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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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삼년을 살아 온 것 이외엔
무엇 하나 삼년 이상 진드커니 해 본 일이 없다며
군시렁 대는 선배였다.
혼잣말인지 대꾸를 청한 것인지 잘 몰라서
잠깐 리액션을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선배는 독한 인도산 담배를 앙 깨물고 있다.
담배 연기가 사라지는 먼 허공을 보고 있는 걸 보니 특별히 대꾸를 원한 것은 아니다.
10월의 마지막날, 거리엔 비가 자작자작 내리고 있다.
어쩐지 선배의 그 혼잣말이,
컴컴한 bar 안에 빗물처럼 스며드는 것 같았다.
나는 마침 잭콕 한잔을 홀짝이고 있었다.
얼음이 다 녹은 잭콕은 딱 지금 내리는 비처럼 싱겁고 심심한 맛이 되어 가는 중이다.
선배는 이번 직장만큼은 무조건 삼 년을 채우겠다고 말하며
필터까지 빨아 피운 인도산 담배를 슥슥 비벼 껐다.
나 또한 남은 잭콕을 목에 털어 넣었다.
우리들은 별 말이 없다.
아직 가시지 않은 매케한 담배 연기가 얇은 담요처럼 공기를 덮고 있다.
주인 아저씨는 전직 음반 회사 사장님다운 감각으로
'잊혀진 계절'과 'Falling leaves'를 틀어 주었다.
꼭 양을 닮은 강아지, bar의 '양'이가 자다 깬 얼굴로 귀를 쫑긋 세운다.
비오는 10월의 마지막 밤엔 두 노래가 제격이지! 하는 달관한 표정으로-
어느덧 비는 그치고 음악은 더 깊어진다.
이미 술은 떨어졌는데 우리들은 술도 없이 더 취해간다.
이렇게 10월이 가는건가...몽롱한 정신으로 '양'이의 또롱한 눈을 보다가.
양이가 강아지인지, 정말 양인건지 아주 잠깐 헛갈린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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