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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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물 밖으로 빠져나와 크게 숨을 들이 마셨다. 그런데 공기에서 이상한 맛이 났다. 뭔가 불길한 예감. 그렇다. 거실 쪽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니 엄마의 심기가 불편한 듯 하다. TV를 보고 있던 아빠도 심상찮은 기운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래, 지금은 피하는게 상책이다. 하나는 엄마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기 위해 저공 비행을 하며 급히 바나나 하나를 꺼내들고 문 밖으로 나섰다.
예전에는 세상 모든 것의 이유를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가족의 문제라면 더더욱이나.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 따위를 알아봐야 서로의 정신 건강이나 사태의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 진실이라는 것을 본인이 반드시 알고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사람이란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기분이 나쁠 때도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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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만났던 재미있는 표현 중에 ‘공기를 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분위기를 파악한다’는 뜻입니다. 제 짧은 경험 상 일본의 일상 생활에서 이 용어는 재미 이상의 중요한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분위기에 맞지 않으면 좋은 옷이 아니듯, 아무리 외모가 멋져도 ‘공기를 읽지 못하면‘ 그저 분위기를 깨는 사람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일단 어떤 순간과 장소에서 같이 있는 이들의 공기를 읽어내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편안히 흐름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김영하의 '여행자 도쿄'란 책의 한 구절입니다. “도쿄에선 모든 것이 정교하게 세팅되어 있고 주의 깊게 조절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고 모든 사물이 마치 행성들이 제 궤도를 따라 공전하듯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혼잡하기로 소문난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를 횡단하는 일본인들을 꼽습니다. “그토록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서로 부딪히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근처 빌딩의 카페 창가에 앉아 아무리 내려다봐도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일본, 특히 도쿄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공기를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사물들에도 조금씩 공기가 들어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 말의 뜻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 같지만, 느릿느릿 정속주행을 하며 내릴 때는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시내 버스,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지를 알려주는 신호등, 왠지 모르게 편안한 분위기의 우에시마 커피숍 등이 그 예가 아닐까 합니다. 참, 제목의 ‘에어-인(air-in)’은 ‘공기를 읽다’를 대신하는 10대들의 속어라고 합니다. 왠지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일말의 절박함 같은 것도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