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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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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9일 16시 45분 등록
변화는 순간 변신을 꿰하는 놈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변화될 수 밖에 없는 계기가 존재할 때에만 결과적으로 변화라는 변곡점에 도달한다. 그런 점에서 변화는 곡선이다. 마치 주식시세의 캔들챠트와 비슷하다. 우상향의 직선이면 좋겠지만, 성공과 실패, 희망과 실망은 늘 변화의 곁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변화는 실패에서 성공으로, 성공에서 실패 사이를 반복한다. 그 둘 모두가 변화이다. 실패에서 성공으로의 변화가 우리가 원하는 변화의 모습일 뿐 그 반대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 반대에 대해서 우리는 “그건 변화가 아니야!” 라고 애써 말할 뿐 이다.

더 나은 자신을 위한 변화를 위해서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테스트 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에는 ‘남은 하는데 나는 왜 못할까?’ 혹은 ‘남은 하지 못하지만 나는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가정이 들어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개개인의 여건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평등한 출발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와 남이 평등한 상황에서의 출발이 가능할 때 아무런 사전 조건 없이 오로지 나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 평등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모든 출발은 불평등으로 가는 지름길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변화와 성공을 비관하는 많은 이유도 지금의 불평등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한 것 이다. 그렇다면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작에 앞서 모두가 평등할만한 가정을 찾아보고 시작을 하자.

그 가정을 [한국의 정체성. 탁선산]에서 끌어내고 싶다. 철학자 탁선산씨는 철학을 과거의 책 속에서 현재의 문제로 끌어오는데 탁월함이 있는 분 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한글’로 규정했다. 물론 더 확장된 논의는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동감한다. 학벌과 재산, 체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한글이라는 언어를 공통적으로 읽을 수 있으며,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글’이야 말로 모든 사람을 일직선 상에 모이게 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도 수많은 변수는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각기 다른 사람을 일직선에 서게 하는 방법 중에서 최상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언어 특히 한글을 통해서 모든 것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행동으로 전이될 뿐 이다. 회사에서의 신규사업과 혁신업무 등의 모든 것은 생각에서 시작된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언어로 떠오르게 되고, 그 언어가 보고서로 만들어져서, 그것이 공감을 얻게 되면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 이다. 비단 이러한 모든 것은 회사에서 뿐이 아니다. 사랑이 그렇고, 지금 생각하는 머리 속에서 회전하는 회전체의 질량도 언어의 수에 비례한다. 머리가 복잡한 이유도 생각하는 언어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일 선상에서 시작을 함에도 차이는 나게 마련인가 보다. 철학자 도울 김용욱 선생님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영어를 읽고 쓰는 능력을 넘어서 영어로 외국인을 웃기게 할 줄도 안다고 한다. 하지만 영어에 관해서 “나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이 영어를 글로 표현해서 상대에게 감동을 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동일 선상에서 시작함에도 그 끝에서는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또다른 예를 들어볼까 한다. [경영을 말하다. 톰 피더슨]에서 인용하고 싶다. 경영학자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그는 “R&D 사업부에 시인을 참여시켜라” 라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올렸다. 우리가 생각하는 R&D 분야는 전자, 기계, 마케팅 등의 전문가 집단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마치 시인의 작업과도 같다는 것 이다. 언어를 쥐어 짜내고, 남이 생각지 못한 단어를 사용하고, 소위 말하는 컨버젼스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과 R&D 사업부의 역할은 비슷하다는 것 이다.

위에서 가정과 가정으로부터 도출에 적잖은 변수들이 있겠지만, 나는 아무리 동일한 선상에서 시작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더 큰 의문은 동일 선상에서 변화를 원하는 이는 많으나, 시작의 총소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이가 많은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각을 많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이는 많지 않고, 자꾸 평등한 조건임에도 불평등한 조건에 대해서만 말하는 이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는 순간 시작의 총소리를 듣고 변화를 위해 앞으로 질주하는 이의 뒷모습만 쳐다보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자신의 처지를 깍아내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시도도 하지 않고, 그 성공과 실패를 미리 두려워하는 것 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언어로 하루를 시작하고, 언어로 하루를 마루리 한다. 회의 시간에 상대가 말하면 그 동안 ‘나는 무슨 말을 할까?’ 머리 속에서 언어가 맴돈다. 그걸 표현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훌륭하지 못할지라도 해 보는 습관을 통해서 고쳐야 한다. 시작하지 않고는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책을 출판하기 위함도 아니다. 진정 내가 하는 일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진진한 고민의 시도임과 동시에 자신을 테스트해 보기 좋은 기회일 뿐이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지 모른다. 매일 스스로에게 보내는 한 장의 보고서를 만들고, 같은 지하철을 타는 옆 사람에게 붙이지 않을 편지도 써보고, 동료에게 사내 메일을 통해서 멋진 시 한 구절을 보내보자. 회사에서 느낀 불만과 동시에 해결책을 함께 한 장씩 만들어 보자. 자신에게 놀랄 것이고, 메일을 받는 동료도 좋아할 것 이다. 그렇게 준비한 것들이 어느 순간 변화로 나타날 것이며, 변화라는 놈이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또다른 변화를 준비할 것이다. 한 장씩 쌓인 종이 속에 검은 글자는 나의 경쟁력으로 남아서 언젠가는 유용한 무기로 변해 있을 것 이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한글인 언어는 학벌, 인맥, 직위, 재산 등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시 언급하지만 동일선 상에서 그토록 원하던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것 이다. 이것으로 한 번 자신의 변화를 시도해 보라.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잘 다듬어서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로부터 테스트도 받아보고 그것을 발전해 나가면서 자신의 변화에 밑그림을 그려 나가면 좋을 것 같다. 자신의 경쟁력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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