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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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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9일 22시 02분 등록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를 한 두 개만 고르라면 무슨 단어를 고르겠는가? 나는 이제껏 ‘창조’라는 단어를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살아왔다. 워낙 단순한 일의 반복을 싫어하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터였다. 글과 그림, 건축물과 그릇, 꽃과 나무... 무엇이 되었든 나로 하여금 환호하게 하고 갖고 싶게 만드는 것은, ‘아름다움’이었기에 ‘창조’없는 인생은 가치가 없다고까지 생각해왔다.


그런데 오후에 산책 중에 ‘소통’이라는 단어가 섬광처럼 다가왔다. 백수생활이 한 달 반을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다섯 달 정도 더 쉬면서,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새롭게 살아갈 힘을 도움닫기하고 싶었다. 백수 기간을 충실하게 살리려면, 무엇에 올인해야할까 골똘하게 궁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막 읽은 정여울의 책에서 자극받은 내용이 있었다.


- ‘지금 여기서 할 수 없는 일은 그때 거기서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백만장자가 되어야만 할 수 있다고 믿는 일들을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한 잡일을 씩씩하게 처리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일상의 최전방에 배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을 신명나게 함으로써 하고 싶지 않았던 일에게까지 신바람을 전염시킬 방법은 없을까. -


상상해보라. 내가 원하는대로 삶의 조건이 이루어진 상황을. 내게는 그것은 ‘두 군데의 삶의 base'이다. 하나는 도시에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 속에 위치한 장소이다. 나는 두 군데를 오가며 살면서 더 다양하고 충만한 시간을 접하기를 기대한다. 누구 말마따나 오전에는 텃밭을 가꾸고, 오후에는 산책을 하고, 저녁에는 철학을 논하고, 밤에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 누군가와 완전한 합일이 없다면, 오두막에 살든 대 저택에 살든 그 곳이 감옥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통’은 ‘사랑’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수명이 긴 개념이다. 아버지는 오남매 중에서 나를 제일 이뻐해 주셨다. 말수가 적은 전통적인 아버지였지만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나는 자유롭고 존귀해졌다. 아버지와 나는 완벽하게 소통하였던 것이다. 20대의 농활시절, 농촌과 농민에 대해 사정없이 열린 내 마음은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었다. 제 값을 받지 못해 밭에서 얼어붙은 고랭지 배추와, 팽나무 아래 드리워진 달빛과, 나뭇단을 타고 내려오던 지겟길... 그 모든 것과 나는 통하였다.


내가 나의 마음 가는 곳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즐길 수 있다면, 즉 내가 나와 소통할 수 있다면 혼자 노는 것이 즐겁다. 혼자 놀다 지치면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책 속의 저자일 수도 있고, 블로그의 방문객일수도 있고, 번개로 만난 그 누구일수도 있고 가족일수도 있다.
그 모든 만남에 진정한 소통이 된다면, 돌연 우리는 행복해진다.


정여울이 스스로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거의 금치산자에 가깝다고 말할 때, 나는 웃었다. 그녀의 어떤 문장들을 소리내어 읽으며 나는 행복했다. 적당한 사교술이 아니라, 정말 언어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나는 진심으로 기쁠 것이다. 가족주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은 빠지고 의무만 남은 가족을 부정한다. 진정한 소통을 찾아 땅끝까지 갈 용의가 있다. 결국, 모든 것이 미비한 백수시절이든, 조금은 이상적인 조건에 다가간 때이든, 내가 모색하고 노력하고 기꺼이 가꾸어야 하는 것은, '소통'의 방법과 질인 것이다.

통하였느냐, 이 한 마디에 하루의 희비가 결정된다.

IP *.81.1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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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6.10.20 21:00:30 *.190.172.207
통하였느냐?
一以貫之
지식은 가르쳐 줄 수있지만
깨달음은 전수할 수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체득해야할뿐
자연과 하나될 수있는 나
너와 나가 하나되어 우리가되면 좋겠습니다.
궁하면 통할 수있다합니다.
명석님 보고싶은 마음이 궁합니다.
곧 통할 수있겠지요?
좀 다른 비약이 되어버렸습니다.
서로가 연결되어지지 않는 것이 어디있을까요.
우리는 세상모든것과 연결지어져있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것들과 통해야합니다.
여유로움 속에서 새로운 통찰과 차조적인 명석님을 만나서 통하는 최고의 날이 되시기를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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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6.10.20 21:50:06 *.81.21.241
기원님, 이상하게 충동적으로 5분만에 쓴 글이라, 데리고 들어온 자식처럼 안쓰러운 글에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게다가 글 속에 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 자꾸 마음이 쓰이거든요. 한 번 자리를 만들어 불러주시면 가지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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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6.10.21 23:05:46 *.178.220.202
짧은 시간에 쓴 글이지만 누님의 올해 변화의 모습을 확 느끼게 하는 글입니다.
그렇네요. 누님의 과거,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드러납니다. ㅎㅎ
특히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다는 마음에 시선이 한참 머물렀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찰'자 돌림이 좋습니다.
자신을 늘 돌아보고(성찰), 꿰뚫어 볼 수 있는(통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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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6.10.21 23:16:11 *.81.24.118
와~~ 실시간이다! 병곤씨, 커뮤니티 꼭지에 쓴 글이 좋네요. 누군가를 계발시키려고 역사적 사명을 띠는 것보다, 내가 선 자리에서 내 마음을 열어보이는 글이 훨씬 좋던데요, 나는. 그런데 그 출판사가 어디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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