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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6일 01시 14분 등록

#62. 사진

가끔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올리면 사진 잘 찍으시네요.”라고 칭찬을 해 주시던, 얼굴도 한번 본적 없는 페이스북 친구가 있다. 남의 좋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생각한 이 분이 내게 본인이 활동하는 비공개 사진 동호회를 소개해 주셨다. 처음에는 갈까 말까 망설이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한 달에 두 번 있다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 매번 강사나 주제가 바뀌는데 내가 갔던 때에는 한겨레 신문사의 사진부 국장을 맡고 있는 탁기형님의 강의였다. 긴 머리에 청바지와 폴로티를 입은 50대의 남자. 첫인상에서부터 자유로움과 예술가적인 포스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사진은 어떻게보다 찍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신만의 사진 철학을 알 수 있는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한 강의에 나는 금새 빠져들었다. 작가는 대학시절에 잘 찍은 선배들의 사진을 보면 이거 어떻게 찍었어요?”라는 질문을 했단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늘 , 임마! 어떻게 찍었는지가 아니라 찍었는지를 물어봐야지!”라는 대답과 함께 엄청 혼이 났다고 한다.

20-30년 전 대학생이었던 작가가 당시에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내가 태어날 때쯤의 사진들이었다. 사진들을 보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세상의 모습이 참 신기했다. 그 중 지방의 어느 마을에서 양봉을 업으로 하는 부부의 사진이 있었는데, 그 분들을 만난 이후에 작가의 둘 째 아이가 태어났다. 이 때 남편 분께서 양봉한 꿀을 가지고 직접 서울까지 찾아와 축하를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한다. 이 후에 시간이 많이 흐르고, 각자의 생활이 바빠 연락을 못했는데, 얼마 전 작가의 블로그에 올린 이 사진을 보고 , 저희 할아버지세요.”라고 그 분들의 손자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십 여년만에 다시 연락이 된 사연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코 끝이 찡해졌다.

이 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모르는 아이들을 불러 세워 놓고 찍은 사진, 강가에 서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강물에 비친 모습을 찍은 사진 등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 순간 셔터를 눌러야겠다고생각했던 장면들을 보여주셨다. 이 때의 사진들을 보며 작가는 유아기적 사진이라고 말한다. 참 순수한 사진들이라고 말이다.

사진에도 유아기, 청소년기, 성년기가 있는데, 청소년기에 기본기를 잘 쌓아두지 않으면, 잘못된 습관에 젖을 수도 있고, 카메라 등 장비에만 신경 쓰게 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본에 충실하여 사진을 매일 찍다 보면 자시만의 색깔을 찾게 되는데, 어느 순간 남들이 봤을 때도 , 이건 ooo님의 사진이군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단다.

이 날 강의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폰으로 수채화인지 사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아름다운 작품 사진들이었다. 비싸고 좋은 카메라는 없지만, 아이폰으로도 저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또 한편으로는 나도 한번 해 봐?’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것 뿐만 아니라, 강의 중에 작가는 저는 미술을 정말 못해요. 색을 잘 고르지 못해서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제 때 그림을 완성해 본적이 없지요.”라는 말을 했다. 나는 어린 시절 미술 시간에 그림을 잘 그려보고 싶은 욕심도 있고, 잘 그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했는데, 제대로 그려 본적이 없다. 왠지 그림을 잘 그리면 사진도 잘 찍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였다. 최근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 중 내가 봐도 잘 찍었네라고 생각할 만한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며 사진 찍는데는 소질이 좀 있나?’라는 생각을 얼핏하고 있던 차였기에 전문 사진작가님의 말이 내게는 더 큰 용기가 되었다. 물론 미술을 잘 하는 사람이 사진도 잘 찍을 가능성이 높긴 하겠으나, 그 상관관계가 항상 유효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좋았다.

면과 선을 구분하라. 포인트를 찾아서 찍는다. 빛을 잘 활용하라. 마음을 담은 사진을 찍어라.’ 2시간 30분 동안 사진에 담긴 철학 뿐만 아니라, 작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가만의 노하우까지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덕분에 사진이란 재미있는 생활의 놀이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누운 채 방 안을 둘러 보며 사진 찍을만한 곳이 없는지 찾아 보았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발견하고 봄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담아 사진을 찍었다. 이름하야 나름 작품 사진이다.

spring.jpg

 

IP *.38.222.35

프로필 이미지
2012.05.16 16:34:59 *.252.144.139

오, 미나의 사진이 사샤의 그것고 닮았네.

이제 미나가 사진도 찍은거야?

미나 책에 분위기있는 사진들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

요즘은 이미지도 이야기하는 시대잖니.

신치의 모의비행 화이팅!!!

프로필 이미지
2012.05.17 08:21:17 *.72.153.115

사진 찍다보면 보지 못한 것이 찍힐 때가 많아 좋더라.

하늘거리는 거 이쁘다.

프로필 이미지
2012.05.17 10:30:19 *.78.83.25

사진의 매력... 아... 정말 피해가기 힘든 매력이더란 말이야.

사진도 글도 같은 것 같다. 말을 걸어오는 것 말이야.

사진은 너의 청춘에 어떤 말을 걸어오고 있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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