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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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아빠는 어디 있어?”
“으응?”
그 날 밤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빠에 대해 한 번은 물어올 거라 생각했어요. 주변에서도 그 순간 할 말을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한다고 했지요. 그 순간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걱정 시작됐지요. 누워 있어도, 밥을 먹어도, 길을 걸어도 걱정 됐어요. 하루가 무거워졌습니다.
난 원래 걱정 없이 사는 여자입니다. 걱정이 생기는 순간 타고난 낙천가의 기질로 없애버리거든요. 한 번 심호흡 하고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걱정할 필요도 없는 거라며 씨익 웃었죠. 걱정하는 나. 내게도 낯선 모습.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아이를 가졌을 때도 걱정 없었어요. 내가 낳겠다는 데 누가 뭐라 그럴거냐 그랬죠. 아이 아빠와 헤어질 때도 문제없었어요. 둘이서 살아나갈 방법 하나 없겠냐고 그랬죠. 지금 나의 걱정은 아이에게 아빠의 부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건 답이 보이지 않지요.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어요. 거짓말은 언젠가 밝혀질 것 같고, 사실대로 말하기엔 너무 어린 아이죠. 어렸을 때 아는 게 좋을지, 아니면 좀 더 자란 후가 좋을지. 그러다가 민감한 청소년기에 알게 되어 방황하면 어쩌죠? 끝없는 걱정을 쫓다 난 처음으로 내가 내 문제에 진지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가볍게 스타카토처럼 살고 싶었는데 산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닌가봅니다.
사람이 살면서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쓸모없다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걱정은 내 삶에 대한 열망(욕심?)입니다. 우리는 열망하지 않는 일에 걱정을 쏟아 붓지 않으니까요. 살아가는 중에 내가 욕심나는 것을 걱정 합니다. 이루어지길 바라는 일의 이면에 걱정이 숨어 있지요. 걱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3은 대학을 떨어질까 걱정합니다. 그 안에는 원하는 대학에서 캠퍼스의 꿈을 누리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결혼을 앞둔 신부는 옳은 선택일까 걱정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의 해피엔딩을 꿈꾸기 때문이지요. 내가 내 생활에 대해서 내는 욕심을 쓸데없다 말할 수 있을까요?
걱정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걱정만 하는 것이 문제겠지요. 걱정으로 인해 다른 일을 하지 못할 때, 다른 이들과의 관계마저 악화시킬 때가 문제인 겁니다.
걱정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 건강한 걱정을 해볼까요?
백지를 준비합니다. 꼭 하얀색일 필요는 없겠네요. 빨간 종이 파란 종이 다 좋아요. 어딘가의 귀퉁이에서 쭉 찢어낸 종이는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우린 중요한 이야기를 적을 계획이거든요.
내가 가지고 있는 걱정을 한 두 문장으로 정리해 봅니다. 깔끔하게 정리해 볼 필요가 있어요. 구구절절 늘어놓는 건 사양입니다. 우린 걱정을 마주해 볼 계획이고 그러기 위해선 걱정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간단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자신의 걱정을 정리하는 건 대상을 마주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나의 걱정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니까요. 나의 경우는 이런 문장이었어요. “하니에게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다음으로는 이유를 생각해 보기로 해요. 왜 이것에 나에게 걱정인가? 이유는 몇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요.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나에게 이 걱정이 필요한 것인지 버려야 할 것인지 알 수 있지요. 나의 경우는 하니가 상처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이건 하니에게나 나에게나 중요한 문제고, 그럼으로 고민의 필요성이 생기게 되죠. 이 단계에서 많은 걱정이 떨어져나갈지도 모르겠군요.
마지막으로는 대책을 강구하는 거죠. 어떤 대책이 있을까 고민하는 거예요. 나에게 필요한 질문을 마주했으니 그 대책도 진지하게 고민해야겠지요. 현실성이 없어도 일단 적어보세요. 많은 대안들을 생각해 보는 거죠. 느닷없이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나온 대안들을 중 하나 혹은 몇 가지를 고른 후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할 겁니다.
걱정 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모습이니까요. 하지만 걱정만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신뢰의 절대적 부족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걱정 앞에서 우리가 발을 동동 구르는 이유는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걱정을 이겨낼 수 있을지. 상처받고 쓰러지지는 않을지. 자기 신뢰감은 어느 날 주머니에 쑥 밀어넣을 수 있는 건 아니예요. 획득해야 하지요.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생각해 낸 최상의 대안을 최선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할 때 나의 자기 신뢰감은 커집니다. 자기 신뢰감이 커질 때 걱정은 조금씩 사라질 수 있습니다. 내가 잘 대응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걱정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거죠.
우리 둘이 잘 이겨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을 때 아이 아빠가 없는 것은 초라한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는 몇 마디 말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렇게 해서는 자기 신뢰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대안들은 세 가지 였습니다. 아빠 만들어 주기, 부재의 이유를 잘 설명하기, 아빠 빈자리 최대한 메꿔주기.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가능한 건 세 번째 였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명분의 관심과 사랑을 쏟는 거겠죠. 아빠와 함께 하는 등반 대회는 내가 가면 되겠죠. 역기라도 들어서 체력을 키워 까짓거 안고 올라가 보는 거죠. 무거워도 내 딸인데요. 며칠 전에는 목마를 태워보겠다며 둘이 난리를 쳤죠. 둘 다 불안해서 서로를 부여잡으며 깔깔거렸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아빠에 대해 솔직히 말하고 이해하는 순간이 오겠지요. 오늘의 이런 시간이 쌓여 함께 힘든 시간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되겠지요.
나의 삶에 대한 열망. 걱정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바를 얘기해 주기 때문이죠. 구체적으로 걱정을 캐내고, 이유를 알아내 대책을 구상해요. 그렇게 내 삶 앞에 조금 더 진지해져요. 건강한 걱정으로 자기 신뢰감을 회복해 걱정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때까지.
하나의 걱정이 생기는 지점이 우리의 삶의 열망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는 자기 신뢰를 튼튼하게 만들 기회를 얻습니다.
나는 이 걱정거리를 종종 꺼내 볼 생각입니다. 시간이 흘러 다른 대안이 최상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땐 새로운 대안을 부여잡고 노력해야겠지요.
당신의 열망은 뭐예요?
올빼미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닌데... 이건 순전히 5만원의 힘이야...
재경언니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다니깐.
그건 오라버니도 마찬가지.. 두번째 오프 수업때 해준 이야기를 난 아직 기억하고 있다오~ㅋㅋㅋ 무섭지?
난 사실.. 앞에서 자상하게 끌어주는 부모의 역할에는 자신이 없어서
그냥 함께 걷는 부모가 되기를 바랄 뿐이야.
맨날 나만 생각하고 내가 좋을 일 좇아 가는 나를 보면서
하니가 자기를 생각하고 자기가 좋은 일을 좇아가기를 바라는 거지.
좀 안이한가? ㅋㅋㅋㅋㅋ
자기 일 때문에 엄마랑 놀아줄 시간 없다고 할 때 서운 하겠지만
자신의 세계를 찾아가는 당찬 걸음걸이라며 좋아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