이 영역인 것이다. 우리는 이 영역을 평생토록 우리 내부에 간직한다. 우리 유아기의 도깨비들과 은밀한 협력자들, 어린 시절의 마법이 모두 여기에 있다. 뿐인가, 보다 중요한 것은 어른이 되어도 의식할 수 없는 삶의 잠재력, 우리들 자신의 또 한 부분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 황금이 씨앗은 마르는 법은 없다. 우리가 상실해 버린 이 전체성의 일부라조 나날의 현실로 끌어올 수 있다면 우리의 능력은 놀라운 수준까지 신장된 것이며, 아울러 생기 넘치는 재생의 순간을 체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더 높이 솟아야 한다. -30

ㆍ영웅이 첫 단계에서 하는 일은, 하찮은 세상이라는 무대로부터 진정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심성의 인과(因果)가 시작되는 곳으로 물러앉는 일이다. -30

심성의 인과가 시작되는 곳. 마음의 원인과 결과가 시작되는 곳. 조금 천천히 읽어보기로 했는데 그게 더 어렵다.

ㆍ영웅은 난관을 헤쳐나가되 자기 식으로 그 난관의 뿌리를 뽑고 (즉 자기가 속한 문화권의 유아기 악마에게 싸움을 걸고) 한달음에 쳐들어가 C.G. 융의 소위 <원형심상(原型心象), Archetypal images)> 과의 동화 작용을 시도한다.

원형 -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 가. 원형은 자신에 대한 본능적 인식, 즉 '본능적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의식이 '객관적인' 생의 과정에 대한 내적 지각인 것과 정확히 일치 하는 것이다.

원형적 심상은 상징으로 우리의 의식에 나타나며, 우리는 상징을 통해 원형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아... 아무리 찾아봐도 융은 아직 어렵다.

ㆍ꿈은 인격화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이되, 정신 역학의 동일한 일반적 시각에서 보아 그렇다. -33

ㆍ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그런 사람의 상상력과 이상과 영감은 태고적부터 인간의 생명과 사상의 원천에서 비롯된다. -33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영웅들을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딱히 영웅이라는 의식이 없을 뿐, 우리가 신화의 영웅과 동일시하지 않았을 뿐 곳곳에서 영웅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ㆍ영웅은 현대인으로 죽었지만 영원한 인간(완전하게 되되, 특이하지 않은 우주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33

현대인으로 죽었으니 영원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만 남은건가? 하지만 죽는다고 누구나 다 영원한 인간으로 태어날 수가 있는 걸까? 완전하게 되야 하고 특이하지 않은 우주적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 같은데 그것은 어떤 것인지 아직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ㆍ아무리 맹세하고 서원해도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란, 내부의 소명도 외부의 교리도 모르는 사람이다. -37

그래서 순간순간 곳곳이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던 건가? 둘 중 어느 하나도 알고 있지 않아서...

ㆍ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우리에 앞서 미궁으로 들어갔고, 미궁의 정체는 모두 벗겨졌으며, 우리는 단지 영웅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되는데도 그렇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39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을 떨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다. 밉다가 밉다가 더 이상 미워지지 않게 되는 방법은 결국은 그런거였다. 내가 그에게 잘못했음을 깨닫는 것. 그것과 비슷한 은유인건가? 이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할 일을 찾아서 떠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변한다. 결국 내가 가지고 있었던 모습을 하나하나 발견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야금도 그랬다. 나는 그것을 배워서 지금까지 써먹어 본 데라고는 특기란을 채워야 할 때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별로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이 나 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2. 비극과 희극

ㆍ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그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39

언젠가 오빠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을 수 있지만 사람을 싫어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 할 때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그 말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행복한 사람은 그냥 행복하다. 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불행한 이유를 밤을 새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ㆍ연민이란,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고통 받는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원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40

ㆍ현대 문학은 우리들 앞에, 우리들 주위에, 우리들 내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참담하게 부서진 형체를 직시할 용기와 눈길을 부여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41

마음에 남는 글들은 언제나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떤 내용이었던지 결국은 나의 태도나 삶의 한 부분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것이 얼마나 유지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의미로 하게 된 말 같은데....

ㆍ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아무것도 죽지는 않는다. 영혼은 여기저기를 방황하다 마음에 드는 뼈대를 취한다……. 따라서 한 번 존재한 것은 다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존재하게 되니, 모든 운행의 주기는 반복된다. -43

변신이야기의 퓌타고라스의 말.

영혼은 영원합니다. 이 영혼이라는 것은, 원래 있던 곳을 떠나면 다른 집을 찾아들어가 거기에 다시 거합니다.

ㆍ이 땅에 이러저러한 일이 있기 전에 보다 중요하고 보다 본질적인 것이, 우리가 알고 있고 더러 꿈속에서 찾아가기도 하는 미궁 안에서 일어났어야 했다는 것이다. -44

ㆍ공포는 눈앞에 여전히 보이고, 고뇌의 울부짖음은 여전히 귀에 들리나, 삶은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정복되지 않은 힘의 자각으로 다시 생기를 얻는다. -44

세상에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게된다는 것.

3. 영웅과 신

ㆍ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45

승리를 거두고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돌아오는 것. 정말 좋을 듯 한데 앞에 엄청난 세력과 만나야 한다고 하는 군. 이것은 내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ㆍ장소가 어디 건, 그들의 관심(종교적, 정치적, 혹은 개인적)이 어디에 있던 진정한 창조 행위는 죽어가는 것으로부터 세상으로 무엇인가를 가져오는 행위로 표현되며, 영웅의 부재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가 거듭난 자, 위대한 자, 창조력을 얻어 돌아오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류 역시 한 목소리가 된다. -50

ㆍ영웅과 (혹은) 그가 속한 세계는 상징적인 어떤 장애로 고통을 받는다. -52

ㆍ모험을 통하여 자기가 속한 사회 전체의 소생에 필요한 수단을 가지고 돌아온다. -53

영웅.

ㆍ보잘것없는 영웅이든, 탁월한 영웅이든, 그리스 영웅이든, 야만족의 영웅이든, 이방인의 영웅이든, 유태족의 영웅이든, 영웅의 행장(行狀)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53

보편성. 인류가 가진 보편성 때문에 영웅에게도 이러한 보편성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인류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도 같아질 수 밖에 없다면 신화가 이렇듯 유사한 이유가 아주 조금이나마 설명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혼자서 해보면서.

ㆍ이 기적을 그대에서 설명할 바를 알지 못하니……. 나는 본질적으로 인간이며 신의 은총을 입으로써 신이라. -55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는 보게 된 자는 말이 없다고 신화와 인생에서 말했다. 끊임없이 말을 하는 자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ㆍ나는 너고, 너는 나다. 네가 어디로 가건 나는 거기에 있다. 나는 없는 곳이 없으니, 원하면 언제든지 나를 찾으라. 나를 찾는 것은 곧 너를 찾음이다. -55

ㆍ위대한 영웅은 위대한 행적을 통해, 이 다양한 얼굴이 사실은 하나임을 알고, 또 남들에게 알리게 된다. -55

결국은 모두가 신이라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신이 없는 곳이 없으니 어느 곳에나 있고, 형체가 없으니 어떤 형체든지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신이라는 것은 알 수 있겠는데. 그 모두를 신으로써 대접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4. 세계의 배꼽

ㆍ영웅의 성공적인 모험의 의미는 생명의 흐름을 풀어 다시 한 번 세계의 몸 속으로 흘러들게 하는 데 있다. -55

ㆍ영웅이 태어났고, 역사했고, 무(無)로 돌아간 곳이면 어디든 표지가 서 있고 성역화되어 있다. 완전한 중심을 나타내고 고취시키기 위해 거기에 사원이 세워지기도 한다. 까닭인즉, 이런 곳은 풍요를 향한 돌파지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어떤 사람은 영원성을 깨닫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곳은 보람 있는 명상의 촉매가 될 수도 있다. -61

그렇다하나 그래도 알아 볼 수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자 만이 아는 것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영웅이 태어나고 역사했고 무로 돌아간 곳을 둘러보지만 별다른 감흥없이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ㆍ따라서 세계의 배꼽은 도처에 있다. -62

도처에 세계의 배꼽이 있을 수 있다면 영웅 역시 도처에 있을 수 있다는 얘기?

ㆍ닮지 않은 것이 상합하고, 서로 다른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지며, 모든 것은 다툼에 의해서 생겨난다. -62

헤라클레이토스의 말. 아직은 확실한 예를 찾을 수 없다. 느낄 수는 있지만.

ㆍ신화는 비극적인 자세를 신경질적인 것으로, 도덕적인 판단을 근시안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65

제1부 모험

1. 출발

1. 영웅에의 소명

ㆍ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부지중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그리고 이 주름의 골은 매우 깊다. 영혼 그 자체만큼이나 깊다. 실수는, 운명의 시작에 해당되는 수도 있다. -71

실수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듯 보여서 실수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쉽고 빠르게 표현하는 단어는 ‘실수’였다. 그것이 실수라면 그것이 운명의 시작에 해당될 수도 있겠군. 그것으로 인해 많은 것이 변화한 것은 사실이니까.

