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신종윤
  • 조회 수 3196
  • 댓글 수 8
  • 추천 수 0
2009년 3월 2일 01시 37분 등록

우와~”

 

백김치 한 조각을 씹자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마치 맑은 물에 파란색 잉크가 한 방울 떨어진 듯 단맛이 온몸으로 퍼져나갑니다. 이번엔 된장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뭅니다. 구수한 향기에 얼었던 가슴 한 켠이 녹아 내립니다. 이렇게 맛있는 아침밥을 먹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고급 한식집도 아니고 지난 몇 년간 매일 같이 점심을 먹던 회사 식당에서 이런 음식 맛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주방장이 새로 왔다거나 구내 식당을 운영하는 급식 업체가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제가 좋아하는 메뉴가 나온 것도 아니었고요.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마술을 부린 것은 다름아닌 허기와 갈증이었습니다. 사실 그 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반 년이 넘도록 자전거 출근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더는 안되겠다 싶어서 큰 맘 먹고 자전거를 끌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막상 출발은 했는데 이게 생각했던 것과는 영 딴판이었습니다.

 

무섭도록 체중이 불어난 육중한 몸을 두 바퀴 위에 싣고 형편없이 떨어진 저질 체력으로 페달을 밟으려니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렇게 2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달려 회사에 도착하고 보니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습니다. 뱃가죽은 등에 달라붙었고 목은 바싹 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서둘러 샤워를 끝내고 식당으로 달려갔으니, 아침밥이 얼마나 맛있었을지 이제 상상이 가시나요?

 

부족함이 부족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배가 고플 새가 없지요. 그런데도 끼니를 즐기려니 매번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됩니다. 더 기름지고 달콤한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됩니다. 평범한 음식으로는 더 이상 성이 차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겨우 끼니를 때울 뿐입니다. 한끼만 굶으면 세상은 온통 먹고 싶은 것들로 가득합니다. 먹고 싶은 게 많아지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아오릅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의례히 식당으로 향하던 제게 모자랄까봐 미리 준비해 쌓아두는 마음이 결핍이다.’라는 법정스님의 한마디가 비수처럼 날아와 꽂힙니다. 비우지 않고는 채울 수도 없다는 사실을 왜 그리 자주 잊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백김치와 된장국 덕분에 하루가 정말 맛있어졌습니다.

IP *.189.235.111

프로필 이미지
마포누나
2009.03.02 10:09:30 *.82.102.64
짝짝짝!
끄덕 끄덕^^
'모자랄까봐 미리 준비해 쌓아두는 마음이 결핍이다'
외워야지
'모자랄까봐...'
ㅎㅎㅎ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09.03.03 09:20:35 *.96.12.130
법정스님의 말씀이 참 좋죠? 저도 그 말이 너무 맘에 와닿아서 메신져 대화명으로 몇달째 달아놓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여해
2009.03.02 10:45:54 *.93.113.61
여기 또 한명이 모순의 매력에 빠져 있군. 축하해.

나한테 세뇌당한줄은 모르겠지. ㅋㅋㅋ

화창한 봄날에 깨달음이 있는 글 고마워.
프로필 이미지
2009.03.03 09:21:47 *.96.12.130
그러게요. 이제보니 형한테 세뇌당했나보네요. ㅎㅎ 모순의 법칙을 들고 우리 곁으로 우뚝 다가설 형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부담줘도 끄덕없다 하시니 마음 놓고~ ㅎㅎ)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09.03.02 11:17:04 *.180.129.160
드디어 공언을 하셨으니, 예전 사진 속의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살짝 부담을 주면서.^!~
프로필 이미지
2009.03.03 09:22:13 *.96.12.130
공언을 했으니 지켜야겠지요? 기대하세요~
프로필 이미지
햇빛처럼
2009.03.02 14:01:24 *.190.122.223
부족함이 부족한 세상이라...

얼마전에 읽은 책에서 어린시절 가난이 좋은 경험이라는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더군요.

그나저나 20Km를 자전거로 출근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예전에 자전거 여행을 해보면 평균시속 10Km도 쉽지 않던데...
프로필 이미지
2009.03.03 09:24:27 *.96.12.130
비교를 통하지 않고는 행복도, 만족도 느낄 수 없는게 사람이라고 하네요. 일부러 상처와 부족함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다가오는 그것들을 덜 아프게 받아들이는 연습은 필요할 수도 있겠네요.

자전거 출근은... 처음엔 조금 힘들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습니다. ㅎㅎ 봄도 다가오는데 한번 해보심은 어떨런지~ 감사합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36 화요편지 - 오늘도 덕질로 대동단결! 종종 2022.06.07 610
4335 [수요편지] 장미꽃의 의미 [1] 불씨 2023.12.05 611
4334 [수요편지] 똑똑함과 현명함 [1] 불씨 2023.11.15 613
4333 뭐든지는 아니어도 하고 싶은 것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마음 [2] 어니언 2023.11.23 614
4332 작아도 좋은 것이 있다면 [2] 어니언 2023.11.30 636
4331 화요편지 - 생존을 넘어 진화하는, 냉면의 힘 종종 2022.07.12 640
4330 등 뒤로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 [3] 어니언 2023.12.28 640
4329 충실한 일상이 좋은 생각을 부른다 어니언 2023.11.02 655
4328 [내 삶의 단어장] 오늘도 내일도 제삿날 [2] 에움길~ 2023.06.12 664
4327 [수요편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1] 불씨 2023.12.27 664
4326 [수요편지] 미시적 우연과 거시적 필연 [1] 불씨 2023.11.07 666
4325 [내 삶의 단어장] 엄마! 뜨거운 여름날의 수제비 에움길~ 2023.11.13 666
4324 역할 실험 [1] 어니언 2022.08.04 667
4323 [늦은 월요 편지][내 삶의 단어장] 2호선, 그 가득하고도 텅빈 에움길~ 2023.09.19 668
4322 용기의 근원인 당신에게 [1] 어니언 2023.12.14 668
4321 [월요편지-책과 함께] 존엄성 에움길~ 2023.09.25 671
4320 [수요편지] 허상과의 투쟁 [1] 불씨 2022.12.14 675
4319 [수요편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조직문화 불씨 2023.10.11 680
4318 케미가 맞는다는 것 [1] 어니언 2022.09.15 684
4317 두 번째라는 것 어니언 2023.08.03 684