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펄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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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나의 관념 속에 ‘시’는 예술가들이나 쓰고 읽는, 나와는 거리가 있는, 약간은 과도한 어떤 것이었다. 그런데 곰곰히 나에게 있어서의 ‘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니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보는 구청의 벽에 걸린 시 구절 하나가 메마른 나의 하루의 시작을 촉촉히 적셔주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구청을 지나는 길은 설레임을 동반하였다.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 새 한 마리만 그려 넣으면 남은 여백 모두가 하늘이어라 (이외수)
짧지만 강하게 마음을 울리는 한마디! 아침 출근길이지만 어느 날은 혼란스럽던 마음에 위안을 받았고 어느 날은 외롭고 서글프던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 또 어느 날은 꽉막혀있던 마음을 시원스럽게 뚫어주기도 하였다. 시는 생각보다 내 생활 속에 친근하게 다가와 있었다.
시란 무엇인가? 시인의 마음속에 있는 정서와 생각들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직설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또는 사물에 빗대어 풀어놓는다.
이런 시를 읽을 때 나는 어떠한가? 마음속에 뭔지 모를 알랑거림이 생겨나고 몽글몽글 감성들이 솟아나온다. 어떤 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게 하고 어떤 시는 마음속에 불덩이가 달아오르게 한다. 또 어떤 시는 마치 한 폭이 그림을 보는 듯 각박하고 복잡한 도시 풍경에서 떨어져 자연 속으로, 시상이 된 어떤 장면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한다.
그러고 보니 시는 내 마음의 안식처이자 놀이터였던 것 같다. 다만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 자주 찾지 못할 따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이들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은 알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입만 살아 있는 사람들. 아니면 너무나 감성적이어서 세속에서 살아가는 나와 같은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에 관심을 갖고 그들에 대한 책을 읽다보니 시인 또한 시를 매개체로 자신을 갈고 닦아 자아를 성장시키고 그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나와 다르지도 같지도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 또한 ‘언어’라는 재능을 가지고 자신을 연마하여 전문가가 되고 이를 통해 세상에 기여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주말에 아이를 위해 갔던 한국 민속촌에서 비보이, 말기예기수, 줄타기 장인의 공연을 보면서 나는 ‘한시미학산책’에서 만났던 시인들을 떠올렸다. 한 분야에 미쳐서 궁핍과 외로움을 견뎌내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그들은 서로 많이 닮아있었다. 누가 누구인지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줄타기 장인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처음에 그는 박수칠 줄 아는 사람들은 고단한 인생살이를 즐길 수 있는 분들이라는 말로 박수를 유도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라는 말로 박수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마지막으로는 전통놀이의 맥을 이어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열심을 다해 하고 있고 이렇게 보러온 사람이 많아 박수가 많은 날은 자신도 기쁘고 흥이 나서 마음이 즐거우니 힘든 기술도 힘을 덜 들이고 할 수 있다며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그의 말에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한시미학산책’에 등장한 많은 시인들이 그와 같이 자신을 몰아세워가면서 시를 써서 세상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장을 열어주었다. 줄타기 장인 또한 자신의 몸을 수십 년간 갈고 닦아서 줄 위에서 뛰고 걷고 재주넘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나 또한 가장 나다운 일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고 세상에도 기여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 이렇게 옛 시인들과 줄타기 장인, 그리고 나 사이에 끈끈한 연대가 형성되었고 그들의 말에 말 이상의 공감을 경험할 수 있었기에 흐른 눈물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감히 ‘시’란 내가 앞으로 살면서 추구해야할 그 무엇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일수도 있다.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 들어가는 그 모든 에너지들에 경의를 표하며 나 또한 그렇게 나의 온 영혼과 몸과 정신을 불살라 ‘시’ 혹은 다른 무엇인가로 나를 표현하고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