ㆍ전령관의 등장은 <자아의 각성 the awakening of the self>이라고 불리는 단계를 암시하고 있다. -72

ㆍ지금까지의 삶의 지평은 이제 너무 웃자라, 낡은 개념과 정서 패턴은 몸에 맞지 않는다. 바야흐로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72

엄마가 된 다는 것이 그랬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어쩌다보니 생긴 결과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리 어렵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내 옆에 자리를 하나 더 놓으면 된다는 식으로.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아이는 의자 하나 정도가 아니었다. 나의 생활 방식, 사고방식을 바꾸게 만들었다. 내가 유지해 오던 방식은 더 이상 새로운 생황에 맞지 않았다. 높은 구두와 짧은 치마 따위는 버려야 했다.

ㆍ분리와 탄생의 순간은 불안을 야기시킨다. -73

부모로부터의 독립도 이러한 불안을 야기시킨다. 우리는 조금 자라게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되기를 꿈꾼다. 내 생활은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 그러나 실제로 해보면 많이 혼란스럽다. 규칙적으로 하던 식사는 언제 무얼 먹었는지 불규칙 속에 서 있고, 방안은 정돈되지 않는다. 기대가 되면서도 조금은 불안함. 그것이 독립이다. 세상에 혼자 서게 된다는 것. 멋지지만 조금은 무섭다.

ㆍ이 징그러운 뱀이나 개구리, 즉 징그러운 동물은 무의식 심층(하도 깊어서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을 상징한다. 여기엔 징그럽고, 사랑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 미지의 혹은 지진한 요소, 원리, 그리고 생존의 본질이 우글거리고 있다. -73

ㆍ주인공이 필연적으로 맞서야 하는, 무의식적으로는 상당히 익숙해져 있는(의식적으로는 알지도 못할뿐더러 놀랍고 무서운 존재로 여겨지는) 이 인물은 자기 정체를 맑힌다. 그리고 이 때, 주인공은 이전에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던 사물이 이제 무가치하게 되어버리는 상황을 경험한다. -77

ㆍ이 신화적 여행의 첫 단계<우리는 이를 <모험에의 소명>으로 불렀다)는, 운명이 영웅을 불렀고, 영웅의 영적 중심(重心)이 그가 속한 사회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낙원일 수도 있고 위험의 도가니일 수도 있는 이 운명적인 영역은 여러 가지 형태로 다양하게 표상된다. -80

2. 소명의 거부

ㆍ모험의 주체가 누리던 화려한 세계는 메마른 돌멩이가 구를 뿐인 황무지가 되고, 그의 삶은 무의미해진다. -81

공허함인가. 아무것도 남지 않음. 결국 찾는 것은 따로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

ㆍ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면서 파멸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81

네로 황제가 생각난다. 죽을 수도 없는 불쌍한 인간이라 했는데. 찾아도 찾아도 찾아지지 않는, 헤매도 헤매도 보이지 않았던 어떤 것을 향해서(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있었던건가. 별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가 생각난다.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지루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무엇이든 즐거움이 되는 것들을 찾아다녔다. 순간적인 웃음들을 위해 살았다. 지나고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음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ㆍ거부한다는 것은 결국 제 이득으로 취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어야 한다. -82

미노스왕. 신의 수소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였지만 결국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ㆍ개인이 자기 자신의 신이기를 고집하면 신의 의지, 즉 자신의 자기중심적 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인 신 자신은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 -82

개인이 개인을 수호하려는 개인의 것을 지키려하는 신이 된다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은 괴물로 변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

ㆍ인간은 사탄처럼, 죽자고 자기 자신에게 매달린다. 이때 그가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83

지옥이란 따로 가야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태도에 따라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를 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이건 때로 아주 간단하다. 역으로 생각해보자면 천국도 그리 올 수 있다.

ㆍ주저한다고 다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많은 비밀을 여축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비밀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막혀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소명의 거부에 따르는 부정적인 상태가 뜻밖의 해방의 원리에 대한 행운의 계시일 수도 있다. -87

시간이 흐른 후 사람은 때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자신의 모든 인생이 하나의 방향을 위해 줄곧 걸어온 것임을. 자신이 싫어했던 일 조차도 그 방향으로 놓여 있었음을

ㆍ인격이 이 새로운 힘을 흡수하고 통합할 수 있으면 당사자는 자기의식의 초인간적인 단계 및 완전한 통제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다. -87

ㆍ일종의 주어진 사람의 방식에 대한 철저한 파업 혹은 폐기라고나 할까. 그 결과 변형의 힘은 문제를 새로운 자장(磁場)으로 끌어내는 수가 있다. 이 자장에서 문제는 어느 한순간 마침내 풀릴 수 있는 것이다. -88

ㆍ헌헌장부가 되어서도 젖비린내 나는 아이의 허물을 못 벗은 너에게 화 있으라. -91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주어졌는데 자신 스스로 허물을 벗지 못한다면 누군가 나서서 자신의 허물을 벗기려 할 것이다. 스스로 행하지 않는 일에는 스스로 행할 때보다 더 큰 아픔이 따를 수 있다. 이 과정에까지 이른다면 나를 스쳐가는 아픔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3. 초자연적인 조력

ㆍ네 발을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네 손을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네 머리를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그럼 네 발은 꽃가루, 네 손은 꽃가루, 네 몸은 꽃가루. 네 마음은 꽃가루, 네 음성도 꽃가루. 길이 참 아름답기도 하고, 잠잠하여라. -95

적의 분노가 가라 앉는 마법의 주문

ㆍ모험을 나선 당사자가 그것을 알고 그 존재를 믿기만 하면 시공을 초월한 안내자는 언제나 나타난다.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 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대자연 Mother Nature은 항상 위대한 임무를 지원한다. 영웅의 행동이 그 사회가 예비하고 있는 것과 일치될 때, 그는 흡사 역사적 변화의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96

제대로 된 우주적인 길로 접어들었다면 언제 어디서건 도움의 손길을 받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처음 한 두 번은 의외라 생각할 수 있으나 곧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항상 너에게 주어진 다는 것을.

ㆍ이렇게 해서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 삶을 거부하던 카마르 알 자만의 운명은 의식적인 의지의 협력이 없이도 완성되기 시작했다. -105

4. 첫 관문의 통과

ㆍ이 수호자 뒤로는 어둠이며, 미지의 세계이며, 위험이다. 부모의 감시 밖이 아이들에겐 위험 지역이고, 사회의 보호 밖이 종족의 구성원들에겐 위험 지역인 것과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들이면 여기에서 만족한다. 심지어는 표시된 경계선 안에 안주하는 데 만족하기까지 한다. -105

사회화의 기능이란. 위험지역으로 보이는 곳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우리는 관문 앞에서 살짝 보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거의 다 왔는데, 이제 한 발만 더 내딛어보면 되는데, “별로 볼 거 없네.”라 하며 발길을 돌린다. 내가 가지고 있는 틀을 부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해야할 필요가 있다.

ㆍ뭍에서는 맥을 쓰지 못하지만 일단 자기 무대로 돌아가면 천하 무적이다. -108

누구나 다 그렇지 않나? 흔히 말하는 홈그라운드. 동네에서는 내가 대장노릇을 하고 있는 거다. 차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ㆍ새로운 경험역(經驗역)을 지나려면 같은 세력의 파괴적 측면을 극복하고 이 특정 구역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111

ㆍ이 여섯 번째 무기가 명(名)과 형(型)이라는 현상계(現象界)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원리의 지혜라는 천상적 벼락인 것이다. -119

ㆍ현상계의 마력이 무너지자 그는 자기를 부정하게 된다.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그는 신(보시를 받을 자격이 있는 신적인 정령)이 된다. 종국적인 이름과 형태가 아닌, 마음속의 이름과 형태를 초월한 단순한 이름과 형태를 알게 될 때 세상이 그렇게 되듯이 그 역시 신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119

ㆍ태양 문을 통하여 번제의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자아는 끈끈이 터럭에다 붙여두고 영웅은 제 갈길을 가는 것이다. -120

자아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나. 나란 어떤 존재이다 라는 나만의 믿음. 내가 살면서 알게 된 나라고 생각했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경계선에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구분짓는다. 한계는 아는 것은 중요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보면 나에게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아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봐야 한다는 의미일게다.

5. 고래의 배

ㆍ다시 태어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다. -123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자신이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때, 가장 빠른 방법은 가장 밑에 있는 돌을 빼내어 다시 조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장난스레하는 말 가운데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르지 않니?”라는 말처럼.

ㆍ신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괴수들을 그저 괴물로만 본다. -123

실제로는 심화된 내적 침묵과 만날 준비가 되지 않는 자들을 지켜주는 관문의 수호자들

ㆍ비유적으로 보아, 신전으로 들어가는 것과, 고래의 입을 향한 영웅의 돌진은 같은 모험인 셈이다. 즉 회화적 언어로 말하면 둘 아 생의 구심화 행위, 거듭나는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123

자기적멸

ㆍ스스로를 구원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 그의 죽음과 회귀는, 모든 현상계의 대립물이 창조되지 않은 불명의 존재임을 드러내는데 여기에 두려움이 있을 리 없다. -124

내가 나라고 규정 지어 놓은 모습을 버리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신이 그러한 것처럼.

2, 입문

1. 시련의 길

ㆍ영웅은 이 곳에서 거듭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128

ㆍ모험 당사자가 자신의 초인간적 여행 도정의 도처에 자비로운 권능이 있어서 자기를 도와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 -128

프쉬케는 연인 쿠피토(에로스)를 찾으러 가지만 많은 시련에 부딪힌다. 이때 이 난관은 프쉬케 혼자만의 힘으로 헤치고 나온 것이 아니다. 많은 것들이 그녀를 돕는다. 마치 그녀를 돕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콩쥐 팥쥐의 이야기도 그렇다. 많은 것들이 등장해서 그녀를 돕는다.

