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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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사부님의 신간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이 출간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따뜻한 축하와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저, 와이즈베리, 2012년 8월
아래 책 소개는 YES24와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신화에서 찾은 인간 독법과 자기경영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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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신화 독법(讀法)에 관하여
2. 신화 속 ‘야생의 사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강처럼 흐르는 시간, 샘물처럼 고이는 시간 -크로노스
애욕, 그 엉큼한 환락과 헌신하는 사랑 사이 -아프로디테
또 다른 나를 창조하는 무한 에너지, 변화 -제우스
‘아무도 아닌 자’에서 진짜 이름을 찾아가는 모험 -오디세우스
자기애, 다른 사람의 눈 속에서 나를 찾아야 하는 이유 -나르키소스
배고픔, 너의 죽음으로 공양된 나 -에리직톤
분노라는 이름의 야수를 길들이는 법 -아킬레우스
혐오, 뒤집으면 엄청난 창조 에너지 -피그말리온
희망 없는 일의 무수한 반복, 그 부조리를 극복하는 힘 -시시포스
아름다움, 모든 것이 결국 너에게 굴복하나니 -헬레나
허영, 사랑하는 것을 숨기고 아껴두지 못하는 자의 비극 -니오베
거짓이 만들어내는 역설적 생산성 -바투스 영감과 헤르메스
탐욕에게 먹이를 주는 자의 최후 -미노스와 미다스
사랑과 집착, 그 미묘한 경계 위에서 -카밀라
과도함을 덜어 내는 황금률, ‘메덴 아간’ -네메시스와 솔론
파멸로서의 오만과 창조 에너지로서의 오만 -마르시아스
천박한 속물들에게 조소하라 -미노스와 체세나 추기경
골육상쟁의 신화가 되풀이되는 이유 -로물루스와 레무스
내가 나의 잔혹한 독재자였으니 -팔라리스
대화와 소통이 실패하는 곳을 채우는 힘, 폭력 -아가토클레스
아모르 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 -오이디푸스
불복종, ‘자기만의 길’을 걸어 ‘모두의 길’을 터놓는 힘 -안티고네
‘나도 모르는 나’, 그 미로 속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실타래 -아리아드네
‘사유 불능’, 생각 없음에서 퍼져나가는 ‘일상의 악’ -다이달로스
이별, 닿는 순간 사라지는 이 미칠 듯한 부재 -오르페우스
우주의 에너지를 불러들일 나의 ‘탯줄’은 무엇인가 -안타이오스
고난, 교활함을 통찰로 발효시키는 삶의 여정 -오디세우스
복수, 필요해서 너를 사랑한 자를 믿지 마라 -메데이아
외눈과 백 개의 눈 사이, 불균형을 다스리는 통섭의 눈 - 폴리페모스
에필로그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야기로 끝나는 인간
우리 시대 최고의 변화 멘토 구본형이 들려주는
신화에서 찾은 인간 독법과 자기경영의 지혜!
IMF 이후 10여년간 직장인들 사이에서 ‘자기계발’ 열풍이 불었다. 꾸준한 성장을 위해 배움을 멈추지 않고,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변화를 도모하겠다며 사람들은 자기계발 책을 집어들고 자기계발 강연을 들었다. 그러나 10년 뒤 자기계발 열풍이 식고, 그 자리를 ‘힐링’ 열풍이 대신하고 있다. 사람들은 강의나 책에서 알려주던 자기계발 방법으로는 주변 상황도, 자기 자신도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바꿀 수 없음을 실감하게 되었고, ‘변화와 성공’이라는 키워드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온갖 노력을 해도 불안하기만한 현실, 상처받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치유’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낯선 곳에서의 아침」 등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개인과 조직의 변화경영 전문가로서 활동해온 저자 구본형은 궁극의 ‘변화’는 바로 자기 자신과 인간에 대한 탐구와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한다. 드라마틱한 성공을 해낸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고 이들을 모방하는 방식, 외부로부터 동기부여를 받는 방식은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 방식은 시대와 트렌드에 따라 바뀌기 십상이며, 내게 맞지 않는 또 다른 가면을 쓴 것처럼 불편하고 억지스러운 변화 방식이다. 저자는 사회적 가면을 벗은 자신의 본 모습 그대로를 성찰하는 힘이 바로 ‘변화의 힘’이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그 변화의 힘을 ‘신화’라는 인류 문화유산에서 캐내오려는 독특한 시도를 한다.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전시켜온 신화야말로, 온갖 사회적 체로 걸러지기 전 인간의 원초적 욕망, 사고방식, 세계관 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화 중에서도 가장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가진 그리스 신화를 통해 ‘인간 내면’을 풀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신화는 인간 이야기를 온갖 상징과 은유, 상상력을 동원하여 신들의 이야기에 빗대어 쓴 얘기인 만큼, 글자 그대로 읽을 경우 ‘허무맹랑하고 희한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저자는 지난 수년간 그리스 신화를 탐독하고 이를 자기경영과 변화경영에 접목시키기 위한 연구를 해왔다. 그리고 직장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신화 독법’을 소개하며, ‘신화를 통한 자아 찾기와 변화’ 여정의 가이드가 되길 자처한다.
