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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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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19일 14시 18분 등록
그러니까 남해에서 올라오는 날, 차멀미 기운이 있어 한 끼도 먹지 못했다. 그리고는 2,3일후 내가 별로 음식을 먹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 인생의 하프타임을 맞아 생각이 많은데, 잘못 살았다! 는 생각이 뒷덜미를 치는 순간, 식욕을 관장하는 신경이라도 건드렸나 보았다.


그래? 그렇다면 난생처음 다이어트라는 걸 해볼까, 몸이 가벼워지면 막연히 땡기던 춤도 춰보고. 이렇게 해서 하루에 과일하나 혹은 밥 서너숟갈만 먹기 시작한 지 19일째, 완연히 몸이 가벼워졌다. 사각 턱도 훨씬 봐줄만하다. ^^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한 두시간은 운동도 하려고 한다. 주로 빨리걷기. 앞으로 운동이 아주 좋아질 것같은 예감이 든다. 그리고는 신기하다. 오래된 습관적 과식증을 놓을 수 있을 것같다. 그런데 왜 달라졌지? 이 못말리는 분석병.


대답인즉 ‘타자의 발견’이다. 오래도록 내 안에 갇혀 살았다. 그러니 내모습을 반사해 줄 거울을 갖지 못한 것도 당연지사. 그러다가 연구소에서 임자 만난거다.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되쏘아주고, 최선의 내가 되고 싶게 만드는 ‘타자의 발견’!


무조건 무의식적으로 먹고 보는 습관에 제동을 걸고, 가벼워진 맛도 보고, 더 가벼워질 것같은 예감도 들고 무엇보다, 나를 재료로 하는 실험에 할 말이 추가되어서 좋다. 언어에 지나치게 의미를 두는 나는, 확신이 가지 않는 말은 하지 못한다. 자연히 화제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내 빈약한 레퍼토리에 하나가 추가된 것이다. 사람이 달라지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 한 달 정도 안 먹고 살아도 아무 지장없다. 다이어트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일을 하지 않은 지 7개월 반이 되었다. 작년 후반 4개월 동안은 첫 번 째 책을 쓰겠다는 일념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막상 나온 원고는 밋밋했다. 이유인즉 내 글쓰기가 정보를 취합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감성으로 다가서는 쪽이기 때문이다. 가령 시니어타운에 대해 글을 쓴다면 시니어타운에 대한 모든 통계를 뒤지는 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고, 칼리지 링크형이라든지 내게 와 닿는 사례 하나를 후벼 파는 것이다. 그런데 단일항목에 대한 자료나마 없고, 경험적 깊이도 없으니, 나의 언어가 미비하고, 글이 밋밋할수밖에.


올해 1,2월은 이사하랴 아들 군대보내랴 어영부영 지나갔고, 3월이후에 집중적으로 원고를 고치고 있는데 잘 안된다. 기대치만 높아지고 글은 안 써진다. 장기전으로 나가야 할 것같다. 일단 원고를 살짝 밀어놓고 무차별 독서를 계속해야 할 것같다. 인풋이 있는데, 설마 아웃풋이 없을라구. 오히려 두 번 째 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영역이다. 삶이 힘겨울 때, 마음을 읽고 싶을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사랑을 불러올 때... 같은 식으로 항목을 나누어 책을 추천하는 것이다. 몇 년에 걸쳐 내가 발굴한 좋은 책 리뷰모음집이다. 각종 매체에서 권장하는 추천서가 너무 어렵다는 것, 쉽고도 좋은 책을 찾는 일이 의외로 어렵다는 데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 작업을 위해 하루 8시간 노동을 결심한다. 4시간 책읽기, 2시간 글쓰기, 2시간 써핑 및 신문보기. 무언가 하고싶은 일이 있다는 것이 좋다. 저술가/여행가/강연가/새로운 삶의 운동가... 이것은 구소장님이 스스로 명명한 직업이지만, 나도 기꺼이 내면화하고 싶다. 그 외에는 하고 싶은 일이 없다. 작가가 아니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제부터 나의 노력을 실험하고, 나의 운을 실험하는 일에 전부를 건다. 이제껏 나의 삶에 부족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구나. 조용한 희열이 몰려온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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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19 15:37:47 *.70.72.121
선배님! 따끈한 차를 함께 나누고 살랑이는 봄 저녁 산책하는 기분이듭니다. 참 어려운 선배였는데.. 맛난 점심에 초대하고픈 생각이 드네요. 언제 한번 그리 하겠습니다. 응해주시는 거지요?