ㆍ에를릭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은 이 의식의 절정이면서도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도 하다. -132

영화의 클라이막스

ㆍ인간의 무리는 집단의 이상(理想)에 따라 행동하는 법인데, 이 집단의 이상이라는 것은 항상 유아기 상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132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자들의 대부분이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면 당연히 이상(理想)역시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닐까.

ㆍ주술사는, 그 사회 성인들의 심성에 내재하고 있는 상징적 환상 체계를 출몰시키는 역할을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주술사란, 이러한 유아적 놀이를 주도하고, 공통의 근심거리를 밝혀내는 지도자인 것이다. 그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방에서 성공하고 현실적인 어려움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잡귀와 대리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133

부족원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체계를 끄집어 내어 대리전쟁을 한다. 근심거리를 끄집어 내어 대리전쟁을 하여 승리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한 층 높게 만들어 준다. 나아가 자신의 한게라고 생각했던 것을 잊게 한다.

ㆍ감각이 <정화되고, 스스로를 낮추어> 모든 에너지와 관심이 <초월적인 것에 집중 될> 때인 것이다. 굳이 현대적인 의미의 어휘를 쓰자면, 우리 개인이 가진 과거의 유아적 심상이 분리, 초월, 변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133

입문.

ㆍ귀를 기울이고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감청하기 위해서는 자기 정화를 감수하고 항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다. <그런데 앞서간 자들이 당한 시련도 겪지 않고 너희는 지복의 낙원에 들어가려 하느냐> -139

보았다고 전부를 본 것이 아니고, 들었다고 전부를 다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가지고 들으면 일부만 들은 것과 같고 일부만 본 것과 같다. 앞서간 자들이 당한 시련 앞에서 자기 자신을 내 놓을 때 우리는 전부의 소리인 옴을 들을 수 있고 전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ㆍ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143

자신이라고 생각한 모든 것을 내어 주고 마주친 존재에게 복종하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신의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

ㆍ이제 영웅은 용을 죽여야 하고 몇 번이고 위험한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그 동안 영웅은 몇 차례의 예비적인 승리를 거두고, 일시적이긴 하나 무아의 경지를 체험하며, 이상향을 엿보게 된다. -143

그때 내가 보았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나?

ㆍ세상에 유혹하는 것, 기쁨을 약속해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잠자는 여성이 지향하는 존재의 예조(豫兆)에 해당한다. 이러한 유혹과 약속은, 이 세상의 도시나 숲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깊이 잠들어 있을 때 찾아온다. 왜 찾아 왔을까? -145

ㆍ우리가 아득한 옛날에 그 사랑을 받던 <좋은>어머니 (젊고 아름다운) 이기 때문이다. 세월은 우리와 그녀의 사이를 가로막았지만, 그녀는 영원한 잠에 빠져든 미녀처럼, 아직 우리의 속 영원의 바다 밑바닥에 거하고 있는 것이다. -148

어머니의 존재가 나의 밑바닥에 남아 있다는 의미로 들리는 데. 정확하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내가 이 글을 잘 음미하고 있지 못하는 듯 하다.

ㆍ악타이온이 도망치다가 죽음을 당하고 있음을 신통력으로 안 아르테미스 역시 편한 마음으로는 쉴 수가 없었다. -150

미워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 이는 발을 뻗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때린놈은 발뻗고 잘 수가 없다고 말하듯이. 때로 우리는 나쁜 어머니들을 본다. 누가 제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냐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머니들이 보인다. 그들을 욕하기는 쉽지만 그들 역시 제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ㆍ이 여신이 세계의 창조자, 영원한 어머니, 영원한 처녀이기 때문이다. 이 여신은 포옹하는 것을 포옹하고, 자양하는 것을 살지게 한다.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생명이다. -152

위기 후에 만나게 되는 여신.

ㆍ이러한 수행을 통해 숭배자의 정신은 유치하고, 어울리지 않는 감상과 증오로부터 스스로를 정화하고, 유치한 인간이 자신의 행, 불행에 연결지어 멋대로 가른 <선>과 <악> 따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본성의 법(法)과 상(橡)으로 존재하는 불가해한 실재를 향해 마음을 열게 된다. -152

여신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유형을 가진 여신을 받아들이고 숭배함으로써 우리가 우리 스스로 판단하게 되는 선과 악을 내려 놓고 본성을 따라 갈 수 있다 .

ㆍ이 여신의 이름은 <검은 존재 the Black One>, 즉 칼리 Kali다. 별명은, <존재의 바다를 건네주는 나룻배>다. -152

ㆍ고도의 이해력을 갖춘 천재만이 이 숭고한 여신의 계시를 읽을 수 있다. 이해의 정도가 낮은 사람을 위해 여신은 그 신통력의 정도를 낮추어, 그들의 지진한 능력에 알맞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여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일 수 있다. -153

여신을 만나기에 앞서 우리는 우리 이전의 영웅들이 경험했던 것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여신을 만나고자 한다면 여신의 본모습을 모를 채 말이 많아 질 수고 있고, 악타이온 처럼 제가 기른 사냥개에서 물어뜯길 수도 있으리라.

ㆍ열등한 눈으로 보면 여신은 열등한 상태에 잇는 것처럼 보이고, 무식한 눈으로 보면 범용하고 추악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여신은 자기 존재를 알아보는 자에 의해 해방된다.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에서가 아닌, 여신이 바라는 친절하고 침착한 상태에서 그 여신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영웅은, 여신이 창조한 세계의 왕, 즉 인간으로 화신한 신일 수 있는 것이다. -154

여신의 모습은 한결 같지만 보는 자에 의해서 달라진다. 우리가 여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우리가 인간으로 화한 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신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여신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가 변하는 것이다.

ㆍ왕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왕도란 싸움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지 않고는 손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왕의 그릇은, 무슨 일이 있든지 이를 이기고 왕도를 가는 것입니다. -156

왕도는 왕국 안에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다. 왕이 되려고 하는 자는 모두 이 길을 걸어야 한다. 이 때의 치열한 전쟁이란 타인을 학살하고 살육하는 전쟁이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자 치열한 전쟁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ㆍ여신은 악타이온의 동물적 욕망으로도, 퍼거스의 결벽에 가까운 도사림으로도 파악되지 않았다. 오직 니알의 부드러움에 의해서만 그 정체가 드러났다. -156

바람과 햇빛의 외투 벗기기 경쟁이 생각이 난다. 결국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있었던 것은 햇님의 따사로움이었다.

ㆍ불길 속이 가장 뜨겁듯

사랑은 부드러움 속에서만 뜨겁게 타오른다. -157

3. 유혹자로서의 여성

ㆍ싸움이나 짜증은 무식한 자들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고 후회는 때늦은 각성일 뿐이다. -159

ㆍ도깨비들이란, 자기 인산성의 미해결 수수께끼가 투영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160

ㆍ이상(理想)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개인이 자기 삶을 파악하는 징후인 것이다. -160

ㆍ참으로 까다롭고 재미있는 것은, 이상적인 삶에 대한 의식적 견해가 실제의 현실적 삶과 잘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60

이상적인 삶이라고 우리가 꼽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지금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 항상 어딘가 하나씩이 혹은 여러개씩이 부족하다.

ㆍ우리 조직 세포의 본질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이를 윤색하고, 회칠을 하고, 재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기름에 빠진 파리, 우리가 먹을 국에 빠진 머리카락을 누군가 다른 불유쾌한 사람의 허물로 돌리려 한다. -160

남 탓하기. 현재 자신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것 중에서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이야기하다보면 많은 경우에 우리도 이러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 “그래서 결국 넌 하지 않았잖아.” 라고 말을 하면 우리는 대답한다. “그래, 그렇기는 하지만 ~~”

ㆍ우리가 생각하는 것, 우리가 행하는 것에는 어차피 육욕의 냄새가 나게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깨우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외 없이 낭패의 순간을 경험한다. -160

내 자신의 삶에서 나는 육욕의 냄새도 수용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마당에 타인에게서 나는 육욕의 냄새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ㆍ어찌하여 우리가 지체하는 것일까? 그대가 나를 찾아다닌 그것으로 넉넉하니, 오너라. -161

ㆍ자기의 시체 같은 육신을 조금이라도 의식하면 그는 이제 순수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생, 병, 사뿐만 아니라 자기 적들로부터도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자신을 순수한 존재, 선의 정수, 부동의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 그는 자유로워진다……. -162

ㆍ젊은 쳐녀들이 당도하자 페트로닐라는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성체(聖體)를 배령(拜領)한 페트로닐라는 다시 자리에 누워 사흥 뒤 하느님 곁으로 갔다. -163

성 베드로의 딸 페트로닐라의 이야기의 끝부분인데 이 이야기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했음을 기억해 놓고 싶다.

ㆍ은자의 살이 뼈에 붙어 있고, 그 맥박이 고동치는 한 삶의 이미지가 그의 마음에 폭풍을 일으키는 일을 막기 어렵다. -165

여성의 모습으로 유혹한다. 영웅의 대부분이 남성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인가? 황진이가 떠오른다.

4. 아버지와의 화해

ㆍ아버지의 무섭고 잔인한 측면은, 피해자의 에고가 투영된 것이다. -170

피해자의 이성이 투영된 것이다. 어린 시절에 알고 있던 공포가 성인기가 된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서 아직도 공포르 느끼게 하는 것인가? 읽을 때는 알 듯 하더니 또 돌아서니 긴가민가 하는군.