이 책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인간의 그늘진 측면이다. 애욕, 거짓말, 탐욕, 분노, 이별, 희망 없는 일들을 무수히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인생 등 인간을 고통과 불행으로 몰아넣는 온갖 악덕과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스 신화에서 채집한다. 그리고 제우스, 헤라, 프로메테우스, 아테나, 헤르메스, 오디세우스 등 온갖 신과 인간이 벌이는 일련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과 인생’을 읽는 실마리를 찾는다.
“왜 신의 선물인 판도라의 상자에는 온갖 악덕과 고통이 희망과 함께 들어 있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왜 그리스 신화는 ‘자식을 잡아먹는 신’ 우라노스의 끔찍한 이야기로 시작할까?” “목동 파리스는 신들이 준 선물 중 권력과 부를 마다하고 왜 ‘미녀’를 선택하는가?”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교활하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늘어놓는 인간 오디세우스를 지지한 이유는?” “제우스가 인간 시시포스에게 준 최악의 형벌은 왜 평생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 하는 것이었을까?” “자신의 두 눈을 찌를 만큼 고통스러운 인생을 산 오이디푸스는 어떻게 다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게 될까?” 등 신의 이름으로 빗댄 인간의 온갖 부조리에 대한 질문과 해답이 책 곳곳에 흥미롭게 제시된다. 그리고 인간이 모든 고통과 악덕, 모순을 본연적으로 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긍정적인 변화’가 가능한지 저자 특유의 인문학적 성찰력을 더해 이야기해준다.
문학, 미술, 심리학, 철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와의
넘나들기를 통해 새롭게 읽는 신화!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얼핏 보았을 때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신화와 자기경영이라는 장르를 접목시킨 점이다. 저자는 ‘인류의 옛날이야기’가 어떻게 ‘내 삶을 성찰하고 바꿔내는 힘’으로서 변용될 수 있는지에 주력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신화 이야기가 문학, 미술, 심리학, 철학, 역사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크로노스’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을 보자. 크로노스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크로노스는 하늘의 신인 아버지 우라노스의 거세시켜 죽인 신이다. 아비를 죽이고 권력을 차지했으나, 자기 자신도 그처럼 자식들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 자식들이 태어나는 족족 먹어치워버린다. 그러나 크로노스도 결국 아들 제우스에 의해 지하 세계에 감금당하고 만다. ‘아비를 죽이는 아들’ ‘자식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워 먼저 자식들을 잡아먹는 아버지’라는 끔찍한 내용의 상징성은 바로 ‘현재’라는 물살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는 ‘과거’, 즉 시간 개념을 상징한다. 저자는 이를 ‘크로노스의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과거의 모든 것을 파괴하며 흐르는 연속적인 시간 개념,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1년 365일의 객관적 시간 개념이다. 이러한 크로노스의 시간 개념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며, 시간을 일종의 자원처럼 배분하고 관리하려들고, ‘빠른 것을 좋은 것’으로 인식하는 영미권의 ‘시간관리 문화’를 저자는 비판한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이 ‘크로노스 시간’에 대응하여 만들어낸 ‘카이로스의 시간’ 개념을 얘기한다. 이는 상대적인 시간으로, 연인을 만나면 순식간에 지나는 시간, 지루한 일을 할 때는 더 없이 길게 지나는 시간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지만, 개인에 따라 한순간의 점처럼 도약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저자는 점처럼 순간순간 도약하는 시간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옹호하며, ‘지금경영’의 지혜를 알려준다. 이와 더불어 지금경영의 지혜를 얘기한 문학작품들의 구절이 등장하며 텍스트를 충만하게 한다. “지금을 즐기게, 내일이란 말은 가능한 한 믿지 말고”라며 노래부르는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가」 구절이, 순간마다 솟구쳐오르며 변화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을 얘기한 올더스 헉슬리의 에세이 구절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한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걸린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명화 「자식을 잡아먹는 사튀로스(크로노스)」를 소개하며 신화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보여준다.
