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 조회 수 2285
- 댓글 수 3
- 추천 수 0
#62. 사진
가끔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올리면 “사진 잘 찍으시네요.”라고 칭찬을 해 주시던, 얼굴도 한번 본적 없는 페이스북 친구가 있다. 남의 좋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생각한 이 분이 내게 본인이 활동하는 비공개 사진 동호회를 소개해 주셨다. 처음에는 갈까 말까 망설이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한 달에 두 번 있다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 매번 강사나 주제가 바뀌는데 내가 갔던 때에는 한겨레 신문사의 사진부 국장을 맡고 있는 탁기형님의 강의였다. 긴 머리에 청바지와 폴로티를 입은 50대의 남자. 첫인상에서부터 자유로움과 예술가적인 포스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사진은 ‘어떻게’보다 ‘왜’ 찍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신만의 사진 철학을 알 수 있는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한 강의에 나는 금새 빠져들었다. 작가는 대학시절에 잘 찍은 선배들의 사진을 보면 “이거 어떻게 찍었어요?”라는 질문을 했단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늘 “야, 임마! 어떻게 찍었는지가 아니라 ‘왜’ 찍었는지를 물어봐야지!”라는 대답과 함께 엄청 혼이 났다고 한다.
20-30년 전 대학생이었던 작가가 당시에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내가 태어날 때쯤의 사진들이었다. 사진들을 보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세상의 모습이 참 신기했다. 그 중 지방의 어느 마을에서 양봉을 업으로 하는 부부의 사진이 있었는데, 그 분들을 만난 이후에 작가의 둘 째 아이가 태어났다. 이 때 남편 분께서 양봉한 꿀을 가지고 직접 서울까지 찾아와 축하를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한다. 이 후에 시간이 많이 흐르고, 각자의 생활이 바빠 연락을 못했는데, 얼마 전 작가의 블로그에 올린 이 사진을 보고 “어, 저희 할아버지세요.”라고 그 분들의 손자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십 여년만에 다시 연락이 된 사연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코 끝이 찡해졌다.
이 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모르는 아이들을 불러 세워 놓고 찍은 사진, 강가에 서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강물에 비친 모습을 찍은 사진 등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 순간 셔터를 눌러야겠다고’ 생각했던 장면들을 보여주셨다. 이 때의 사진들을 보며 작가는 ‘유아기적 사진’이라고 말한다. 참 순수한 사진들이라고 말이다.
사진에도 유아기, 청소년기, 성년기가 있는데, 청소년기에 기본기를 잘 쌓아두지 않으면, 잘못된 습관에 젖을 수도 있고, 카메라 등 장비에만 신경 쓰게 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본에 충실하여 사진을 매일 찍다 보면 자시만의 색깔을 찾게 되는데, 어느 순간 남들이 봤을 때도 “아, 이건 ooo님의 사진이군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단다.
이 날 강의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폰으로 수채화인지 사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아름다운 작품 사진들이었다. 비싸고 좋은 카메라는 없지만, 아이폰으로도 저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또 한편으로는 ‘나도 한번 해 봐?’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것 뿐만 아니라, 강의 중에 작가는 “저는 미술을 정말 못해요. 색을 잘 고르지 못해서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제 때 그림을 완성해 본적이 없지요.”라는 말을 했다. 나는 어린 시절 미술 시간에 그림을 잘 그려보고 싶은 욕심도 있고, 잘 그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했는데, 제대로 그려 본적이 없다. 왠지 그림을 잘 그리면 사진도 잘 찍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였다. 최근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 중 내가 봐도 ‘잘 찍었네’라고 생각할 만한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며 ‘사진 찍는데는 소질이 좀 있나?’라는 생각을 얼핏하고 있던 차였기에 전문 사진작가님의 말이 내게는 더 큰 용기가 되었다. 물론 미술을 잘 하는 사람이 사진도 잘 찍을 가능성이 높긴 하겠으나, 그 상관관계가 항상 유효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좋았다.
‘면과 선을 구분하라. 포인트를 찾아서 찍는다. 빛을 잘 활용하라. 마음을 담은 사진을 찍어라.’ 등 2시간 30분 동안 사진에 담긴 철학 뿐만 아니라, 작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가만의 노하우까지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덕분에 ‘사진’이란 재미있는 생활의 놀이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누운 채 방 안을 둘러 보며 사진 찍을만한 곳이 없는지 찾아 보았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발견하고 봄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담아 사진을 찍었다. 이름하야 “나름 작품 사진”이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992 |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그리고 나우시카와 블룸 [10] | ![]() | 2012.05.21 | 3075 |
2991 |
10일간의 스승의 날 -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 | 세린 | 2012.05.21 | 2248 |
2990 | 2년 전 오늘의 하루 [5] | 장재용 | 2012.05.21 | 2022 |
2989 | 쌀과자#7_불안한 사랑이냐, 불행한 안정이냐 [5] | 서연 | 2012.05.21 | 2310 |
2988 | 몰리와 거티의 대화- 여자의 욕망에 대하여 [8] | 터닝포인트 | 2012.05.21 | 2363 |
2987 | 대가의 인생 및 가족 경영 [5] | 학이시습 | 2012.05.21 | 2179 |
2986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KV 622 [10] [1] | 샐리올리브 | 2012.05.21 | 3050 |
2985 |
단상(斷想) 101 - Viva La Vida ![]() | 書元 | 2012.05.20 | 2267 |
2984 | #7. 터키로 떠나면서 [6] | 한젤리타 | 2012.05.18 | 2271 |
2983 |
쉼표 여섯 - 쉬어야 할 때는 몸이 알아요 ![]() | 재키 제동 | 2012.05.16 | 2634 |
» |
#30. 신치의 모의비행-사진 ![]() | 미나 | 2012.05.16 | 2285 |
2981 | #6오르페우스이야기 | 서연 | 2012.05.15 | 2286 |
2980 | 미네르바 여신과 아라크네의 겨루기/ 세린신의 능력 | 세린 | 2012.05.15 | 3451 |
2979 | 태양신의 아들 파에돈 | 장재용 | 2012.05.15 | 3475 |
2978 | 거세된 욕망에 불을 당겨라 | 학이시습 | 2012.05.15 | 2205 |
2977 |
# 6 내가 좋아 하는 신화 이야기 진성희 ![]() | 샐리올리브 | 2012.05.15 | 2188 |
2976 | 나의 신화 | 콩두 | 2012.05.15 | 2352 |
2975 | #6. 나의 신화 - 아르고원정대의 모험 | 한젤리타 | 2012.05.15 | 2407 |
2974 | 내가 선택한 신화 그리고 나의 신화창조 | ![]() | 2012.05.15 | 2103 |
2973 | 하고싶지 않은 한 마디 [3] | 루미 | 2012.05.15 | 19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