ㆍ결국에 가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투영하고 있지만 사실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71

결국은 역할만 다른 것인가? 아니 어쩌면 역할까지도 유사성이 있는데 우리가 다르게만 느끼는 건가?

ㆍ내가 지났던 바퀴 자국이 보일 것인즉 네 길잡이로 삼도록 하여라. -175

아버지가 걸어간 길.

ㆍ네 힘에 의지하기 보다는 행운이 네 길을 인도하게 하여라. -176

내 힘만으로는 여기 지금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힘껏 정말 지칠만큼 노력해서 내 손으로 이룩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행운이 나를 도운 것이다. 하은이를 낳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간호사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아기가 엄마를 잘 도와서 빨리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힘 하나만으로는 아마 그애를 보지 못했을 거다. 그애가 나를 돕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돕고 그리고 그때의 내가 미처 보지 못한 행운의 별이 내 근처를 돌고 있었겠지.

ㆍ비록 실패했으되, 그 용기는 아주 가상하지 않은가? -177

언제 부터인가 실패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실패한자는 인생의 패배자처럼 여겨졌다. 계속된 성공을 보아서 일까? 계속된 성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나?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서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었다. 넘어지면 그저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말하면서도 내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ㆍ자식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이 부모의 이야기는, 입문이 잘못 되었을 때 입문자의 삶에는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을 확인시켜 준다. -177

제 자식에게 관대해 질 수 밖에 없는 부모. 특히나 혼자이기 때문에 때로는 더 관대해진다. 아마 내가 아이에게 부족함을 안겨주었다는 하나의 자책 때문에 더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관대함이 아이를 망칠 수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아직은 안아주어야 할 때와 스스로 일어나게 할 때를 구분짓는 것이 힘들다. 나 때문에 입문이 잘못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에 더욱 잘 하고 싶다.

ㆍ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서 미래 세계의 상징이요, 딸에게 있어서는 미래 남편의 상징이다. -177

ㆍ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이 더 넓은 세계로 나갈 때 마땅히 거쳐가는 입문식의 사제다. -177

ㆍ선악에 대한 유아기 환상을 떨치고, 희망과 공포에서 놓여나 평화롭게 존재의 계시를 이해하고 우주 법칙을 엄숙하게 경험하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입문자는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178

아버지의 역할. 비법 전수자.

ㆍ보이지 않는 열쇠는 그와 함께 하고…… 결국 너도 그에게로 돌아간다. 돌아가면 너에게 네가 행한 모든 진실을 보여 줄 것이다. -190

ㆍ어디로 돌아서든, 거기엔 알라 신에 계시도다. -190

ㆍ만물 속에 숨어 있어서 그 영혼이 빛을 발하지 않으나, 뛰어난 지력을 가진 명민한 자의 눈에는 보인다. -191

종교 보편성. 하나의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글로 확인할 수 있다.

ㆍ이글거리는 태양 안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폭풍을 일으키기도 하고, 한 쌍의 대립적인 원소인 불과 물의 배후 에너지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191

ㆍ자기 손이 창조한 생명의 고뇌를 익히 자각하고 혹심한 고통, 머리를 터뜨리는 듯한 미망의 불길, 자기가 창조한 자기 침해적(自己慘害的)이고, 쾌락적이고, 분노에 떨고 있는 우주를 생생하게 의식하는 이 신은 삶이 삶을 점화시키는 행위를 승인한다. -192

ㆍ배꼽, 즉 어머니인 생명의 손가락이 닿았던, 끝내 아무도 알 수 없는 아킬레우스 건(腱)이 있는 법이다. 영웅이란, 정확하게 그곳을 뚫고(그가 속한 세계와 함깨) 들어가, 그의 존재를 제약하는 매듭을 잘라야 하는 것이다. -192

제 손으로 탯줄을 끊고 나오는 것. 우리가 태어날 때 다른 이의 손으로 탯줄을 끊게 되지만 연결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사람이란 다른 종에 비해 손이 더 많이 가는 종족. 태어났다 하여도 긴 시간의 양육과 교육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정신적인 탯줄은 끊어지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영웅이란 이 탯줄을 끊는 것이 아닐까.

ㆍ영웅은 자기 몸에 박힌 가시(약점)을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그는 여기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와 자기가 화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192

ㆍ인간의 범주 밖에 있는 중심에서 비롯되는 하느님의 의지는 인간의 힘으로는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4

ㆍ아들이 아버지를 알 나이가 되면 시련의 고뇌가 이미 그의 내부에 태동해 있다. 세상은 더 이상 눈물의 골짜기가 아닌, 행복이 기다리는 현존의 완전한 현현이다. -194

어머니로부터 벗어나 유아기에서 벗어나 사회로. 어머니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에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사회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차 있다고 느끼는 것인가?

5. 신격화

ㆍ<옴 마니 밧 매홈(즉, 연화 속에 보석이 있다)> -196

처음으로 그 의미를 알다.

ㆍ그는 인간으로 이 땅에 살다가 마지막 관문을 넘어서는 순간(이 순간만 넘어서면, 이름붙여지고 경계지어진 우주의 헛된 망상을 초월한 공(空)의 무량 세계가 열린다.)에 이를 작파해 버리고, 모든 중생을 정각에 이르게 한 연후에야 공(空)에 들겠다고 맹새했기 때문이다. -196

관세음보살에게 하는 기도가 모두 가납되는 이유. 들어가고 싶다는 유혹이 없었을까?

ㆍ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라고 하는 존재, 그의 형상, 혹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희망이다. -197

보살. 고통과 쾌락에 구속되지 않고 도리어 고통과 쾌락을 깊은 휴면상태로 구속할 수 있는 존재. 우리도 그 같이 될 수 있다.

ㆍ영원의 보석이 탄생과 죽음의 연화 속에 들어 있다는 <옴 마니 밧메 홈> -198

ㆍ신들은 마음을, 객관적안 체험을 초월한 상징적 영역, 이원성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으로 인도한다. -198

모두 다른 모습을 띠고 있는 사회일 수 밖에 없지만 이원성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완전성

ㆍ여성을 다른 형태로 후퇴시켰다는 사실은 완전성에서 이원성으로의 타락을 상징한다. 이어서 선악의 이원성이 나타내고, 하느님이 걸으시던 낙원에서의 추방과 낙원의 울타리가 세워졌다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200

ㆍ즉 영원성이 시간성으로 발전하고, 하나가 둘에 이어 다수로 분열하며, 둘의 재결합으로 새 생명의 세대가 나타나는 것이다. -200

나누어 졌다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인가?

ㆍ그들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세계의 샘은 동일한 것이다. -203

아버지

ㆍ위대한 아버지 뱀의 부름은 아이를 놀라게 했고, 어머니는 아이의 보호자였다. 그란, 이윽고 아버지가 왔다. 그는 미지의 신비로 아이를 인도하는 안내자이자, 비의의 전수자였다. 어머니와 누리던 유아기라는 아이의 낙원에 침입한 아버지는 원형적인 것이다. 이때부터 아이에게 있어서 평생토록 모든 적은 아버지(에 대한 무의식)를 상징한다. 그래서 <살해당한 것은 모두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204

아버지가 이제 왔다. 아니, 예전부터 아버지는 나를 데려가려고 하였다. 이제야 아버지와 함께 가야함을 알게 된다.

ㆍ세계는 서로 싸우는 무리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모두가 토템, 국기, 그리고 집단의 숭배자들이다. -205

ㆍ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너희가 만일 자기한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큼은 한다. 너희가 만일 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꾸어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것을 알면서 꾸어준다. -206

나를 돌아보게 한다. 정말 맞군,

ㆍ우리가 전수받아야 할 최상의 도리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서슴없이 이웃을 공격하는, 누구에게만 자애스런 아버지의 도리가 아님을 이해하는 게 가능해진다. -207

ㆍ구세주의 십자가는 한 국가의 깃발이라기보다는 민주적인 상징이다. -208

ㆍ무한한 사랑이며, 전능인 보살인 관세음이 지각있는 모든 존재를 포용하고, 굽어보고, 또 그 존재 안에 거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의 마음 안에는 평화가 있다. -210

모든 존재 안에 아니 계신 곳이 없기에 우리의 마음 안에도 평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발견해내야 한다는 것. 그것을 발견해 내는 것이 영웅이 걸어간 길인가?

