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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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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5일 10시 29분 등록

나는 제법 인기가 있다.

아~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려니 손가락에 가벼운 경련이 일어날 만큼 부끄럽지만 사실이 그렇다. 적어도 우리 회사 구내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만큼은 확실하다. 내 차례가 되면 반찬을 배식하는 아주머니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더 많이 집어주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리로 와 동료들과 마주하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내 식판은 항상 풍성하다. 점심 식수만도 어림잡아 2,000명을 훌쩍 넘기는 커다란 식당에서 나는 어떻게 그 분들의 눈에 띄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나는 항상 그 분들과 눈을 맞춘다. 그리고 웃으며 인사한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인사 잘하는 아이로 통했다. 어디 가나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고, 어른들은 기특하다며 칭찬해주었다. 아마도 어린 마음에 신이 났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대단한 노력의 산물이냐 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큰 아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녀석도 인사 잘하기로 동네에서 유명하다. 별 이상한 걸 다 닮았다.

어릴 적부터 인사 잘하던 버릇이 여전하다. 건물 경비원 아저씨들에게도 늘 인사하고, 동네 떡볶이집 아주머니에게도 늘 인사하고, 집 앞에서 자주 마주치는 야쿠르트 아주머니에게도 늘 인사한다. 아내는 이런 내게 오지랖이 넓다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난 그 말이 그리 싫지 않다. 인사하는 게 어렵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지만, 난 늘 마주치는 사람과 인사를 안하고 그냥 지나치는 게 더 어렵다. 어차피 돈 드는 일도 아니니까. 인사를 잘하면 좋은 일이 많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간혹 애매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얼마 전부터인가 회사 앞에 조금은 초라한 행색을 한 아주머니 한 분이 김밥을 팔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라고 말은 했지만 나랑 불과 몇 살 차이 나지 않을 듯 보이는 그녀는 이런 일이 처음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초라해 보였던 이유는 비단 입고 있는 옷 때문만은 아니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서서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김밥 사세요~'라고 속삭이고 있었기에 더 그리 보였던 모양이다. 다행히(?) 아침을 못 얻어먹고 출근하던 길에 그녀를 발견한 나는 거금 1,500원을 내고 김밥 한 줄을 샀다. 그리고 며칠에 걸쳐 두어 번 김밥을 샀다. 물론 늘 그렇듯 웃으며 인사를 했고, 우리는 금새 서로 안면을 익혀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내가 아침밥을 구내식당에서 먹기 시작하면서 김밥을 사먹을 일이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늘 같은 자리에 서서 김밥을 판다. 횡단 보도 앞에 서면 저 멀리 건너 편에 그녀가 딱! 보인다. 신호가 바뀌고 그녀와의 거리가 좁혀지면 적절한 타이밍에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김밥을 사지는 못한다. 이미 말했듯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기 때문이다. 처음 한두 번은 견딜만했는데, 매번 인사만 하고 그냥 지나치자니 이게 못할 짓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늘 다니던 길로 못 가고, 조금 돌아가는 다른 길로 회사에 간다. 내가 좀 이런 식이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면 온통 땀 범벅이다.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8시 40분이면 닫혀버리는 구내 식당으로 뛰듯이 들어섰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판에 밥을 담는 순간 반찬을 배식하는 아주머니가 한마디 던진다.

"밥을 왜 그렇게 조금 먹어요?"
"대신 누룽지를 먹잖아요."
"음... 행복해 보여요."
"네?"
"아주 좋아 보인다고요."
"아~ 그래요? 그래서 살이 안 빠지나?."
"지금 딱 보기 좋아요."
"ㅎㅎ 고맙습니다~"
"우리 아들은 요즘 살이 너무 쪄서 맞는 옷이 없어요. 90킬로예요."
"저도 90킬로인데요. ㅡㅡ;"

식판을 들고 자리로 걸어가는 사이 입 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간다. 식당의 커다란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은 눈부시도록 찬란하고, 식판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된장국 냄새는 죽여준다. 아~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나, 이래 뵈도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다.