* Yes24 : http://www.yes24.com/24/goods/7370062?scode=032&OzSrank=1
축하해 주어 모두 고맙습니다. 쓰는 동안 재미있어 즐거웠지요.
아래 기사가 저자의 의도를 비교적 잘 설명해 주었기에 댓글로 붙여둡니다.
시사 저널 - 조철 기자 2012년 8월 22일 수요일
판도라의 상자에서 희망의 실마리 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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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서 인간 독법과 자기 경영의 지혜 읽어내 |
익숙한 자기계발서들과 결별하고 ‘힐링’ 관련서에 꽂힌 어느 독자는 조금 낯선 자기계발서를 발견하고서 읽을까 말까 망설일 듯하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등을 펴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변화 경영 전문가’ 구본형씨가 펴낸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이 그것이다. 제목만 보아서는 신화를 정리하거나 신화를 재해석한 책 같은데, 실제 내용은 신화의 행간에서 저자 특유의 시각으로 읽어낸 자기 경영의 비법들이다.
저자는 드라마틱한 성공을 해낸 사람들을 롤 모델로 삼고 이들을 모방하는 방식, 외부로부터 동기 부여를 받는 방식은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한 변화 방식은 시대와 트렌드에 따라 바뀌기 십상이며, 내게 맞지 않는 또 다른 가면을 쓴 것처럼 불편하고 억지스러운 변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 대신 저자는 사회적 가면을 벗은 자신의 본 모습 그대로를 성찰하는 힘이 ‘변화의 힘’이라고 믿고, 사회적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날 모습’을 신화를 통해 조명했다. 모든 인류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신화’에서 인간의 원초적 사고방식과 세계관, 욕망 등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특히 애욕, 거짓말, 탐욕, 분노, 이별, 희망 없는 일들을 무수히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인생 등 인간의 그늘진 측면에 주목했다. 인간을 고통과 불행으로 몰아넣는 온갖 악덕과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를 신과 인간이 벌이는 일련의 이야기 속에서 채집해 ‘인간과 인생’을 읽는 실마리를 찾았다. 이에 더해 저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신화와 자기 경영이라는 장르를 접목시켰다. ‘인류의 옛날 이야기’가 어떻게 ‘내 삶을 성찰하고 바꿔내는 힘’으로 변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또, 저자는 신화를 문학·미술·심리학·철학·역사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해 보여줘 흥미를 더했다. 이를테면 저자는 “판도라의 상자란 애초부터 없었다. 처음에 나는 희망이 왜 모든 나쁜 것과 같은 상자에 함께 들어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을 때 기뻤다. 행복 속에는 희망이 없다. 이미 행복한 사람은 희망하지 않는다. 이미 배부른 사람처럼 채워졌고, 나른한 사지처럼 늘어졌기 때문에 희망을 갖지 않는다. 종종 채우고 또 채워야 하는 욕망이 지속될 뿐이다. 오직 불행 속에만 희망이 있다. 희망은 결핍과 불행과 고통 속에서만 자라나는 환각이다. 그러니 희망이 있어야 할 자리는 모든 불행, 모든 악덕, 모든 결핍이 있는 곳이다. 그것이 아직 상자 속에 남아 있는 이유도 다른 불행의 씨앗들은 이미 다 발아해 그 숙주를 무한히 괴롭히고 있지만, 희망만은 미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여전히 마음의 상자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책에서는 중년의 삶을 위로하는 대목들도 눈에 띈다. 왜 무기력하게 조직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도 한다. 저자는 “신화 속에서 이름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름 자체가 바로 그 자신이며 생명이기 때문에 이름을 잘못 처리하면 그 생명을 잘못 처리한 것처럼 해를 입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진짜 이름은 극비에 부쳐져 자신만 홀로 가슴에 간직해두었다. 이집트에서는 진짜 이름을 ‘큰 이름’이라고 부르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름은 ‘작은 이름’이라고 불렀다. 진짜 이름은 생명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었다. 신과 인간의 다른 점은 신은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진짜 이름을 가슴 깊숙이 품고 그 이름으로 권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지 못한다. 진짜 이름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되어 그럭저럭 살고 있는 것이다. 살고 있으나, 그 속에 내가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아가는 모험을 시도할 때 자기 혁명은 시작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