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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5일 05시 00분 등록
 

5월 off 수업


다프네


페네이오스 강의 딸인 다프네는 선머슴 같앗다.

댕기 하나로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척 묶고 숲속을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즐겻다. 다프네에게는 구혼자들이 많았지만 그녀는 숲을 돌아다니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 아버지 페네이오스는 틈 날 때마다 선머슴 같은 딸을 타일렀고 결혼을 권했다. 하지만 다프네는 ‘영원히 처녀로 있고 싶은 마음뿐이었기에 도통 결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쿠피도의 사랑의 화살을 맞은 아폴로는 자신도 모르게 다프네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폴로는 오로지 다프네에 대한 사랑뿐이었기에 가슴은 마른장작 타듯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아폴로는 다프네의 빗질하지 않은 헝클어진 머리며 꾸미지 않은 모습까지도 좋았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그 모습도 아름다웠다. 이런 아폴로의 마음도 모르고 다프네는 아폴로가 다가가기만 하면 달아났다. 아폴로는 다프네가 도망가다가 넘어져서 장미덩굴에 다칠까, 바위에 부딪힐까 노심초사하였다.

  하루는 도망가는 다프네를 향하여 아폴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저 신들의 아버지 유피테르의 아들이요, 내게는 과거, 현재, 미래를 아는 재주도 있소. 수금을 나보다 잘 뜯는 인간이나 신은 하나도 없을 것이오. 의술은 내게서 비롯되었소.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나를 <고치는 자>라는 의미인 파이에온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대는 이렇게 멋진 나를 거부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지?”

 아폴로의 말을 들었지만 다프네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애가 탄 아폴로는 다프네를 쫓기 시작했다. 다프네는 잡히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공포심에 사로잡혀 힘껏 내달렸고, 아폴로는 따라잡겟다는 욕심에 내달렸다. 아폴로에게는 쿠피도의 날개가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다프네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다급한 다프네는 아버지 페네이오스 강의 강물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아버지, 저를 도우소서. 강물에 정말 신력(神力)이 있으면 기적을 베푸시어 전신(轉身)의 은혜를 내리소서. 저를 괴롭히는 아름다움을 거두어주소서.”

다프네는 이 기도를 채 끝마치기도 전에 사지가 풀리는 정체모를 피로를 느꼈다. 다프네의 몸은 점점 얇은 나무껍질로 덮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나뭇잎이 되고 팔은 가지가 되기 시작했다. 다리는 뿌리가 되고, 얼굴은 이미 나무 꼭대기가 되고 있었다.

나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폴로는 다프네를 사랑했다. 남무 둥치에 손을 댄 아폴로는 갓 덮인 수피 아래서 콩닥거리는 그녀 심장의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아내가 될 수 없게 된 그대여, 대신 내 나무가 되엇구나. 내 머리, 내 수금, 내 화살통에 그대의 가지가 꽂히리라. 로마의 기나긴 행렬이 지나갈 때, 백성들이 소리 높여 개선의 노래를 부를 때 그대는 로마의  장수들과 함께 할 것이다. 지금도 싱싱하고 앞으로도 싱싱할 터인 내 머리카락같이 그대 앞으로 만든 월계관 또한 시들지 않으리라.


<선택한 이유>

1. 여자에겐 아주 중요한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영웅과 승리 한 자에게만 돌아가는 월계수를 선택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덧없이 사라지는 외적인 것을 버리고 변하지 않고 오래도록 빛을 발할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한 다프네의 월계수처럼 지금 나의 생을 빛나게 할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2. 미혼에게는 사랑이 중요할 터인데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그 모습이 좋았다.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청춘의 어느 한 시기에, 이렇게 치열하게 일하는 시간을 가진,s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3. 아폴로라는 다프네의 상대 남성이 좋았다. 다음 생에는 키 커고 잘 생겼고, 기타 잘 치고, 예지력이 뛰어난 남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작용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아폴로는 진정한 사랑을 알고 있다. 처음엔 아름다운 외모에 반했지만 점점 내면에 깃든 다프네의 사상과  정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폴로는 아름다움을 버리고 이젠 사랑할 수도 없는 나무로 변해버렸는데도, 그 나무까지도 영원히 아끼고 사랑하겠다고 맹세한다.


나의 신화 창조

  늦가을의 햇살을 받으면서 우리들은 작업실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졸업전시회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S를 발견하고서는 내 옆구리를 꾹꾹 쑤신다. 내가 이미 답을 주었는데도 계속해서 나를 설득하려 든다.

  우리 학교 기숙사 내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매일 같이 장미 한 다발이 내 기숙사 로비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면 나보다도 친구들이 먼저 꽃다발이 배달되어 왔는지를 확인할 정도로 나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도 싫었고, 병적으로 나에게 집착하는 S도 싫었다.

  심리학 강의를 같이 들으면서 그냥 친구처럼 지내도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좋은 전시회가 있으면 같이 가기도 하고, 내가 조각을 위해 철공소를 갈 때면 따라 가주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S가 나를 좋아하는 눈치 같았다. 놀란 것은 바로 나다. 주로 나같이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여자애들은 차림새부터가 노가다 같다. 항상 20킬로그램이 넘는 가방을 메고 다니다 보니 보통의 여학생들처럼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는 그런 모습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나는 항상 헐렁한 작업복바지에 잠바를 걸치고 다녔다. 이런 나의 모습과는 반대로 그는 귀공자 같이 항상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라운드 티셔츠 안에 남방을 바쳐 입기를 좋아하는 S의 모습은 어디서나 눈부셨다. 친구로는 좋지만 그 이상은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S를 만났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매일같이 기숙사에 장미꽃다발을 보내기 시작하는데 내가 정신이 없었다. 내심 나의 존재가 S에게 지나가는 바람이기를 바랬다.