IP *.96.1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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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4.15 13:17:59 *.30.254.28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회를 보는 모습에서,

구성원 모두를 배려하는
유쾌한 센스를 느꼈습니다.

월요편지 글도 참 좋았지만,
직접 뵈니, 더 좋은 분이더군요. 

그런데, 어쩌나?
오늘 '행복'글은
그보다  더 좋아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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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5 14:22:47 *.96.12.130
'자연스럽게'라고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국민학교 6학년 때, 반장이라고 등 떠밀려 학예회 사회를 본 적이 있어요.
그 때 부반장이었던 똑똑한 여자 애가 사회용 멘트를 공책에 줄줄이 적어 줬거든요.
막상 앞에 나가서 그 멘트를 읽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이 어찌나 멍청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던지...... 그 기억이 남아서인지 사회를 보는 걸 많이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간혹 쉬운 자리에서라도 누군가 사회를 보라고 권하면 정색을 하고 사양했었죠.
 그랬던 저인데, 그냥 자연스럽게 앞에 서서 얘기할 수 있었던 걸 보면 편했던 거겠죠?

작년 장례식 때, 성우형이 음악을 틀었거든요. 밥 딜런 노래였는데... 그리고 장례식하면서
노래를 튼 건 자기가 처음이었다고 좋아했는데, 이번에 형은 노래를 불렀네요. 그 노래 부르는 모습
보면서 뿅! 갔어요. 노래도 좋고, 형이랑도 잘 어울리고...... 장례식에서 노래 부른 사람 1호로 기억할게요.
사실 그전에도 꿈벗 여행 사진에 찍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그 때는 이렇게 연구원이
되실 줄은 몰랐지요. 함께 하게 되어서 기뻐요.

현역 연구원들 수업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매번 잘 안되요. 올해는 진짜로 노력해볼게요.
고맙습니다. 자주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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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2010.04.15 13:19:57 *.36.210.247
90키로랬어. 키가 있기는 하지만 뺐다는 게 그거야? 한 달 후에 보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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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5 14:27:04 *.96.12.130
맞아. 누나. 살 뺀다고 큰 소리는 다 쳐놓고... 이제 겨우 고거야. 우짜지? ㅎ 그저 계속 뺄 밖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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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4.15 15:01:00 *.216.38.10
<행.복.비.만.>은 괜찮은 비만 아닌가요?

글을 읽고 있는데 씨익~ 하고 웃게 됩니다. 누가 '행복한 중독'에 걸린 사람 아니랠까봐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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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5 16:28:39 *.96.12.130
행복이라고 하더라도 비만은 싫어요. ㅎ 고도 비만인 일인으로써 일종의 노이로제라고 해야 하나? ㅎ 점심 먹으러 갔다가 아주머니를 다시 만났어요. 근데, 제 등 뒤에다 대고, "날씬하고 이쁘구만~~" 하고 소리 지르시는 바람에 엄청 무안했네요. 살! 빼고야 말겠어요. 하지만 세상엔 너무나 맛있는 것들이 많다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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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9 11:04:26 *.96.12.130
인건씨의 인터뷰와 모임에서 직접 만난 미옥씨의 분위기 사이에서 길을 잃었지요. ㅎㅎ

제 날씬한 모습도(?) 나쁘지 않아요. ㅋㅋ 조금 기다렸다가 확인하고 다이어트 시작하시는 것도 좋겠네요.

또 한번 다짐했으니 열심히 빼야겠어요. 이래저래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스스로의 발목에 족쇄를 묶는 걸 알면서도, 어쩌면 은근히 그걸 즐기고 있나봐요. ㅎㅎ 고마워요. 또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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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4.15 20:31:34 *.53.82.120
피해갈 수 없는 비만인구의 한사람으로서..
두분 보고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살 빼지 말아야 겠다."

날카로운 종윤선배는 어떤 느낌일까?
지금의 선배님 모습을 더 그리워하게 될 듯한 예감입니다.