그 길이 선배의 운을 실험하는 것이라는 생각 저는 들지않아요. 그길에 묻혀서 사실 따름이지요. 그렇게 사노라면 언젠가는~ 하는 노래처럼 오히려 그 길에 더 빨리 도달하는 선배를 보게 될 거라는 확신마저 드는 걸요. 결단을 축하드리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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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4.19 22:06:35 *.221.128.238
아, 내게는 용건없이 만나서 이바구하고 그런 경험이 별로 없어요.
소읍에서 오래 살면서, 나는 추상으로 뭉친 사람인데, 모두 일상생활에 갇혀 있어서 혼자 놀던 버릇이 그대로 굳은 것 같아요.
조금씩 연습해나가야 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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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2007.04.20 00:11:24 *.103.132.133
명석님~~ 저랑 함께 춤추는거 잊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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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4.20 09:15:05 *.152.82.31
한선생님 글을 읽을때면 햐~ 하는 감탄사는 많이 남발했지만 왠지 나랑은 맞지 않는단 생각을 참 많이 했었지요.
그런데 이 글은 나랑 딱 맞아요.
현실속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거지요.
말만 많은 세상속에서 말만 가지고 사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이제 한선생님의 참살이가 시작되는 느낌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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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4.20 10:08:55 *.221.217.213
모모, 물론이지요. 나의 새로운 실험에 '춤'을 제대로 추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로님, 현실에 발을 딛고 우뚝 서서 언제나 넉넉하게 베푸는 모습이 참 믿음직합니다. 자로님으로 해서, 소장님의 인덕이 더욱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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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오병곤
2007.04.20 10:32:52 *.248.117.3
두 번째 책 아이디어 좋은데요. 북 리뷰보다는 테마별로 누님이 먼저 마음을 나누는 편지를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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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4.20 10:37:03 *.218.203.42
아.. 두번째 책 아이디어 정말 좋다!
테마별로 책추천-북리뷰-마음을나누는 편지가 되면 멋진 책이 한 권 나올 것 같아요. 게다가 한명석 선생님과 잘 어울리는 컨셉인것 같아요. 아.. 읽는 순간 삘이 확 꽂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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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희
2007.04.20 10:49:16 *.86.169.137
기어 변속 중이신거 같아요. 저는 운전자의 판단과 느낌을 믿습니다.

가끔 나 하나의 세상에 같혀 있다가 많은 이들의 지식과 혜안을 접하는 경험을 하면 내가 그만큼 작게 느껴진 적이 참 많이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본능적으로 비교를 하는거 같아요. 저도 사회안에서 살아야 하니까 말이죠. 또 그 자극과 나눔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선생님을 보면 저때의 세월 속에서도 변화할 수 있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저에게 하나의 희망으로 보여진다는거 아세요? 개인적으로 이러한 알림이 좀더 빨리 멀리, 퍼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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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2007.04.20 12:39:49 *.183.177.20
아, 8시간이나 읽기와 쓰기의 노동을 하실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부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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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4.20 16:09:33 *.216.120.68
자산, 옹박/ 으~~ 민망. 마치 첫 번 째 책이 나온 것 같네요.
하지만, 두 분의 아이디어는 접수하지요. ^^
종희님/제가 하려는 일도 바로 그거예요. 우리 사회는 아주 오래된
연령차별주의에 갇혀 있지요.
경빈/한 가지가 좋으려면 다른 몇 가지가 불편한 걸 감수해야 한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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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4.24 13:36:20 *.114.56.245
언어에 지나치게 의미를 둔다는 말씀, 저는 이러한 선배님 모습에서 언어에 예리한, 그리고 신선한 감각을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했는데 ---- 저는 감성이라는 녀석이 늘 앞설려고 해서 때론 왔다갔다 하거든요. 아무튼 많이 배우고 느끼고 합니다. 좋은 책 기대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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