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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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을 내며_
어른이 할 수 있는 놀이에는 뭐가 있을까?
가장 대표적이고, 절대절명인 것으로 사랑 놀이가 있다.
조르주 상드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하라. 이 세상에 좋은 것은 사랑 뿐이다.” 특히 우리 나라는 젊은 남녀, 이제는 공공연하게 나이를 막론하고 연애를 국가 스포츠처럼 즐기고 있다. 노래와 드라마, 영화 등에서도 사랑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거의 대부분이라 할만하다. 심지어 영화가 사랑을 다루지 않아도 영화 산업은 연인끼리 함께 영화관을 찾는 문화에서 수익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므로, 혼자 골방에서 외로된사업에골몰해야하는 시문학 같은 것이 대중적으로 발달할 리가 만무하다. 더군다나 이제는 연인 사이에서 시를 주고 받는 것이 전근대적이고 반역사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문학계의 자발적 왕따 커플이 아니고서야 수단으로서의 시를 상상하기는 이제 힘들어졌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왜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혼자 놀기를 못하는 것일까? 요즘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노는 시간을 잘 상상하지 못한다. 지하철에서 아이폰을 꽂고 게임을 하거나 웹서핑을 하면 그게 자기 자신과 노는 것일까? 그저 킬링 타임일 뿐이다. 그마저도 카카오톡에서 사람들을 찾으며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지 않던가(나도 그런다).
시는 태생적으로 외롭다. 다른 책은 읽어도 말로 줄여 공유할 수 있지만, 시는 그저 시 같아서 시낭송 동호회 이전에 토론 한 번 제대로 하기 힘들다. 요즘 사람들은 효용과 효율의 알고리즘이 생체 내 도그마로 각인되어 있는 것인지 생을 살면서 “뻘짓”을 잘 감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어떻게 사람이 시집 한 번 사보지 않고 인생의 낭만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저 남들만 바라보고 사는 삶에 잠식되어 버렸다간, 지금 내가, 자신이 짓고 있는 표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게 된다. 시들을 읽으면서, 당신의 마음에 방점을 찍어보라. 틀림없이 찍히는 시가 있다. 그리고 이 점들을 연결하면 당신의 별자리같이 빛나는 마음의 지도가 된다. 당신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더 사랑하고 시간을 더 할애해 주자.
나는 이번 몇 주 동안, 시인 서동욱과 박상우를 발견하였다. 김찬옥과 강경호도 발견하였다. 외국인 시인 중에서는 예이츠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는 예이츠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한다고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치명적인 지적 섹시함인가. 타고르의 시집 <초승달>에서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라. 뉴튼은 자신의 과학자로서의 삶이 그저 바닷가의 뛰어노는 아이에 불과하다고 겸손하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타고르의 바다에서 어린 뉴튼을 상상한다. 제1연구동에서 나이 먹어 제 앞길 못가리는 지적 산업재해자의 눈물을 이해한다. 사랑시에서는 나의 과거를 재판하고 용서하기도 하고, 랭보의 시에서는 아름다운 방탕함(Drug을 하여 보이는 환영) 끝에 울리는 정각의 12시. 그 댕댕 - 거리는 소리를 머리 울리듯 듣고 또 듣는다. 인생이 지겹다는 푸념어린 시를 맞장구치며 듣다가 문득, "Is that all there is?(그게 다야?)"라는 재즈음악이 생각나서 흥얼거리게 된다. 길에서 죽은 개와 폐차 안에서 죽은 개, 주인을 반가워하는 나약한 고양이, 안락사 당하는 사자와 우는 조련사, 아버지의 연탄을 배달하며 2분지1의 장정몫을 하는 어린 딸... 모두가 나의 시이다.
그렇다만,
부디 당신의 가슴에도 화룡점정할 시들을 나의 시선에서 찾아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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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뭔 소리람.;;;;
아, 제가 이번 주(만?) 쵸 바빴어요. 일요일에 듣는 수업이 있어서(오후 1시부터 7시까지). 게다가 오늘은 빠질 수 없는 뒷풀이. 흑흑. 미리 좀 해둬야 했는데 이번 주 주 초에 기계가 고장나면서 본의 아니게 야근 11시까지 달리고 나니 후달렸습니다.ㅠㅠ 혹시 오전 중에 시간이 남는다면(물론 남는다면 잠이나 자야 하겠지만) 좀 더 수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컹.
p.s. 연구원님들, 마음에 드는 시가 저랑 공명하면 같이 술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