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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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箴)’은 바늘, 곧, 침(鍼)에서 가져온 말이다. 침이란 병든 곳을 치유하거나 병을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했던 것인 만큼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예방하고 반성하며 결점을 보완하려고 짓는 글을 ‘잠’이라고 했다. 또 ‘명(銘)’이란 자신의 곁에 두고 있는 물건들을 면밀히 살펴 그 이름과 용처를 정확히 이해한 뒤에 그 기물에 스스로를 반추하며 새기는 글을 말한다.
그렇기에 둘은 모두 거울과 같다. 글을 짓고 곁에 두어서 늘 스스로를 비추고, 자신을 살피며 허물을 짓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는가 하면, 이미 지은 허물을 씻어 내어 몸과 마음을 정하게 닦아 흐트러짐 없이 공부를 이루어 도(道)의 경지에 다다르려는 경계의 글인 셈이다.
- 이지누 지음, <관독일기> 중에서
잠명(箴銘)은 자신과 삶을 위한 지침이자 경계의 글입니다. 보통 ‘잠’은 종이에 적고, ‘명’은 늘 곁에 두거나 자주 사용하는 물건에 새깁니다. <관독일기>를 보면 인격과 실력 모두 탁월했던 철인(哲人)들이 잠과 명으로 스스로를 부단히 갈고 닦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회재(晦齋)·이언적 선생님은 평생 세 차례 잠명을 지어 성찰의 거울이자 삶의 신조로 삼았다고 합니다. 첫 번째 잠명은 27세가 되는 새해 아침에 지은 ‘원조오잠(元朝五箴)’이고, 두 번째는 30세의 마지막 달에 쓴 ‘입잠(立箴)’입니다. 세 번째 잠명은 ‘자신잠(自新箴)’으로 58세가 되는 새해 아침 유배지에서 지은 것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님은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과 며느리들에게도 ‘잠’을 주었습니다. 아마 오랜 유배 생활로 자신이 가족을 건사하지 못함을 잠명으로나마 보충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물건에 새기는 ‘명’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님의 장검 두 자루에 새겨져 있는 친필 검명(劍銘)입니다. “석 자 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三尺誓天 山河動色)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一揮掃蕩 血染山河)” 이 검은 전쟁이 한창 중인 1594년 4월에 도검 명장으로 보이는 태귀련(太貴連)과 이무생(李茂生)이 제작한 것입니다. 이 검명을 보면 장군님이 어떤 마음으로 전쟁에 임했는지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두 자루의 칼과 8자의 검명을 보며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 장군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잠명은 남이 아닌 자신을 경계하고 성찰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도 바늘(箴)로 찌르듯 나를 다잡아주고, 돌에 새긴(銘) 글자처럼 확고한 잠명을 지어보면 어떨까요? 그것을 늘 곁에 두고 아침 밤으로 자신을 밝고 맑게 바로잡아 보면 어떨까요?
<관독일기>에서 제 마음으로 들어온 잠명 중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계곡(谿谷) 장유 선생님의 소잠(小箴)입니다.
거울에 때 끼어 밝지 않아도
원래가 밝지 않은 것이 아닌 만큼
때를 닦아 내면 다시금 밝아지고
물이 흐려서 맑지 않아도
원래 맑지 않은 것이 아닌 만큼
흐린 물 걸러 내면 다시금 맑아지네
그대의 때 벗겨 내고
그대의 흐림 걸러 내면
거울보다 밝고 물보다 맑은 그것
본래 상태 회복하여 참된 삶 지키리라
IP *.255.183.217
그렇기에 둘은 모두 거울과 같다. 글을 짓고 곁에 두어서 늘 스스로를 비추고, 자신을 살피며 허물을 짓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는가 하면, 이미 지은 허물을 씻어 내어 몸과 마음을 정하게 닦아 흐트러짐 없이 공부를 이루어 도(道)의 경지에 다다르려는 경계의 글인 셈이다.
- 이지누 지음, <관독일기> 중에서
잠명(箴銘)은 자신과 삶을 위한 지침이자 경계의 글입니다. 보통 ‘잠’은 종이에 적고, ‘명’은 늘 곁에 두거나 자주 사용하는 물건에 새깁니다. <관독일기>를 보면 인격과 실력 모두 탁월했던 철인(哲人)들이 잠과 명으로 스스로를 부단히 갈고 닦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회재(晦齋)·이언적 선생님은 평생 세 차례 잠명을 지어 성찰의 거울이자 삶의 신조로 삼았다고 합니다. 첫 번째 잠명은 27세가 되는 새해 아침에 지은 ‘원조오잠(元朝五箴)’이고, 두 번째는 30세의 마지막 달에 쓴 ‘입잠(立箴)’입니다. 세 번째 잠명은 ‘자신잠(自新箴)’으로 58세가 되는 새해 아침 유배지에서 지은 것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님은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과 며느리들에게도 ‘잠’을 주었습니다. 아마 오랜 유배 생활로 자신이 가족을 건사하지 못함을 잠명으로나마 보충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물건에 새기는 ‘명’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님의 장검 두 자루에 새겨져 있는 친필 검명(劍銘)입니다. “석 자 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三尺誓天 山河動色)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一揮掃蕩 血染山河)” 이 검은 전쟁이 한창 중인 1594년 4월에 도검 명장으로 보이는 태귀련(太貴連)과 이무생(李茂生)이 제작한 것입니다. 이 검명을 보면 장군님이 어떤 마음으로 전쟁에 임했는지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두 자루의 칼과 8자의 검명을 보며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 장군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잠명은 남이 아닌 자신을 경계하고 성찰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도 바늘(箴)로 찌르듯 나를 다잡아주고, 돌에 새긴(銘) 글자처럼 확고한 잠명을 지어보면 어떨까요? 그것을 늘 곁에 두고 아침 밤으로 자신을 밝고 맑게 바로잡아 보면 어떨까요?
<관독일기>에서 제 마음으로 들어온 잠명 중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계곡(谿谷) 장유 선생님의 소잠(小箴)입니다.
거울에 때 끼어 밝지 않아도
원래가 밝지 않은 것이 아닌 만큼
때를 닦아 내면 다시금 밝아지고
물이 흐려서 맑지 않아도
원래 맑지 않은 것이 아닌 만큼
흐린 물 걸러 내면 다시금 맑아지네
그대의 때 벗겨 내고
그대의 흐림 걸러 내면
거울보다 밝고 물보다 맑은 그것
본래 상태 회복하여 참된 삶 지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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