ㆍ그들이 보살이고 보살이 그들이다. -210

ㆍ우리는 모두 보살 이미지의 그림자다. -211

ㆍ이 무지하고, 유한하고, 자위적이고, 고통받는 육신이 다른 육신(적)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경우에도, 그 적 또한 신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211

ㆍ저 아버지가 바로 어머니, 즉 재생의 자궁이었던 것이다. -211

어머니가 준 몸이 죽고 아버지를 통해 태어난다는 의미로 ‘자궁’이라는 단어를 사용

ㆍ열반이란 말은,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음이라는 세 겹의 불을 끈다>는 뜻이다. -213

열반의 의미

ㆍ정신분석학은, 무의식적으로 빗나간 욕망과 적의 때문에 비현실적인 공포와 애증의 이중 감정에 시달리는 환자를 치료해 주는 기술이다. -214

ㆍ마음은, 생각이 실체가 아님을 깨닫는다. 생각은 사라지는 것이다. -215

마음과 생각 구분. 마음이나 생각이나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은 사라져도 마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ㆍ보살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215

ㆍ기존의 자기 확신, 자기 방어, 자기 중심적 에고의 미망을 억눌렀기 때문에, 그는 같은 적멸의 안팎을 안다. 그는 밖에서 방대한 생각을 초월하는 공(空)의 시각적인 측면을 본다. 에고, 형상, 지각, 언어, 개념, 지식에 대한 체험은 그 위에서 전개된다. 그는 제 악몽에 쫓기며 스스로 겁에 질린 존재를 자비로이 여긴다. 그는 일어나 그들에게로 돌아와 에고를 초월한 중심으로서 그들과 함께 거한다. 에고를 초월한 그를 통하여 <공>은 자체를 현현한다. -216

ㆍ세상으로부터의 출발은 오류가 아니라 여행의 첫 출발이다. 이 먼 여로에서, 우주 순환의 심오한 적멸을 깨치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217

ㆍ영원한 생명이 그들 안에 기들여 있음을 알 뿐만 아니라 그들과 만물이 사실은 영원하 생명임을 아는 사람은 소원을 성취시키는 나무 숲에 거하며 불사의 영주(靈酒)를 마시고, 들리지 않는 조처의 영원한 화음을 듣는다. 이들을 일러 신선 Immortality 이라고 한다. -218

ㆍ위대한 다도의 달인(達人)은 천상적 경이를 체험된 순간으로 만드는 데 힘썼다. 이어서 이 경험은 그 사실에서 가정으로 확산되고, 가정에서는 국가로 침윤했다. -219

무언가의 분야에서 진정한 달인으로 거듭난 자는 우리가 지금 찾고자 하는 것을 이미 알고 깨달은 자들. 어떤 분야라도 말이다.

ㆍ현명한 자는 그 자궁 속에서도, 자기가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에게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 그 보다 더 현명한 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의 본체 안에 있다는 것까지 안다. -223

ㆍ방울은 <교화된 마음>이다. 방울소리는 피조물 가운데서도 가장 순수한 정신을 가진 자들이 듣는 영원의 아름다운 소리다. 따라서 이 소리는 내면의 소리다. -224

6. 홍익

ㆍ보통 영웅 같으면 모진 시련을 겪을 터인데도 선택된 자는 별 방해도 받지 않고, 또 시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226

내가 선택된자 였으면 좋겠군.

ㆍ세상을 온통 경건하게 만들어버리는, 유치한 행복에 젖어 있는 무리와 진정으로 자유로운 무리 사이에는 엄청난 심연이 존재한다. -232

그렇게 진지해질 필요는 없는 것이지 않을까. 알고 있는 것들을 모조리 나열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웃으면서도 그 모든 지혜를 나누어 줄 수 있고, 농담에도 그 것들을 담아낼 수 있다.

ㆍ상상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 말로 다할 길 없는 천복의 가르침은,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것과 비슷한 옷으로 위장하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동화는 다분히 황당하다. 그리고 심리학에 대한 독서가 위험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33

ㆍ영웅이 얻으려는 것도 그들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영광, 말하자면 그들의 불로 불사적 존재를 가능케하는 권능이다. 이 기적적인 에너지 본질만이 불명적인 존재이며, 도처에서 이 에너지를 현현시키고 나누어주고 표상하는 신들의 이름과 형상은 가변적인 것이다. -237

진정한 불멸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신의 모습을 쫓는 것이 아니라 신이 가진 권능을 진정으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신의 형상은 사회가 만들어낸 산물에 불과하다.

ㆍ육체의 불로불사를 구하는 것은 전통적인 가르침을 오해한 데서 기인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눈동자를 크게 해서, 육체와 그 종자(從者)인 개성이 더 이상 시야를 가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248

불사초를 구하던 왕은 지금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ㆍ만물은 나아가고, 일어나고 되돌아온다. 나무는 꽃을 피우나 오직 뿌리로 되돌아가기 위함이다. 뿌리로 되돌아감은 정일(靜溢)을 찾음이다. 정일을 찾음은 천명으로 합일함이다. 천명에 합일함은 영원에 합일함이다. 영원을 아는 것은 깨달음이요, 영원을 깨닫지 못하면 혼란과 마(魔)가 인다.

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구히이란 천상적인 것과 다름아니다.

<천상적인 것이 도(道)다. 도는 영원이다. 여기에 이르면 육체가 썩는 것도 두려워할 바 아니다.> -248

ㆍ예술, 문학,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두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게 해주는 가교인 것이다. -249

ㆍ생명의 우넟너은 개인의 핵이며, 인간은 자기 내부에서 그것을 찾아낸다. - 말하자면 인간이 자기 내부의 뚜껑을 열어 젖힐 수 있을 때 그렇다. -250

3. 귀환

1. 귀환의 거부

ㆍ영웅의 임무가 수행되었다고 하더라도 모험 당사자인 영운은 아직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 -253

귀환은 영웅이 반드시 다시 거쳐야 하는 하나의 시련이 될 수 있다.

ㆍ이 은혜가 사회, 국가, 그 전체, 아니면 일만 세계를 재생시키는 데 환원될 것이기 때문이다. -253

귀환의 목적이 여기에 있다.

ㆍ저는 이 모든 것을 원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저에게 복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56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원하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것들이 나에게 복을 준다고 믿고 있다. 이런 믿음이 흔들려야 한다. 하지만 귀환 후에도 세상에 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아직은.

2, 불가사의한 탈출

ㆍ과학과 영감을 넣어 끓이려 했다. 요술책의 도움을 빌려 카리드웬은 주전자에다 이 두가지 혼합물인 시커먼 덩어리르 놓고 불 위에 얹어 1년간, 끓이면, 영감의 진국이 딱 세 방울 나오게 되어 있었다. -258

영감은 정말 작다. 나는 지금 시커먼 덩어리를 끓이고 있는 주전자인가. 1년간의 수련이 끝나면 영감의 진국 세 방울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ㆍ심연의 권능에는, 섣불리 도전하면 안된다. -263

ㆍ생의 의지로 충만해 있던 그는 바위를 들어 그 창조의 세계와 사멸의 세계를 막았다. 그때부터 이 바위는 우리는 눈과 무덤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269

비석을 세우는 의미. 입구?

ㆍ단일 신화가 완성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적인 실패나 초인간적인 성공이 아닌, 인간적인 성공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269

나는 인간적이니까 인간적인 성공을 읽고 그 성공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3. 외부로부터의 구조

ㆍ나무는 열매를 맺고 소원을 성취시킨다는 의미에서 <세계의 축>이다. -276

트리

ㆍ천신만고 끝에 얻은 재생의 영약을 가지고 돌아가 원래 속해 있던 사회와 맞서면서 그들의 까다로운 신문과 서릿발 같은 증오와 맞서야 한다. 뭐가 뭔지 영문을 모르는 선한 사람들까지 설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280

얻게 된 홍익을 가지고 귀환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들

4. 귀환 관문의 통과

ㆍ두 세계, 곧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삶과 죽음, 밤과 낮처럼 서로 다르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281

구체적인 설명의 힘듬. 그래서 결국은 자기 자신이 다녀올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ㆍ이승과 서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281

ㆍ자격 미달인 개인에게는 초월적인 경험이라는 만만치 않은 짐이 될 수가 있다.

자격이 있어야 한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초월적인 경험을 먼저 하게 된다면 개인적인 파멸까지 가져올 수 있다.

ㆍ심층에서 솟아난 지혜와, 속세에서 유용한 분별 사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이 존재한다. -281

현실과의 괴리감.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겪어야 하는 것들. 이 안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현실을 떨치기는 힘들다. 결국 우리는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내가 본 것을 잃어버리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살아야 한다.

ㆍ수십만 번 제대로 가르쳐지기도 했고, 그릇 가르쳐지기도 했던 것을 어떻게 다시 가르친단 말인가? -282

영웅에게 남은 과제. 가르친다는 것을 순수 말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ㆍ오로지 감각의 배타적 증거에만 급급하는 일반인에게 어떻게 저 만유의 근원인 공(空)을 설명한단 말인가? -282

ㆍ귀환하는 영웅이 당면하는 첫 번째는 문제는, 성취의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체험을 겪은 이후에 덧없는 기쁨과 슬픔, 삶의 범용과 소란한 외설스러움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문제다. 왜 그런 세상으로 되돌아와야 할까? -282

그리워하면서도 돌아오고 싶지 않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건가? 그래도 나는 돌아와야 하는데. 내가 해야할 일들이 있는데. 은거하기는 차라리 쉬울 수 있지만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고통 받을 수 있지 않을까?

ㆍ백 년이라는 주기는 전체성을 의미한다. -288

일년이 현실의 백년이라는 등식이 자주 등장하는 원인인가?

ㆍ인간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세계는 변화와 죽으로 보이고, 신들의 눈으로 보면 불변하는 형상, 곧 끝없는 세계일 뿐이다. -288

ㆍ자기 모험을 완성하기 위해서, 귀환한 영웅은 세계의 충격을 견디어야 한다. -291

느낀바에 충족되던 세상과 다를 수 있음. 모험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견뎌야 한다. 우리가 생업을 포기하지 않고 잡고 있어야 하는 이유인가?

