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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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20. 시칠리아 여행 후. ......자다 깨다 졸다 쿵!
어제 하루 종일 내가 했던 일입니다.
자다 깨다 졸다 쿵!
올핸 연구원 8기가 하계연수를 시칠리아로 다녀왔습니다. 이탈리아의 남쪽 끝, 장화가 발로 차려고 만들어놓은 삼각형의 공처럼 생긴 섬입니다. 지중해에서 제일 큰 섬이지요. 그곳엔 지금도 활활 속으로 열불을 내뿜고 있는 활화산 에트나가 있어서 화산재의 좋은 토양 위에 곡식과 열매가 풍성한 곳입니다. 그 옛날, 주변 열강이 이 좋은 땅을 항상 넘보고 힘으로 무찔러들어 그리스, 로마, 이슬람, 노르만의 손길이 여기저기 남아있었습니다. 신화와 역사가 마치 이곳에서 시작된 듯 , 매력적인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신전의 계곡에서 선생님이 들려주시던 헤라클레스의 얘기는 그대로 한편의 영화가 되었습니다. 책을 열 번 읽어도 잘 펼쳐지지 않던 상상력이 그때 그곳에서 활짝 펼쳐지더군요. 작년엔 북 이탈리아와 토스카나 지방을, 올핸 남쪽 끝 시칠리 섬을 한 바퀴 휘돌고 나폴리를 찍고, 결국 이탈리아의 배꼽 로마에서 튀어나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에 세 코스를 뛰고 매일 짐을 싸서 떠나야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연구원은 숙제를 다 하기 전에는 결코 잠들지 않는 강인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기에 젊은이들은 그 프로그램을 다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바다는 기본이고 사그러져 가는 불꽃을 뒤적여 불씨를 찾아 타오르는 것은 반드시 끝내야 할 숙제입니다. 그런 작업을 뜨거운 산 에트나가 도와주었고 차거운 바다 지중해가 지켜보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풍광은 해발 3350미터의 화산 "에트나"입니다.
올해 오월에도 한번 폭발을 했던 진행형 화산인 에트나는 참 대단하더군요. 섬 어느 곳에서도 불을 뿜은 연기가 몽실몽실 보이는 듯하던 에트나 산을 1900미터까지 올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곳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2500미터 까지 나아갔고 거기서 다시 지프를 타고 2900미터 까지 올라 비교적 안전한 분화구를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나는 1900미터에 혼자 머무르며 작은 분화구를 셋, 오르고 내리며 놀았습니다. 따로 떨어져 혼자 쓸쓸히 걷던 그 언덕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뜨거운 날씨에 아직도 뜨거운 화산재에 미끄러지며 아이스크림을 들고 돌아다녔습니다. 둥글고 작은 분화구 속으로도 들어가 보았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은 용암을 두드려 수정을 찾고, 또 조약돌로 서로의 이름을 새기며 놀고 있었습니다. 잿빛과 붉은빛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험난한 자연 조건에도 꿀벌이 붕붕거리고 노란 꽃이 피어나고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잠시 경건한 침묵으로 이곳까지 나를 이끌어준 내 운명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진 정리되면 다시 보여드릴게요.
두 번째 풍광은 푸른 바다입니다.
아그리젠토의 외곽에 있는 포르토 엠페도클레에서 세 시간동안 수영을 했습니다. 이곳엔 터키 계단이라는 하얀 석회석 바위가 계단처럼 펼쳐져 있는 곳입니다. 그 바위 끝에서 옥색 물빛을 바라보는 일은 그림 같았습니다. 쭉쭉 뻗은 젊은 여인들이 우아하게 썬텐을 하며 찍어대는 사진 사이에 어쩌면 내 발가락도 배경으로 찍혔을 것 같아요. 바람 부는 그 언덕에 나도 잠시 누워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치 파라솔을 네 개 빌려놓고 수영을 시작한 곳은 오목한 모래사장이었어요. 주변에 바위와 물풀들이 있어서 바닷물이 부분적으로 검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부산에 있는 송도 돌섬에서 바위 끝으로 발이 미끄러져 나가는 순간 , 어푸어푸 허우적허우적 하면서 소금물 퍼먹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었던 터라 수영을 잘합니다. 그러나 해운대나 송도 바다에서는 바다 한 중간에서 그렇게 높은 파도가 부숴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어요. 남해안의 해수욕장에서는 보통 바다가 끝나는 모래사장으로 파도가 밀려오며 거품을 내 뿜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 날은 바람이 세차게 불고 바다 중간에서 산채만한 파도가 밀려오더니 우리를 덥치고, 또 거푸거푸 덥치고 하더군요. 처음엔 사실 은빛 물결 반짝이며 파도가 평화롭게 밀려오기에 눈이 부시게 그 물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어느 순간에 무장 해제했던 내게 파도가 높은 산이 되어 쳐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열 댓명이 떼를 지어 서서 쳐들어오는 파도를 향하여 "온다온다~" 소리를 지르며 파도를 타고 놀았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속도가 빨라지더니 미처 피하지 못한 우리에게 파도가 물을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소금물 좀 먹었습니다. 바닷물은 매우 짜더군요. 그런데 성난 파도에게는 절대 정면으로 부딪치면 안 됩니다. 고개를 숙이고 물속으로 들어가던지, 아님 팽그르르 돌면서 등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소리치며 파도를 타며 놀고 있는데... 어느 듯 우리 주변에 외국인들이 모여왔습니다. 이어 그들도 파도가 몰려오니 "온다온다~" 하며 우리처럼 파도타기를 하더군요. 그리고 함께 깔깔 웃어대며 놀았습니다. 그 장면이 참 정다웠고 기억에 남았습니다.
물론 그날 나는 파도만 본 것은 아닙니다. 마치 무슨 비밀을 알려주려고 손짓하는 듯한 햇살의 반짝거림과 저 멀리서 희망과도 같이 출렁이며 다가오는 물결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날 세 시간 동안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의 살갗이 부르트도록 놀았던 까닭에 사실은 아직까지 팔뚝과 발뚝이 아픕니다. 이런 기억에 남은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여행기를 써두고 싶지만 아직은 낮과 밤이 뒤섞여 졸리면 자고 깨어나면 놀고, 또 졸다가 쓰러지고 이렇게 지냅니다. 사알짝 연구원 공간에 들어와 보니 다들 나처럼 시차적응 중인가 봅니다.
곧, 밥을 잘 먹고 여행을 잘 정리하며 모두 제자리를 잘 찾아가기를 바랍니다.
우선 귀향을 알리며 제 1탄, 공중으로 날려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