ㅋㅋ
하지만 굳이 날씬한 선배님으로 태어나시겠다면
지금만큼 좋아해보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ㅎㅎ
제 다이어트는 선배님 하시는 거 봐서 시작해 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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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4.15 15:28:58 *.108.50.73
음, 종윤씨와 재엽씨는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 내가 느끼기엔.
재치와 발랄, 유능함, 하이톤, 그리고 통통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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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5 16:29:41 *.96.12.130
ㅎㅎ 다른 건 모르겠고, '통통볼'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네요. ㅎ 하지만 이제 통통볼 보실 날도 얼마 안 남았어요. 서두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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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4.15 20:55:21 *.74.255.51

그냥  괜찮은 관계보다는  도움이 되는 관계가 좋지 않을까?

그녀에게  마켓팅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하지 않을까?   스스로 깨닫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것 같은데...
구내식당이 있고,,,    목소리를 크게하고, 표정을 밝게 하고,  당당하게 유혹할 수 있게... 김밥으로..

종윤의 글이 ...  점점 더 재미있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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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6 13:44:49 *.48.246.10
형의 말을 듣고 아차! 싶었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제 오지랖이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거 같아요. 그 아주머니가 매일 빠지지 않고 나오면 편지라도 적어 드리면 좋겠는데, 조금 들쑥날쑥이더라구요. 흠... 형 덕분에 오지랖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차원의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살면서 실천할 방법을 찾아나가야겠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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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희
2010.04.16 16:27:19 *.142.217.231
저와 비슷한 성격이시네요.
인사하는 것, 뭔가 애석하거나 불쌍해보이는 모습 보면,
도움이 되고자 애쓰는 마음, 그렇지 못하면 안타까워하는 그런 것
염체없는 행동 못하는 것
그리고 오지랖이 넓은 것 등등

이런 자체가 저는 즐겁고 흐뭇하네요.

물론 다른 많은 면에서 선배님에 비해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요.

속초에서 고마웠고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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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9 11:06:20 *.96.12.130
아이고~ 왜 이러세요~~~

비슷하다고 해주신 말씀까지는 감사히 받겠으나 '선배님에 비해...' <== 이 부분은 도무지 엄두가 안나네요 ㅎ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힘내세요~ 또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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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뵤
2010.04.16 23:27:48 *.51.86.214
밥 앞이라 특별히 더 헤벌레~ 해진거 아녀? ㅋㅋㅋ
식당 아주머니, 동네 떡볶이집 아주머니, 야쿠르트 아줌마, 김밥 아가씨...
뭔가 공통점이 있어보이지 않으우? ㅎㅎㅎㅎㅎ
첫번째 읽을땐 몰랐는데, 두번째 읽고보니 그러하여.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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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4.27 19:05:02 *.154.57.140
정말이지..한참을 배꼽잡다 갑니다...ㅎㅎ 저도 공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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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1 15:07:35 *.96.12.130
그...그런거였어? 괜히 오바했구먼... 아 놔~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자빠졌다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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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뵤
2010.04.19 13:08:59 *.255.136.51
아뉘이!!! 오빠아!!!
내가 말하고 싶었던건 식당 아주머니, 동네 떡볶이집 아주머니, 야쿠르트 아줌마, 김밥 아가씨... 가 아니라
식당 아주머니, 동네 떡볶이집 아주머니, 야쿠르트 아줌마, 김밥 아가씨... 였던거지. ㅋㅋㅋ
아 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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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9 11:07:48 *.96.12.130
아놔~ 왜 경비 아저씨는 빼묵어? 어??? 나는 말이지. 여자들에게'도' 친절한 사람이라고!!! 뎀뵤야. 이러지마. 사는 게 순식간에 피곤해질 수도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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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10.04.17 10:55:42 *.253.6.153
뎀뵤님 말에 전적 동감. 뭔가 공통점에 일관성까지 있어보인다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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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9 11:08:24 *.96.12.130
누나!!! 뎀뵤는 그렇다치고 누나까지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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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ixiaozi98
2010.09.28 10:37:14 *.187.9.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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