ㆍ카미르 알 자만의 기나긴 이야기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운명이 모든 이에게 다 구체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안으로 뛰어들어 이를 체험하고, 반지를 얻어 다시 현실로 귀환한 영웅에게만 가능하다. -294

5. 두 세계의 스승

ㆍ니체는 우주적인 춤의 신 Cosmic Dancer은, 한곳에 붙박혀 있지 않고 이곳저곳을 가볍게 떠돌아다닌다고 주장한다. -297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신의 모습의 니체식 표현

ㆍ나의 모습은 수십만 가지니, 그 종류와 형상이 가지각색이니라. 볼지어다. 모든 신들과 천사들을. 일찍이 인간이 보지 못했던 경이로움을 볼지어다. -300

ㆍ저들은 다른 이가 아닌, 내 손에 죽었음이라. 아르쥬나여 너는 내 칼에 불과하니라. -302

미움없이 상대방을 죽이는 것? 그것이 가능한가? 신의 전령이 되는 것이.

ㆍ오직 믿는 마음이면 나를 알 수 있고 참답게 볼 수 있으며 내게 들어와 하나가 될 수 있으니라. 항상 나를 위해 일하고 오직 나만을 목적으로 알고, 진실로 나를 정성으로 믿으며, 아무것에서 집착하지 않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악의를 품지 않는 자, 그런 자가 내게 오느니라. -306

ㆍ개인적인 야망을 무화시킨 개인은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건 거기에 몸을 맡겨버린다. 말하자면, 익명의 인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제 법Law은 그 안에서 거침새가 없다. -206

이렇게 되고 싶은 것이 아닌가?

6. 삶의 자유

ㆍ자기 삶을 영위하려면 죄악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참으로 구역질나는 것이다. -307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죄악을 벗어버리고 싶은 인간의 발버둥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처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그냥 그저 하는 행동들이 엄청난 모순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리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고 절망하고 상처받고 숨어버린다.

ㆍ죄악을 불가피한 것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부류도 있는 것이다. -307

이러한 부류가 될 때, 인간은 자신과 다른 냄새를 풍기는 그런 자들을 배척하게 된다. 내가 양보하고 타협한 것들을 피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질투가 결국은 대상에 대한 미움으로 발전하게 된다. 결국은 합리화한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는 또 하나의 발버둥에 불과하다.

ㆍ그러므로 애착을 떠나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하라…… 너의 모든 일을 나에게 맡기고 네 생각을 가장 높은 자아에 모으고, 원망(願望)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되, 흐트러지지 말고 나가 싸우라. -308

ㆍ영웅은 생성된 것의 투사(鬪士)가 아니라, 생성되는 것의 투사다. 왜냐하면 그는 현재 존재하기 때문이다. -313

실존주의 Here & Now

4. 열쇠

ㆍ이 승리는 세계의 어머니인 여신과의 성적 결합(신성한 결혼), 창조자인 아버지에 의한 인정(아버지와의 화해), 그 자신의 신격화(神格化), 혹은 적대적인 능력이 그의 힘에 벅찰 경우에는 전리품의 가로채기(신부 훔치기, 불 훔치기)로 나타난다. 원래 이 승리는 자기 의식의 확장이며, 존재와의 합일이다. (깨달음, 변모, 자유) -317

ㆍ기환의 관문에서 초월적인 권능의 소유자는 뒤에 남아야 한다. 영웅은 혼자서 그 무서운 왕국에서 귀환한다(귀환, 부활). 그가 가져온 전리품(홍익)은 세상을 구원한다(불사약). -317

연구원 과정과 겹쳐보인다. 사부님의 도움을 받아 일년동안 자신에 대해서 연구하고 자신의 책에 대해서 걸어가다가 1년 후에는 사부님을 남기고 돌아와 자신의 일을 자신이 해내야 한다.

ㆍ오랜 세월에 걸쳐 마모와 손상을 거쳤기 때문에 신화나 옛 이야기의 윤곽은 원래 애매한 법이다. -317

ㆍ전기나 역사나 과학으로 읽힐 때, 신화의 명은 거기에서 다한다. 왕성하게 살아 있는 이미지들이 옛날 다른 하늘 아래서 있었던 까마득한 사실들로 전락하는 거시다. 한 문화가 자기네 신화를 이런 식으로 번역할 때 그들의 삶은 고갈되고 그들의 사원은 박물관이 되며, 과거와 미래의 끈은 끊어지고 만다. 이러한 오류는 성경이나, 많은 기독교 의식에 대해서도 자행되어 왔다. -319

신화는 신화적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 비단 신화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그렇다. 각개의 언어로 이해해줘야 한다. 어린아이를 대할 때는 어린아이의 언어로 동물을 대할 때는 동물의 언어로 이해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분명 쉽지는 않은 일이다. 내가 나만의 언어라고 확고히 믿는 것이 있다면 더 그렇다.

ㆍ기독교를 향한 우리들의 입문 의식이었던 이 세례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예수의 말에는 이 의미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322

유아세례를 받았다. 의미는 몰랐다. 자라고 나서도 그 의미는 몰랐다. 재생의 의미다.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는 것은 이전에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알지 못하고 그저 행했었다.

제2부 우주 발생적 순환

1. 유출

1.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ㆍ신화 체계란 전기나 역사, 그리고 우주론으로 오독(誤讀)되어 온 심리학이다. -326

많은 심리학자들이 신화 해석에 힘써 이 같은 말들을 남겼다. 신화는 심리적인, 개인적인 것들을 표현해주고 있다는 것,

ㆍ그들은 불합리하게 신경증적 투사라는 방법을 통해 무의식을 싱제 행위에다 여관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완숙하고, 온당하고 실재적인 이해를, 엄격한 통제 아래 유아기적 원망(願望)이나 공포로 되돌려 놓는 것일 뿐이다. -327

무슨 말인지

ㆍ이 힘은 모든 구성물의 생성 원리이고, 그들이 이 세상에 현현해 있을 동안 그들을 지탱하고, 그들을 채우며,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돌아갈 귀소(歸巢)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에서는 에너지라고 부르고, 멜라네시아인들은 <마나mana>, 수우족 인디언들은 <와콘다 wakonda>, 힌두교도들은 <샤크티>, 기독교인들은 <하느님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신분석가들은, 심성에 나타나는 이 존재를 <리비도 libido> 라고 부른다. -330

하나의 대상을 지칭하는 엄청나게 많은 언어들. 각기의 신화들도 지금 보는 이 단어들처럼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지겹도록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ㆍ신화는 부수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현상계 저쪽 세계(공空, 혹은 범주를 초월한 존재)로 들어가 적멸에 드는 것이다. -330

ㆍ우리가 우주적 능력의 근원은 보지 못하고 그 능력에서 투사된 현상계의 형태만 볼 수 있는 것은 의식이 응축되었기 때문인데, 이 의식의 응축 현상은 초의식을 무의식으로 바꾸어 놓는다. -331

현재 나의 의식의 응축으로 단편적으로 보이는 현상계의 형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ㆍ영웅은, 살아 있을 동안에, 창조과정 중에는 지각되지 않는 초의식의 요구를 알고 이를 대리하는 자다. 영웅의 모험은,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나타낸다. 이 순간은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우리의 살아 있는 죽음의 어두운 벽 너머의 빛의 길을 발견하고, 이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 -331

살아 있을 동안에. 그 동안에 아는 것이다.

ㆍ이러한 상징이 인간의 운명, 인간의 희망, 인간의 믿음, 인간의 어두운 신비의 메타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333

2, 우주의 순환

ㆍ이 우주적 소멸이 끝나고 새로운 우주의 형성(키케로의 이른바 혁신)이 시작되면 모든 존재는 그 존재를 반복하고, 모든 신, 모든 인간은 그전에 하던 역할을 다시 맡는다. -334

유한한 우리의 일생만을 놓고 본다면 세상은 언제나 변화무쌍한 듯 보이지만 세상을 굴리는 커다란 수레바퀴를 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언제나 순환하고 있는 중임을 알게 될 것이다.

ㆍ이 최상의 인간들은 죽자마자 신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종교 이야기 같은 것을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신들의 손으로 넘어갔단다. 그들의 천성이,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못지않게 완벽했던 탓이었다. -335

많은 것을 알아야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많이 알지 못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배움은 우리의 눈을 가릴 때도 있다.

ㆍ살아 있는 존재의 일상적인 실제 체험이나 살아 있는 우주의 광대한 양상은 같은 것이다. -339

ㆍ보이지도 않고, 말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추정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고, 그릴 수도 없다. -339

절대보편적인 진리의 모습. 그래서 아는 자는 말이 없다는 말.

ㆍ우스꽝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보여도 신화 체계는 마음을, 가시(可視)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비현현의 세계로 향하게 한다. -340

처음에 신화를 읽었을 때는 그냥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다. 아니 차라리 전래동화라면 교훈적인 내용이라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건국이나 신에게 신성을 부여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말그대로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이기에. 그것은 내가 신화의 은유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화의 문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3. 허공에서 - 공간

ㆍ우주의 끝을 헤아리고, 그 끝이 곧 시작임을 아는 자라야 현자라고 불릴 만하다. -342

ㆍ신화 체계의 문법을 숙지하고 나면 비극적이란 표현은 천만부당하게 느껴진다. 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존재는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꿈으로 존재한다. -342

ㆍ마음이 정상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 마음이 좋아하는 이미지나 전통적인 이미지에 안주하여 할 때 신화 체계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다. -343

신화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신화의 문법 체계를 알아야 한다.

4. 공간의 내부에서 - 생명

ㆍ회임(懷妊)에서 생산이,

생산에서 생각이,

생각에서 기억이,

기억에서 의식이,

의식에서 욕망이.

언어가 풍성해졌다.

언어는 어렴풋한 의식 안에 있었다.

언어가 밤을 만들었다.

