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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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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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12일 16시 10분 등록


내 인생의 후반부에 대한 구상은 ‘창조’와 ‘커뮤니티’로 축약된다. 이는 ‘혼자 놀기’와 ‘함께 놀기’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을 듯하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 삶에 실망할수는 있어도 너무 심각해지지는 말아라. 인생은 한 바탕 놀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잘 노는 사람들이 잘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변화경영연구소를 통해 좋은 커뮤니티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사람마다 관심분야에 따라 다양한 커뮤니티를 택하겠지만, 좋은 커뮤니티를 이루는 요건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좋은 커뮤니티가 되려면 우선 구성원의 자기실현을 돕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인간은 무의식중에 늘 나아지기를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소모적인 여흥에는 한계가 있다. 프로그램은 조금도 심오하거나 복잡할 필요가 없다. 프로그램의 제안자와 참가자간에, 선배와 후배 간에 진실된 방향성이 있으면 충분하다.


연구소에서는 1년간의 자기학습을 통해 2년차에 자신의 책을 출간하는 목표를 골간으로 한다. 단순할 정도로 명쾌한 이 목표를 위해서도 해마다 몇 십명의 지원자가 몰린다. 1차 서류심사는 스무 페이지의 ‘나의 이야기’이다. 그 정도 분량을 꾸려낼 수 있는 기본적인 성찰능력을 본다고 할까.


그 다음 최종심사는 몇 주에 걸친 인턴기간이다. 약 한 달간 지원자들은 한 주에 한 권의 필독서를 읽고, 리뷰와 함께 그 책에서 건진 주제를 가지고 한 편의 컬럼을 써야 한다. 그런데 그 책들이라는 것이 평소에 자주 접하지 못한 철학, 경영서로 꽤 두껍고 딱딱하다. 책깨나 읽어왔다는 사람들도 재미가 없어서 ‘구토가 날 지경’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그렇게 어려운 책을 소화하기도 버거운데, 주제 하나를 채택하여 컬럼을 쓴다? 미처 소화시키지 못한 이론을 펼쳐놓느라 어깨에 힘이 바싹 들어가고, 마치 덜익은 밥처럼 문장이 서걱거린다. 대부분 직장인인지라 주말을 다 바치고도 모자라 밤을 새우기가 일쑤이다. 맘에 드는 문장 하나를 얻기위해 동네를 몇 바퀴 돌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기 안에 이런 열정이 남아있는 것을 감탄하고 무한한 몰입과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그런데 지원자들은 결코 다른 지원자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바로 ‘어제의 나’와 경쟁을 한다. 따라서 현재 도달한 수준보다도 얼마나 변화에 절실한가가 당락기준이 되기도 한다.


3기 연구원의 커리큘럼은 더러 얇은 시집이나 가독성이 높은 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어려운 사회과학 서적이다. 직장과 병행하며 1주일에 한 권 이런 책을 읽으려면, 거의 여유시간을 갖지 못하게 된다. 책에서 읽은 주제를 어떻게 일상생활과 연결시켜 글감을 찾을까 끊임없이 궁리해야 한다. 그런 후에 또 쓰기연습. 연구원들은 이렇게 1년간 읽고 쓰는 훈련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훌쩍 크게 된다. 이제 어지간한 책은 조금도 겁나지 않는다. 뚝딱 읽고 리뷰 한 편, 컬럼 한 편을 써 낼 수 있게 된다. 연구근육이 강화된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좁혀온 자신의 관심사를 확정짓고, 자신의 책을 갖기 위한 싸움에 돌입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2007년 2월부터 연구원 출신 저자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연구소에서는 누군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수업을 하지 않는다. 연구원은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통해 스스로 커 나가며, 평생 혼자 갈 수 있는 훈련을 하게 된다. 자기목표가 뚜렷한 사람들의 자기학습을 통해 자기실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첫 번 째 책의 출간’ 같이 분명한 목표도 필요하다. 그 후로도 계속해서 1년에 책 한 권씩 출간한다는 지속적인 성장목표가 있다. 자기실현 프로그램은 어렵거나 대단할 필요는 없지만, 자체적으로 완결적이며 지속적일 필요가 있다.


연구소가 뛰어난 점은 단지 지적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람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이는 구본형의 철학에서 시작되어 일거수일투족에서 완성되는 알짜배기 생활원칙이다. 어떤 목표, 어떤 활동도 그 이전에 사람이 먼저라는 것. 이 때의 사람중심이란 추상적인 인본주의가 아니라, 바로 눈 앞에 서 있는 구체적인 인간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절대로 타인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구본형의 생활철학은 그대로 연구원들에게 전이된다. 그 결과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연구소에 포진하게 되었다. 어떨 때는 인종전시장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령과 경험, 관심과 기질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다.