   S는 진작부터 졸업과 동시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일찌감치 진로를 정한 그가 부럽기도 했다. 제우스의 아들 아폴로쯤 되는 그런 남자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귀찮았다. 내 꿈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내가 살던 소읍에서 미술선생 하면서 하고 싶은 작품이나 하면서 살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가끔씩 지나가는 말처럼 독일은 사진공부하기 좋은 곳이라면서 같이 유학을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학미전에서 여러 번 수상한 나의 경력을 들면서 한국에서 썩히기엔 아까운 재능이라 했다. 그때 나는 웃었다. 이 정도의 능력발휘는 노력만 한다면 미대생이면 누구나 다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정대로 졸업과 동시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나는 내가 원하던 중등교사 자리도 얻지 못했다. 내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어째든 내 생활비는 해결하고 싶었다. 크지 않은 잡지회사에 취직을 했다. 전시할 기회만 생기면 무조건 참여했다. 그런데 열정이 빠진 작업은 진전이 없었다. 

  S는 부지런히 독일 소식을 전해왔다. 독일에서 열리는 사진 전시도록을 보내오기도 했다. 독일의 생생한 전시도록을 보면서 무작정 이렇게 찍기만 해서는 안되겟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만의 색깔, 나만의 독특한 사진이 아니면 사진으로 밥벌이하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독일이라는 곳에 가서 사진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S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독일로 유학을 가기 위해 서너군데 일거리를 맡아서 밤낮없이 일했다. 2년 가까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독일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S의 도움으로 사진학교에 등록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학연수도 겸해야 했다.

 한국에서 보다 더 힘든 날들이 계속되었다. 독일에서의 사진공부는 사진에 새롭게 눈뜨는 계기가 되었다. 독일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그대로 사진 작품이 되어 나오는 듯 했다. 그만큼 스폰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S는 여전히 나를 좋아했고, 그가 내 옆에 있다는 것도 큰 안심이 되었다.

  편안하게 사진과 독일어수업을 받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아르바이트도 해야만 했다. S는 당분간 내 생활비와 여러 가지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그것만은 난 거절했다. 유학생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접시닦기였다. 난 작은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닦는 허드렛일을 하였다.  그러다 나는 그 지역의 유명한 사진가의 작업실에서 일하게 되엇다.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갔다.

그 날도 작가의 암실로 가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가 미처 신호등을 보지도 못했나 보다 차가 급정거한다 싶더니 나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나는 온 몸에 붕대로 감겨져 있었다. 내 옆에 S가 있었는데 눈에 눈물이 가득하였다.

  갑자기 ‘사진공부’ 는 어떻게 되지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다리를 많이 다쳐 앞으로 혼자의 힘으로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S는 자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공부를 중단하고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면 죽어버리겠다고 그를 협박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계속 치료를 했고, 나는 휠체어에 의지하는 몸이 되었다. 생을 포기하고 싶다는 강한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이런 몸으로 죽는 것이 나은지 사는 것이 나은지를 몇 며칠이고 셈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사는 것이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더 많았다. 다행히도 사고에 대한 보상금으로 치료비는 걱정이 없었다. 

  살아야만 하는 존재이유를 찾아내었을 때, 다시 사진에 대한 열정은 더욱 불타올랐다. 나는 한국인만이 찍을 수 있는 그런 사진을 생각했다. 한국의 나무, 한국의 집, 한국의 들판, 우리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한국인의 정서를 품고 있는 그런 사진을 찍고 싶었다. 어느 날 시골길을 지나가다 빨랫줄에 걸린 광목을 보았다. 하얀 광목은 바람 따라 춤을 추고 있었다. 저 하얀 광목에 내 슬픔과 내 인생을 묻어버리고 싶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 광목으로 내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 사진과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를 생각했고,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고 싶었다.

  나무사진을 찍으면 뒷 배경이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광목을 뒷배경으로 삼기로 했다. 내가 찍고 싶은 나무에 광목을 설치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때로는 크레인을 동원하여 광목을 걸고 사진을 찍었다. 피사체가 크면 클수록 광목을 설치하는 것이 힘들었다. 광목을설치하여 찍은 사진은 낯선 느낌, 사물을 새롭게 읽히게 하는 메타포가 되었다. 

  나의 이 독특한 사진은 국내 미술관에도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예술의 전당에서 초대전을 하기도 했다. 나의 작품을 애호하고 소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미국의 뉴욕국제사진센터, 크리에이티브 사진센터, 필라델피아사진센터 등 미국의 유수한 갤러리에 보내었다. 다행히 여러 곳에서 전시 요청이 들어왔다. 휠체어에 의지하여 힘들게 작업을 하는 것도 내 프로필을 돋보이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뉴욕국제사진센터에서 전시를 할 때 나는 그동안의 많은 고난을 떠올리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렀다. 오프닝행사에 생각지도 못했던 S가 나타났다. 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동안 전시가 있을 때마다 S가 나의 작품을 한 두 점 씩 사들인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S는 결코 첫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

  뉴욕국제사진센터를 비롯하여 내 작품은 미국의 여러 갤러리에 걸리게 되었다.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도 전시회를 가졌다. 광목을 통하여 한국인의 정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내 사진을 좋아했다.

  이렇게 하여 내 나이 오십이 되었을 때 나는 세계의 사진가 반열에 내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한 번도 이름을 남기겠다고 작업하지는 않았다. 무엇을 바라고 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해야만 하고 이것만이 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에너지가 되었기에 그렇게 했을 뿐이다.

오늘의 영광이 있기 위해 독일 땅에서 사고를 당하였고, 그런 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한다는 법칙을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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