큰 밤, 긴 밤,

낮은 밤, 아주 높은 밤,

누껍게 느껴지는 밤,

만져지는 밤,

보이지 않는 밤,

죽음과 더불어 끝나는 밤, -349

ㆍ내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데? -355

세상에 모든 것이 하나로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된다면 두려움은 사라질 수 있다.

ㆍ그래서 이 인간의 몸은 (아내를 얻기 전에는) 쪼개진 강낭콩의 반쪽 같았다. -355

둘이 됨으로 완전해 진다.

ㆍ애정의 궁극적인 경험은 곧 이원성이라는 환상의 배후에 <둘은 곧 하나>라는 등식의 깨달음이있다. 이 자각은, 우주의 만상(인간, 동물, 식물, 심지어는광물까지도) 하나라는 자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애정의 체험은 우주적 체험으로 확산되고, 이 자각에 이르게 한 애인은 창조의 거울로 확대된다. -357

공감

5. 하나에서 여럿으로

ㆍ하늘은 우리에게 낯선 존재이게 하고, 땅은 우리를 보살피는 어머니로 우리 가까이 있게 하도록 하자. -359

아버지가 하늘, 어버니는 땅

ㆍ창조의 현실이란 중심점에서 보면, 타이마트의 육신은 자발적으로 이에 응한 것이다 .따라서 그 육신을 도륙한 손은, 희생자 자신의 의지를 따르는 대리인의 손에 지나지 않는다. -365

ㆍ이 장미는 십자가에 의해 인류에게 피어나는 장미다. -366

6. 창조의 민화

ㆍ그것 보아라, 네 운명을 네가 골랐다. 인간에겐 끝이 있을 것이다. -368

그래서 인간이 유한하게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우리의 운명은 아마도 우리가 고른 것일 것이다. 우리의 전생은 부모이고, 우리의 후생은 나의 자식이다.

ㆍ이 야자 열매는 땅에 떨어져 부서지면서 아름다운 두 여자로 화했다. -371

하나의 생명이 죽으면서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

ㆍ악마(탐욕스러운 돌머리이자 예리하고 영리한 사기꾼)는 언제나 이런 h강대다. 이러한 광대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서는 승리하나, 그들 자체나 그들의 업적은 무대가 초월적인 차원으로 옮겨지며 간단히 사라지고 만다. 그들은 그림자를 본질로 오해한다. 그들은 그림자 영역에서의 필연적인 불완전성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이곳에 남아 있는 이상 장막을 걷힐 수 없다. -372

2. 처녀 잉태

1. 어머니 우주

2. 운명적 모태

ㆍ그러기에 내가 뭐라더냐, 너는 필멸의 길로 들어섰다. -384

앞 부분에 돌멩이를 던져 인간의 운명을 정한것과 비슷하다.

ㆍ주도권은 아이들의 사회로 넘어갔다. 상징적이고, 몽상적이었던 부모의 모습은 원초의 심연으로 함몰했다. 풍요한 대지에는 오직 인간만 남았다. 순환은 계속 진행되었다. -389

3. 구세주를 낳는 자궁

ㆍ그분은 당신과 같은 인간의 마음 저쪽에 있습니다. 가난뱅이 인지는 모르나 그분은 부(富)의 원천입니다. 무서운 분인 동시에 자비의 근원이십니다. 뱀으로 만듯 옷이든 부속으로 수놓은 옷이든, 입는다면 마음대로 벗기도 할 것입니다. 비실재의 창조자이신데 근본이 어떻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시바는 내 사랑이십니다. -392

4. 미혼모의 민화

ㆍ잉태하는 능력은 도처에 널려 있다. 종작없는 생각, 혹은 시대의 숙명이 구세주인 영웅이나 세계를 파멸시키는 악마를 잉태케 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393

3, 영웅의 변모

ㆍ전에는 사상(事象)의 실체가 보였지만 이제는 그 부수 효과만 인류의 눈, 작고 현실적인 동공의 초점 앞에 모일 뿐이다. 따라서 이제 우주 발생적 순환은, 보이지 않게 될 신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갖춘 영웅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세계의 숙명은 바로 이 영웅들을 통해 실현된다. -396

세계에 영웅들이 필요한 이유, 더 이상 신들이 그역할을 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을 한 영웅들에 의해서 실현될 것이며, 우리는 이러한 영웅을 만나던지 되야만 하는 것이다.

ㆍ말하자면, 정열의 절제, 예술의 폭발전인 발달, 경제 구조의 태동, 문화적인 기관의 대두를 통한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월우(月牛)의 화신이나, 운명의 팔괘라는 초월적 지혜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희망에 따라 행동하는 완전한 인간정신이었다. -398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시절

ㆍ신적인 존재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는, 전능한 자아의 계시다. 삶에 대한 묵상은, 따라서 정확한 모당에 이르는 전주곡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내재적인 신성(神性)에 대한 명상의 형태여야 한다. 말하자면 <이러저러하게 행동해서 선함을 얻는 것>이 아니고 <이를 앎으로써 신이 되는 것>이다. -400

영웅이 너무 초인간적인 모습이라면 그렇게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는 영웅을 기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다. 그가 한 모양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영웅을 인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가 간 길을 따라갈 수 있다. 그가 간 길을 따라 영웅이 될 수도 있다.

ㆍ해가 저물고 별이 나오자 그는 중얼거렸다.

“저기에 신들이 있구나.”

그러나 새벽이 밝아 별들이 사라지자 그는 다시 중얼거렸다.

“저것들은 신들이 아니니, 내 섬기지 않겠다.”

이윽고 해가 뜨자 그는 다시 속삭였다.

“이것이야말로 신이니, 내 마땅히 찬미하리라.”

그러나 해가 지자 그는 고쳐 말했다.

“신이 아니었구나.”

달을 보자, 그는 신을 부르며 섬기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달이지자 그는 소리쳤다.

“이 역시 신이 아니라. 어디엔가 저들을 움직이는 분이 계실 것이다.” -407

변화하는 모습들은 모습 그대로 신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안의 신을 본다면 그것안에 신도 발견할 수는 있을 것이다.

ㆍ문제의 숙명적인 아기는 기나긴 암흑의 기간을 견디어야 했다 .이 기간은 극히 위험하고, 장애물이 많은 상황이며, 치욕을 당하는 기간이다. 그는 자기 내부로 깊이, 혹은 미지의 세계인 외부로 건져졌다. 어느 경우든 그를 당혹케 하는 것은 미지의 암흑이다. -409

ㆍ모든 것은 자연의 법칙과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412

청년 크리슈나의 이야기. 크리슈나는 근원적인 존재의 화신이다.

ㆍ거기에서 물항아리가 깨어지면서 소년이 나왔다. -414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깨어지면서 진정한 자신이 등장한다. 진정한 자신이 등장하기 전에 자신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먼저 깨어져야 한다 .그것은 아플 수 있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만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다.

3, 전사로서의 영웅

ㆍ영웅이 탄생하는 곳, 혹은 영웅이 도피 또는 추방당했다가 보통 인간들 사이에서 성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오는, 머나먼 땅은 세계의 중심, 혹은 세계의 배곱이다. 물결이 물밑의 바닥에서 번져나오듯, 우주의 형상도 이 근원에서 둥글에 퍼져나간다.

ㆍ바로 이 배꼽에서, 영웅은 자기 운명을 자각하러 떠난다. 그의 장년기 행적은 세계에다 창조적인 힘을 쏟아붓는다. -421

ㆍ신화적인 영웅은 <이루어진> 사상(事象)의 옹포자가 아니라 <이루어지는>사상의 옹호자다. -422

ㆍ폭군은 자만한다. 그리고 자만은 바로 폭군이 파멸하는 씨앗이다. 폭군은, 자기 힘을 자기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만한다. 따라서 그는 그림자를 본질로 오인하는 광대역을 맡고 있는 셈이다. -422

자만은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을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이 믿어야 할 힘과 능력은 그림자가 아니라 본질이어야 한다.

4. 애인으로서의 영웅

ㆍ처녀는, 영웅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영웅 자신의 운명의 이미지다. 428

ㆍ쿠훌린은 바쿠와 사과가 굴러간 길에서 한 발자국도 옆으로 ltsk가지 않도록 애쓰면서 평원을 지나갔다. -429

이것은 운명적인 기적의 상징이며 교훈이다. 그러나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애는 써야 하는 거다.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ㆍ최고의 영웅이란 우주 발생적 순환의 원동력을 추진시키는 영웅이 아니라, 눈을 다시 뜨고서 오고 가며 기쁨과 고뇌가 교차되는 세계의 파노라마를 통해 하나의 실재가 다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깨치는 영웅이다. 이러한 영웅이 되려면 보다 깊은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432

<기억의 양피지 캄베드>가 생각난다. 솔로몬왕에게는 지혜가 있었다.

ㆍ인간의 시각이 평형 상태의 인간적 측면으로 기울어질 때, 천상적 능력의 체험은 그것으로 끝난다. -437

6. 구세주로서의 영웅

ㆍ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각기, 크리슈나에게서 자기의 모습들을 보았다. -440

신?