특이한 것은, 지적인 사람과 감성적인 사람이 제각기, 개방적이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제각기, 20대의 대학생과 환갑의 역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존귀함을 증명받으며 제 목소리를 내고있다는 사실이다. 적지않은 나이에 흔치않은 경험을 한 나역시 이 곳에서 부딪치고 깨지며 나의 고질적인 습관을 버릴 수 있었다. 사람을 평가하고 분류하고 좋은 사람만 좋아하는 버릇을 놓고 비로소 사람을 있는 그대로 껴안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개인 구본형의 라이프스타일 덕분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료로 실험하며, 그 결과를 프로그램화한다. 시처럼 살고싶다는 신조를 조용히 전파한다. 요컨대 종이 위에는 아름다운 싯귀를 쓰고, 거리에 침을 뱉는 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나를 항복시켰다.


이렇게 해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커뮤니티란, 자기실현을 위한 방향성과 관계맺기의 훈련이 되는 시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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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4.12 16:28:11 *.166.0.204
한 선생님 정말 멋진글, 좋은 지적입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한문장으로 압축하는 쉽고도 명쾌함을 보았습니다. 3기연구원은 행운은 얻었지만 일차로 일년을 견디어야 하고, 이차로는 책을 써야하고, 삼차는 책의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지요.(여기서 좋은 평가란 베스셀러가 아님)

중도에서 그만두지 않게 한선생님께서 북소릴 울리세요. 만나서 심하게 꾸짓기도 하구요. 그게 선배가 후배에게 보내는 사랑이고 교육이 아니 겠습니까.
좋은 글일고 가쁜한 맘으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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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4.12 17:56:50 *.114.56.245
처음에는 '나의 욕심이다'였습니다. 가지치기가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 또다른 가지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평균적 일상을 훨씬 뛰어넘는 하루하루이지만 그 곳에는 생명력이 있고 향기가 있습니다. 선배님의 글
맑은 개울물 속에 반짝이는 조약돌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 조약돌 아래에는 붕어도 놀고있고 가재도, 그리고 무수한 생물들이 쉬었다 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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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12 20:39:00 *.70.72.121
왜 한선배님이 글을 안 올려 주시나 했지요. 아침에 칼럼을 받아 읽고서는 음~ 8키로그램이나 .. 하며 그래서 기운이 없으셨나(그럴리 없죠)
3기가 번개 모임하며 속으로 내내 한선배님이 좀 가차이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후배는 선배의 질타가 정말 많이 필요하거든요.

언제고 서울 나들이 하실땐 귀뜸해 주시면 좋을 텐데.. 자주 뵈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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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04.12 21:38:36 *.227.204.84
누님, 많이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누님 짱~ 제가 더 챙겨드릴테니 맘 놓으시우. 조만간 1,2기 합동 모임 있을 예정이오니 기다리옵소서. 누님 감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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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7.04.12 21:57:18 *.252.102.167
이름처럼 명석한 글입니다 ^^ 생각한 것을 어떻게 그렇게 조리있게 잘 표현하실 수 있는지요? 너무 부럽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도 말씀하신 대로 사람이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또 한명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주제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들...이곳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는 정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저도 더불어 닮고 싶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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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4.13 05:38:41 *.72.153.12
저는 여기에서 놀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부대끼며 살 수 있으니 너무 좋습니다.
좀더 자주 뵐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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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007.04.13 13:36:29 *.103.132.133
와우.. 미탄님. 드디어 글을 올리셨네요.
많이 기다렸어요. ^___^
가벼워진 무게만큼이나
어느때보다도 명석님의 글이 더욱더 간결하고 명쾌하네요.
모두가 원하듯이.. 팬미팅 언제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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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탄
2007.04.13 13:58:22 *.216.120.76
제 글을 관심있게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방금 행복숲에 포크레인을 기증한 소식을 읽어서인지, 제 글이 너무 이론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며 사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과 연결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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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7.04.13 14:07:17 *.211.61.193
사부님의 커뮤니티와 연구원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적절하게 표현을 잘 해주셨네요. 사부님의 뜻을 맥을 짚어나가듯이 분석하시는 솜씨가 이미 달인의 경지입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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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4.14 06:02:49 *.48.44.248
군더더기 없는 글, 잘 읽었습니다.
변.경.을 소개하는 글에 실리면 아주 안성맞춤일듯 싶습니다.
살 빠지신거 축하드리고 계속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담에 뵐 날이 기대됩니다(부담 팍팍..)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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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4.15 13:55:25 *.112.72.193
'연구근육' ^^
가장 모범적인 선배님의 조언이니 무조건 믿고 따라해야죠.
한명석 선생님.. 요즘 글에서 사람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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