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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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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일 15시 24분 등록

삼십 삼년을 살아 온 것 이외엔
무엇 하나 삼년 이상 진드커니 해 본 일이 없다며
군시렁 대는 선배였다.
혼잣말인지 대꾸를 청한 것인지 잘 몰라서
잠깐 리액션을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선배는 독한 인도산 담배를 앙 깨물고 있다.
담배 연기가 사라지는 먼 허공을 보고 있는 걸 보니 특별히 대꾸를 원한 것은 아니다.

10월의 마지막날, 거리엔 비가 자작자작 내리고 있다.
어쩐지 선배의 그 혼잣말이,
컴컴한 bar 안에 빗물처럼 스며드는 것 같았다.
나는 마침 잭콕 한잔을 홀짝이고 있었다.
얼음이 다 녹은 잭콕은 딱 지금 내리는 비처럼 싱겁고 심심한 맛이 되어 가는 중이다.

선배는 이번 직장만큼은 무조건 삼 년을 채우겠다고 말하며
필터까지 빨아 피운 인도산 담배를 슥슥 비벼 껐다.
나 또한 남은 잭콕을 목에 털어 넣었다.  

우리들은 별 말이 없다.
아직 가시지 않은 매케한 담배 연기가 얇은 담요처럼 공기를 덮고 있다.
주인 아저씨는 전직 음반 회사 사장님다운 감각으로
'잊혀진 계절'과 'Falling leaves'를 틀어 주었다.

꼭 양을 닮은 강아지, bar의 '양'이가 자다 깬 얼굴로 귀를 쫑긋 세운다.
비오는 10월의 마지막 밤엔 두 노래가 제격이지! 하는 달관한 표정으로-
어느덧 비는 그치고 음악은 더 깊어진다.
이미 술은 떨어졌는데 우리들은 술도 없이 더 취해간다.
이렇게 10월이 가는건가...몽롱한 정신으로 '양'이의 또롱한 눈을 보다가.
양이가 강아지인지, 정말 양인건지 아주 잠깐 헛갈린다고 생각했다.

IP *.121.2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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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09.11.03 12:57:26 *.93.198.155
나리님,
맛깔스런 글솜씨에 빨려들어가듯 단숨에 읽어 내려갔네요.
고즈넉하고 약간 을씨년스러운 10월의 마지막 밤 풍경이 잘 묘사되었네요.
저도 소시적에는 10월의 마지막밤을 무슨 기념일마냥 거리도 배회하고 절친과 포장마차에서 술한잔 기울였는데 이제는 기냥 넘어가네요.
앞으로도 가슴에 와닿는 글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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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3 19:49:23 *.134.208.15
^^;;;좋은 말씀 해주시니 감사하네요!!
계획하신 일들은 잘 진행 중이신지 궁금합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더 좋은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추운 날에 신종 플루 조심하시구요!!
참!! 오늘 업무때문에 특허청 분을 만났는데 ㅋㅋㅋ
본인이 신종 플루 의심 환자라시며 얼굴도 안 마주치고 후다닥 서류만 전해 주고 가시더라구요!
그나저나 정말 걱정입니다. 플루플루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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