ㆍ모두들 슬퍼하지 말아요. 죽지 않고 영생하는 인간은 있을 수가 없어요. 자기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부터가 틀린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오직 생과 사의 끝없는 순환일 뿐입니다. -440

ㆍ어제의 영웅은, 오늘 <스스로>를 십자가에 달지 않으면 내일의 폭군이 된다. -442

ㆍ아들은 아버지를 시해하지만,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 수수께기 같은 인물들은 원초적인 혼돈 속으로 해소된다. 이것이 바로 세계 종말 그리고 재개(再開)의 비밀이다. -442

7. 성자로서의 영웅

ㆍ산들바람에 나부기는 마른 잎처럼 육신은 세계를 떠다니되 영혼은 이미 다시 없는 천복의 바다로 해소된 뒤다. -443

8. 영웅의 죽음

ㆍ말할 필요도 없이 죽음에 겁을 먹는다면 그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445

무덤과 화해한다. 하나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진정한 자신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인가?

4. 소멸

1. 소우주의 끝

ㆍ놀랄만한 권능을 가진 영웅(손가락으로 고바르단 산을 들어올릴 수 있고, 자기 몸을 우주의 엄청난 영광으로 채울 수도 있는)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458

누구던지 영웅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영웅의 길을 걸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ㆍ단테의 <신곡>은 이 단계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연옥편>은 육신의 욕망과 행위에 얽매인 영혼의 참담함을, <정화편>은 육신의 경험이 영혼의 경험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천국편>은 정신적 자각의 단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462

언젠가 꼭 읽어봐야 겠다.

ㆍ신들은 영혼이라는 존재 자체가 투사된 것이다. 이 영혼이 참 상태로 돌아갈 때 신들도 모두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466

2. 대우주의 끝

ㆍ개인이라는 창조된 형상이 결국은 소멸되고 말듯이 우주 역시 소멸된다. -468

이 소멸이라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의 소멸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운명지어진 것? 더 읽어봐야 겠다.

에필로그

신화와 사회

1. 변신자재자(變身自在者)

ㆍ프로테우스로부터 배우기를 바라는 삶의 항해자는 <그에게 바싹 달라붙어 그를 조여야 한다 .그러면 그는 온전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교활한 신은 아무리 재주 있는 질문자에게라도, 그 질문자에게 자신의 지혜의 전부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478

그 길이 힘듬을 은유하고 있는 것인가?

ㆍ갖가지 판단은 판단자의 견해에 따라 결정된다. -478

심리검사 수업에 TAT검사를 직접 실시해오라는 과제가 있었는데 이야기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때론 한계가 될 수도 있다.

2. 신화, 제의(祭儀), 명상의 기능

ㆍ개인은 이 모두일 수가 없다. 따라서 개인의 전체성은 개별적인 구성 인자로서가 아닌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개인은 한 구성 요소일 수 있을 뿐이다. -479

개인으로는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러기에 공감은 때로 엄청난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ㆍ사회라는 단위에서 볼 때 그 단위에서 단절된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쓰레기다. 남자든 여자든, 정직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성직자든, 매춘부든, 여왕이든, 노예든) 충실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동사를 쓸 자격이 있는 인간이다. -480

나는 이 단어를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인간인가.. 나는 내가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소화하고 있는가? 아니 한 번이라고 소화한 적이 있는 인간인가?

ㆍ의무의 길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에서 추방된 자는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추방은, 탐색 모험의 첫 단계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이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길은 자기 내부에서 탐색되고 또 발견되어야 한다. 성별, 연령별, 직업별 차이는, 우리 인간의 특질상 본질적인 것이 아닐, 이 세계의 어느 단계에서 우리가 한동안 입고 있는 옷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481

이 옷에 나는 얼마나 큰 집착을 해 왔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마치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나인 양 착각하고 그것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옷이 더러워지면 마치 내가 더렵혀 진듯 했고, 더 좋은 옷을 입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것은 남들이 인정하는 모습을 의미할 수도 있고 때로는 남들이야 어쨌든 내가 좋은 옷을 차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ㆍ그에겐 세상을 보는, 완전성에 이른 눈이 있기 때문이다. -483

그리하여 그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는 항상 중심을 마주할 수 있다.

3. 오늘날의 영웅

ㆍ현대 영웅의 위업은 영혼이 균형을 이루고 있던 잃어버린 아틀란티스 대륙의 불을 다시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 -484

현대 영웅의 과제. 영웅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사명감?

ㆍ차라리 그것보다 필요한 것은 전체 사회 질서의 진화다. 그래야 세속적인 삶의 의무와 행위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실제로 내재하고 또 그만큼 효과적인, 보편적인 신인(神人)의 이미지에 생명력을 부여하여, 이를 의식화시킬 수 있을 거이기 때문이다. -486

개인의 생활을 통해서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 영웅은 자신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앎을 간직하고도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부딪힘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ㆍ이제는 오직 인간만이 결정적인 수수께끼다. 인간은 아득한 존재와 더불어 끝나야 하고, 이 아득한 존재를 통해 자아는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해야 하며, 이 상회의 이미지 전체가 개선되어야 한다. 인간은 그러나 <내>가 아닌 <너>로 이해되어야 한다. -488

ㆍ그날이 도래한 듯 살라 -488

니체

ㆍ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하여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488


내가 저자라면

조셉 캠벨의 책이 세권째 이다. 그래도 아직 그의 책은 어렵다.

이 책은 커다란 네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인 원질신화, 1부인 영웅의 모험 2부인 우주 발생적 순환, 에필로그가 그것이다.

프롤로그치고는 어마어마하게 긴 원질신화에서는 가장 먼저 유사한 신화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다른 책들이 그러했듯이 이 책에서도 신화가 가진 유사성을 기반으로 하여 글을 쓰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또 여기에서 신화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정신분석학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에서 신화를 받아들이는 입장과 우리가 꾸는 꿈과 신화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와 신화의 연관성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1부 영웅의 모험에서는 중제목과 소제목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각 장에서는 그의 주장과 함께 적재적소에 신화들이 배치되어 있다. 신화의 전문을 끌어 오는 것이 아니라, 해당되는 부분만을 끌어다 적고 있다. 이로 인해서 독자들은 자신이 어디쯤을 읽고 있는 것인지 쉽게 알 수 있고, 또 각 신화의 유사성을 한 눈에 비교해 볼 수 있다.

2부 우주 발생적 순환에서는 고대 신화들이 담고 있던 세계의 모습과 영웅의 발생과 소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 부족의 고대 신화에서 세계의 시작에 대한 모습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어찌하여 하늘과 땅이 둘이 아닌 하나인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고 세계는 항상 생성되고 소멸되는 속에 있음을 알아 우주의 순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민족이나 부족들의 신화나 민화에 대해서도 소개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우리는 신화들이 가지고 있는 그 공통점들을 다시 한 번 잘 더듬어 볼 수 있다.

다른 책들에 비해서 작은 제목들이 적절하게 분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어렵다. 단숨에 읽어나가기에는 아직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원질신화의 부분에서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프로이드와 융이 등장한다. 프로이드의 학문을 조금 더 현실에 맞게 발전, 재해석 한 것이 융이다. 정도만 알고 있는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융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조금 더 이해가 쉬웠을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이 많이 발견되었다. 예전에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쓴 책 <교양>에 1부에는 읽지 않고 건너뀌어도 무방하다고 적은 교육제도에 대한 공간이 있다. 이처럼 알고 있는 자는 읽지 않아도 되는 융에 대해서 간략하게 적어 놓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융에 대해 이해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독자가 되어 책을 읽는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융에 대한 부분의 궁금증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귀환 후의 영웅의 행적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부분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세로운 세계를 본 영웅이 어떻게 기존의 사회로 돌아와서 적응을 하는 것이냐는 문제였다. 혹은 자신이 가져 온 불사약을 사람들과 어떻게 공유하느냐의 문제였다고 해야할까? 그부분에 대한 언급은 정말 짧다. 영웅은 초인적인 조력자는 그 세계에 두고 자신의 힘으로 귀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모든 모험을 끝낸 영웅에게는 하나의 과제가 더 남아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과제에서 실패를 겪은 영웅의 모습도 소개되고 있다. 신화의 상징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알겠으나 그것이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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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4.18 06:21:24 *.35.19.58
'신화의 현실 적용'은 읽은이들이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네.
나도 캠벨의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려 애쓰고 있는데 역시 쉽지가 않아.
루미, 수고 많이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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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11.04.18 09:35:12 *.98.16.15
어렵다하지만 책을 꼼꼼이 읽은 티가 나는 걸..^^
재경 웨버님 말처럼 아마 어떤 모습으로 사회로 귀환할지는 각자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어떤 형태가 되었든지 스승님 말씀처럼 "세상에 공헌하는 삶"의 형태를 담고 있는 삶이 아닐까.
변경연 우리들의 삶 말이야.. ^^

입학여행 이후, 이제 본격적인 연구원 생활이 시작되었으니
올 한해 책에 깊이, 아주 깊이 빠져들다보면 영웅의 한 사이클을 돌아온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거야.
물론 그 사이클이 몇번을 계속해서 나선형으로 도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기도 하고..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첫번째 사이클을 도는 해이니만큼, 매주 한권 한권 소중히, 차곡차곡 쌓아가기바래.
나 또한 함께하며 계속 응원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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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4.18 11:02:25 *.219.84.74
찾기 쉽지 않은 소중한 글을 찾았구나.
'알렉산더 엘리옷이 쓴 <Universal Myths>라는 책에 실린 조셉 캠벨의 서문'의 전문은 한번 읽어보고 싶구나.
어려움이 있어서 두번, 세번 읽을 욕심이 생기는 지도 모르겠다.
너가 궁금해 하는 것을 나도 궁금해했는데. 다음 주에는 답을 찾아보는 심경으로 재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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